미디안과의 전쟁과 탈취물에 대한 처리(3)

 미디안과의 전쟁과 탈취물에 대한 처리(3)


 


민수기 31장 19-20절「너희는 이레 동안 진영 밖에 주둔하라 누구든지 살인자나 죽임을 당한 사체를 만진 자는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몸을 깨끗하게 하고 너희의 포로도 깨끗하게 할 것이며 모든 의복과 가죽으로 만든 모든 것과 염소털로 만든 모든 것과 나무로 만든 모든 것을 다 깨끗하게 할지니라」


 


사람의 시체를 만지는 것에 대해서 민수기 19장 11-12절에서 이레동안 부정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레위기 21장을 통해서 시체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제사장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몸과 마음의 순결을 지키라고 요구하신다. 몸의 정결을 위해서 시체를 만지지 말라는 것이다.


 


『그의 백성 중에서 죽은 자를 만짐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더럽히지 말려니와』


 


시체, 죽은 자는 죄의 몸이 죽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는 죄의 몸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의 시체와 연합되어 죽은 것으로 간주된다. 시체를 만진다는 것은 영적으로 죄의 몸과 다시 연결되므로 만지지 말라는 것이다. 죄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만일 제사장이 시체를 만지게 되면 칠일간 성소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영적으로 죽은 자는 하늘의 안식이 없는 것이다. 칠일은 창조의 칠일을 의미하듯이, 세상에 갇힌 자는 안식이 없으며, 성소에 들어갈 수 없는 자가 된다. 그러나 칠일째가 되면, 곧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면 안식을 얻게 된다.


 


그러나 제사장의 가족이 죽었을 때는 허용되었다.『그의 살붙이인 그의 어머니나 그의 아버지나 그의 아들이나 그의 딸이나 그의 형제나 출가하지 아니한 처녀인 그의 자매로 말미암아서는 몸을 더럽힐 수 있느니라』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시체인 예수와 연합되어 죽은 자가 되면, 하나님이 부활생명을 가진 거룩한 자로 만들어주신다는 것이다.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잿물로 자신을 정결하게 할 것이라”


 


“셋째 날과 일곱째 날”, 창조 셋째 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셋째 날의 뿌림은 자신의 죄를 기억시켜 그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존재를 바로 알게 하여, 속죄의 필요성을 간절히 느끼도록하는 목적이 있다. 따라서 이는 죄를 자각하게 하는 율법의 기능과 흡사하다.


 


갈라디아서 3장 23-25절「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 삼일이라는 기간은 죽음과 부활 사이의 기간으로서 정결의 기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정결의 기간이 끝나면 부활생명을 먹게 된다.


 


셋째 날은 성소로 보면 떡상이다. 출애굽 당시 맛나와 연결된다. 요한복음 4장에서는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제자들은 먹을 떡을 사러 갔다. 예수님도 사마리아 여인과 만나서 참 양식을 말씀하고 있다.


 


요한복음 4장 34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출애굽기에서 맛나를 통해서 하늘의 양식을 먹는 것이다. 절기로는 초실절과 관계된다. 요한계시록은 4-5장의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늘의 보좌와 첫열매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다.


 


일곱째 날의 뿌림은 부정에서 완전히 깨끗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죄에서 완전히 해방된 감격을 예표한다.


 


로마서 8장 1-2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따라서 시체를 만지므로 더럽혀진 자는 이러한 의식적 정결례를 치루지 않고 아무도 깨끗케 될 수 없었다. 결국 이 두 번의 뿌림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생명과 연결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되는 것은 셋째 날의 피뿌림이고, 일곱 째 날의 피 뿌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의복(베가드)과 가죽(오르)으로 만든 모든 것과 염소털(에즈)로 만든 모든 것과 나무로 만든(에츠) 모든 것을 다 깨끗하게(하타) 할지니라”


 


베가드는 덮다 라는 바가드에서 유래된 것으로, 의복을 의미한다. 덮다라는 개념은 속량의 의미를 갖는다.


 


골로새서 1장 13-14절『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속량과 죄 사함이 동의어의 개념이 아니라, 속량이 있어야, 죄사함을 받는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속량은 레위기 4장 20절의『속』을 인용한 것이다. 『그 송아지를 속죄제의 수송아지에게 한 것 같이 할지며 제사장이 그것으로 회중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들이 사함을 받으리라』


 


오르는 벌거벗기다의 우르에서 유래된 단어로서, 가죽옷을 의미한다.


 


창세기 3장 21절『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가죽옷은 레위기 1장 6절에서『그는 또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것이요』 라고 되어있는데, 이와 연계되어 있다.


 


가죽옷을 히브리어로 보면, 가죽(오르)의 옷(코트노트)이다. 가죽이라는 오르는 레위기 1장 6절의 살 덩어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옷은 번제물의 가죽에 해당된다.


 


가죽옷(살과 가죽)에서 가죽에 해당하는 오르는 벌거벗다 라는 의미이며 벌거벗은 살을 나타낸다. 벌거벗은 살은 육체이며, 영이 갇힌 곳이기도 하다. 영이 갇혔다는 말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들의 영이 옥에 갇힌 것이다.


 


베드로후서 2장 4절에서『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세상에 던져진 자들은 다 벌거벗은 자들인 것이다. 첫사람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인간들은 다 이와 같은 자들인 것이다. 그래서 벌거벗었음을 면하기 위해 옷을 입히는 것이다.


 


가죽옷에서 옷(코터노트 כָּתְנֹ֥ות )은 긴옷이다. 제사장들이 입는 세마포를 의미한다.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옷이라고 한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가죽(5783오르 עֹ֖ור)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벌거벗기는 모습이다. 그의 죽음으로 입혀지는 그리스도의 옷을 상징한다. 옷을 지어 입히시는 분은 엘로힘이시다. 가죽은 동물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가죽은 장막에 사용된다. 장막의 덮개로 사용되는 것이 오르이다. 가죽은 죽음을 전제로 만들어진다. 누군가 죽는 것이다. 그래서 가죽옷은 유월절 어린양을 상징한다.


 


에즈는 단단하다. 굳다 라는 아라즈에서 유래된 것으로 뻣뻣한 염소털을 의미한다. 마음이 굳어있다, 단단하다는 말은 마음이 완고하다라는 표현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목을 뻣뻣이 세우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율법주의를 나타내는 제사장, 서기관들을 나타내는 것으로 염소털을 씻는 것은 물세례를 상징한다. 물에서 죽어야 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에츠는 막대기, 줄기, 지팡이 등을 의미하며, 하타는 개역개정은 깨끗하게 하다 라고 번역되었지만, 빗나가다, 죄를 짓다, 속하다, 회개하다 등의 의미로 다양하게 사용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십자가는 죄를 속하는 의미로서 받아드려 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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