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노아의 방주와 대홍수
(4) 노아의 방주와 대홍수
창세기 6장 5-8절『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예쩨르)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와인나헴)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예쩨르는 틀, 형태, 빚어진 것 등으로 표현되며,
야짜르에서 유래되었다. 야짜르는 어떤 형태로 주조하다,
특히 토기장이와 같이 상징적으로 흙으로 빚다, 형성하다,
모양을 만들다 등으로 사용되었다.
흙으로 된 것은 땅을 의미하며, 땅에서
일어난 일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하다 라는 의미다. 물질세계는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를 가두었으므로 흑암이고
어두운 곳으로서 악하다 라는 것이다. 땅을 근거로 나온 것은 모두가 비진리가 되는 것이다.
와인나헴(기본형은 나함)은 한탄하다 라는 의미 외에 위로하다 라는 의미도 있다. 후회와 위로는 아버지의 사랑이 담겨져 있다. 하나님은 범죄한 영들을
흙속에 가둔 것이 참으로 후회스럽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징계하는 것이 후회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징계를 했지만 위로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범죄한 영들에게
죄의 몸을 주어 육체 속에 가두었지만, 하나님이 다시 영들에게 의의 몸을 주어 하나님 나라로 복귀시키는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곧 새창조를 의미하며,
육의 몸을 벗고 영의 몸을 입는 것이다. 그 작업이 홍수라는 것이다.
홍수는 심판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홍수의 결과 방주에서 구원받는 자들이라는 의미도 된다. 세례가
이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베드로전서 3장 20-21절『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모든 인간은 홍수로 죽어야 하지만, 방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죽음에서 부활로 나아간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반드시 육의 몸은 죽도록 하고, 영의 몸으로 부활하는
은혜를 베푸신다. 부활생명이 선한 양심으로 나가는 길이다.
이 믿음을 가진 자가 복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대홍수를 내릴 것이므로, 회개하여 돌이키도록 노아는
120년간 외쳤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을
믿은 것이다. 비가 온 적이 없는 세상에 하나님이 큰 비를 내려 대홍수를 일으킨다는 것은 사람들의 생각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즉 노아와 그의 가족 칠명 외에는 아무도 노아의 말을 믿지 않은
것이다. 이들은 자기의 의를 나타내는 율법주의자들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노아에게는 형제 자매외에도 자손들이 있었을 것이고, 친척들도 많았을
것이지만, 칠명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과 동물들은 영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떠난 존재(살아있는 생명체)로 비유된다. 사람은 종교심이 있어서 신을 찾는 마음이 있지만, 동물들은 그러하지 못하다. 사람일지라도 비록 종교심이 있지만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며, 이러한 자들을 율법주의자라고 한다.
이렇게 만든 원인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에게 책임이 있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들이었기에 가슴이
아프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흙속에 가두어 한시적인 생명체를 만든 것을 후회하시고 한탄한다는 말이다. 아버지가 자식을 감옥에 가두었다면, 참으로 후회스러울 것이다. 그래서 이를 다시 새창조로 이어가서 하나님 나라로 데려가신다는 말이 된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전혀 깨닫지도 알지도 못한
존재를 회개하게 하여 은혜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이다. 성경은 율법주의자들을 복음으로 이끄시는 것이다. 복음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죽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베노아(וְנֹ֕חַ 그러나 노아는) 마차(מָ֥צָא 발견하다) 헨(חֵ֖ן 은혜를) 베에네(ְעֵינֵ֥י눈 안에서) 야훼(יְהוָֽה) 프(פ)』
노아는 여호와의 눈 안에서 은혜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했는데, 다른 사람들과 짐승들은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오늘날도 교회 안에서 마찬가지로 진리의 말씀을 발견하는 자는 극히 적을 것이며, 교회 밖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는 자들을 율법주의자로 부른다.
헨이라는 은혜는 자비함, 은총 등의 의미다. 하나님의 자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표현된다. 그래서 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한 것이다.
당시 사람들이 방주 안으로 들어가면 죽을 것 같았을 것이다. 빛도 없고 창도 없는 무덤과 같은 모습이다. 다만 언약을 믿고 들어가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와 나누어진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창세기 6장 14절『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역청과 관계되는 단어가 있는 부분을
찾아보면 창세기 19장 24절에서『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요한계시록 20장
10절에서『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창세기의 말씀들은 불과 유황으로 표현되어 있다.
방주는 네모난 상자모형의 배다. 방주를 영어로 표현할 때, Ark라고 한다. 이Ark가 쓰여진 단어들이 모세의 갈대상자와 노아의 방주 그리고
여호와의 언약궤이다.
하나님은 고페르나무(잣나무:백향목)로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다.
백향목은 히브리어로 고페르, 에레츠, 코페르라는
단어로 사용되어 있고, 번역본은 잣나무, 삼나무, 백향목 등으로 표현되었다. 백향목은 성전, 언약궤에도 사용되었다.『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역청은 백향목(고페르) 나무의 진을 섞어서 만든 것이다.『백향목 나무의 진(고피르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한다.
역청은 몸값 속전이라는 의미가 있다. 즉 백향목 나무는 예수 그리스도, 역청은 속전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의미한다.『칠하라』라는 히브리어 단어의 의미는『진정시키다, 화해하다, 속죄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창세기 19장 24절에서『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여기서
유황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고피르트(백향목 나무의 진)이다. 백향목 나무의 진은 예수 그리스도가 대속의 죽음으로 흘리는 피를 나타낸다. 그
피와 불이 하늘에서 비같이 내렸다는 것이다.
불은 성령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천지(물질세계)를
만드실 때 물(말씀)과 성령으로 만드셨다. 베드로후서 3장 7절에서『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하늘과 땅을 불사르기 위하여는 창조하신 말씀과 동일한 것이다. 즉 하나님이 물(말씀)과
성령으로 물질세계를 창조하셨다. 물질세계는 하나님 말씀과 성령에 의해 다시 없어진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0장
10절에서『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여기에도 유황으로 번역된 단어가『고피르트』(백향목
나무의 진)이다. 불은 마찬가지로 성령을 의미한다. 못은 물이 담겨져 있는 곳으로『고피르트』가 있는 못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된 못을 말한다.
물질세계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창조되고, 심판받아
사라질 것이다. 여기에 백향목 나무의 진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는 자는 심판받지 아니할 것이다.
이 이야기가 창세기 1장의 이야기가 되며, 요한계시록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의 이야기가 이해되면
종말의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히브리서 11장 7절에서『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헬라어 크레마티스데이스)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경고하심을 받아 라고 번역되었는데, 크레마티스데이스(기본형은 크레마티조)는 신성하게 알리다(계시), 명칭을
받다 라는 의미다.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은혜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래서 노아는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계시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깨달은 것이다. 하나님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계시를 주시는데, 깨닫는 자가 은혜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모두
영적으로 죽은 자들인 것이다.
하늘의 계시를 받지 못한 자들은 율법주의자들이다. 하늘의 계시를 받은 자가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는 것이다. 계시를
깨달으면 진리를 알게 되고 진리를 알면 믿음이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진리(예수 그리스도)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 라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나아갈 때 은혜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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