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예수님이 물 위를 걸었던 사건

 

(4) 예수님이 물 위를 걸었던 사건

신도들은 예수님이 물 위를 걸었던 사건을 통해서, 믿음의 중요성과 의심이 가져다 주는 결과를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신성과 권능을 나타내며, 베드로의 경험은 인간의 나약함과 예수님의 권능의 손길과 대비되는 것으로 구원의 모형을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물 위로 걸으신 사건에 대해서, 요한복음 6장 16-21절에서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두려워 말라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마태복음 14장 28-29절에서는 베드로가 과감히 자신도 물 위를 걸어보겠다고 도전한다.『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신 사건과 제자들이 두려워하고, 베드로가 물 위를 걷다가 두려워 빠져드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구해주시는 장면들은 율법에 갇혀있는 자의 두려움과 복음의 실체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요한복음 6장 16-17절『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어두움은 여전히 제자들이 율법이라는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나타내신다. 바람이 불어 파도를 일으키는 것은 율법을 벗어나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될 것을 나타내신다. 바람은 성령을 상징한다.

마태복음 14장 22-36절에서도 같은 표현을 하고 있다.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질렀다. 베드로는 배를 나가 물 위로 걸었다. 배는 바로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배의 시작은 노아의 방주다. 방주는 구원의 표이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여기에서 바다는 율법을 나타내는데, 물위를 걸어오신 예수님은 율법 위에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신 것은 율법 위에 계신다는 것이고,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으시는 분을 나타낸다. 그래서 율법을 완전히 순종하셔서, 하나님의 의가 되었다는 말은 맞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실 때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함을 받으셨으므로, 율법과 상관없는 자인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는 사람의 아들이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특수성이 있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입장에서는 율법 위에 있으신 분이셨지만, 사람의 아들이라는 점에서는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없었기에, 예수님은 율법에 따라 할례로 받으시고, 각종 율법을 지키셨으나, 그렇다고 완전히 율법 아래 있는 분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율법 아래 태어나신 것은 율법을 완전히 지켜서 의를 이루게 하실 목적으로 태어난게 아니라, 율법에 따라 죽으시므로, 모든 예수를 믿는 자마다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결국 그것이 율법의 완성이기도 한 것이다. 즉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해 대속의 죽음을 이루시기 위해 율법에 따라 죽으신 것이다. 이것을 교리는 율법에 대해서 수동적 순종이라고 말을 하지만, 그것은 교리일 뿐이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걸은 것이다. 그러다가 두려워하므로 물에 빠져 들게 되었다. 예수님은 복음을 대표한다. 베드로가 복음을 받아드렸지만, 오랫동안 율법 아래 있었으므로, 율법을 벗어나는 것이 그에게는 매우 두려운 것이다. 결국 물에 빠져드는 것은 여전히 율법의 생각이 그를 떨칠 수 없는 상황을 알려준다. 모든 신도들이 다 이와 같은 상황이다. 예수를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율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오늘날 많은 신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고 믿지만, 날마다 죄가 눈에 들어오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받아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이들도 베드로처럼 물 위를 잠시 걷다가 물에 빠져드는 자가 되는 것이다.

율법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율법으로부터 나가는 것이 복음이라면, 그렇지 못하고 율법의 조문에 얽혀 빠져 나오지 못하는 자를 율법주의자라고 한다.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신 사건을 통하여, 복음과 율법주의 관계를 깨닫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이라는 바다 위를 걸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은 자는 모두 바다에 빠져 죽은 자들이다. 즉 율법에대해서 죽은 자가 된다. 그러나 다시 성령으로 태어나 부활생명을 가진 자들은 바다 위를 걷는 자들이 된다. 사람의 아들인 예수와 함께 죽은 자는 율법이라는 바다에 빠져 죽었고,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함을 믿은 자들은 하늘의 생명을 얻는 자가 된다.

바다 위를 궁창 위의 물이라고 한다. 궁창 위의 물을 하늘로 표현하는 것이다. 궁창 아래 물을 바다라 칭하는 이유는 이것이 율법이며, 모든 인간은 죄 아래 갇혀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바다 위를 걷는 자는 궁창 위의 물, 즉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자가 된다.

오늘날 신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착각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성자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도 동일하게 십자가의 능력만을 강조하고 있다. 사람의 아들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구분없이 제멋대로 부르고, 십자가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확히는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의 아들인 인자이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 신도들이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바로 사람의 아들이 하신 일과 하나님의 아들이 이루신 일을 동시에 믿고, 신도 역시 그의 하신 일에 연합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신도 역시 사람의 아들 예수와 함께 율법에 따라 죽었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것을 믿는 것이다. 이것을 믿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된다. 믿지 않는 자는 자기 식의 믿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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