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례에 대하여
(5)세례에 대하여
마태복음 28장 19절에는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라고 말하고 있다. 개역개정이 그렇게 번역했지만, 헬라어 성경은“바티존테스 아누토스 에이스 토 오노마 투 파트로스 카이 투 휘우 카이 투 하기우 프뉴마토스”이다. 이를 다시 번역하면,“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안에서 그들에게 세례하라”는 것이다.
개역개정과 비교하면, 몇가지에서 차이가 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라고 하는데, 그래서 오늘날 목사, 장로들이 세례할 때, 같은 내용대로“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들어보면 이름으로 세례해야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없고, 이름이라는 명칭만 있는 것이다.
“나는 000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자임을 선포하노라”라고 해야만 할 것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부의 이름은 그리스도, 성자의 이름은 예수, 성령의 이름은 그리스도 예수이시다.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그리스도 예수라는 이름으로 성도에게 세례를 주므로, 성부와 성자와 성도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된다.
아버지의 이름에 대해서, 요한복음 5장 43절『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신 분이 그리스도이다.
『아들의 이름으로』아들은 예수이시다.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이시다. 현재적 부활을 믿지 않는 자는 부활하신 예수의 이름은 없고, 오직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므로, 온전한 세례가 아닌 것이다.
『성령의 이름으로』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으로, 성부에게서 성자로, 성자에게서 성도에게로 현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한다. 따라서 성령의 이름을 표현하면, 그리스도 예수이시다.
요한복음 14장 16절『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따라서 성령의 이름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 예수이신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에서, 아버지의 이름은 그리스도, 아들의 이름은 예수, 성령의 이름은 그리스도 예수이시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라고 말을 했을 때,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없는 세례는 온전한 세례가 아닌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 속에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부활하신 그리스도 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그래서 세례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와 연합되어 죽은 자임을 믿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였음을 믿는 의식인 것이다.
두번째는 세례를 주노라 라고 말을 하는데, 세례가 목적어가 되어 버린 것이다. 헬라어 바티존테스는 영어로 baptize 동사이다. 제대로 번역하면, “세례하다”이다. 세례하다는 말은 물을 통해서 선언한다 라는 말이다. 무엇을 선언하는가? 바로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된 것을 선언하는 것이다. 오늘날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도 빠져 있고, 주된 내용도 선언하지 않은 것이다.
세례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성도의 심령 속에 임하시어, 연합되는 의식이며, 연합되는 것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일치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아들인 예수의 죽음이 곧 신자의 죽음이고,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의 부활이 곧 신자의 부활이 되는 것이다.
세례를 집행하는 자는 반드시 목사가 해야 한다는 원칙은 없으며, 성령세례를 받은 자가 하는 것이다. 현재적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이 행하는 세례의 집행은 완전하다고 할 수 없다. 땅에서 풀지 않으므로 하늘에서도 풀리지 않는다.
현재적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은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는 반드시 성령세례를 받아야만 알 수 있다. 그래서 세례를 받을 때 이와 같은 의미도 모르면서 받는 세례는 물세례만 받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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