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통한 성경 해석이 부족하다 (구약성경) (1)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와 그 열매
6.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통한 성경 해석이 부족하다
(구약성경)
(1)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와 그 열매
창세기 2장 9절에서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에 대해서 말한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어떤 의미의 나무인가? 말 그대로 선과 악을 알게해 주므로 이 나무의 정체는 바로 성경이며 율법에 해당되는 것이다.
율법을 바라보는 마음이 선으로 향할 수도 있고, 악으로 향할 수도 있는 것이다. 율법은 613가지나 되는 규율이 있는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규율을 다 지켜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지키지 못할 때는 희생제물을 가지고 와서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율법을 선으로 바라보는 자는 율법을 지키려고 하다가 자신이 죄인됨을 깨닫고, 희생제물을 통해서 장차 오실 메시야를 생각하게 된 자들이다. 극히 소수의 믿음의 선진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되는 것이다. 생명나무의 열매는 부활생명을 의미한다.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은 부활생명을 얻게 되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영이 육체에 갇혀 하나님과 단절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생명을 먹게 되므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율법을 악으로 바라보는 자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켜 하나님의 의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진 자들이다. 이들을 율법주의자라고 하며,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이 율법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사악하게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했다.
그들은 악의 과실을 먹은 자들이다. 그 과실을 먹는 목적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먹는 것이며, 그 바탕에는 탐욕이라는 우상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율법이라는 성경의 말씀은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복음으로 전환되고 생명과실을 먹게 된다. 그러나 율법주의로 전환되면, 악의 과실을 먹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율법을 바라보는 두 마음은 복음과 율법주의가 된다. 그래서 율법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며, 그 속에 진리를 발견하면,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고,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면 자신이 적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상징적인 의미의 나무이다. 이를 통칭 선악과라고 하는데, 성경에 선악과 라는 것
은 없으며, 선의 열매와 악의 열매가 있는 것이다.
선의 마음으로 열매를 먹으면, 부활생명이 되고, 악의 마음으로 열매를 먹으면, 율법주의로 타락한 탐욕이 되는 것이다.
창세기 2장 9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이 부분의 헬라어 성경은 “워토브(토브) 르마레(마레) 네흐마드(하마드) 하하임(하이) 웨에츠(이츠) 르마아칼(마아칼)”이다. 번역하면, “보기에 아름답고, 생명의 기쁨이 되고, 먹을만한 나무” 이다. 여기에 생명의 기쁨이 번역되지 않고, 뒤에 나오는 문장에 연결되어 번역을 시도한 것으로 보여진다.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헬라어 성경을 보면, “웨에츠(에츠) 하간(간) 브톡(타벡) 와라(라) 토브(토브) 하다트(다아트)”이다. ( )안은 기본형으로서, 라틴 계통의 단어는 기본형이 있고, 시제에 따라, 변화하게 된다. 하간은 간의 소유격으로 of the garden(정원의) 라는 말이다. 브톡은 영어의 in the midst(가운데)이다. 와라는 and evil(그리고 악), 토브는 of good(선의), 하다트는 of the knowledge(지식의)이다.
다시 번역해 보면, “정원 가운데, 선의 지식나무와 악의 지식나무”이다. 번역 할 때, 앞 부분의 “생명의 기쁨이 되는” 부분을 뒷 부분으로 가져와서 생명나무로, 그리고 선과 악과 지식을 연결하여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로 번역한 것으로 보여진다. 따라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라는 번역은 잘못된 것으로, 마치 그 나무가 선과 악을 동시에 연결된 나무인 것처럼 여기게 하는 것이다. 즉 선의 지식나무와 열매, 악의 지식나무와 열매가 된다.
선은 복음을 상징하고 그 열매는 부활생명을, 악은 율법주의를 상징하고, 그 열매는 자기의 의를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선의 지식 나무와 악의 지식 나무를 혼합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악과는 선의 열매와 악의 열매를 혼합하여 먹는 것이다. 즉 종교 혼합주의를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영적 간음을 의미한다.
창세기 3장 6절『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여기에서 그 열매라고 표현하므로, 대부분 신도들은 선악과로 생각한다. 선악과는 이제 고유명사가 되어 영적으로 죽음의 열매가 된 것이다. 선악과는 상징적으로 여러 분야에서 파급 효과를 내었다.
일반적으로 선악과가 서유럽에서는 사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성경 에는 사과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사과가 선악과로 여겨진 것은 5세기 후반부터인데, 각종 신화와 설화들의 영향이라는 설과 라틴어로 사과와 악이 같은 발음(Malum)이라서 생긴 말장난이라는 설이 공존한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선악과를 무화과로 인식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어떤 과일의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목한 과일이면 어느 것이나 선악과가 될 수 있다고도 말한다.
신학자들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한 하나님의 명령이 최초의 계명이라고 말을 한다.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선의 과실과 악의 과실을 혼합하여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인데, 마치 선악과라는 것이 있어서 먹지 말라고 하신 것으로 받아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선악과로 인식하게 한 그 열매는 탐욕으로 물든 악의 열매가 되는 것이다.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농부가 알곡을 심었는데, 어느 날 가라지가 나온 것이다. 하인이 가라지를 뽑을까요 라고 주인에게 물었더니 놔두라고 하면서 추수할 때 가라지를 모아 불에 태워버리겠다고 했다.
밭은 신도들이 율법이라는 성경 말씀을 바라보는 마음이다. 알곡은 마음의 밭을 갈아서 씨를 뿌려 드디어 부활생명의 열매를 먹는 자들이 된다. 그러나 가라지는 율법주의자로서, 부활생명의 열매가 없는 쭉정이가 된다는 말씀이다.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는데, 심판 때는 가라지를 가려내서 불에 태워버릴 것이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 안에 부활생명을 가진 자와 악의 열매를 먹는 율법주의가 혼재되어 있다. 이것이야 말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자를 의미한다. 즉 선과 악의 열매를 혼합적으로 생각해서 먹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주의자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다.
교회라고 말하는 성도의 심령 속에도 알곡과 가라지가 있다. 부활생명으로 거듭난 새사람이 있는가 하면, 율법주의로 물든 가라지 같은 옛사람이 있는 것이다. 옛사람은 육체의 원하는 것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새사람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하늘의 것을 추구한다. 신도의 마음 속에서 날마다 영적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선의 열매 즉, 부활생명을 먹는 자는 영생의 길로, 악의 열매를 먹는 자는 자기의 의를 이루려고 하는 심판받아야 할 자로 가는 것이다. 율법 속에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찾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모두 악의 열매를 먹는 율법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신도들이 왜 부활생명의 열매를 찾지 못하고, 먹지 못하는가? 그것은 부활생명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부활생명은 육체로부터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대부분 신도들은 육체의 부활을 믿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교리로 인한 것이다.
신도들은 자기들도 모르게 선의 열매를 먹는다고 생각하면서 악의 열매도 먹고 있는 것이다. 누구 때문인가? 신도들은 성경에 대한 지식이 목사들 보다는 높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목사들이 잘못된 지식을 전하게 되면, 결국 신도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말이다.
초대 교회 당시부터 거짓선지자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 있어 왔다. 삯꾼 목사를 조심하라는 말부터, 양의 탈을 쓴 이리의 비유에서와 같이 거짓 목사들에 대한 경고가 주어진 것이다.
유다서 1장 4절에서는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라고 말한다.
가만히 들어온 사람이란, 교회 안에 그런 사람들이 섞여 있는 것이다.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는 선지자들이 경고한 대로 이와 같은 거짓 목사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로 되어 있는 경건하지 않은 자들이다. 경건하지 않는 의미는 하나님의 은혜를 방탕한 것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