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6)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삼위일체 이론은 하나님 입장에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한 분이라는 입장이다. 그리고 성도의 입장에서는 성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도가 성령으로 하나되는 것으로 인식된다. 삼위일체는 하나님 중심으로 볼때는 한분의 하나님으로 설명될 수 있지만, 사람
중심 사상에서는 성부와 성자와 성도가 성령 안에서 하나됨을 설명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왕국, 하늘나라(천국), 성도의
심령 속의 셋째 하늘도 사람 중심 사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하나님 왕국(성부), 천국(성자), 성도의 심령 속의 하늘(셋째 하늘)이 된다.
첫째하늘과
둘째하늘과 셋째하늘은 성령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운행되고 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가 세가지의 형태로 인간들의 눈에
보이는 것이다.
첫째하늘은
보좌에 계신 성부의 하나님 왕국을 의미한다. 성부 하나님이 영으로 임재하는 하나님 나라이다. 아무도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디모데전서 6장
16절에서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둘째
하늘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천국으로 표현된다. 영의 몸을
입고 임재하시는 아들의 나라이다. 골로새서 1장 12-13절에서『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마가복음 16장 9절에서 하나님 우편에 앉았다고 말을 한다. 둘째 하늘을 하나님 왕국의 우편이라고 표현된 것이다.
셋째하늘은
성도에게 임재하는 하나님 나라이다. 사도바울이 고린도후서 12장 2절에서 셋째하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성도가 현재적으로 부활을
믿게되면, 심령 속에 새성전이 세워지는데, 이 새성전에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재림하여 들어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부어주신다.
에베소서
2장 6절에서『성도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라고 말을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이라는 말은 셋째 하늘의 의미를 제공하는 것이다. 에덴동산이라고 하기도 하고, 새하늘과 새땅이라고 하기도 한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이지만 성도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삼위일체와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고린도후서 12장 1-4절「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트리투) 하늘(우라논)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파라데이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트리투
우라논과 파라데이손은 의미상으로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박혔을 때, 우편 강도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누가복음
23장 42-43절「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세레몬) 네가 나와 함께 낙원(파라데이소)에 있으리라 하시니라.」세레몬은
지금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는데, 성경은 보면 중간에 옥에 내려가셨다고 전한다.
베드로전서
3장 18-19절「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옥은 사람들의 심령 속에 있는 옛성전을
의미한다. 영이 육체에 갇혀있으므로 예수님이 영으로 사람들의 심령 속으로 들어가서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회개하고 돌이키라고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의 문을 여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복음을 받아드리지만, 그렇게 받아드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우편 강도는 십자가에서 매달려 죽을 때
회개하여, 예수님께 간청하므로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여 낙원으로 들어간 것이다. 우측 강도는 가장 먼저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자일 것이다.
노아의 홍수와 방주를 통해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그리스도가 물질
세계에 첫사람 아담(사람)으로 내려옴(가장 아래층), 그리고 출애굽과 가나안(마지막 아담 그리스도:둘째 층)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의 여정, 세상에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구원을 얻게 되는 성도들(셋째 층), 이 세가지를 연속적으로 연계하면서 홍수의 사건을 바라보아야
한다.
단지 문자적으로 바라보면 홍수의 사건이 하나님의 심판이고, 경건한 자 여덟명은 방주로 구원받았다는 이야기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대로 잘 살아야지 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홍수의 사건에서 하나님은 세가지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는 것임을 기억해야만 한다.
창세기 6장 15절에서는『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규빗은 길이를
측정하는 단위로 사용되었지만, 하나님 말씀의 잣대라는 의미도 있다. 삼백에서 삼은 아버지와 아들과 아들을 믿는 성도가 하나님 말씀 안에서 하나가
되어 성취되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열의 열(10)은 성취되는 것을 의미한다.
오십에서 오(5)는 은혜를 상징한다. 사(4)는 고통과 죽음을 상징하는데, 그것이 끝나면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진다. 그 은혜가 바로 율법이다. 그래서 율법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 바로 은혜라는 것이다. 삼십(30)도 삼백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도가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의미하는 방주에 들어가는 자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하나가
되어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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