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혼합주의를 수용하므로 신도들의 신앙이 추락한다 (1) 복음에 율법주의, 신비주의, 기복주의를 섞는 자들
7. 혼합주의를 수용하므로 신도들의 신앙이 추락한다
(1) 복음에 율법주의, 신비주의, 기복주의를 섞는 자들
①복음에 율법주의를 섞는 자들
오늘날 기독교 내에서는 복음과 율법을 구분하여 말한다.『율법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구원받는다』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신도들은 율법과 율법주의를 구분하지 못하면 이런 함정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율법은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율법주의는 그리스도를 제거한 인본주의 사상인 것이다. 율법주의와 인본주의 사상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교회 안에서 만연한 율법주의(인본주의) 사상은 나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내세우게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십계명이다.
십계명 속에서 죄를 발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계명에 얽매여 그것을 지키느니 마느니 하는 것이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계명이지만, 하나님의 죄인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향한 사랑을 생각하게 한다. 규정의 문자에 얽매이게 하는 것이 율법주의 이다.
또한 예수님을 닮아 거룩한 생활을 하도록 강요하거나,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지침을 내리는 듯한 말도 다 율법주의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을 하면서, 생활 속에서는 자기를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시는데, 많은 목사들은 자기를 살리고 있는 실정이다. 모든 인간들은 죄인들이며, 하나님 앞에서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들로서,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삶 외에는 방법이 없음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날마다 죽노라』라고 외치는 사도바울의 말을 기억하지 않으면, 율법주의(인본주의)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율법주의에 빠지는 자들의 모습은 행동을 강조한다. 야고보가 말하는 규정을 들어서 행동이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다. 야고보서 2장 26절에서『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라고 말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행함으로 나타나지만, 행함을 의무적인 규정처럼 생각하게 한다면, 율법주의 생각인 것이다. 행동을 강조하는 자들은 율법주의(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다른 종교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율법주의(인본주의)를 섞는 기독교는 이미 참된 진리의 복음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미 모든 종교가 통합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자각해야만 한다. 그래서 오늘날 성도는 교회 안에서 영적 분별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영적 분별이 있으면, 열처녀의 비유처럼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복음과 율법주의(인본주의)가 섞여 있음을 알게한다.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도 마찬가지이며, 양과 염소의 비유도 마찬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탄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율법주의(인본주의)와 섞으려고 계속 시도하고 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소금이요, 빛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을 두고, 교회 사람들은 열심을 내어서 세상의 빛과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빛과 소금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이라는 말씀이다. 열심을 내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믿으므로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신도들은 복음에 행동을 강조하는 율법주의를 섞어, 빛과 소금과 같은 자가 되도록 노력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약을 통해서 신도들이 하나님 백성임을 선언해 주시는데, 신도들은 복음에 무엇인가 노력을 통해서 첨가해야만 되는 줄로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복음에 율법주의를 섞는 행위는 영적 간음과 같은 모습이다.
②복음에 신비주의를 섞는 자들
신비주의를 영지주의라고도 한다. 영지주의는 그노시즘(영어로는 나스티시즘)이러고 불리운다. 그노시스는 헬라어로 신비적이고 계시적이며 높은 지식, 또는 깨달음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영지라는 말은 영적 지식을 의미하며, 그래서 우리말 번역은 신비주의 또는 영지주의로 되어 있다.
영지주의의 근본적 사상은 인간에게 신성이 있는데, 물질인 육체에 영이 갇혀있어 신성이 감추어져 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혜를 통해서 신성을 회복하여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영지주의를 주장하는 자들은 어떤 하나의 형태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상적 견해가 다양하다. 어쩌면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가 영지주의의 한 분파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기독교에 이런 사상이 들어왔다면 아마도 놀라울 것이다.
교회 사람들은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창조하셨는데,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므로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죄에서 벗어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하나님이 예수의 피를 통해서 모든 죄를 사해주시며, 그로 인해서 하나님이 예수를 믿는 자에게 성령을 보내주시므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 지은 원죄는 벗어났지만, 현재와 미래에 죄를 짓지 않으려고 계명을 살펴보면서 철저한 신앙생활을 해야하며, 죄를 지으면 곧 바로 예수의 피로 용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죄를 이기기 위해서는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거룩한 생활을 해나가야 한다고 믿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은 신이 될 수 있는 신성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난 분이 예수님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신앙생활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된다. 기독교인들 중 열심히 신앙생활 잘해서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형상을 신이 될 수 있는 신성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게 생각하다면 영지주의를 믿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많은 교회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면, 성령이 오시는 것으로 생각한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와 함께 죽고 다시 태어남을 믿는 것인데, 예수 이름만 믿으면, 모든 죄가 사해지고 성령도 선물로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령은 예수와 함께 죽지 않으면 오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와 함께 죽지도 않으면서, 성령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사도행전을 보면 마술쟁이 시몬이 돈을 주고 성령을 살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했다.
심지어 오늘날은 많은 교회에서 성령체험이니 은사를 강조한다. 신비한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신다고 믿는 것이다. 신비한 체험을 통해서, 그 사람에게 성령이 역사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거나, 그 사람이 신성을 가진 자가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은사에 대해서, 하나님의 예언 능력을 받았다고 하며, 다른 사람의 미래에 대해서 예언을 하거나, 국가나 사회에 어떤 사건들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기도 한다. 신비한 말(방언)을 통해서 하나님과 직접 소통하여 병도 낫게 해주고, 이 땅에서도 복을 받아서 잘되게 해 달라고 빌고 있으며, 혹시라도 문제가 해결되면 신통한 능력을 가졌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게 영지주의에서 말하는 감추어진 신성을 깨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하나님이 초대교회 당시 제자들에게 허용하신 것인데,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에 있는 신성(하나님의 형상)을 깨우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영지주의를 추구하는 종교들은 대부분 사상이 같다. 마음 속에 있는 신성을 깨우는 것이다. 그래서 노력으로 그것을 이루어 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통합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기독교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성경(로마서 1장)은 인간의 마음에 신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악한 탐욕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 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③복음에 기복주의를 섞는 자들
요한일서 2장 15-17절『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세상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사이에는 상호 배타적인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빛과 어두움이 공존하지 못하듯이 하나님 사랑과 세상 사랑은 공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영을 살리는 마음이고,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은 영을 죽이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이에게는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않다고 사도요한은 말한다. 세상의 특징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기 때문이다.
육신의 정욕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신의 욕망만을 선택하는 죄악 된 것이다. 안목의 정욕은 눈을 통해 추구하게 되는 죄악 된 욕망이다. 이생의 자랑은 하나님과 관계없는 인생에 대한 자랑이다. 즉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삶을 뜻한다.
세상과 교회는 양립할 수 없다. 그런데 수많은 교회는 기복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돈 많이 벌 수 있도록 기도하고, 대학입시 철이 되면 교회에서 학부모 연합기도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속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없다고 말한다. 이 세상의 것은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왜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셨는가?
교회에서 기복적인 설교를 한다면 가짜 교회라고 말할 수 있다. 가짜 교회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과 연합되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구원은 세상으로 부터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예수믿으면 구원받는다』라고 단순히 믿는다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의미조차 모르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세상 사랑하는 탐욕을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대부분 교회가 기복주의 신앙을 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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