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예수님의 산상수훈

 (8) 예수님의 산상수훈

 

예수님께서 갈릴리의 산에서 제자와 무리에게 전하신 산상수훈에 대해서, 오늘날 교회 공동체에서 목사들이나 신도들은 하나님의 나라 백성의 삶과 기독교 윤리의 핵심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설교에서 세상의 가치와는 다른 하나님의 관점에서 복된 삶과 참된 신앙 생활을 강조하셨다고 말한다.


오늘날 신도들은 산상수훈에서 마음과 영혼의 순수함을 중요함을 강조하며, 기도, 금식, 재물 등에 대한 태도 등 외적인 모든 신앙적 행위가 내적인 변화를 통해서, 행동으로 나타내어야 한다고 말한다.


산상수훈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이 땅에서 삶의 방식과 내면적 변화를 요구하며, 팔복을 통해서 율법의 완성, 마음의 청결, 기도와 금식, 이웃 사랑 등 세상의 가치와 다른 하나님의 원칙을 실천하도록 제자들에게 권면하는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웃 사랑, 용서, 겸손, 평화의 삶을 실천하도록 가르치셨다고 전제하며, 또한, 제자들을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비유하며,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명을 강조하셨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는 이 산상수훈 팔복을 통해서, 신도들 역시 마음의 변화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산상수훈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은 죽은 영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와 죽은 영을 살리기 위한 고난을 감수하고, 그와 같은 내용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겪는 어려움을 인내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내면의 삶의 변화나 행동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은 영을 살리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죄악 중에 있는 자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여 돌이켜야 하며, 이렇게 회개하여 돌이킬 때, 하나님이 죽어있던 영을 성령의 능력으로 일으키고, 그에 따라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을 가르친다.


팔복은 복음의 복을 의미하며, 영을 살리는 것과 관련된다. 여덟가지 방법으로 접근하지만, 서로 연관되며, 하나의 목표로 나아가는 것이다.


신도들은 복에 대해서 잘 알아야만 한다. 율법은 모든 인간들이 죄인임을 알려주신다.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면 여전히 죄인인 것이다.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자가 복이 된다. 복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복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의미한다. 신도가 하나님께 대하여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예수와 함께 죽은 자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를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시켜 주시는 것이다. 현재적 부활을 믿는 자에게 하늘의 신령한 복이 들어오는 것이다. 따라서 복의 원천은 십자가의 죽음과 영생인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다.


죄를 깨닫는 것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는 것이다. 율법이 알려주시는 것은『너희들의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심령은 영을 말한다. 영이 가난하다는 말은 영이 죄로 인해 죽어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이 가난하다는 의미를 깨닫는 자는 복을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을 깨닫고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영을 살려주시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태어나자 말자 영이 왜 죽어있는가? 이 땅에서 인간들은 나그네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온 나그네라는 것이다. 히브리서 11장 13절에서『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그래서 사람들이 돌아갈 곳이 하나님 나라 라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돌아갈 수 없다. 영이 죽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 간청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함께 죽은 자를 함께 부활시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신다. 부활생명을 얻은 자가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 것이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애통하다는 말은 원통해서 통한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었는데, 물질세계의 흙 속에 영이 갇혀있는 것을 깨닫고 보니, 너무나 스스로 원통하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18장 7절에서”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라고 말한다.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세상에 쫒겨온 자들이 빼앗긴 영의 몸을 다시 회복시켜 달라고 밤낮 부르짖으라는 것이다.


택하신 자들은 이런 기도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탕자의 비유처럼, 죽은 것같이 되어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하다(아나)는 말은 “심령이 가난하다”에서 가난하다 라는 말과 히브리어에서 같은 단어(아나)를 사용하고 있다. 히브리어로 아나 라는 말은 부자나 권력가들의 경제적 수탈과 사회적 억압에서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없는 가난한 상태를 말한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 그래서 겸손해지는 것이다.


민수기 12장 3절에서”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라고 말한다. 모세가 애굽의 왕자였을 때는 당당했으나, 미디안으로 도망간 후에는 40년 동안 보잘 것 없는 자가 된 것이다. 이 땅에서 나그네로서 가진 것이 없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자에게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어 주신다는 것이다. 땅은 가나안 땅이다. 기업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다.


땅을 기업으로 받는 것은 장차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는 약속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나라에서 이 땅에 쫒겨와서 살고 있다가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자신은 이 땅에서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겸손함으로 온유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온유한 자는 회개하여,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하나님 나라를 약속받는 것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서 의는 하나님의 의다. 신도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를 받아야만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자신에게는 하나님의 의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자가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얻는 방법은 자기를 부인하는 길이다. 예수님과 더불어 십자가에서 함께 죽을 때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께서 부활생명인 의를 주신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연합되어 자신도 부활하였음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가 들어오는 것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말은 율법을 지켜 의를 이루어 보려고 하다가 도저히 스스로 의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의에 대해서 갈증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희생제사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다. 율법에서 벗어나 복음으로 들어가면, 갈증이 해소된다. 복음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리의 이중 전가이론은 잘못된 것이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긍휼의 의미는 하나님의 자비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자비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죽었던 영이 살아남을 의미한다. 우리도 긍휼히 여겨야 될 사람은 영적 형제이다.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은 형제의 죽어있는 영을 살리는 것에 참여하는 것이다.


긍휼히 여기는 자가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 형제가 사망에 빠져있는데, 생명의 빛을 전해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씀이다.


요한1서 3장 14절에서”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라고 말한다.


요한1서 4장 20절에서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하다는 의미는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다. 시편 19편 8절에서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라고 말한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눈을 밝게 하여, 하나님을 본다는 것이다.


율법은 복음을 내포한다. 문자에 얽매이면, 율법주의가 되지만, 그리스도를 발견하면, 복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려고 하다가 지킬 수 없음을 깨닫고, 구원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자가 된다. 현재적 부활을 믿는 자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예수님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화목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죄인은 하나님에게 다가 갈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인도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죄인들이 회개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과 함께 죽을 때(연합될 때), 죄인들의 모든 죄는 사라지고, 부활생명으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의를 얻는 것이다.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의를 얻는 자가 하나님과 화평하게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도 마찬가지로 다른 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평하게 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므로서 다른 죄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는 것도 역시 예수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였음을 믿는 것이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많은 교회 사람들은 이 말에 대해서,“교회 다니므로서 세상 사람들로 부터 핍박을 받는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하면 로마시대 때 기독교인들이 예수 믿는 것으로 인하여 핍박받은 사실을 상기하기 때문이다.


“의를 위하여”에서, 의라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유대인들에게 율법 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뜻을 깨달아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들은 세례요한이나 예수님이 유대인들을 향해서 회개하라는 의미조차 깨닫지 못했다. 회개하라는 의미는 율법 속에서 의를 이룰 수 없음을 발견하고 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것인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박해를 받게된다.


오늘날도 교회에서 율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서 오직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율법적으로 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여전히 십일조를 바쳐야 구원받을 수 있고, 교회건물을 성전이라고 해서 그곳에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날마다 죄를 회개해야만 구원받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율법주의적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모든 죄인들을 대신해서 죽으신 것이다. 그러나 죄인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을 떠났던 죄를 회개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의(부활)를 받을 수 있다.


회개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반드시 죄에는 그 대가가 있는 법이다. 하나님을 떠난 죄에 대해서는 그 대가가 죽음이라는 것이다. 예수님만 죽고, 죄인은 죽지않는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만 죄가 사해진다. 예수와 함께 죽은 자는 원죄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짓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세상죄를 용서받는다.


그러나 교회에서 율법주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말에 대해서 비난하고 박해를 한다는 것이다. 날마다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신들이 의를 이루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라고 말하면서도 율법주의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믿음으로서, 예수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였음을 믿는 것이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이런 일들이 교회에서 많이 있을 것이다. 교회 안에서 현재적 부활을 전할 때, 신도들에게 핍박을 당한다. 예수님이 세상죄를 다 가지고 갔다고 말을 해도,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를 용서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것을 전하는 자에게 핍박을 한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여덟가지 복에 대해서 말씀하신 이유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지켜서 의를 이루어 보라고 하셨지만, 근본적 이유는 너희들은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죄인들로서, 하나님 나라를 떠난 죄인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오직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회개하라고 말씀하셨다.


복은 율법 속에서 자신들이 죄인됨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생의 말씀을 깨닫고, 예수가 바로 부활의 몸을 주는 메시야이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라는 말이다. 하나님 나라는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가 된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는데 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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