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세례요한과 예수 그리스도

 

(8) 세례요한과 예수 그리스도

세례요한은 마태복음 3장 6절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왔다고 증거할 정도로 세례요한은 인정받고 있었고, 명성도 드높았으며,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는 때였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다.

그는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고 증언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으며 그 부르심을 따라 살았다. 사람들이 혹 이 사람이 하나님께서 보내실 그리스도이신지를 궁금해 하며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세례요한에게 보내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네가 누구냐”라고 묻는다.“당신이 구약에서 말한 그 오실 분, 곧 그리스도이십니까?”라고 질문한 것이다. 요한이 그 질문에 분명하게“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라고 대답했다.

그들이 또 물었다. “당신은 엘리야입니까? 아니면 그 선지자입니까?” 요한은 분명하게 두 질문에 다 아니라고 대답했다. 답답해진 그들이 묻는다.

그러면“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그러자 세례 요한은 대답했다.“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주의 길을 준비하도록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이것이 바로 그가 말한 자신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는 앞서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역할이 자신이 해야 할 일임을 알았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빛이 아니요 그 빛에 대해 증거하는 자며, 자신이 주목을 받을 자가 아니라 그 주목을 하나님의 아들께 드리기 위해 자신이 이 땅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았다.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것은 회개를 외치는 것이다. 천국(예수 그리스도)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는 것이다.

임박한 하나님 나라와 참된 회개를 선포하는 그를 보며, 사람들은 그를 그리스도로 오해하기도 하였다. 그의 광야에서의 검소하고 청렴한 삶의 모습과, 기득권을 내려놓은 생활은, 당시의 호화롭고 사치하며, 물질을 사랑하던 종교지도자들과 대조를 이루었다.

그는 진실된 회개, 참된 돌이킴을 요청하며, 말로만 그렇게 하나 삶의 모습은 그에서 먼 자들을 향해 회개에 합당한 열매 맺기를 촉구하였으며, 나아가 당시의 권력자 헤롯 안디바의 부도덕하고 부패한 모습을 엄히 책망하기까지 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은 빛과 빛을 증거하는 자, 구약에서 말씀하신 오실 분과 그 길을 예비하는 자를 헷갈려 했다. 사람들은 세례요한에게 몰려와 그를 따르려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오해를 깨뜨리며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예수를 증언하는 동시에 자신의 작음과 약함과 자격 없음을 고백하였다.

당시에 가장 하찮고 낮은 종이 행했던 일인 신발 끈을 푸는 일 조차 자신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자신의 뒤에 오실 분이 크신 분이심을 증언하였다.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나아오시자 세례요한은 고백했다.『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리고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그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보내심을 받았으나, 자신보다 먼저 존재하신, 영원 전부터 계신 분이심을 알았다. 요한은“내 뒤에 오시지만 나보다 앞선 분이 바로 이분이시며 예수님께서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되심”을 고백한 것이다.

그리고 또 증언한다.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죄의 문제)를 베풀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내게 성령이 내려 머무는 사람을 보면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부활) 베푸는 이인 줄로 알라 하셨고, 그리고 내가 보니 성령이 예수님 위에 비둘기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머물렀다고 고백한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라고 증언한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십자가의 죽음), 성령이 그 위에 머무시는 분, 그리고 성령으로 세례 베푸시는 분(부활의 첫매) 예수님을 증언하며 마침내 세례요한은 그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했다.

그는 메시아의 길을 예비했고, 아무도 그분을 모를 때에 그 분의 길을 준비했다. 아무도 메시아가 그렇게 오실 것을 원치 않던 때에,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을 염원하며 그렇게 예수님의 오실 길을 예비하였다. 세례요한은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의지하며 집중하도록 하지 않고, 구약이 예언한 오실 분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리스도께 집중하며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따르도록 하였다.

누가 주인공인지, 그리고 거기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렇게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였다. 오직 예수님께서 드러나시기를 소망하고 자신은 숨겨지기를 원하며 살아간 사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자신은 광야의 소리임을 인식하고 증언하며 살아간 그의 삶을 하나님은 받으시고, 그리스도의 길을 여시며, 말씀을 이루어 주셨다.

세례요한은 율법의 마침이고, 예수님은 복음의 시작인 것이다. 그래서 율법의 마침으로서, 세례요한은 목이 잘려 죽었으며, 율법의 마침은 율법에 대해서 죽음이고, 예수님은 복음의 시작으로서 죽음과 부활인 것이다. 엄밀히 복음은 부활생명을 전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는 십자가의 죽음에만 몰두하고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부활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게 복음이다. 율법주의에서 벗어나 복음으로 들어가는 것은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율법주의에서 벗어나 복음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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