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
민수기 27장 12-14절「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 본 후에는 네 형 아론이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때에 너희가 내 명령을 거역하고 그 물 가에서 내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
아바림 산은 모압 평지에 위치한 큰 산맥인 아바림 산맥을 일컫는다. 이 산맥은 요단강 동편, 사해의 북동쪽에 있으며, 이 산맥의 북쪽에 비스가 산이 있었는데 그 산의 정상에 느보 봉우리가 있었다. 모세는 아느보 산에서 최후를 맞는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
이미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백성들에게 주었다고 하신다. 그래서 그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땅이고, 그 지역에 사는 자들은 불법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하나님이 새사람(그리스도)을 주셨으므로, 그 주인은 새사람이다. 그러나 옛사람이 여전히 주인처럼 살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신다. 그 자기라는 옛사람은 탐욕으로 물든 죽어야 할 육적 생명을 의미한다.
모세가 므리바에서 지팡이로 반석을 두번치므로서 하나님의 말씀(말로 물을 내라)을 거역한 것이다. 그래서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비록 들어갈 수 없는 가나안 땅이지만 눈으로 목격하게 함으로써, 하나님 나라는 마음의 심중에 있는 것임을 알려주신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 나라를 예표하는 것이다.
“네 형 아론이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믿음의 조상은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의 품으로 돌아갈 것을 말씀하신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안식을 상징한다. 하나님 나라의 안식은 부활생명을 받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간 자는 안식에 들어갈 약속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물론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자들은 모두 안식에 들어갔을 것이다.
히브리서 4장 1절『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함이라』
히브리서 기자가 이렇게 유대인들에게 말하는 이유는 출애굽과 관련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출애굽이 구원이었는데, 믿음이 부족하여 가나안에 못 들어갔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출애굽이 구원이 아니라,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구원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은 원래부터 자격이 없는 자라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은 출애굽할 당시부터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없었다는 것이다. 참 믿음을 가진 자만이 안식에 들어간다. 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것을 믿는 그 믿음이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다. 즉 옛사람은 다 죽은 것이다. 오직 광야에서 태어난 새사람만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새사람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된다. 거듭난 자는 물에서 죽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자라는 것이다.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때에 너희가 내 명령을 거역하고 그 물 가에서 내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신광야 가데스에서 백성들이 물이 없어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한 사건을 가리킨다. 여기서 분쟁(므리바)이란 다툼이나 소송을 가리키며, 이 말의 히브리어 므리바는 그 사건 후 곧 그곳의 지명으로 정착된다.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받은 자에게 가장 요구되는 바는 곧 그분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 신뢰와 순종이다. 그런데 가테스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반석을 명하여 물이 나오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함과 권능을 백성에게 나타냈어야 함에도 블구하고, 므리바의 반석을 두번 치므로써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더불어 그 거룩성을 훼손하고 말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인간의 생각이 개입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이다.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이것은 인간적인 생각으로 이루어진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적인 생각은 돌 안에 어떤 암반수가 있어서 돌을 깨면 물이 나오는 것으로 대부분 생각한다. 돌(그리스도)이 물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깨어지는 것이다. 이게 하나님의 방법이다. 그러면 그 속에 있는 물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런데, 지팡이로 돌을 두번 쳐서 돌을 깨지게 하여 물을 나오게 한 것이다. 이게 사람의 방법이다.
영적으로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돌에서 생수가 나오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고 나타나는 부활생명을 상징한다. 부활생명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으로서, 대속의 죽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부활생명을 얻기 위해 자신도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십자가의 희생정신으로 나가기를 원하는 신도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됨을 믿기만 하면 부활생명을 주신다고 하는데, 믿지 않고, 무엇인가 인간적인 방법으로 추가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모세와 아론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이는 상징적인 표현으로서, 그들이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지 못한 것인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모세와 아론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자는 가나안(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믿지 않는 것이다. 요한복음 16장 9절「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여기서 죄는 예수믿지 않는 일반 사람들의 죄가 아니라,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므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라는 것이다.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이켜야만 한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되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연합된 자에게 현재적으로 부활생명을 주시겠다고 하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다. 장차 육체가 죽어서 부활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자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자와 같은 것이다.
므리바 물은 돌에서 나온 물이나, 예수 그리스도로 나온 물로서, 하늘의 생명수이며, 영생하는 부활생명의 말씀이다. 그래서 부활생명을 받은 자가 바로 거룩한 자가 되는 것이다. 베드로는 거룩한 자를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부른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