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날에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날에
민수기 28장 26-31절「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며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숫양 일곱 마리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수송아지 한 마리마다 십분의 삼이요 숫양 한 마리에는 십분의 이요 어린 양 일곱 마리에는 어린 양 한 마리마다 십분의 일을 드릴 것이며 또 너희를 속죄하기 위하여 숫염소 한 마리를 드리되 너희는 다 흠 없는 것으로 상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처음익은 열매를 드리는 날” 칠칠절 절기는 밀의 첫 소출을 하나님께 바치는 맥추절 또는 맥추의 초실절로서, 보리 수확의 첫 열매를 바치는 초실절로 부터 오십일만에 맞이하는 날이다.
신명기 16장 8-11절「너는 엿새 동안은 무교병을 먹고 일곱째 날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성회로 모이고 일하지 말지니라 일곱 주를 셀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 날부터 일곱 주를 세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너는 엿새 동안은 무교병을 먹고 일곱째 날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성회로 모이고 일하지 말지니라”
하나님이 온전히 안식을 주시려면 칠일이 되어야 한다. 육이 끝나야 칠이 오는 것이다. 육은 세상을 상징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상징한다. 자기만의 하나님 나라가 된다. 참 누룩은 말씀과 성령으로 깨달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누룩은 사람의 생각이 첨가된 누룩을 의미하는 것으로 제하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누룩은 좋은 것이지만, 사람의 교훈이 들어가면 좋은 누룩이 아닌 것이다. 누룩을 제하라는 것은 사람의 생각을 하나님의 누룩에 섞지 말라는 것이다. 일곱째 날은 창조가 마치는 것과 안식으로 들어가는 것이 동시에 일어난다. 칠일 동안 누룩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사람의 말이 섞인 말씀으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누룩을 버리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마귀의 자식이 되어있으므로 버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누룩을 제하면 안식이 오는 것이다. 즉 누룩을 제하면 하나님이 오시는 것이다. 안식은 하나님을 의미한다.
히브리서 4장 8-10절에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주었다면 그건 가나안 땅이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는 그림자이다. 참 안식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있다는 말이다. 참 안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는 것이 바로 참 안식이다.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무교절 중 첫 소산을 드린 날로부터 세어서 제 7 안식일(49일)의 다음날 백성들은 새로 수확한 밀의 가루로 만든 떡 두 덩이를 하나님께 드렸는데, 이를 가리켜 새 소재라 한다. 그리고 이 새 소제는 고운 가루 2/10에바에 누룩을 넣어 구운 것이었다.
칠칠절은 유월절 후 첫 안식 다음 날, 보리의 첫 단을 드리는 초실절(부활절)부터 50일째(7주간의 7일 후) 되는 날을 기념하는 맥추절이자 오순절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후 50일째 되는 날 시내산에 도착해 율법(십계명)을 받은 것을 기념하며, 밀 수확을 감사하고 하나님께 새 소제(밀로 만든 떡)와 요제, 화제, 속죄제 를 드렸다.
이 곡물의 첫단은 부활의 첫열매 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동시에 모든 믿는 자들의 부활에 대한 보증이 된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오순절은 예수님께서 부활(초실절) 후 50일째 되는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성령을 내려주어 초대교회가 시작된 날이기도 하다.
요제는 하나님께 드리고 다시 돌려받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동시에 상징하는 것이다.
소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충성의표로 곡식을 예물삼아 드리는 자원제이다. 소제는 보통 번제, 화목제 등과 함께 드려지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한다.
고운가루 에바 십분 일이 드려졌으나(출 29:40), 초실절의 경우에는 그 두 배인 십분 이(2/10)의 고운 가루를 드렸다. 표면적으로는 추수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는 자원제의 것이겠지만, 영적으로 고운 가루는 부숴지고 갈아져서 원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다시 태어난 자의 모습이다. 십분의 이에서 일은 이전의 옛사람의 죽음, 두번째 일은 새사람으로 부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인 것이다. 즉 이전의 것은 죽고 새사람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처럼, 죽어야만 모든 죄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고운 가루가 되는 것을 스스로의 결단과 고난과 헌신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노력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을 포기하는 것이다.
무교절 기간에 첫 소산을 드린 날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에 새 소제를 드린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게 될 모든 성도들의 부활을 예표한다. 또한 이때 드려지는 번제는 성도 역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나타내며, 속죄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으로 그와 연합되는 자도 죄사함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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