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조건은 회개와 믿음

(로마서 10장 9-13절)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현대교회의 전도지에 많이 나오는 귀절이다. 현대교회의 전도지는 구원을 쉽게 보이는 하는 구절들을 뽑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되는 듯한... 구원의 조건은 두 가지이다. 첫째,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둘째,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여기에서 두 번째 조건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듯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증거를 믿기만 하면 된다. 내 행위, 삶과 관계없이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어떻게 죽은자를 사흘만에 다시 살리셨는지 그 지성에는 충돌이 있겠으나 온 우주를 만드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우리의 부족한 이성을 넘어서 받아들일 수 있다. 문제는 첫번째 조건이다. 우리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것. 9절부터 13절까지 강조하고 반복하는 설명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 첫번째 조건이다.예수를 주(Lord)로 시인하는 것. 이것은 내 삶과 연결된 조건이다. 누가 내 삶의 주인이냐는 선언이다. 두 번째 조건은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우리의 죄(Sin)를 씻는 것이다. 그런데 첫번째 조건은 죄(Sin)의 문제가 아니라 자아(Self)의 문제이다. 내 삶의 주인이 내 자신(myself)인지 예수님인지의 문제이다. 이것이 세례의 핵심이다. 행 22: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이...

다가오는 심판의 그 날

동성애는 숫적으로는 아직 성적소수자라고 하지만 영향력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정치 ,   경제 ,   문화 ,   교육 , 미디어 ,   심지어 종교까지 움직이는 여론이 되었다 .   세계의 서민들이 먹는 햄버거 포장지에 그들을 지지하는 무지개 로고가 들어가고 ,   공공기관인 학교 화장실에 남녀 표시가 무너지고 미국의 수도 워싱톤 디씨의 운전면허증에 남성과 여성 다음으로 중성 (Neutral)   표시가 시작되었다 .   인류의 역사에 없었던 도덕적인 반역이 그들을 지으신 하나님을 대항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   세계의 경제와 문화 중심지 맨하탄에서 공개적인 기독교 행사는 불가능하다 .   횡단보도를 이용한 행사조차도 허가가 나질 않는다 .   그러나 동성애 퍼레이드는 차가 다니는 길을 막아서 시장과 정치가들이 나서는 대형 행사가 되어버렸다 .   이제 동성애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할 수 있는 날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   소돔성에서 롯의 가족이 겪었던 것처럼 . 목성을 지나 토성까지 인공위성을 보내면서 우주 안에 다른 생명체를 찾으려 노력하지만 그들을 지으신 하나님은 찾지 않는 인류 속에서 ,   소돔성에 갇힌 롯처럼 우리는 살게 되고 있다 .   고조선의 중심지였던 중국 집안현에 이집트의 피라밋보다 더 큰 피라밋들이 존재하고 구글어스로 검색할 수 있는데도 정치적으로 역사의 진실은 쉽게 덮히고 정치적으로 이득관계가 없는 목성의 위성에서는 물기둥까지 발견하였다고 언론은 보도한다 .   역사적 진실도 정치적 압력 아래 묻힐 정도로 인간은 그렇게 불의하다 .   독일의 기자가 중국의 피라밋을 사진찍어서 책을 내도 정치적으로 안된다면 없는 것이다 . 죄인인 인간들은 전쟁과 함께 과학은 빠른 속도로 진보하고 있는데 인간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 유전자 정보 지도를 그리는 게놈 프로젝트 (Huma...

구원 영접인가 회개인가

구원 ,   영접 (Receive) 인가 회개 (Repent) 인가 ? 1800 년대를 살았던 청교도 찰스 스펄전 목사 ( Spurgeon, 1834-1892) 는 누구나 인정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   참된 구원신앙을 지키기 위해 국가종교에 의해서   12 년동안 투옥된 존 번연 (1628-1688) 이 감옥에서 쓴 책 ,   천로역정 ( 天路歷程 , Pilgrim Progress) 을 죽을 때까지   100 번이상 읽었다는   그는 말하기를   “ 그리스도를   ‘ 영접 ’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로부터 나야한다 .   거듭나지 않으면 누구도 그리스도를 자신의 마음에 들어오시게 할 수 없다 . ” 라고 하였다 . 현대 전도지에 절대적으로 등장하는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 요 1:12) 라는 귀절에 대한 경고로 스펄전은 다음 구절을 인용한다 .   ‘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 ( 요 1:13)   이들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라는 것이다 .   즉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 영접하는 자들이라는 말씀이다 .   그래서 스펄전 목사는 말했다 .   '거듭나야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다' 허물과 죄로   ‘ 죽은 ’   우리 ( 엡 2:1) 가 당연히   ‘ 살아계신 ’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없다 .   그런데도 여전히   ‘ 죽은 ’   우리가   ‘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는다 ( 롬 10:13)? 구원이 너무 쉬워보이는 이 말씀의 바로 앞에 바울은 모세가 광야 생활   40 년 후 죽기 전에 광야에서 태어난 새 생명들에게 말씀한 신명기   30:11~14 의 긴 말씀을 인용한...

복음에는 사랑이 아니라 의가 나타났다

복음에는   ‘ 사랑 ’ 이 아니라   ‘ 의 ’ 가 나타났다 .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 ’ 라고 전파하는 현대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려고 힘쓴다 .   하나님을 모르는 영혼들이 그 하나님의 사랑을 보면 주께로 돌아올 줄 안다 .   하기야 세상은 온통 사랑을 추구한다 .   그래서 소설과 영화의 주제는 배우들만 바뀔 뿐이지 스토리는 언제나 사랑이다 .   인간은 평생 사랑을 구한다 .   온 세상이 바라는 그 사랑은 자신이 받기 원하는 사랑이다 .   자신이 사랑을 주려는 대상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받기 원하는 그 사랑을 추구한다 .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 ,   아가페 (Agape) 가 아니라 성경에 단 한번도 기록되지 않은 사랑 ,   에로스 (Eros) 이다 .   현대교회는 하나님을 모르거나 거부하는 영혼들에게   ‘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 이라고 노래하며 하나님을 믿게 하려고 힘쓴다 . 그런데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전하시려는 성경 전체의 멧세지는   ‘ 나를 믿으라 ’ 가 아니라   ‘ 내게 돌아오라는 회개 ’ 이다 .   그래서 바울이 로마교회에 전한 복음에는 ‘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 고 기록했다 .( 로마 1:17)   그래서   ‘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난다 ’ 는 말씀이 이어진다 .( 로마 1:18)   하나님의 의가 나타날 때에 죄인들은 죄에서 깨어나 회개할 수 있다 . 사실은 회개와 믿음이 분리될 수 없다 .   거듭남과 세례도 분리되지 않는다 .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내 모든 죄가 예수의 피로 씻어진 것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예수...

노아의 때 부터 인자의 임할 때 까지 구원은 같다

노아의 때부터 인자의 임할 때까지 구원은 같다.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벧전4:18)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는다.‘겨우’라는 헬라어는 ‘어렵게(scarcely)’라는 뜻이다. 구원의 길은 좁고 협착해서 찾는 이가 적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마7:14) 제자들은 물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그 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19:26)  그런데 요즘 구원의 길을 들으면 ‘이렇게 천국가는 것이 쉽다면 누가 구원을 받지 못할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묻고 싶어진다. 요즘 목사들의 사명은 얼마나 구원을 쉽고 간결하고 빠르게 설명할 수 있는 가하는 능력에 달려있는 것처럼 보인다. 거짓말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다. 구원은 아주 어렵고 두려운 것이다. 찾는 이가 적고 등불의 기름이 모자라면 구원의 좁은 문은 방주처럼 닫혀버릴 것이다.  구원은 사람이 진지하게 영접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구원은 사람이 간절히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방주 바깥에 있던 노아의 형제들처럼 노아가 전하는 복음을 듣지 않는다면, 아무도 스스로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종교개혁가들이 회복시켰던 회개의 진리인 전적 타락(Total Depravity)이다. 회개하지 않은 인간은 사랑의 아버지도 버릴 만큼 전적으로 타락했다. 사랑으로 돌이켜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는 동안에도 하나님을 버리는 자들이다. 탕자처럼, 아담처럼 그리고 노아의 동생들처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할 때도 같다.(마24:37) 그 당시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8명이다.(벧전3:20) 므두셀라의 아들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고 595년 동안 자녀를 낳았으니 노아의 형제들만해도 얼마나 많았을까...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 까지 갇혔느니라 성경은 모든 사람을 죄 아래 가두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거룩한 십계명을 주시고, 시내산에서 모세의 얼굴이 영광의 빛으로 말미암아 밝아지고 그 돌판을 가지고 내려오므로 모든 사람들이 죄 아래에 가두어진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약속이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게 하려 하심이다.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는데, 이 일을 한 것이 율법이라는 말이다. 십계명은 우리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이다. 하나님의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를 깨닫게 되고 죄 아래에 가두어진 것을 알게된다. 그래서 시내산에서 주어진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십자가 골고다 언덕에서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의 손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가 제물로 죽은 것이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제물로 죽으신 것이다. 왜냐하면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하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원한 제물로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들 즉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의 손에 의해서 예수님이 죽어신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완전히 율법 아래에 있게 된 것이다. 죄가 없어신 에수님이 율법 아래에서 죽으셨다. 세상에서 이 보다 충격적인 것은 없다. 시내산에서 주어진 그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어 주시지만 그것이 곧 구원은 아니라는 말이다.『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 까지 갇혔느니라』오늘날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홍해 바다도 건너지 않은 상태이다. 그들은 세상을 가장 먼저 사랑하는 자들이다. 입으로는 예수를 부르짖는데, 홍해 바다가 갈라진 적도 없다. 철저히 세상 기준으로, 세상의 가치관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구원은 시작도 안된 것이다. 홍해 바다를 건너므로서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고 세상은 나에 대해서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홍해를 건너는 것이...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데살로니가후서 3장 2절의 말씀은『비이성적이고 악한 사람으로 부터 건져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교회에 비이성적인 사람들이 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주님은 공평하고 의로운 분이시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 디모데전서 3장 9절에서 교회의 직분(집사)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믿음의 비밀은 무엇인가? 구원의 조건은 사도행전 20장 21절에서 바울이『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사도바울은 회개와 믿음을 강조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교회에 나와서 잠깐 동안의 구원의 설명을 듣고 영접 기도를 한다고 해서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천국과 지옥은 하나님의 의에 따라 결정된다. 어둠에 싸여있는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 믿음은 비밀이다. 예수님이『인자가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말씀하셨는데, 오늘날 교회는『주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설교를 하고 있다. 이 말씀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런 열망을 가지고 전도를 하라고 하신 말씀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진짜 교회는 거짓된 믿음을 무너뜨리는 말씀이 있는 교회이다. 거짓된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교회는 참 믿음을 쌓을 수 없다. 뽑아버리고 갈아야 한다. 갓난 아이에게 단단한 음식을 주면 소화를 할 수 없는 것 처럼, 연약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사랑의 말을 전하는 것과 같다. 연약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는 의의 말씀이 필요한 것이다. 의의 말씀을 분별할 수 있는 자가 되면 사랑의 말씀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세례요한이 전한 것은 의의 말씀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의의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그것은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이 필요한 의의 말씀이 필요하다. 무조건 교회에 온다고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