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사도행전 19장 21-22절『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하나님께서 에베소에서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신 일이 있은 후 바울은 앞으로의 전도 일정과 관련해 오늘날의 그리스를 거쳐 로마로 갈 생각을 했다. 그리고 바울과 협력하던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마게도냐로 보내고 바울 자신은 잠시 더 에베소에 있었다. 19장 23-26절『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바울은 실제 엄청난 권능의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주면서,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고 말하고 사람들에게 호 로고스를 전해주었다. 그런데, 에베소에서 바울로 인해 큰 소동이 일어난 것이다. 이유는 바로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인해 생계에 위협을 가져오게 된 자들이 소동을 일으킨 것이다.  19장 27-29절『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은으로 아데미 신상 모형을 만들어 팔던 은 세공 기술자들 중 데메드리오가 나서서 자신들의 생업과 풍족한 생활이...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사도행전 19장 1-2절『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어떤 제자들은 아볼로의 제자들이다. 바울이 성령에 대해서 그들에게 물었는데,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볼로는 성령에 대해서 알고, 다만 성령세례를 받지 못했다고 하지만, 그 제자들은 왜 성령에 대해서 모르는가? 기독교의 핵심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신앙이다. 그런데, 성령을 모르는 것은 기독교가 아닌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지 않은 아볼로가 교회의 지도자였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그리고 그 제자들은 성령에 대해서도 듣지도 못한 것이다. 오늘날도 교회의 많은 교역자와 신자들이 이와 같을 것이다. 역사적 사실의 예수를 믿고, 미래에 다시 오실 예수를 믿는 것이다. 현재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을 알지도 모르는 것이다.  19장 3절『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요한의 세례는 물 세례를 의미한다. 물세례는 죄를 씻는 형식적 세례와 마음의 할례라고 부르는 세례와 연결된다. 마음의 할례가 곧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래서 물세례는 죄를 씻는 형식적 세례와 마음의 할례와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도가 물 세례를 받을 때 죄를 씻는 정도로 생각하면, 거듭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형식적인 물세례는 마음의 할례와 연결되어야 한다. 물에서 죽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세례는 다시 태어나고 죄를 씻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를 모르는 신도가 오직 물세례만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교회의 대부분 신자들이 이와 같은 모습이다.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러나 자녀와 아들은 다른 차원이다.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사도적인 소명을 받아야 하며,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가지 능력과 권세를 부여받는다. 그런데, 성령세...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

사도행전 18장 18절『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케이라메노스)』유대인들은 서원기도를 할 때 머리카락을 자르는 전통이 있었다. 케이라메노스는 아오리스트 시제를 사용했다. 순간적으로 그런 율법적인 행동을 한 것이다. 성령이 그렇게 인도를 한 것으로 보여진다. 서원이 이루어질 것을 이 행위를 통해서 확신하라는 것이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생의 한 걸음을 비추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앞으로의 인생길이 어떻게 펼쳐질지 다 알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한 걸음을 내딛었다. 물론 그것은 이전까지 자신들에게 익숙한 삶의 방식이 아니었지만 그들 부부는 바울과 같이 고린도에 머물렀고, 수리아로 떠났고 에베소에 이른다. 그리고 에베소에서 아볼로라하는 유대인을 만났다.  18장 19-20절『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우크 에페네오센)』우크 에페네오센은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로 성령께서 하락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바울이 각 지역에서 작별하고 떠나는 모든 과정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에베소에서 작별할 때 남긴 말을 기록하고 있다.  18장 21절『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했던 바울의 전도여행은 작별과 떠남의 여정으로 기록된다. 그는 1년 6개월 간 머물렀던 고린도에서 작별하였고, 에베소에서는 더 오래 있기를 청하는 사람들과 작별하고 떠났다. 바울은 에베소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떠나지만 먼 훗날 다시 돌아올지는 알지 못했다. 바울에게 하나님의 뜻은 1년 6개월을 머물렀던 고린도에서 사람들과 작별하고 떠나는 것이었다. 에베소 회당에서 유대인과 변론하는 것이었고, 사람들의 청을 등지...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사도행전 18장 1-3절 『그 후에 바울이 아덴(아테네)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본토:로마)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아테네는 철학의 도시라면, 고린도는 상업의 도시였다.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로마의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유대인들에게 추방령을 내렸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이 때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정착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바울과 마찬가지로 천막 제조업자들이었다. 바울은 이 부부의 집에 함께 살면서 주중에는 천막을 만들고 안식일에는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다. 이들 부부로 인해 바울은 고린도에서 오랜 기간을 머무르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바울의 동역자는 이들만이 아니었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고린도로 내려와 합류했다. 18장 4-5절『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쉬네이케토 토 로곤 호 바울)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로곤은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쉬네이토 토 로곤 호 바울은 바울이 말씀에 붙잡혔다 라는 것이다.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없는데, 한글 개역개정에는 포함시켰다. 쉬네이게토는 미완료 수동태이다. 쉬(함께)와 에코(소유하다)의 합성이다. 해석하면 함께 소유되었다 라는 것이다. 바울이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소유되었다 라는 말은 바울이 말씀이신 호 로고스와 하나가 되어 성부 하나님께 소유가 되는 것이다.  사역은 사도적인 사역과 은사적인 사역이 있는데, 빌립 집사와 같은 경우는 대체로 은사 사역이라면, 바울은 사도적인 사역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호 로고스를 통한 사역을 하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6장 2-4절에서 열두 사도가 제자를...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사도행전 17장 18-21절『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그노나니) 하니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 아덴(아테네)에서의 전도에 대한 말씀이다. 아덴에서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던 바울은 아덴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본 바울에게 격렬한 분노가 일어난 것이다.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했다. 그 사람들 중에는 쾌락주의자들인 에피쿠로스주의자들과 이성을 절대시하던 스토아 철학자들도 있었는데 그들 중 어떤 자들은 바울에 대해 쓰레기 같은 말쟁이라고 욕을 한 것이고, 또 어떤 자들은 바울을 이방 신들을 전하는 자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바울이 전하는 말을 좀 더 상세히 듣기 위해 사람들이 북적대는 장터에서 떨어져 있는 독립된 공간인 아레오바고로 바울을 데리고 간 것이다. 그들이 바울에게 알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노나이는 기본형이 기노스코인데, 관계(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안다는 것이다. 히브리어 야다와 같은 개념이다.  17장 22-23절『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아그노스토 데오)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바울이 아덴 사람들에게 종교심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에게 알지도 못하는 신을 섬긴다고 지적했다.  아그노스토는아 아(부정)와 그노스토(알다)의 합성어다. 즉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그런 신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참 하나님을 소개하며, 참 신을 소개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살아계신 ...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

사도행전 17장 1-3절『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에이오도스)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데살로니가에는 빌립보와 달리 유대인의 회당이 있었다. 에이오도스는 방식이다. 바울이 늘 하던 자신 만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 회당이 있는 곳에서는 의례히 거기 들어가 유대인들을 상대로 먼저 복음을 전하는 것이 바울의 전도방법이었다. 회당은 성전이 아니다.  바울은 거기서 세 번의 안식일에 구약성경을 가지고 강론을 했다. 바울이 그곳에서 세번이나 강론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비록 개종한 헬라인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유대인 디아스포라로서 메시아(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의 강론은 성경을 읽고 그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정복자의 통치와 억압의 굴레에서 그들을 해방시켜줄 구원자로, 오랫동안 기다려온 메시야를 지칭한다. 그러기에 그런 메시야가 십자가에 달려 죽는다는 것은 유대인들에게는 받아들일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 유대인들에게 자신들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나사렛 예수가 바로 그 그리스도라고 말하려면 왜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야 했는지를 설명해주어야 했다.  17장 4-9절『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사도행전 16장 1절『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사도 바울이 실라와 함께 2차 전도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더베를 거쳐 루스드라에 도착했을 때, 훗날 믿음의 아들이 되는 디모데를 만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에 앞서 미리 디모데를 준비해 놓으시고 바울을 기다리고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혼자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동역자와 조력자들을 반드시 붙여 주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디모데의 부친은 헬라 사람이고 모친은 유대 사람이었다. 즉 디모데는 유대적인 배경과 헬라적인 배경을 동시에 가진 신실한 믿음의 형제였다. 디모데는 모친의 혈통으로는 유대인이 되고 부친의 혈통으로는 헬라인이 되기에 유대인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접촉점이 있고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접촉점이 있는 것이었다. 16장 2-3절『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라본) 할례를 행하니(페리에테멘)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그런데 디모데가 유대인 자격으로 바울과 함께 전도를 하면서 유대인을 만나게 되면, 할례를 받지 않은 것으로 인해 적지 않은 마찰이나 갈등이 생길 수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디모데가 할례를 받게 한 것이다. 할례를 받게 하는 것은 바울의 생각이라기 보다 성령의 인도하심이라고 볼 수 있다. 라본과 페리에테멘은 아오리스트 시제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조건으로서 할례를 받게 하는 것은 분명하게 복음에 반대되는 것이었지만, 믿는 유대인들이 할례 받는 것을 금지한 것이 아니었다. 만약 디모데의 부모가 다 이방인이어서 디모데도 완전한 이방인이었다면 성령께서 디모데에게 할례를 받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얻고자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이 되고 율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