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야고보서 4장 12-14절『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들으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율법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 이웃을 판단하는 인간의 모습은 선과 악과를 먹은 자의 모습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에서 선은 하나님이시고, 악은 사탄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율법을 의미하는데, 율법을 통해서 인간들은 사탄에 유혹된 죄악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그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그리스도의 복음)도 함께 있음을 알려주신다.   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다는 것은 율법주의를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악과를 먹으므로서 하나님 처럼 되고 싶은 것이다. 자신이 재판관이 되고 싶은 것이다. 율법을 지키므로서 자신이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바로 악과를 먹은 자들인 것이다.   아게 뉜 호이 레곤테스( Ἄγε νῦν οἱ λέγοντες )는 지금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말하는 사람들은 교회 안의 부자들이다. 이 부자들은 교회 안에서 율법주의의 탐욕으로 물든 부자들(특히 교역자)이다. 부자들은 자기가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율법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생명나무를 먹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지 않는다.   마태복음 7장 16-20절『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

너는 가증한 것은 무엇이든지 먹지 말라

 너는 가증한 것은 무엇이든지 먹지 말라   신명기 14장 3-20절「너는 가증한 것은 무엇이든지 먹지 말라 너희가 먹을 만한 짐승은 이러하니 곧 소와 양과 염소와 사슴과 노루와 불그스름한 사슴과 산 염소와 볼기가 흰 노루와 뿔이 긴 사슴과 산양들이라 짐승 중에 굽이 갈라져 쪽발도 되고 새김질도 하는 모든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라 다만 새김질을 하거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것이니 곧 낙타와 토끼와 사반, 그것들은 새김질은 하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니 너희에게 부정하고 돼지는 굽은 갈라졌으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런 것의 고기를 먹지 말 것이며 그 사체도 만지지 말 것이니라 물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이런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모든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요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모든 것은 너희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에게 부정함이니라 정한 새는 모두 너희가 먹으려니와 이런 것은 먹지 못할지니 곧 독수리와 솔개와 물수리와 매와 새매와 매의 종류와 까마귀 종류와 타조와 타흐마스와 갈매기와 새매 종류와 올빼미와 부엉이와 흰 올빼미와 당아와 올응과 노자와 학과 황새 종류와 대승과 박쥐며 또 날기도 하고 기어다니기도 하는 것은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먹지 말 것이나 정한 새는 모두 너희가 먹을지니라」   하나님께서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거론하시면서,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들을 나누신다. 육축의 경우에는 굽이 두 쪽으로 갈라진 쪽발이면서, 새김질 하는 것은 먹을 수 있다. 그러나 두 가지 조건 중에 하나라도 맞지 않으면 부정하여 먹어서는 안된다. 이 동물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깨달아라는 것이다.    정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의 구별은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의 구별을 의미한다. 영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과 백성이 아닌 자를 대변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천하만민의 모델로 택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지 못하고 결국...

하나님이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하나님이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야고보서 4장 1-3절『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헤도논은 욕심으로부터 나오는 쾌락을 의미한다. 욕심이 생기면 그것을 달성하려고 하는 마음이 쾌락적인 것이다. 결국 교회 지도자들이 욕심으로부터 다툼이 생기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온갖 방법을 다해서 욕심으로 이루려하지만, 결국 얻지 못하는 것이다. 교역자들이 선생이 되어 얻으려고 하는 것은 이런 욕심으로는 이룰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께 간구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데, 그것은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즉 교역자들은 세상의 것을 통해서 얻으려고 하는데, 하나님은 하늘의 것을 구해서 얻으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께 구해도 헤도나이스(욕심으로 인한 쾌락)를 위해서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늘의 것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야고보서 4장 4절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간음하는 여인은 영적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사탄)과 벗된 자를 의미한다. 왜 간음한 자를 여인으로 표현했는가? 여자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선악과를 먹은 하와를 상징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자를 상징한다. 세상의 벗은 세상을 사랑하는 부자를 상징한다. 이 세상에 돈을 많이 가진 자도 부자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부자는 탐욕(옛사람, 우상)을 가진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자는 사탄의 추종자가 된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하는 것은 탐욕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탐욕은 물질인 육으로부터 ...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신명기 14장 1-2절「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이니 죽은 자(무트)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느니라」   무트는 죽음, 죽이다, 살해하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라무트(לָמֵֽת), 라가 앞에 있으면, ~을 위하여 라는 말이다. “죽은 자를 위하여”가 아니라 “죽음을 위하여”라는 의미가 된다. 죽음을 위하여 자기 몸을 벤다는 것은 할례의식으로서 할례는 육(성기)에 상처를 내는 것으로, 상처를 내는 것은 육으로는 죽음을 표현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약속의 씨가 있는 표현이다. 약속의 씨는 예수 그리스도, 즉 메시야를 기다리는 자라는 것이다. 메시야를 기다리는 자가 되면, 여호와의 자녀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마 위의 털을 베는 것은 결례의식으로서, 사도행전 21장 23-24절에서 설명한다.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사도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왔을 때, 예루살렘의 유대인 신자들은 바울이 율법을 폐기한다고 오해하고 있었다. 야고보와 장로들의 권고에 따라, 바울은 서원한 네명의 유대인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의 비용(제물)을 대신 내주며 성전에 들어가 머리를 깎았다. 유대인 신자들에게 자신이 여전히 율법을 존중하며 질서 있게 행하고 율법을 지키는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이는 오해를 불식시키고 이방인 선교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발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었다.     머리를 미는 정결의식은 서원 기간 동안 부정한 것과 분리되어 하나님께 구별된 기간이 끝났음을...

영혼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영혼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서 2장 25-26절『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영혼(프뉴마토스)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가 기생 라합을 비유로 들은 것은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과 동일 선상에 놓고 보는 것이다. 기생 라합이 행한 일은 가나안 사람들에게 대하여, 죽음을 각오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라합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행한 것이 바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로운 것이다.   프뉴마토스 (πνε ύ ματος) 는 영(성령)을 의미한다. 성령이 함께 하지 않아 영이 죽어있는 몸을 의미한다. 행함(사역)이 없는 것은 영을 살리지 않는 사역(세상적인 사역)이며, 이 사역이 없는 믿음은 역시 영적으로 죽은 믿음이라는 것이다. 즉 호로고스의 믿음이 아니라 자기가 믿는 믿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1장 5절에서「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살몬은 여리고성을 정탐하러 간 두명 중의 한 사람으로서 기생 라합과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았는데, 후에 다윗의 계보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진다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 족보에 다섯 여인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다말과 라합, 룻, 밧세바, 마리아인데,   이중 라합과 룻은 모두 이방여인이다.     이 여인들이 한결같이 흠이 있는 사람들이고, 이런 인물들을 통해 다윗 왕가가 생겨나고 이어졌다는 것이다. 당시 나라를 잃었으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그저 육신의 혈통만으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주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육신의 혈통을 따른 이스...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한다 하거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한다 하거든   신명기 13장 12-18절「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거주하게 하시는 한 성읍에 대하여 네게 소문(아마르 샴)이 들리기를 너희 가운데서 어떤 불량배(벨리얄)가 일어나서 그 성읍 주민을 유혹하여(나다흐) 이르기를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한다 하거든 너는 자세히 묻고 살펴 보아서 이런 가증한 일이 너희 가운데에 있다는 것이 확실한 사실로 드러나면 너는 마땅히 그 성읍 주민을 칼날로 죽이고 그 성읍과 그 가운데에 거주하는 모든 것과 그 가축을 칼날로 진멸하고 또 그 속에서 빼앗아 차지한 물건을 다 거리에 모아 놓고 그 성읍과 그 탈취물 전부를 불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지니 그 성읍은 영구히 폐허가 되어 다시는 건축되지 아니할 것이라 너는 이 진멸할 물건을 조금도 네 손에 대지 말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그의 진노를 그치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시고 자비를 더하사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심 같이 너를 번성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서 정직하게 행하면 이같이 되리라」   아마르는 말하다, 대답하다, 숙고하다 등의 의미, 샴은 종종, 그때. 소문은 사실이 아닐 수 있는 이야기 등을 의미하나, 여기서는 사실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벨리얄은 대적하는자, 악한 자로서, 옛사람을 지칭할 때도 있다.    나다흐는 쫒다, 억지로 강요하다, 잘못 인도하다 등의 의미로 사용.   “너희가 알지(야다) 못하던 다른(아헤르) 신들(엘로힘)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한다 하거든” 야다는 부부가 서로 아는 것처럼, 아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가 되는 앎이다. 아헤르는 다른, 이상한. 엘로힘은 하나님 또는 신이다.   창세기 3장 5-6절에서「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야고보서 2장 22-24절『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야고보가 말하는 믿음과 아브라함의 믿음과 같다는 말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떤 행위로 얻어지는 결과의 믿음이 아니라,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인 것이다. 하나님이 구십구세에 내년에 아들을 주겠다고 했을 때, 속으로 웃었다. 자신이 육적 나이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백세가 되어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깨닫게 되고 이를 믿게 되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백세에 도저히 이를 수 없는 아들을 얻는 믿음이다. 그래서 얻은 아들이 이삭이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믿음은 단지 믿음 자체 만으로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결국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야고보는 기생 라합의 예를 든다.  야고보서 2장 25절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야고보가 기생 라합을 비유로 들은 것은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과 동일 선상에 놓고 보는 것이다. 기생 라합이 행한 일은 가나안 사람들에게 대하여, 죽음을 각오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라합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행한 것이 바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로운 것이다. 믿음이 행동으로 연결된 것이다.   야고보는『영혼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라고 믿음과 행함에 대해서 추가하여 정리한다.  행함이 없는 것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