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요한계시록 7장 11-17절「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테스 들맆세오스)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라트류우신)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10절은 구원받은 백성이 찬양하지만, 11절은 천사가 화답을 하고 있다. 천사는 말씀을 전하는 자이다. 천사를 대변하는 말씀을 전하는 자와 십사만 사천이라는 성도가 서로 화답하면서 찬양하는 것이 곧 예배라는 것이다.
한 장로가 요한에게 흰옷 입은 자에 대해서 물었다. 그런데, 요한이 주님께 방향을 돌려서 당신이 잘 아신다고 말한다. 그래서 주님이 큰 환란에서 어린양의 피로 깨끗게 된 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테스 들맆세오스는 환란이 아니라 영어로 push에 해당되는 말로서, 주님의 지성소에 들어가도록 등을 떠미는 것을 의미한다. 힘들지만 심령 속의 새성전에서 함께 복음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자는 것이다.
에르코메노이(ἐρχόμενοι)는 환란에서 나오는 자라는 것으로 번역되어있다. 문법적으로 현재분사이다. 현재 독자가 겪고 있는 것을 암시한다.『와 있는』이라는 의미다. 환란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들맆세스이다. 들맆세스는 성도의 심령 속에서 일어나는 옛성전의 무너짐과 새성전의 세워짐에 대한 언약적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눈으로 보는 관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로마의 핍박을 받는 그런 것이 아니라, 유대교의 교리와 관계가 깊은 것이다.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육체가 죽고 난 후에 가는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제자들은 현재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다고 믿은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어려움이었다.
비록 유대인들로부터 물리적 공격이 있었지만, 이것이 환란이 아니라, 그 복음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에 대한 심령 속의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날마다 심령 속의 지성소 기도에 매진한 것이다.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을 그들에게 말하면 당장 공격받는다. 마태복음 24장 21절에서『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는 눈으로 보는 성전에 관한 것인데, 이 옛성전이 무너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심령 속에 새하늘과 새땅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새창조는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는 큰 환란인 것이다.
흰옷을 입은 자는 심령 속의 보좌(지성소)에 와 있는 자들인 것이다. 어린양의 피로 옷을 빠니 희게 되었다는 것이다. 들맆세스와 어린양의 피가 연관이 있는 것이다. 피는 영적 생명을 상징한다. 대속의 피흘림은 영적으로 죽은 죄인이 하늘로부터 오는 새생명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들맆세스가 된다는 말은 신도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지성소의 제사장이 된다는 말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대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제사장으로 그분을 따르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되어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십자가로 들어가는 것을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신도들을 떠미는(들맆세스) 것이다. 지성소로 그 어린양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는 자는 새생명을 얻는 것이다.
들맆세스가 된 신도가 심령 속의 지성소에 나아가 주님을 섬기는 것을 라트류우신이라고 한다. 헬라어로 디아코니아는 종이 상전을 섬기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라트류우신은 제사장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예배)을 의미한다. 그래서 주님이 라트류우신 하는 신도들 위에 장막을 쳐 주시는 것이다. 장막은 옷으로 비유된다. 의의 옷을 입히는 것이다.
예배에 대해서, 로마서 12장 1절에서『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영적 예배는 마땅한 예배라는 것이다. 몸이 성전이 되는 것이다. 영적 예배는 심령 속의 성전에서 제사장이 되어 호 로고스와 말씀으로 교감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서『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요한복음 4장 23-24절『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영은 성령이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령이 임하는 것은 곧 진리가 되는 것이다. 예배는 의례가 아니라, 성령에 의해 진리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진리로 예배하는 자는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진 자들이다. 여기에 주님이 임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십사만 사천이 된 자가 천년왕국을 누린다. 천년왕국은 새성전, 새하늘, 셋째 하늘(천국)인 것이다. 보이는 성전은 사라지는 것이다.
안식의 개념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의의 옷을 입는 자들은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것이다. 주리고 목마른 것은 심판을 의미한다. 복과 저주가 함께 한다. 심판이 구원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안식의 개념은 진리의 목마름을 해갈하는 것이다. 환란 후의 안식이다.
요한복음 7장 37절에서『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명절 끝날은 장막절이다.
요한복음 7장 38-39절에서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성령에 대해서 언급하고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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