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단을 건너가 차지할 그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요단을 건너가 차지할 그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신명기 32장 43-52절)
43.너희 민족들아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들에게 복수하시고 자기 땅과 자기 백성을 위하여 속죄(카파르)하시리로다
“너희 민족들아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민족들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대적들에게 행하신 공의로운 심판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더불어 기뻐하고, 또한 주께 영광돌려야 했다. 결국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의 복음이 세상 전체로 퍼져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피의 보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세워 피의 보복을 하시는 것이다. 자기 백성을 위한 속죄이다. 카파르는 덮다 또는 화목하다는 뜻이다.
레위기 1장 4절「그는 번제물의 머리(로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카파르)가 될 것이라」
로쉬는 번제물, 곧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창세기 1장 1절의 베레쉬트의 그 레쉬(로쉬)이다. 성전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그는 죄를 뒤집어 쓰고 백성들을 위해 죽는 것이다. 이것이 속죄이다.
죄인이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한다는 것은 죄를 전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제물을 잡아서 제사장이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에 뿌린다. 죄인의 역할은 여기까지이다. 그 다음에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이 하는 일이다.
이 말은 장차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을 위해 이 땅위에 속죄 제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대망케 하는 메시야적 메시지로 이해할 수 있다
44-47.모세와 눈의 아들 호세아가 와서 이 노래의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말하여 들리니라 모세가 이 모든 말씀을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 너희에게 증언한 모든 말을 너희의 마음에 두고 너희의 자녀에게 명령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 이는 너희에게 헛된 일이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말미암아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 차지할 그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모세와 눈의 아들 호세아가 와서 이 노래의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말하여 들리니라”
호세아는 여호수아라는 말이다. 헬라어로 예수로 번역된다. 호세아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란 뜻을 가진다. 호세아(여호수아)가 모세와 함께 백성들에게 노래를 들려준 것은 회막에서 위임식을 가진 이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의 입장에 서게 된 것을 의미한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증언한 모든 말을 너희의 마음에 두고 너희의 자녀에게 명령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아사) 하라”
너희에게 증거한 모든 말은 모세의 노래를 가리킨다. 마음에 두라는 것은 잊지 말고 항상 마음 속에 간직하라는 것이다.
아사는 행하다, 만들다, 성취하다 라는 의미가 있다.
이사야 43장 1절「야곱아 너를 창조하신(바라)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야차르))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야곱에 대해서 바라,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야차르를 사용했다. 야곱이 먼저이고, 이스라엘이 뒤의 이름이다. 바라는 무엇인가를 영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야차르는 무엇을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바라라고 하면, 인간으로 성장하게 만드는 것을 야차르로 표현할 수 있다. 아사는 하나님이 바라는 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모양을 만들다 라는 의미가 있다. 모양을 완성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는 아사는 단순히 노래를 통해서 글자 그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에 담긴 의미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행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 말씀이 생명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노래의 말씀 속에서 그리스도가 계시되기 때문이다. 노래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면 생명이 되지 않는다. 그저 노래 이야기일 뿐이다.
“이는 너희에게 헛된(렉) 일(다바르)이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말미암아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 차지할 그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이 일로 말미암아는 노래에 담긴 말씀으로 말미암아 라는 의미다. “이 일로 말미암아”의 히브리어 단어들은“다바르 제”이다. 이 때 다바르는 생명의 말씀이지만, 헛된 일은 다바르 레크이다.
다바르 레크는 무익한 말, 빈 말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이 생명의 반대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왜냐하면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력이 있어 영혼을 소성케 하며, 사람을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노래로 받아드리면, 무익한 말이 되지만, 그리스도의 계시로 받아들이면 생명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48-52.바로 그 날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여리고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 산에 올라가 느보 산에 이르러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 네 형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어 그의 조상에게로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올라가는 이 산에서 죽어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 가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하여 내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까닭이라 네가 비록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맞은편에서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
“바로 그 날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노래(1-43절)를 지어 그 모든 말씀을 백성들에게 들려준 날을 가리킨다.
아바림 산은 사해 북동편, 모압 평원에 위치한 산맥으로서, 요단 강과 사해를 동쪽으로부터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 느보 산은 아바림 산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로서 해발 802m이다. 팔레스틴 전역을
살펴보는 데 최적의 장소로서 청명한 날에는 헤스본과 예루살렘까지도 볼 수 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
원래 그 땅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기로 약속한 땅으로서 이미 아브라함이 그 땅에 들어가서 살았던 땅이다. 이제 후손들이 다시 그 땅으로 들어가는데, 감격스럽게 바라보라는 것이다. 원래 성도 역시 하나님 나라가 고향이었는데, 그 고향을 바라보며 세상에서 살게된다면 감격스럽고 마음이 벅찰 것이다.
“네 형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어 그의 조상에게로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올라가는 이 산에서 죽어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산은 성전을 의미한다. 죽는다는 의미는 범죄한 결과로서 죽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모든 세상 사람들을 대속하는 죽음이지만, 결국 나의 죽음이기도 한 것이다. 성도가 세상에 온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하여 온 것이지만, 다시 돌아가는 것도 세상에 대해서 죽음이요, 옛사람에 대한 죽음인 것이다.
“네가 비록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맞은편에서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
모세와 아론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느보산과 호르산에서 죽은 것이다. 모세가 단지 가나안 땅을 바라볼 뿐 그곳에 들어가 그 땅을 밟아보지 못할 운명에 처한 표면적인 이유는 므리바 물 사건으로 인해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했던 데 대하여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모세와 아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그러나 가나안에 들어가는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을 나타낸다. 율법에 대해서 죽는 자는 하늘의 생명에 대해서 사는 자가 되는 것이다. 죽음은 곧 생명을 잉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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