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요한계시록 12장 10-11절「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사탄(마귀)은 참소(카테고론 κατηγορῶν)하는 자이다. 마귀는 죄인들을 하나님께 참소한다. 욥기에서도 사탄이 욥을 참소한다. 요한복음 5장 45절에서『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모세가 사탄의 역할을 한다. 모세는 율법의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율법이 계속 우리를 고소하는 것이다. 하늘에서 그리스도가 전쟁을 이겼다. 그래서 하늘에서는 더 이상 율법의 필요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참소당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승리하셨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과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이는 복음의 능력이다. 귀신의 능력을 제어할 수 있는 복음의 능력이 성도에게 있는 것이다. 성도(교회)는 사탄을 쫒아낼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서 반드시 사탄이 쫒겨나야만 하는 것이다.


사탄을 이기는 방법에 대해서 말을 한다. 첫째, 어린양의 피를 통해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대속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의 피의 공로와 그의 말씀의 능력으로 사탄을 이긴다는 것이다. 어린양의 대속과 동시에 성도 역시 십자가의 죽음에 동참하는 것이다.


로마서 6장 3-5절에서『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나(ego)도 죽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된다는 말이다. 나라는 ego는 생명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을 가진 허상과 같은 존재이다. 이게 죽어야 할 옛사람인 것이다.


두번째,『자기들이 증언하는(마르투리아스 μαρτυρίας)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라고 말을 한다. 마르투리아스의 기본형은 마르투리아(μαρτυρία)로서 법정 용어이다. 법정에서 정확하게 진술하다 라는 의미다. 경험했던 사건, 사실에 대해서 법정에서 증언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 성경에 비추어 나에게 확증되는 말씀이 되는 것이다. 성경에 수많은 글이 있지만, 자기에게 분명하게 확증되지 않으면 진리를 증거할 수 없는 것이다. 대부분 교회 목사들은 신학교에서 배운 교리를 바탕으로 설교를 하는데, 설교자에게 분명한 확증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성경의 의미와 설교자의 말이 같은 의미로 증거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시인하는 것이다.


성경과 설교자가 호모로기오(같은 말)의 말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에게 확증된다. 그렇지 않으면 비진리를 선포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설교자 자신에게도 그 성경의 진리가 확증되지 않으므로 그의 것이 되지 않은 것이다. 지식으로만 알고 있을 뿐 실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율법에 근거해서 그에게 참소자가 된다.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프쉬켄)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우크 에가페산 οὐκ ἠγάπησαν, 기본형은 아가파오)』우크는 부정을 나타낸다. 프쉬켄은 육적 생명이다. 여기에서 아끼지 않는 몸은 죽어야 할 옛사람인 육적 몸을 의미한다. 죽어야 할 옛사람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다. 사랑의 대상은 그리스도이시며, 그래서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것이 새로운 프쉬케로 태어나는 것이다.


프쉬케를 영혼, 혼, 마음, 생명으로 다양하게 번역하므로서 혼란을 주고 있다. 누가복음 6장 9절에서『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푸쉬케)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베드로전서 1장 9절에서『믿음의 결국 곧 영혼(푸쉬케)의 구원을 받음이라』믿음의 구원은 영의 몸으로 구원이다. 옛사람(육의 몸)이 죽고 새사람(영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영의 몸을 그리스도의 옷으로 표현하며, 영의 몸으로도 표현한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영의 몸을 입는 것이 부활이다.


부활은 부모로부터 받은 죽은 몸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태어나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과 같은 몸으로 된다. 비록 육의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성도는 이 세상에서 살아있을 때 옛사람(육의 몸)이 죽고 영의 몸으로 부활하게 된다. 새로운 몸으로 태어나면 영이 하나님의 빛을 받아서 다시 하나님과 교통하게 된다. 그래서 영혼의 구원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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