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


(신명기 32장 23-31절)


 


23-25.내가 재앙을 그들 위에 쌓으며 내 화살이 다할 때까지 그들을 쏘리로다 그들이 주리므로 쇠약하며 불 같은 더위와 독한 질병에 삼켜질 것이라 내가 들짐승의 이와 티끌에 기는 것의 독을 그들에게 보내리로다 밖으로는 칼에, 방 안에서는 놀람에 멸망하리니 젊은 남자도 처녀도 백발 노인과 함께 젖 먹는 아이까지 그러하리로다


 


“내가 재앙(라)을 그들의 위에 쌓으며(사파) 내 화살이 다할 때까지 그들을 쏘리로다”


 


라는 나쁜, 악, 비참 등의 의미다. 사파는 문지르다, 깨끗이 하다, 면도하다, 제거하다, 쌓아올리다 등의 의미를 가진다. 재앙을 쌓는다는 말은 그 다음에 이어져 나오는 말로서, 그 결과를 나타낸다. 쇠약해지고, 질병에 걸리게 되고, 중독되는 것이다. 이는 육체 안에서 일어나는 내적인 고통이다. 영적으로 말을 하자면 하나님 말씀이 없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영적 기갈의 상태를 의미한다. 영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재앙이 백성들에게 주어져서, 그의 기절 상태인데, 그에 다가 화살을 쏘아대므로, 도피할 수 없는 절망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언약을 배반한 이스라엘을 대적과 같이 간주하겠다는 분노의 표시이다.


 


“밖으로는 칼에, 방 안에서는 놀람에 멸망하리니 젊은 남자도 처녀도 백발 노인과 함께 젖 먹는 아이까지 그러하리로다”


 


하나님은 가끔 언약을 배반한 이스라엘을 이웃의 대적을 일으켜, 그들을 공격하게 하므로, 고통을 당하도록 허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영적으로 이는 사탄의 가시로 비유된다. 하나님이 사탄을 이용하시는 이유는 그들에게 고통을 주므로 회개하여 돌이키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고, 마음과 뜻을 회복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날마다 죽노라 라고 고백한 것처럼, 그는 세번이나 사탄의 가시에 눌려서 고통당하여 하나님께 간구한 바가 있다. 사탄의 가시에 대해서 그 답은 날마다 죽노라 라는 것이다. 성도의 적은 자기라는 옛사람에 있는 것이다. 마음 속에 탐욕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언약을 떠나게 만드는 것이다.


 


26-27.내가 그들을 흩어서(파아)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에 대한 기억이 끊어지게 하리라 하였으나 혹시 내가 원수를 자극하여 그들의 원수가 잘못 생각할까 걱정하였으니 원수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수단이 높으며 여호와가 이 모든 것을 행함이 아니라 할까 염려함이라


 


파아는 훅 불다이다. 여기서는 강한 바람에 날려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는 먼지와 같이 비참한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대적들이 이스라엘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을 마치 자기들의 힘과 용맹 때문인 줄로 오해하여, 이스라엘을 멸시할 뿐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까지 비웃을까 걱정된다는 뜻이다. 만일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이 이방인들 가운데서 한낱 조롱거리 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되 완전한 파국에까지는 이르지 않게 하실 것임을 말해 준다.


 


28-29.그들은 모략이 없는(아바드 에짜) 민족이라 그들 중에 분별력(테부나)이 없도다 만일 그들이 지혜가 있어 이것을 깨달았으면 자기들의 종말을 분별하였으리라


 


아바드는 헤메다, 길을 잃다. 에짜는 신중함, 모사, 방책 등으로, 아바드 에짜는 방책이나 대비책이 없는 허술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그렇다는 것이다.


 


테부나는 이해력, 명철, 이성, 지혜 등으로 사용된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여, 육의 눈으로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서만 집착하는 것이다. 세상의 이치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바리새인들은 지혜가 없었다. 율법을 통해서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메시야를 발견했어야 하는데, 율법주의에 매몰되어서 예수님을 메시야가 아니라, 신상모독죄로 십자가에 매달게 한 것이다.


 


30-31.그들의 반석(쭈르)이 그들을 팔지 아니하였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주지 아니하셨더라면 어찌 하나가 천을 쫓으며 둘이 만을 도망하게 하였으리요 진실로 그들의 반석이 우리의 반석과 같지 아니하니 우리의 원수들이 스스로 판단하도다


 


이스라엘이 만일 지혜로운 마음을 품어서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지 아니하고, 따라서 하나님도 그들을 대적에게 내어 주는 일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일종의 가정법적 탄식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징계의 채찍을 맞고 돌아오기 전에, 아예 처음부터 자신의 말씀에 순종하여 축복된 삶을 살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그들의 반석(쭈르)이 그들을 팔지 아니하였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주지 아니하셨더라면”


 


쭈르는 속박하다, 한정하다 등의 의미를 갖지만, 피난처, 하나님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반석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대적들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반박하고 있는 구절이다. 동시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써 겪게 되는 패전의 참담한 결과를 보여 준다. 즉 하나님이 대적을 사용해서 이스라엘이 고통을 당하는 것이지, 대적이 스스로의 힘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대적의 반석은 이스라엘의 대적들이 믿고 의지하는 이방의 각종 신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우리의 반석이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킨다.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을 반석으로 삼지 않을 때 물질, 재산, 권력, 심지어 허탄한 우상신까지 자신의 반석으로 의지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능 앞에 대적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원수들이 스스로 판단하도다(파릴)”


 


파릴은 재판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우상을 믿고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자들은 결국 자기가 스스로 자기에게 판단이 되는 재판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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