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신명기 32장 7-12절)
7-8.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 지극히 높으신 자가 민족들에게 기업을 주실 때에, 인종을 나누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백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이스라엘의 역사는 거듭되는 배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끊임없는 은혜로 점철된 사랑과 긍휼의 역사였다. 이는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하나님께 죄악만을 쌓던 이스라엘의 패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끝까지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들이신 사건만을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죄악의 길에 빠질 때 이러한 그들의 과거 역사를 겸허한 마음으로 회고함으로써 진정 그들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자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가정을 중심한 유대들의 교육 방식은 어느 민족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것이었다. 유대인 어린이들은 자기 부모로부터 교육을 받으며 자랐는데 그 영향은 실로 지대한 것이었다. 그 대표적인 경우로는 절기 때마다 식사를 함께 나누며 과거 하나님의 섭리와 열조들의 역사를 가르침을 받던 것을 들 수 있다.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
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인종을 나누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백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라고 말할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예지로 말미암아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세계 열방을 섭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 구절이다.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는 열국에게 그들의 분깃을 나누어 주실 때라는 뜻이다. 이는 열국의 모든 역사를 친히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강조하는 말이다.
다니엘 4장 35절「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
“인종을 나누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백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바벨탑 사건 이후 인류의 언어가 나누어지고, 지역적으로 인류가 흩어지게 되었던 때를 상기시켜 주는 말이다. 인종은 대개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으로 구분하고 있으나, 여기에서 말하는 인종은 언어에 따른 인종의 구분이다. 언어에 따라 백성들의 숫자도 자연스럽게 정해지는 것이다.
세계 열방을 섭리하셨던 하나님은 오늘날에는 영적 이스라엘 자손의 교회 공동체를 중심으로 세계를 섭리하고 계신다. 교회 공동체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다. 이 진리의 말씀을 사용하고 받아드리는 공동체가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기업이며, 영적으로 같은 인종이 되는 것이다.
9-12.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창세기 32장 24-25절『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야곱은 에서를 이기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보낸 사람을 이기려고 했다. 세상에서 육신적인 사람은 사람을 이기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보낸 사람을 이기려고 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변화되지 않은 사람의 모습이다. 자기보다 육신적인 사람에게는 무서워하면서 자기에게 보낸 하나님의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고 이기려고 하는 모습이 많은 교회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도 아무 소용이 없는 철저히 자기가 주인인 사람의 모습이다.
주님은 주 앞에 나아갈 때 주님보다 더 의지하는 육신의 것들을 쳐 버린다. 이것이 은혜다. 강하고 지혜롭지 못해서 문제가 아니라,『자기』라는 간교한 것이 문제다.『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고 굴복할 수도 없다』고 했다. 이게 야곱의 모습이다.『약속의 땅으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것은 가나안 땅 앞에서 열 정탐꾼의 모습과 동일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를 쳤다.
주님이 상황에 반응하는 야곱의 모습을 부셔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야곱은 그의 형 에서를 만나러 가는 동안에 오직 하나님 만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자를 지켜주시는 것이다.
창세기 32장 28-30절「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씨름한다는 것은 서로 하나가 되어 만들어가는 모습이다. 하나님의 성전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육적 자아가 부숴지고, 하늘의 성전이 땅(야곱)에서 이루어 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이 땅에 오도록 씨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가 될 때, 이 땅에 성전이 세워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천하만민의 모델로 세우셨다. 그래서 그를 보고 모든 민족들이 보고 배우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이름의 의미는 이스라(싸우다)와 엘(하나님)의 결합이다.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성전이 임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 이름이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 안으로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과 싸워 이기는 방법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 외에는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어서(환도뼈의 위골:십자가의 죽음), 하나님을 이기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황무지와 광야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40여 년 동안 방랑 하던 황량하고 삭막한 땅이다. 실로 그곳은 아무런 수확도 기대할 수 없고 단지 짐승의 울음만이 들려오던 두렵고 낯선 오지였다. 실로 크고 두려운 곳이었다. 하나님은 출애굽 1세대들은 광야에서 다 죽게하고, 광야에서 태어난 자와 출애굽 당시 아이들을 대상으로 광야에서 영적으로 훈련시킨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며, 보호하심을 깨닫게 하신 것이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어미 독수리는 새끼들을 날게 하기 위하여 둥지에서 새끼들을 떨어뜨려 날게 한다. 그런 후 주위에서 조심스럽게 지켜보다가 새끼들이 힘에 부쳐 떨어질 때는 그 강한 날개로 받쳐 새끼들이 해를 당하지 않게 한다. 이런 방법을 반복함으로써 어미 독수리는 새끼를 강하고 튼튼하게 키운다. 모세는 바로 이러한 사실에 비유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훈련시키셨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출애굽기 19장 3-4절「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시내산(여호와의 산)까지 오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보았다는 것이다. 열가지 재앙을 보았으며, 홍해가 갈라지고, 애굽의 군대가 수장되었으며, 아말렉과 싸우고, 르비딤에서 생명수를 마시고, 광야 시내산으로 오게 된 것은 마치 독수리가 날개로 업어서 인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독수리(네세르)는 권능을 상징한다. 하나님이 직접 그의 백성들을 이렇게 이끌어 주신다는 말이다. 독수리의 날개로 들어올려 인도하는 것은 이스라엘 전체를 구원한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인도하며 보호하신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셨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러한 사실은 지나온 역사를 통해 이스라엘이 친히 목도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를 알면서도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우상)을 섬긴다면 그것은 무엇으로도 변명할 수 없는 크나큰 죄악이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따라가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시내산에서 도착한 후 모세가 시내산에 계명의 돌판을 받으러 간 사이, 백성들은 황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이라고 섬긴 것이다. 그 이유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본적이 없으므로, 자기들이 생각하는 데에 따라 하나님을 상상하며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자기가 믿는 신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믿는 경우가 허다하다.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 하나님을 믿는 것이 바로 참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신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죽고 부활한 것을 믿는 자가 되는 것이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