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스라엘의 회복

 (4) 이스라엘의 회복

사도행전 1장 6-8절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서 질문을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예수님은 즉답을 피하고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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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이 오해하고 있었던 것처럼 제자들 역시 하나님 나라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오해를 가지고 있었다. 제자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예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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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이 말씀을 불의한 세력을 멸하고 이스라엘 땅에 메시아 왕국을 세울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이고, 마지막 심판으로 인한 회복의 때가 바로 지금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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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와 시기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곧 승천하실 것인데, 승천하신 후에 보혜사로 성도들의 심령 속에 세워진 성전으로 들어오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때를 정해주신다는 것이다. 그 때가 제자(성도)에게는 예수님의 재림이 되는 것이다. 그 때가 성령이 임하시는 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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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보혜사로 제자에게 오시고, 또 다른 보혜사인 성령이 임하시면, 제자들이 활동하게 될텐데, 권능을 받고, 복음을 증거하게 되는 것이다. 보혜사는 내주하시는 성령, 다른 보혜사는 외주하시는 성령이시다. 외주한다는 말은 신도의 머리 위에서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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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역사하심은“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세상 사람들을 위한 대속의 죽음이고, 회개하고 돌이켜 죄 사함을 믿는 자는 하나님께서 부활하신 예수와 함께 부활시켜 주신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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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나 성도가 증인이 되어야 할 곳의 범위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지역 또 사마리아와 땅끝이라 언급했다. 여기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지역이 거리적으로나 심적으로 친근하고 익숙한 가족과 친족, 친구, 이웃 등이라면, 사마리아와 땅끝은 지리적으로는 이방인, 다른 나라, 다른 민족, 소외된 곳이라 볼 수 있지만, 동시에 마음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장벽을 쌓아둔 사람들, 혐오하고 꺼리는 사람들, 관심 속에 벗어나 있는 사람들까지를 다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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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은 유대인들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생각했겠지만, 예수님은 유대인을 넘어선 땅끝을 말씀하셨다. 이게 영적인 이스라엘의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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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으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서, 에스겔 37장 1-5절에는 에스골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소생하는 환상과 두 막대기가 하나 되는 환상이 등장한다. 여호와의 권능으로 마른 뼈들이 생기를 얻어서 살아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마른 뼈는 죄로 인해 심판을 받고 나라를 잃고 열방으로 흩어진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물론 두 막대기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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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지 오래되어 뼈조차 말라버린 마른 뼈의 환상은 이스라엘의 절망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그 누구도 이스라엘의 회복을 기대할 수 없었던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생기가 불어오자, 마른 뼈들이 큰 군대가 되었다 했다. 또 유다와 이스라엘이라고 쓴 두 막대기가 하나님의 손에서 합쳐져 하나가 되는 환상을 보여주신다. 남북 왕조로 분열되었던 이스라엘 민족이 흩어진 이방 땅에서 돌아와 하나의 나라로 회복될 것을 보여주신 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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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 12장 6절에는 때가 되면 이렇게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금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거하게 될 것이라 예언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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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씀에 비추어볼 때, 이스라엘의 회복은 표면적으로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적인 회복을 말하겠지만, 영적으로는 성도의 심령 속에 있는 옛성전은 무너지고, 새성전이 세워지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새성전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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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신도들이 1948년에 독립한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회복시켜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완성된 이스라엘 즉,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 제사제도를 회복되는 날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백 투더 예루살렘이라는 용어는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오늘의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과거의 다윗시대와 같은 영광스러운 나라로 회복시켜 줄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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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땅밟기”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신도들이 해외 선교나 타 종교 단체에 가서 땅밟기를 하면, 하나님 나라가 회복된다는 논리이다. 땅밟기 기도의 성경적 근거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땅을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에서 시작되는 것인데, 특히 해와 선교 과정에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땅밟기 기도자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마음에 두고 땅을 밟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땅을 밟는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드러내신다는 것이다. 나는 해외 선교를 위해 함께 간 목사들이 땅밟기를 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바가 있다. 그래서 연합해서 땅을 밟으면서 이땅을 하나님 나라로 만들어주기를 기도하는 것을 목격했다. 참으로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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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성도의 심령 속의 성전을 의미한다. 옛사람은 죽고, 이제 새사람으로 등장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 될 것이다. 땅밟기라는 이상한 짓을 그만 두고 정말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 무엇인지 깨닫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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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복음이 이스라엘에서 이방인으로 넘어갔다고 말을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는 바로 아브라함과 같은 순종이 없었다는 것이다.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말하는 불순종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므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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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긍휼의 은혜로 순종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으면 그 때부터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불순종하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신다.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께 불순종 한 것을 알게 될 때, 회개하여 비로소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다. 하나님께 회개하여 성령세례를 받게 되면 성령이 그것을 깨닫게 해주고 그는 순종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불순종하는 인간을 순종하는 자녀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에 율법적인 인간으로는 도저히 따라 갈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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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회복은 하나님이 보내신 통치자, 바로 다윗의 후손 예수님이 오셔서 그들의 왕이 되심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이것의 예언이 에스겔 37장 23-25절의 말씀이다.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 모두에게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라고 예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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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예언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바벨론 귀환 사건 때는 성취되지 못했다. 그 후 다윗의 후손인 예수님이 오셔서 이 예언의 말씀이 다시금 성취될 기회가 주어졌지만, 저들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십자가가에 못 박아 죽임으로 예언의 성취가 다시금 미뤄지게 되었다. 결국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에게 성령 세례를 주시므로, 새성전이 그들의 심령 속에 세워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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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혜사로 심령 속에 세워진 새성전으로 들어가서 말씀이신 호 로고스로 임재하시는 것이다.“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라”하신 이 예언은 성도에게 예수님의 재림으로 온전히 성취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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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대주의자들이나, 기존 교회 공동체 중에는 표면적인 이스라엘의 회복과 종말론적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본다. 이천 년 전 예수님의 저주로 말미암아 죽어버린 무화과나무가 다시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낸다고 하였다. 마태복음 24장 32-33절에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라는 말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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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나무는 잎이 지고 가지가 말라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고 봄이 되고 여름이 되면 소생하여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낸다는 것이다. 무화과나무로 표상된 이스라엘 나라도 그와 같다는 말씀이다. 이런 일을 보거든 예수님의 재림이 이른 줄 알라고 말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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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시는 것을 알려주는 징조로서 이 역사를 행사신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신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1948년에 독립했다. 이제 예수님의 재림이 곧 임박했다는 것을 그들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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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나라에서 지진이 일어나거나 천체의 이상한 징조만 보여도 예수님의 재림의 징조라고 말을 한다. 또 예수님의 재림 전에 신도들의 휴거가 있을 것인데, 항상 대비하는 마음으로 삽시다 라고 말을 한다. 왜 이런 말들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성경을 잘못 해석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에서 여전히 휴거를 기다리는 자들이 있다. 참으로 어리섞은 자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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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휴거에 대한 소란이 있었는데, 나에게도 지인으로 부터 어느날 휴거가 될 것인데, 준비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만일 그 날에 휴거가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말했더니, 휴거는 반드시 온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날 휴거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지인을 다시 만났는데, 그 지인이 하는 말이 우리가 휴거의 날을 잘못 알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휴거의 날을 다시 재 산정해서 휴거를 기다리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참 한심한 생각이 들며, 이러한 것이 기독교를 이상한 종교로 만드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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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들은 예수님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성도에게는 예수님이 심령 속으로 들어와서 이미 그들의 주인이 되셨으며, 그들의 영은 하늘에 앉히신바 되었다고 성경은 말을 한다. 이것이 영적 이스라엘의 회복인 것이다. 성경은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곧 심령 속의 성전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음 속의 옛성전이 파괴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성전이 세워져,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실 때, 그것이 이스라엘 회복이라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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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2장 6절에서『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성도의 심령 속에 그리스도가 임재하시므로, 이를 천년왕국이라고 말을 한다. 천년왕국은 성도의 심령 속의 영원한 하나님 나라(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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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천년왕국이 된 자는 심령 속에 세워진 성전에 생명책이 놓여지게 된다. 그 책을 펼쳐보면 이름이 쓰여있는데, 그 이름이 바로 예수인 것이다. 요한계시록 3장 5절에서는 이기는 자에게 생명책을 주시고 그 책에 예수라는 이름이 지워지지 않도록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성부와 천사들 앞에서 시인한다고 까지 보증의 말씀을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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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자는 예수와 함께 죽고, 부활하신 예수와 함께 현재적으로 부활함을 믿는 자들이다. 요한계시록 20장 12-15절에서 책들(율법 책)이 있는데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지만, 다른 책(생명책)은 구원받은 성도를 의미하며, 이미 구원받은 자라는 것이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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