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믿음

에베소서 2장 5절『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여기서 허물로 죽은 우리를 하나님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는 것은 새창조에 해당된다. 그래서 새로운 피조물이다. 하나님이 회개하는 자를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리셔서, 부활하게 하시고, 승천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와 같이 된다.  비록 이 세상에 살아있는 혼적인 생명체이지만 육체가 죽으면 혼은 사라지고, 오직 영만 남게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지 못한 사람들은 죽었던 영이 심판의 부활로 나가게 된다. 그래서 육의 몸이 살아있을 때, 그 혼을 부인하라는 것이다. 육체 안에 있는 자기의 주체는 혼이 아니라 영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최초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 창세기 2장 7절에서 살아있는 혼적인 존재로 창조하셨다. 그러나 새창조된 거듭난 자는 영적인 존재로 창조된다. 혼은 죽고, 영이 살아있는 것이다. 거듭난 자는 영의 몸을 입게된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 영의 몸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나와 상관없다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바로 혼적인 존재는 거듭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해주신다. 육의 몸이 살아있을 때, 혼은 육이 살아있는 동안 쌓여온 지식과 경험과 감정들이다. 마치 육의 주인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그것은 허상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스스로 이것들을 부인할 수 있는가? 이것은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믿음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은혜를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영이 죽은 혼적인 상태로 살다가 끝나는 인생이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은 혼적인 생명체로 태어났다. (창세기 2장 7절:kjv)에덴동산에서 범죄하므로, 혼 속에는 탐욕이라는 원죄가 들어가게 되었다. 이 원죄가 대를 이어서 유전되고 있다. 그래서 모든 인간 속에는 탐욕이라는 우상이 숨어있는 혼적인 존재가 된다. 이를 깨닫지 못하면, 거듭난 자의 삶을 살 수 없는 것이다. 비록 이 세상에서 고난의 삶을 살지라도, 항...

살아나는 것은 육이 아니라 영이다

에베소서 2장 5절『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구원은 허물과 죄로 죽은 자가 살아나야만 한다. 살아나는 것은 육이 아니라 영이다. 영이 죽어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성경은 영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듣는 사람들은 육의 생각으로 듣고 있는 것이다.  로마서 8장 9-10절에서『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여기에서 육과 영은 서로 원수지간처럼 여겨진다. 육이 죽으면, 영이 살고 육이 살아있으면, 영이 죽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육은 육의 생각(혼:옛사람)을 말한다. 부모로부터 받은 육은 인위적으로 죽을 수 없다. 육에서 형성된 혼이 바로 죄의 몸이라고 말한다.  창세기 2장 7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영어성경에서는 살아있는 생명체(niv), 살아있는 혼(kjv)라고 되어 있다. 생령이라는 표현으로 인해서, 아담이 마치 살아있는 영적인 존재로 태어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흙으로 빚어 만든 인간(아담)이 혼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말은 영이 죽어있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그를 넣어주어서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게하여, 영을 살리셨다. 영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창세기 3장 22절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교회 사람들은 3장 22절과 23절을 연계해서 생각하고 있으나, 독립된 문장으로 읽어야만 한다. 『And the LORD...

하나님의 주권

에베소서 2장 5절『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2장 8절에서『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두 문장을 살펴보면, 2장 5절에서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말하고,  2장 8절에서 은혜에 의해서,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믿음은 선물이라고 말한다.  순서가 은혜, 믿음, 선물이다. 하나님이 은혜를 아무에게나 주는 것이 아니라,  2장 7절에서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전에, 인간이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다 거짓된 믿음이 된다. 교회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받기를 기도한다. 문제가 해결되고, 기적을 체험하고, 삶의 질이 향상될 때 은혜받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는 이유는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인간들의 노력과 헌신이 있기에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주권에 달려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여있다. 인간의 의 따위는 하나님께는 티끌보다 못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이게 하나님의 주권이시다.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 제자들과 길을 가다가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서 많은 사람이 억을하게 죽었다. 누가복음 13장 4-5절에서『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회개하지 않으면, 결국 은혜받지 못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3장 6-9절에서『열매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를 찍어버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은혜와 죄인의 회개는 연결되어 있다. 회개는 하나님 은혜로 들어가...

죽은 자가 살아나야만 구원받는다

에베소서 2장 1절『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원본은 『너희는 허물과 죄로 죽은 자』다.『살렸다』는 말은 번역과정에서 들어갔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죽어있다는 말씀이다. 구원은 죄 용서가 아니라, 죽은 자가 살아나야만 한다. 죽은 자(영)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함께 먼저 육적 몸인 옛사람(혼)이 죽어야만 한다. 성찬에서 떡을 먹고 잔을 마신다. 잔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먼저 떡을 먹은 후에 잔을 마신다. 떡을 먹는 이유는 예수님의 죽으심에 참여하는 것이다. 먼저 죽으심에 참여한 후에 예수님의 보혈로 죄용서가 이루어진다.  예수님의 죽으심에 참여할 수 있는 자는『내가 예수믿겠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영접합니다』라고 말하는 자가 아니라, 먼저 자신이 하나님께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깨닫고, 회개하는 자가 참여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께 회개했고, 날마다 회개하고 있다고 말한다.『무엇을 회개했는가』가 중요하다. 자신이 지은 결과물인 죄에 대해서 회개하는가? 아니면 죄를 짓게 만드는 옛사람에 대해서 회개하는가? 죄에 대해서 회개한다는 것은 죄용서가 목적일 것이다. 그러나 죄를 짓게 만드는 옛사람에 대해서 회개한다면, 죄용서가 아니라, 자신이 죽을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죽을 죄인은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용서하지 않는다. 그런데 하나님은 회개하는 죄인을 살리고 싶어하신다. 죄인을 죽여야만 하고, 또 살리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 자신이 죄인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회개하는 죄인의 이름으로,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하여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죽은 것이다. 그런데, 죽은 자라고 믿으면서, 옛사람 그대로 살아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라고 말하면서, 세상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날마다 죽은 자가 되어야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한 것 처럼,『오늘밤 다 나를 버리리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홍해를 나온 인간의 첫죄, 원망죄

하나님이 애굽에서 부르짖는 백성들을 건져내기 위해 모세를 택하고, 모세로 하여금 바로왕에게『하나님의 명하신 바 사흘길을 간 후에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말하도록 했다. 그런데 바로왕은 여기서 제사를 하라고 했지만, 모세는 거절했다. 그리고 열가지 재앙이 애굽에 내리고, 히브리 백성은 애굽을 나와 홍해바다를 건너 사흘길을 갔다. 그런데 사흘길을 갔지난 물이 없어서 거의 죽게 되었다. 성경에서 사흘은 육이 죽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후에 부활하셨다. 히브리 백성의 사흘 길은 하나님께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에는 안중에도 없고, 물이 없으므로 모세를 원망하는 것이었다. 홍해바다가 갈라지는 놀라운 기적도 다 그들의 마음에는 물 때문에 없어져 버린 것이다.  출애굽기 15장 22-25절에서『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여기에서 한 나무가 등장한다. 나무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상징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들어갔을 때, 쓴물이 단물이 된 것처럼, 어둠 속에 있던 자가, 성령의 빛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십자가에 들어가기 전에는 모든 인간은 아무도 마실 수 없는 쓴물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사흘길을 지나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하나님은 제사를 받기를 원했지만, 백성들은 그들의 인도자 모세를 원망했다. 그리고 모세는 부르짖어, 쓴물이 단물로 변했다. 이 생명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히 죽어야만 하는 그런 존재라는 것이다.  히브리 백성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음에도, 육이 반응하여...

의롭다하심을 얻는 믿음

로마서 10장 6-9절『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받은 자』는 육적 생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육적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는 현실적인 상황을 토대로『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므로 예수님의 피가 계속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명기(30장 11-14절)의 말씀을 인용한 이 말씀은『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설명하기 위해서 바울이 인용했다. 광야에 나온지 40년째 11월을 지나서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모세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다. 40년 전에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은 하나님 말씀을 지킬 수 없는 존재, 벗어날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지만, 40년이 지난 후에 모압 땅에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시내산의 언약과는 다르다는 것을 신명기 29장부터 말해준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아 백성들에게 전해주었고, 지키려고 했다. 그러나 므리바에서 물을 내라고 하신 명령이 믿지 못하므로 순종하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믿지 아니하므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는 율법에 대해서 죽임을 당하는 자가 되었다. 모세는 회개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율법에 대해서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 모세가 죽기 전에 가나안에 들어가려는 백성들을 향해서『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말하는 것이다.『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는 어린양의 피를 칠하여 애굽으로 부터 나올 때의 믿음이 아니라, 가나안에 들어갈 때의 믿음이라는 것이다. 애굽으로 부터 출애굽할 때...

믿음을 지키는 자

데살로니가후서 2장 9-12절『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사탄은 히브리어다. 신약에서의 헬라어도 그대로 사탄이라 했다. 사탄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루시퍼(계명성:헬렐)였지만,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대적하여 세상으로 쫒겨났지만, 세상을 통치하는 능력을 일정기간 동안 받았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사탄의 종이 되었다. 그러나 사탄으로부터 벗어나는 자는 사탄의 시험을 받는다. 하나님은 사탄을 시험하는 자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욥일 것이다. 심지어 예수님도 사탄으로부터 시험받았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8장 36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비록 육체가 이 세상에 있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사탄을 따르는 자, 사탄을 섬기는 자는『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이와 같이 거듭나지도 않으면서 성령의 능력을 구하는 자는 사탄에게 속아서 멸망하는 자가 된다. 왜 멸망하는가?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오늘날은 많은 교회에서 진리의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진리를 추구한다. 진리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말하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은 사랑은 다 거짓된 복음이 된다.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은 자에게 사랑은 우상이 된다.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의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