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로마서 8장 1-6절)『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로마서 7장 4절에서 보면『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율법에 의해서 죽었다는 것이다. 율법에 의해서 죽은 이유는『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고 말했다. 열매를 맺히는 일에 대해서 대부분 사람들은 예수 잘 믿고,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이 되었다 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열매맺는 일은 이웃의 죽어있는 영을 살리는 일이다.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맺는 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는 일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일이다. 그 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육의 몸(옛사람)이 죽고,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예수를 믿는다』라는 말은 예수님과 함께 죽고, 다시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탕자의 아버지가 탕자에게 바라는 것은 회개하여 죽은 자같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5장 14-15절에서『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로마서 7장 23-25)『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사도바울이 왜『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말했는가? 자기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없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라는 존재가 예수와 함께 죽으라는 것이다. 죽는 것은 율법에 의해 죽은 것을 믿는 것이다. 7장 4절에서『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율법에 의해 죽은 자가 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율법이 폐하여진 것이다.  에베소서 2장 15절에서『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골로새서 2장 14절에서도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율법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나, 다만 예수와 함께 율법에 의해 죽은 자만 율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기 위함이었다.   율법에 의해 죽은 결과가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서『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이 세상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율법에 적용받는 자와 율법으로부터 벗어난 자들이다. 율법에 적용받는 자들은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율법에서 벗어난 자는 세상에 대해서도 못박혔다고 말한다.  로마서 7장 13절에서『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율법이 죄를 깨...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로마서 7장 13-22절)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사도바울이 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말했는가? 자기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없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라는 존재가 예수와 함께 죽으라는 것이다. 죽는 것은 율법에 의해 죽은 것을 믿는 것이다. 7장 4절에서『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율법에 의해 죽은 자가 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율법이 폐하여진 것이다.  에베소서 2장 15절에서『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골로새서 2장 14절에서도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율법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나, 다만 예수와 함께 율법에 의해 죽은 자만 율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로마서 7장 7-12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이니라. 많은 사람들은 율법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율법을 지키므로서 죄를 짓지 않게된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아주 이중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인간은 죄인이 되며, 결국 의에 이르지 못할 수 있다』는 애매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믿지만, 죄로 인하여 율법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탐심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죄다. 탐심은 자기가 주인이 되는 것이다. 창세기 4장 7절에서『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죄의 소원은 하나님 말씀을 벗어나서 육체가 원하는 것을 하고자 하는 것이 죄의 소원이다. 탐욕에 대해서 신명기 5장 21절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로마서 7장 1-6절)『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예수를 믿는다』라는 말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마태복음 16장 24절에서『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이 말은 세상에서 어떤 어려운 고난을 견디고 참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세상에 대해서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었음을 믿으라는 것이다.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죽은 자는 율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죽어야 한다는 말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도『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라고 하고 있다. 사도바울이 부부관계를 통해서 율법을 설명한다. 남편이 살아있을 때,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가 된다고 말한다. 자기 남편이 율법을 의미하고, 다른 남자는 성령을 의미하는데, 율법에 대해서 죽지도 않았으면서, 성령을 따른다고 말하므로 영적 간음죄를 짓는 ...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로마서 6장 17-23절)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사울은 죄의 종의 길을,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 교훈을 좇아 의의 종의 길을 걸어갔다. 마침내 사울은 왕좌에서 내려오고, 다윗은 새로운 은혜의 시대를 열어갔다. 성도는 은혜의 영향 아래 살아간다. 더는 나의 기준이 아닌 주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성도는 살아간다. 성도는 은혜 아래 있기에 의의 사고와 행동, 그리고 삶을 이어가야 한다. 그러나 현실이 만만하지 않다. 그래서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성도들은 은혜와 구원 아래서 의롭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간은 의롭게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의롭게 되는 것은 나라고 생각하는 것을 부인할 때, 즉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을 못박을 때, 하나님께서 의롭다 함을 칭해주시는 것이지 내가 그렇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의 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므로 원죄로 인하여 죄의 종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원죄는 영의 원죄와 육의 원죄가 있다. 하나님 나라를 떠난 자들이 바로 영의 원죄라는 것이다. 육의 원...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로마서 6장 8-16절)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예수님과 함께 죄에 대하여 십자가에 죽은 자만이 진정 예수님과 연합된 자가 된다. 다시 말하자면 죄에 대하여 죽지 못한 자는 예수님과 연합되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죄의 문제에 대하여 해결할 방법을 깨닫게 하셨다. 그것은 바로 예수와 함께 죽을 때, 우리의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단번에 죽었다는 사실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예수와 함께 죽지 않으면 죄는 그대로 있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죄는 그대로 있는 것이다.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