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이르리니

  때가 이르리니 디모데후서 4장 1-2절『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에노피온) 그가 나타나실 것(에피파네이안)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디아마르튀로마이)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디아(통하여)마르튀로마이(증거한다)는 ~ 통하여 증거한다는 의미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증거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라는 말은 얼굴의 면전에서 라는 말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면전에서 증거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영이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이 귀절을 두고 종말과 연계하는 자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다. 바울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면전에서 증거하는 내용은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빛을 비추시는 것에 대해서 증거한다는 것이다.『에피(~위에)파네이안(빛을 비추는)』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빛을 비추는 것이다. 예수님은 빛을 비추고 있지만, 어둠에 있는 자는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빛을 비추는데, 성도는 그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비추라는 것이다. 그 빛을 받아서 영이 살아움직일 때, 그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하는 것은 바로 이 말씀이다. 자기가 디모데에게 말하지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증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교회 목회자들이 설교하는 것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증거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바울이 오늘날 교회 목사들에게도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춰주시는 그 빛에 대해서 정확히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성도를 향하여, 너희는  빛이라고 선언하셨다. 빛이 되기 위해 노력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미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소유한 자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빛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거듭난 성도가 아니라는 의미가 된다. 겉으로는 ...

젊은이는 시집 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젊은이는 시집 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디모데전서 5장 9-10절『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가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로서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   당시에 일반 사람들의 수명이 육십을 넘지 못했다. 육십을 넘는다는 의미는 다시 태어남(거듭남)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늙은 과부(육십세 이상)와 젊은 과부를 나누어서 말한다. 늙은 과부는 택하심을 받은 거듭난 자로서 교회 안에서 참 과부를 의미하며, 젊은 과부는 부르심을 얻어 교회에 왔지만 거듭나지 못한 신자를 의미한다.    한 남편의 아내된 자에서 남편은 그리스도가 되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로서, 선한 사역이 있는 자라는 것이다. 그것의 증거를 말한다. 자녀를 양육한다는 것은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적 생명을 얻게하는 것이다.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세상에 들어온 모든 자들은 나그네라고 할 수 있다. 전도를 통해서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이고, 성도들의 발을 씻겨주는 것은 하나님이 성도를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하고 성도간의 미워함(죄)으로부터 벗어나라는 것이다.    어려움을 당한 자를 구제한다는 것은 물질적인 구제도 의미가 있지만, 영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자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새기며, 서로 위로의 말을 나누라는 것이다. 모든 선한 일은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영을 살리는 일인 것이다.    예수님은 성경 말씀 속에서 대부분 비유의 말씀으로 깨닫게 해 주셨다. 그 이유는 씨뿌리는 비유에서도 볼 수 있듯이 땅의 일을 통해서 하느님 나라의 일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사도바울도 이와 같이 많은 비유를 통해서 말하고 있다.      디모데전서 5장 11-12절 『젊은 과부는 올리지 ...

참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참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디모데전서 5장 1-2절『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나이가 많은 분들을 대할 때는, 자신의 아버지를 대하듯, 어머니를 대하듯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젊은 사람을 대할 때도 형제와 자매를 대하듯 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모세의 두 번째 돌판에 기록된 십계명 중 다섯 번째 계명인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말씀과 연결된다. 육신적 어른을 통해서 영적인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공경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형제자매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형제를 사랑하라는 말과 연결된다. 형제를 사랑하는 일은 바로 영을 살리는 일이다. 이 세상에 온 모든 사람들이 원래는 형제자매인 것이다. 그래서 영을 살려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야만 한다.  디모데전서 5장 3절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바울은 과부에 대해 디모데에게 전해주고 있다. 그런데 그 시작을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여기에서 『참』으로 번역된 『온토스 ὄντως 』는 본래 『참으로, 실제로』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로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과부를 의미한다.  구약 시대에 과부는 재앙을 받은 존재였다. 그리고 고아나 나그네와 더불어 사회의 소외 계층에 속한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10장 18절의 말씀을 통해, 이들을 깊이 사랑하시며 돌보신다고 하셨고, 신약시대 예수님께서도 과부들을 불쌍히 여기시사 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셨으며, 그들을 학대하는 사람들을 책망하시곤 했다.  이러한 과부들에 대해 바울은 16절을 통해 교회가 참 과부를 존대하며 돌보야 함을 권면하고 있다. 말하자면 영적으로 소외된 자를 찾아가라는 것이다. 과부와 고아는 하나님을 떠난 자들을 말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도움을 청하는 자들(케라스 χήρας)이다. 그들에게 참 진리를 선포하며...

문답 370-373

  370 문:   하지만 가롯유다가 제 아무리 악했다고 해도 우리 주님께서는 성찬 때 그를 참여 하도록 하시지 않았는가? 답:   그이 죄는 아직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또 비록 우리 주님께서 이를 모두 알고 계셨을지라도 모든 사람에게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만찬을 하시고, 떡과 포도주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누가복음 22장 16-20절「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 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유대 지도자들에 의해 체포당하고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셨다. 이때 열두 제자들은 다 도망가고 심지어 베드로는 예수를 세번이나 부인했으며, 가롯유다는 목어 자살해버린 것이다. 당시에 예수님은 부활하시기 전이었으므로, 모든 제자들은 성령세례를 받은 상태가 아니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가셔서 그들에게 성령세례를 주시고, 세례에 대해서 설명하시고, 모든 제자들에게 온 천하를 다니며 세례를 주어 제자를 삼으라고 하신 것이다. 따라서 그 당시 예수님이 베푼 만찬은 오늘날 성찬식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오늘날 성찬은 세례의 기념식과도 같은 의미를 갖지만, 예수님 당시의 성찬은 기념식이 아니라, 바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적 성격을 띤 식사자리였던 것이다.   371 문:   그러면 거짓 위선자들에 대해서는 ...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디모데전서 4장 9-11절『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미쁘다(피스토스 πιστὸς ) 이 말(호 로고스)이여』말씀이신 그리스도는 신실하신 분이다 라는 의미다. 또한 바울은 경건의 훈련을 위해 수고하고 힘쓰는 이유를『우리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데오 존티  Θεῷ ζῶντι )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고 말하고 있다. 『데오 존테』는 성부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예수님이 성도 안에 계시는 것을 믿지만, 실제 살아계시는 것을 믿는 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이 성도 안에 살아계셔서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환경을 참아내고 견디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소망을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지켜보고 계심을 의식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디모데전서 4장 12-13절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아나스트로페 (ἀναστροφῇ )는 위에서 돌이키다 라는 의미다. 아나그노세이 (ἀναγνώσει )는 아나(위에서)와 그노세이(아는 것:하나가 되는 것)의 합성어다. 위(하늘)에서 관계를 통하여 아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되는 것이다. 목회자가 반드시 전념해야 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권하고,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는 것이다. 다른 사본에는 ( )속의 영에 대한 것이 있다. 다시 번역해 보면, 『아무도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너...

문답 361-369

  361 문:   그러면 우리의 연약함(불완전함)은 우리가 성찬에 참석하는 것을 막지 않는다는 것인가? 답:   그렇다.   만일 우리가 연약하지 않다면 성찬은 우리에게 아무런 필요가 없는 것이다.   즉 성찬은 우리의 연약함에 대한 보조수단으로 또한 동시에 위안을 주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성찬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가 참여하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 무결한 자가 됨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의식이 된다. 육의 눈으로 상도를 바라보지 말고, 영의 눈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라보아야만 성찬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성찬의 의미는 세례받은 자에게 나타난다. 세례는 불완전한 육의 몸은 예수와 함께 죽고, 완전한 하늘로 부터 오는 부활생명의 몸을 예수와 함께 입었으므로,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하나님의 의를 가진 자가 되는 것이다. 스스로 불완전한 자라고 믿는 자는 성찬에 참여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함을 인정하지 않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죄의 몸이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완전한 자가 된다.   362 문:   이 두 가지 성례들은 또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는가? 답:   예,   다른 목적이 또 있다.   이것들은 우리의 신앙고백의 외적인 표현이며 또한 표시가 되는 것이다.   즉 우리는 이것들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에 소속되었다는 것과 또한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려면 죄의 몸이 십자가의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것을 믿어야 한다. 신도가 현재적 부활을 믿을 때, 하나님이 세례로 옛성전을 무너뜨리고(불세례), 새성전을 세워주신다(성령세례). 그래서 새성전에서 성도가 재림하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시면, 비로소 그 분이 성도의 구주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