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베드로전서 1장 8-9절『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상속받는 자가 이렇게 기뻐하는 것이다. 프쉬콘 (ψυχ ῶ ν) 은 생명을 의미한다. 프쉬콘을 영혼, 영, 혼, 마음, 생명 등으로 번역되었는데, 문장 마다 의미가 다르게 표현되므로, 그 문장에 맞게 번역이 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프쉬케는 생명이 본질이다.   히브리어로는 네페쉬로서, 창세기 1장 7절「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네페쉬 하이)이 된지라」네페쉬(생명) 하이(살아있는)에서 네페쉬는 육적 생명을 의미한다. 생령이라는 표현은 잘못 번역된 것이다.   영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고, 육은 부모로부터 온 것이며, 생명은 두가지이다. 부모로부터 온 육적 생명이 있고, 하늘로부터 온 부활생명이 있는 것이다. 육적 생명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나타내고, 부활생명은 영원한 생명을 나타낸다. 그래서 구원은 영원한 생명(부활생명)으로 나가는 것이라는 말이다.   육적 생명에는 탐욕이라는 옛사람이 숨어있다. 그래서 탐욕이 숨어있는 육적생명이 영을 죽이는 것이다. 육적생명에서 탐욕을 제거하면, 영은 하늘의 부활생명을 받아서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러나 생명에서 탐욕을 인간은 스스로 제거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제거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의 연합이다. 그래서 영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육적생명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하늘로부터 부활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이라는 것이다.   이와 상반되게 영지주의 자들은 영에 신성이 있다고 믿는 자들이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형상을 마치 신성으로 생각하여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

내가 주인을 떠나지 아니하겠노라 하거든

 내가 주인을 떠나지 아니하겠노라 하거든   신명기 15장 16-18절「종이 만일 너와 네 집을 사랑하므로 너와 동거하기를 좋게 여겨 네게 향하여 내가 주인을 떠나지 아니하겠노라 하거든 송곳을 가져다가 그의 귀를 문에 대고 뚫으라 그리하면 그가 영구히 네 종이 되리라 네 여종에게도 그같이 할지니라 그가 여섯 해 동안에 품꾼의 삯의 배나 받을 만큼 너를 섬겼은즉 너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하기를 어렵게 여기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히브리 종의 해방과 관련된 내용은 안식년과 관련된 규례인데, 하나님께서는 이 규례를 통해, 히브리 동족으로 종이 된 사람이 육 년간 종으로서 주인을 섬겼다면, 칠 년째 되는 해에는 해방을 시켜주어야 함을 명하셨다. 더욱이 그가 자유인이 되기를 원한다면, 빈손이 아닌 충분한 재물을 줌으로서, 다시는 타인의 종이 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 해 주는 세심한 배려까지도 지시하셨다.   요한복음 8장 31-32절에서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라고 했다. 지금 유대인들은 자유인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이에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는데, 그런 말을 하는가 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어서 죄를 범한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을 했다. 죄는 마음의 탐욕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죄의 종인 것이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세상에 온 에베드(종)라는 것이다. 세상에 온 모든 자가 에베드이며, 율법을 지켜 의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으로 의를 이룰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예레미야 34장 14-15절에서『너희 형제 히브리 사람이 네게 팔려 왔거든 너희는 칠 년 되는 해에 그를 놓아 줄 것이니라 그가 육 년 동안 너를 섬겼은즉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지니라 하...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한 믿음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한 믿음     베드로전서 1장 1절『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나그네는 소아시아 지역 등에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들이다. 프로그노신 (πρόγνωσιν) 은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서 아는 것이다.(히브리어 야댜와 같은 의미) 프뉴마토스 (Πνεύματος) 는 소유격으로『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이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을 받는 자는 순종(휘파코엔  ὑ πακο ὴ ν ) 과(카이:접속사)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란티스몬 ῥ αντισμ ὸ ν )  속으로 들어간다. 순종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순종이다. 그래서 순종이라는 말은 피뿌림과 동격인 것이다. 물론 카이(접속사 그리고) 라는 말은 동격을 의미할 때가 있다. 성도가 거룩하게 되는 것은 십자가에서 피를 뿌려 하나님께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다. 이 믿음을 가진 자가 택하심을 얻는 자들이다.   베드로전서 1장 3-4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아나겐네사스 (ἀ ναγεννήσας)  는 위에서 태어난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거듭난 자는 하늘로부터 태어난 자라는 것이다. 거듭난 자는 산 소망을 갖게된다. 그런데 소망을 갖게되는 방법은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아나스타세오스 (...

일곱째 해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 것이요

 일곱째 해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 것이요   신명기 15장 11-15절「땅(에레츠)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에비온)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에비온) 자와 궁핍한(아니) 자에게 네 손(야드)을 펼지니라(파타흐 파타흐) 네 동족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네게 팔렸다 하자 만일 여섯 해 동안 너를 섬겼거든 일곱째 해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 것이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에는 빈 손으로 가게 하지 말고 네 양 무리 중에서와 타작 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그에게 줄지니라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오늘 이같이 네게 명령하노라」   이 글은 종에 대한 자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나, 영적으로 출애굽을 상징하며, 또한 사탄으로부터 자유함을 입는 자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에레츠는 땅이지만, 세상을 상징하기도 한다. 에비온은 궁핍, 가난한 자, 부족하다, 거지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아니는 억압된 고통받는 자.   야드는 손, 수단, 방향을 의미하며, 파타흐는 열다, 해방시키다 등의 의미로서, 여기는 중복적으로 표현되었다. “네 손을 펼지니라”(파타흐 파타흐 에트 야드) 이 말은 “너의 권한으로 자유를 자유를 줄 것이라” 두번으로 강조한다.   “만일 여섯 해 동안 너를 섬겼거든 일곱째 해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 것이요” 육과 칠의 숫자가 등장한다.   육은 창세기 1장에서 짐승과 사람이 같은 날 창조되었는데,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돕는 베필이 오지 않은 존재가 바로 짐승이라는 것이다. 여자가 남자를 만날 때 사람(칠)이 되는 것이다. 육은 만남의 숫자이다. 육은 짐승을 의미하며, 불완전한 숫자인 것이다. 출애굽기 21장 2-3절에서『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

야고보가 말하는 믿음의 기도와 엘리야의 기도

  야고보가 말하는 믿음의 기도와 엘리야의 기도   야고보서 5 장 15-18 절『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성도는 현재 부활함을 믿는 자이고 , 그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져 그리스도가 호로고스로 임재하신 것을 믿는 자이다 . 그래서 성도는 프로슈케 기도를 한다 . 프루슈케 기도를 하지 않는 신도들은 초신자라고 말을 할 수 있다 . 심령 속에 호로고스의 임재하심으로 기도 ( 프로슈케 ) 하지 못하는 초신자들은 병든 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 , 그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 육적으로 연약하여 항상 죄에 노출되어 있음을 기도하라는 것이다 . 그래서 죄로 오염된 육체가 병이 들었지만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의를 구한 것 같이 육체의 병도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 기도하는 순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되고 , 처음 믿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 ,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죄 사하심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 병든 자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할 때 죄를 사해주심과 같이 병도 고쳐달라는 기도를 하라는 것이다 . 이것이 믿음의 기도다 . 유케의 기도는 프로슈케의 기도와는 다른 차원이지만 , 서로 모여 기도할 때 ,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 유케의 기도는 프로슈케의 임재기도를 모르는 신도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 』여기서 의인은 선지자 엘리야를 의미한다 . 엘리야가 기도하는 것은 프로슈케 ( 보좌에 나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 의 기도를 하는 선지자였다 .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는 ...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신명기 15장 6-10절「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다바르)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고 네가 여러 나라를 통치할지라도 너는 통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다바르는 약속하시다, 언약하시다, 선언하시다 등의 의미다.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에게 약속하신 복은 세상의 복이 아니라, 영적인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이 된다. 가나안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것이다.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아밭) 줄지라도 너는 꾸지(아밭) 아니하겠고” 아밭은 전당잡히다, 담보물로 주다 등이다.    전당잡힌 것은 종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은 바로 전당물에 대한 희생과도 같은 것이다. 전당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물로서 그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영원한 기업을 약속하는 것이다.    위의 것을 다시 번역하면 “네가 여러 나라에 전당잡혀 줄지라도 이제너는 전당잡히지 아니하겠고” 다시 말해서 이전에 애굽의 종이 되었지만, 이제는 애굽으로부터 자유인이 되었다는 말이다. 영적으로 사탄의 종이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야고보서 5장 12절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 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   여기에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에서 헬라어 원문에는 생각이라는 단어는 없는데, 번역하는 자가 끼워넣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에) 그러면 그렇다고 말하고,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Yes(예), 하겠습니다』로 받아드리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No,(우리 말:예),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언어적 관습의 차이에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그래서 호로고스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은 맹세가 필요없다.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고 하는 자들이 맹세를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5장 33-37절에서도 맹세에 대해서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맹세에 대해서 『지키라』는 것이 구약성경의 가르침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백성들이 자원하여 맹세하는 것은 금하지 않았으며, 만약 맹세했다면 반드시 지키라고 명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도무지 하지 말라고 했으며, 심지어 악에서 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맹세 자체를 무조건 금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위선적 형식적인 맹세를 단호히 거부한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에게 한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율법의 규정을 자기들 편리한 대로 악용하는 잘못된 습관을 당장 그만 두라는 뜻이었다.   예수님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맹세를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을 예리하게 지적하셨다. 그들은 금과 예물(성전에 바칠 헌물)을 걸고 맹세한 것은 꼭 지키되, 성전과 제단에다 대고 말로서 한 맹세는 꼭 지킬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예수님은 금보다 성전이, 예물보다 제단이, 성전과 제단보다 하나님이 더 크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