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요한일서 2장 22-23절『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이 말은 교회 밖의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거짓말하는 자를 말한다. 성령세례도 받지 않은 사람이 마치 기름부음을 받은 자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두고 요한이 지적하는 것이다. 이들은 삼위일체의 신앙을 잘못알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에서도 성부하나님, 성자하나님, 성령하나님이라고 말을 한다. 이게 잘못된 삼위일체 신앙인 것이다. 삼위일체는 성부 하나님 아버지와 성자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이 하나인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땅에 초림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는 모든 세상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 사역을 위해 오신 분(메시야: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하는 모든 사역을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 자리를 떠나시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분은 신성을 가졌지만, 스스로 하나님이라 하지 않고 아들의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창조주), 성령 하나님이 각각 인격으로 존재하시면서, 서로 하나인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분이고, 그러나 한분이라는 논리로 설명한다. 이게 신학인 것이다. 성부하나님은 보좌에 계시며, 성자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 땅에서 잠깐식 나타나시고,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은 모든 것을 운행하게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한분이시며, 성부와 그의 아들과 성령의 운행하심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을 받을 때, 누가복음 4장 6-7절에서『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

아내를 맞이하는데 있어서 율례

  아내를 맞이하는데 있어서 율례   신명기 24장 1-5절「사람(이쉬)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헨)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그 여자는 그의 집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려니와 그의 둘째 남편도 그를 미워하여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냈거나 또는 그를 아내로 맞이한 둘째 남편이 죽었다 하자 그 여자는 이미 몸을 더럽혔은즉 그를 내보낸 전 남편(바알)이 그를 다시 아내로 맞이하지 말지니 이 일은 여호와 앞에 가증한 것이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범죄하게 하지 말지니라 사람이 새로이 아내를 맞이하였으면 그를 군대로 내보내지 말 것이요 아무 직무도 그에게 맡기지 말 것이며 그는 일 년 동안 한가하게 집에 있으면서 그가 맞이한 아내를 즐겁게 할지니라」   “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에르나)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헨) 아니하면 ”   다시 번역하면, “ 남자가 아내와 결혼하여 데려온 후에, 그가 그녀에게 부끄러운 것을 찾았으므로, 그의 눈에 그녀가 좋아하지 않으면 ” 이다. 부부관계에 있어서 아내가 남편의 행동에 불결한 듯이 거절하는 행동을 하면, 더 이상 부부관계를 지속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 수치되는 일 ” ( 에르나)에서 에르나는 발가벗음, 수치, 부끄러운 등의 의미를 갖는다. 헨은 즐거운, 현숙한, 사랑스러운 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쉬는 남자로서 아내가 없는 자를 의미한다. 그런데, 아내를 만났는데, 하나되지 못하는 경우이다. 부부가 하나가 되지 못하면 한 몸이 아니며, 이혼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 그의 둘째 남편도 그를 미워하여(사네)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냈거나 ” ...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요한일서 2장 12-13절『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호 로고스는 그의 이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아페온타이 (ἀφέωνται) 는 사함이 아니라, 제거된다는 의미다. 아비와 청년의 영적인 차이는 아비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아는 자로, 젊은이들은 아버지의 뜻을 실현하는 자로 이해된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하여 모든 세상 사람들이 죄로부터 해방되게 하는 것이고,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탄으로부터 그들을 구해내는 일이다. 어린 아이에 대해서는 개역개정에는 14절에 포함되었다. 어린 아이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단순히 알고 있는 자들이다. 아르케스 (ἀρχῆς )는 태초가 아니라 우두머리 리더(인도하는 자) 라는 의미다. 요한일서 2장 14절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아르케스 (ἀρχῆς )는 태초가 아니라 우두머리 리더(인도하는 자) 라는 의미다. 아이들은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아는 정도의 신앙인을 표현하는 것이다. 영적인 관계를 통해서 아버지와 아이로 이해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비와 청년들은 2장 13절의 내용을 반복하고 있다. 아이들은 교회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로, 아비와 청년은 거듭난 자로 표현된다. 교회에서는 예수믿으므로 칭의를 얻고, 아이에서 청년, 아비로 성화되어간다고 말을 한다. 성화와 거듭남은 다른 의미인 것이다. 성화는 성경에 있는 말이 아니라, 신학이 만들어낸 표현이다. 영적인 의미로서는 아이...

사형에 처해지는 자들

 사형에 처해지는 자들   신명기 21장 18-21절「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은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의미한다. 순종한다는 말은 부모의 말에 무조건 복종하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 행동하는 자를 의미한다. 순종하지 않는다는 말은 부모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한다. 오늘날 하나님 말씀도 좋고 세상의 말도 좋은 사람을 방탕하고 술에 잠긴 자라고 표현되는 것이다. 술에 취하면 이말 했다가 저말 하는 자가 된다.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을 부모는 성문 앞의 재판정으로 데려가 재판을 받게 해야 한다. 그 아들이 진실로 부모에게 반항하였다면 그 결과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 돌에 맞아 죽는 것이다.    예수님은 첫사람 아담으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산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에 맞아 죽으신 것과 같은 모양이다. 그는 유대인들로부터 율법에 따라 징계를 받아 신성모독죄로 죽으셨다. 유대인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을 벗어나 패역한 아들로 보이는 것이다.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첫사람 아담의 죽음은 죄의 몸에 대해서 죽은 것을 의미한다. 죄의 몸은 악으로서, 아담으로부터 이어져 모든 사람에게 전이했다. 이 죄의 몸이 없어지지 않는 한 인간은 죄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첫사람 아담의 죄의 몸에 대해서 죽으셨다. 로마서 6장 6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한일서 2장 1-2절『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여기에 대상은 자녀들이다. 곧 거듭나서 성령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다. 그들은 성령이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자들로서, 죄를 짓지않는다. 성령께서 죄를 대하는 순간 죄를 짓지 않도록 두려움도 주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혹시라도 죄를 범하는 순간이 있더라도 그 대언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의 목적은 죄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한 목적이다. 죄를 짓는 순간이 오면 이 글을 잘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힐라모스 (ἱλασμός) 는 속량을 의미한다. 속량은 값을 주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이 세상의 모든 죄를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요한일서 2장 3-4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타스 엔톨라스 (τὰς ἐντολὰς) 는 구약의 십계명과 같은 율법이 아니라, 성령이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명령이시다. 그 명령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 사랑은 바로 아가페의 사랑인데, 인간은 아가페의 사랑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서 그 사랑을 하라는 것이다. 그 사랑은 영을 살리는 일이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심으라는 것이다. 영을 살리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만 할 수 있다.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가 바로 야다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기노스코멘 (γινώσκομεν) 은 히브리어 야댜와 같은 단어다. 영을 살리는 일을 하지 않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장자의 권리

 장자의 권리   신명기 21장 15-17절「어떤 사람이 두 아내를 두었는데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다가 그 사랑을 받는 자와 미움을 받는 자가 둘 다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이 장자이면 자기의 소유를 그의 아들들에게 기업으로 나누는 날에 그 사랑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삼아 참 장자 곧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보다 앞세우지 말고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공동체의 규모가 작은 가족공동체라 할지라도 원리는 동일하다. 장자를 세우는 문제에 대해서 가장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여러 아내 중에 미움을 받던 아내에게 장자가 태어나면 가장의 마음대로 장자를 바꿀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장자에 대한 규례를 정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선호도나 감정에 의해 하나님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재산 상속 및 가문의 질서를 어지럽힐 수 없었다. 사회 구성원들의 권리와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며, 배려하기 위함이었다.   창세기 25장 31-34절『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여기에 기록된 "장자의 명분"이란 히브리어는 "베코라"이다. 문자적으로 “처음 난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하나님의 소속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장자는 아비의 소유를 다른 아들들보다 두 배로 상속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장자권은 창세기에서 볼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큰 민족에 대한 약속이 과연 어느 후손을 통해 성취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장자권에 직...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요한일서 1장 1절『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태초부터 있는(호 엔 앞 아르케스 Ὃ ἦν ἀπ’ ἀρχῆς )으로 번역된 것은 그것은 아르케로 있었다 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한글 번역자들이 호 엔 앞 아르케스를 맨 뒤에 있는 문장인 생명의 말씀과 동일시 생각하여 서로 연결해버린 것이다. 직역을 해보면, 다음과 같다. 그것이 아르케스로 있었다. 우리가 그것을 들었고, 눈으로 보았으며, 그것을 바라보았고, 손으로 만졌다. 그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그런데, 태초로 번역된 아르케스는 여성명사로서 남성형은 아르콘이다. 아르콘은 통치자를 의미한다. 그런데, 여성 명사로서 아르케스는 통치자가 아니라, 머리(대표격:이끄는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요한복음 1장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라고 한 문장에서도 태초가 아니라, 성전의 머리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성전의 머리로 존재하는 그 분을 우리가 들었고, 보았으며, 순간 순간 바라보며, 손으로 만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엪셀라페산 (ἐψηλάφησαν) 은 손으로 만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손으로 다루다 라는 의미다. 손으로 성령의 능력을 다루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온전한 번역을 하자면, 성령충만한 사람은 성도를 이끄시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눈으로 그의 역사를 보며, 순간 순간 그의 능력을 바라보며, 그의 손으로 능력을 다루었다. 이러한 것은 생명의 말씀을 전하면서 이루어졌다. 생명의 말씀을 전하면서, 안수 등을 통하여 능력이 나타나는 그런 모습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눈먼 자에게 손을 대고 눈을 뜨게할 때, 간단한 말씀을 하시고 손으로 안수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요한일서 1장 2-3절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