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로마서 5장 7절『의인(디키이우)을 위하여 죽는 자(티스 아포다네이타이)가 쉽지 않고(몰리스) 선인(투 아가드)을 위하여 용감히(톨마) 죽는 자(아포다네인)가 혹 있거니와(쉬니스테신)』 왜냐하면 의로운 사람을 위하여 누군가가 어렵게 죽을 것이다. 그 선한 사람을 위해 누군가 담대히 죽는 것은 가능성이 아주 적기 때문이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목숨을 내어주신 이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함이다. 그런데 자신의 목숨을 바꿀만한 가치있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의로운 사람(투 아가드)에서 아가드의 기본형인 아가도스는 가치있어서 좋은 것을 의미한다. 의로운 사람이란 가치가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누군가가 의인이나 선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가치있는 일이란 죽었던 영을 살려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쉬니스테신은 함께 세우다 라는 의미다. 쉰(함께)와 히스테미(설립하다)의 합성어이다.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목적은 죄인인 인간도 함께 죽고 함께 하나님의 뜻을 세우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죽었던 영을 살려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다.  5장 8절『우리가 아직(에티:지금도)) 죄인 되었을 때에(하마르톨론 온톤 헤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하마르톨론 온톤 헤몬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위한 것이다. 우리를 죄인의 상태에서 벗어나서 의인의 상태로 바꾸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다.  5장 9절『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디카이오덴테스)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소데소메다)』디카이오덴테스는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분사 수동태이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이라는 의미다. 소데소메다는 직설법 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로마서 5장 1-6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5장 1절『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에크 피스테오스)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디카이오덴테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디카이오덴테스는 분사 수동태로서 믿음으로 의로워졌으니 라는 말이다.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순간적으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하여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에크 피스테오스는 그리스도의 믿음이다. 디아는 ~을 통하여 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면 하나님과 화평이 있게 된다. 하나님나라와 하나님의 의는 반드시 일치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이미 와 있지만, 하나님 나라를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로마서 4장 20절『믿음이 없어(무 테 아피스티야)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에이스 데 텐 에팡겔리안 투 데우 우 디에크리데 테 아피스티아 알 에네뒤 테 피스테이)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두스 독산 투 데오)』무 테 아피스티야에서 아피스티야 앞에 관사 테가 있다. 그 믿음은 하나님 나라의 씨(상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인 것이다. (에이스 데 텐 에팡겔리안 투 데우 우 디에크리데 테 아피스티아 알 에네뒤 테 피스테이) 이 부분은『그런데, 그 하나님의 약속 안으로 들어가면서, 그는 그 믿음 없음과 관련해서 의심하지않았다』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하나님 나라의 씨(상속자)로 삼아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룰 것을 약속했다. 약속에서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이 약속이 성취되려면 그 약속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정관사가 믿음 앞에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믿음이라는 것이다. 두스 독산 투 데오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4장 21-22절『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플레로포레데이스) 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엘로기스데 아우토 에이스 디카이오쉬넨)』플레로포레데이스는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확신 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엘로기스데 아우토 에이스 디카이오쉬넨은 그것(믿음)이 그에게 의로움 안으로 들어가도록 여겨졌다 라는 것이다. 성도가 그런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은 성도를 하나님의 의로움에 들어갈 자격이 있음으로 여기신다. 성도는 하나님의 의로움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된다. 하나님의 의로우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4장 23절『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우크(안) 에그리페(그것이 기록되었다) 데(그런데) 디(인하여) 아우톤(그로) 무논(오직) 호티(왜냐하면) 엘로기스데(그것이 여겨졌다) 아우토(그렇게)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하신 ...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로마서 4장 14-19절)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4장 14절『만일(에이)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헤 피스티스)은 헛것이 되고 약속(헤 에팡겔리아)은 파기되었느니라』가정법 전치사 에이가 사용된 것은 유대인들이 생각하기에 율법으로부터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부르셨다.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는 하나님의 의를 물려받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씨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는데, 헤 피스티스는 그 믿음이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진 후손들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해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겠...

의로 여기심을 받는 자

로마서 4장 4절『일하는(에르가조메노) 자에게는 그 삯(미스도스)이 은혜로(카타 카린)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오페일레마) 여겨지거니와』그런데 사역하는 그에게는 그 삯이 은혜를 따라 여기지 않고 빚을 따라 여겨진다. 사역하는 그는 자기의 의를 따라 행하는 자를 의미하며, 자기의 의를 따라 행하는 의는 도움을 받은 사람에게 빚으로 남는다. 그러나 믿음으로 인한 하나님의 의는 누구에게도 빚으로 남지 않는다.  4장 5절『일을 아니할지라도(메 이르가조메노) 경건하지 아니한 자(톤 아세베)를 의롭다(디카이오쉬넨) 하시는 이를 믿는(피스튜온티)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헬라어를 통해서 보면 『토 데 메 에르가조메노 피스튜온티 데 에피 톤 디키이운타 톤 아세베 로기제타이 헤 피스티스 아우투 에이스 디카이오쉬넨으로서』그런데, 사역하지 않는 그에게 경건하지 않는 자를 의롭게 만드는 그 분 위에서 믿는 그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움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여겨진다.  믿음이 성령을 받는 순간 주어지는 것이다. 이런 믿음은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그 이유는 자기의 의를 따라 살지 말고 하나님의 의를 따라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자기라는 존재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난 옛사람인 것이다. 의롭게 하는 그 분 위에서(에피 톤 디티이운타) 믿음을 가진 자는 아브라함이라는 것이다. 그의 믿음은 아브라함이 소유한 믿음이다. 그러나 그 분 위에서 믿는 그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을 소유했다는 것이다. 이는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친밀한 동행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렇게 될 때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자기라는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죽고, 하늘로부터 새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은 개념인 것이다. 엣사람이 죽지 않는 자는 다시 태어남도 없는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여전히 자기가 주인인 것이다.  4장 6...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

(로마서 3장 28절)『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르곤 노무)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로기조메다)』기독교의 핵심은 복음이지 율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로기조메다는 가치를 판단하다 라는 의미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믿음의 가치때문이지 율법의 가치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에르곤 노무는 율법의 사역이다. 한글 개역개정에는 율법의 행위라고 번역했는데, 이 행위로 인해서 믿음의 행위로 대비시켜 선한 믿음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말들을 하는 것이다. 에르곤은 선한 행위가 아니라 일로 인한 수고(사역)를 의미한다.  (3장 29절)『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세상 사람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보편적인 은혜인 것이다.  (3장 30절)『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디키이오세이 페리토멘 에크 피스테오스)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아크로뷔스티안 디아 테스 피스테오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여기서『디키이오세이 페리토멘 에크 피스테오스』는 할례자를 믿음으로부터 의롭게 하실 것이고,『아크로뷔스티안 디아 테스 피스테오스』 무할례자를 그 믿음을 통하여 의롭게 하실 것이다. 유대인들에게는 관사가 없는 피스테오스(믿음)를 사용했고, 이방인들에게는 전치사(디아)가 있는 피스테오스를 사용했다. 관사가 없는 믿음은 일반적인 믿음이고, 전치사가 있는 믿음은 특별한 믿음인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믿음을 구약시대부터 가져온 것이다. 다만 그들이 아브라함과 같은 그런 믿음을 가지지 못한 것 뿐이다. 그래서 유대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 구원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에게는 이런 믿음이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았다. 스스로 이런 믿음이 없으므로 에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이다.  (3장 31절)『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로마서 3장 19절)『우리가 알거니와(오이다멘) 무릇 율법이(호 노모스) 말하는(레게스)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토이스 엔 토 노모)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라』오이다는 머리로 깨달아 아는 것을 의미한다. 즉 율법의 정체를 깨달아 아는 것이다. 호 노모스는 그 율법이다. 토이스 엔 토 노모는 율법 안에 있는 자들이다. 즉 율법의 범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효력이 발생한다.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 안에 속해 있는 자들이다. 기독교 역시 율법의 범주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은 모세의 율법으로 잘잘못을 가리는 모든 입들을 막으신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이유는 온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3장 20절)『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엑스 에르곤 노무) 그의 앞에(에피니온 아우투)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사륵스)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에피그노시스 하마르티아)』 엑스 에르곤 노무는 율법의 일로부터 라는 의미다. 사륵스는 육신을 의미한다. 번역을 하면, 그러므로 율법의 일로부터 의롭게 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육신이 그의 눈 앞에서 왜냐하면 율법을 통하여 죄의 온전한 지식이 (있게 될 것이다). 에피니온 아우투는 그의 부릎뜬 눈 앞에서 라는 것이다. 율법은 율법을 범한 사람에게 벌을 주는 용도이므로 율법을 잘 지킨다고 해서 최후의 심판 때 하나님에 의해 의롭다 함을 받지는 못할 것이다 라는 것이다. 에피그노시아는 경험을 통해 아는 것을 말한다. 인간이 경험을 통해서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는다.  (3장 21절)『이제는 율법 외에(코리스 노무)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코리스 노무는 율법과 별도로 라는 의미다. 코리스는 영어로 without이다. 별도로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복음이다. 율법이 변하여 복음이 된 것이 아니라, 율법따로 복음 따로 인 것이다. 그런데, 이 복음은 율법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