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는가

(누가복음 17장 7-10절)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용서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는데, 제자들이 예수님께 믿음을 더하게 해달라고 했다. 자신들은 믿음이 있지만 좀 더 있게 해달라는 의도다. 그런데 예수님이 너희들은 겨자씨만한 믿음도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무익한 종에 대해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성경에는 두가지의 종이 있다. 죄의 종과 의의 종이다. 여기서 무익한 종은 죄의 종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8장 34-35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죄의 종은 율법 아래있는 종을 말한다. 율법 아레 있는 자들이 죄를 범하는 자들이다. 로마서 6장 15-16절에서『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의의 종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5장 14-15절에서『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율법 아래 있으면, 죄의 종이고, 은혜아래 있으면, 예수님의 친구라고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길 잃은 한마리의 어린양을 찾으시는 목자

(마태복음 18장 12-14절)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목자가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다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다. 산은 예루살렘 성이 있는 시온산, 즉 이스라엘을 의미하고, 아혼아홉 마리의 양은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그런데 잃어버린 양 한마리는 바로 이방인, 즉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목자이신 예수님이 이방인을 행해서 나가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는 예수님의 제자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이방인들에게 나가는 것이다. 마가복음 4장 12절에서 예수님이『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야를 바라보지 못하는 것을 탄식하시는 것이다.  구약시대 히브리인들은 애굽의 노예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부르짖을 때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보았다. 광야에서 40년간 맛나를 먹이시고 생명을 유지시켜 주셨다. 그러나 광야에서 드러난 것은 그들의 불순종과 허물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노하셨다. 주님은 그들에게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과 율법을 주셨다. 인간이 지켜야 할 기준을 알게 하셨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을 통하여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을 세웠다. 그들은 예배가운데 순종으로 주님이 함께 하셨다. 그들이 이길 수 없는 적을 주님으로 인해서 이겼다. 그들에게는 예배가 있고 하나님 말씀을 받드는 제사장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타락했던 것이다. 예배가 쉰 적이 없고 말씀이 없는 적이 없었지만 그들은 타락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셨다...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마태복음 17장 1-13절)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예수님은 세명의 제자들에게 산에 올라가서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는 장면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이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에 갔을 때, 제자들에게『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었을 때, 『엘리야라고 하기도 하고, 모세가 다시 왔다고 하기도 하고,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베드로에게『너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는데, 그때 베드로는『주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예수님은 메시야로서 이스라엘 땅에 태어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태복음 16장 21-28절)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예수님이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베드로가『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말씀했다. 예수님은 죽었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여러 번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주의깊게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베드로처럼 예수님이 죽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이라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신 자(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주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는데,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반기를 든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은 그리스도와 연합된다는 의미다. 그리스도와 연합된다는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을 따라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태복음 16장 13-20절)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반대 방향인 북쪽의 이곳으로 오셨는지를 생각할 팔요가 있다. 남쪽에는 사해가 있고 유대 지방이 있으며, 북쪽에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갈릴리 지방이 있는데, 갈릴리에서 남쪽 유대로 가지 않으시고 북쪽으로 가셨다. 성경에는 가이사랴라는 곳이 있고 빌립보도 있다. 가이사랴 라는 곳은 중부 해변가에 위치한 도시로서, 로마의 유대 총독 관저가 있던 도시였다. 역사적으로도 많은 건물들이 세워졌다 사라졌다 한 도시다. 빌립보서와 관련된 빌립보는 마게도니아(그리스 북부)에 위치한 유럽의 첫 도시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넘어가서 첫 번으로 만나는 주요 도시인데, 바울이 가서 교회를 세운 곳이다. 그런데 빌립보 가이사랴는 곳은 그곳들과 전혀 상관이 없는 지역이다. 이곳은 이스라엘의 가장 북쪽인 헐몬산 기슭에 위치한 곳이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의 왕이었던 헤롯 대왕에게 아들이 여럿이었는데, 그 중 하나인 헤롯 빌립이다. 그가 그곳에 도시를 만들고 로마 황제의 칭호인 가이사를 따서 가이사랴라고 하고, 자기 이름도 집어넣어서 가이사랴 빌립보 라고 이름을 지었다. 빌립이라는 이름...

열매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이유

(마태복음 21장 17-22절)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제자들이 예수님께『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라고 질문했는데, 예수님은 믿음과 관련하여, 그리고 기도에 대해서 다소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을 하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저주하신 이유가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없는 것을 생각하여,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열심을 내야한다고 말을 하기도 한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에 태어나신 이유는 때가 찼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1장 15절에서『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그리고 갈라디아서 4장 4-5절에서『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때가 찼다는 것은 열매를 수확하는 때를 의미한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에게 열매를 기대하시는 것이다.  열매는 무엇인가? 회개하여 자기를 거룩하게 되도록 하는 것을 열매로 생각하는데, 성경의 의미를 너무나 모르는 것이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기 전에 성전에 들어가셔서 정화하셨다. 아버지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사꾼들을 내쫒으셨다. 그래서 사람들이 성전을 정화하지 못한...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8장 1-4절) 예수께서 산상수훈을 마치시고 내려오셔서 첫 번째 이적을 베푸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나병(문둥병)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죄를 지은 결과를 상징하는 가장 금기시 되는 질병이었다. 나병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저주의 모습을 나타낸다.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을 때 미리암이 조롱했다가 하나님께서 벌을 내려 나병병에 걸렸다. 레위기 13장 1-14절에서 문둥병 환자는 회당 공동체와 및 가정공동체를 박탈당하여 소외당했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 예수님이 문둥병 환자에게 병을 치유해주신 것은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질병이라도 치료 해줄 수 있는 능력 있는 메시야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율법에 따르면 나병자와 접촉한 자는 그 자신 또한 부정한 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나병환자에게 손을 댈 수 없었다. 당시 제사장들조차도 환자에게 손을 대지 못하였고 오직 병명의 판단이나 정결케 하는 판결의 예식만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부정한자에게 관심을 가져주셨고 손을 갖다 대셨다. 아무런 전염이 되지 않음을 나타내 보이심으로, 나병으로 상징되는 죄악의 치명적 형벌인 사망을 오직 예수님만이 고치실 수(건지실 수) 있는 참 메시야이심을 밝히고 있다.  복음서 초기에 예수님은『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이와 같은 함구령을 내린 것은 예수님이 메시야로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오해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죽기 전까지는 율법을 따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