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18의 게시물 표시

구원의 조건은 회개와 믿음

(로마서 10장 9-13절)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현대교회의 전도지에 많이 나오는 귀절이다. 현대교회의 전도지는 구원을 쉽게 보이는 하는 구절들을 뽑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되는 듯한... 구원의 조건은 두 가지이다. 첫째,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둘째,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여기에서 두 번째 조건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듯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증거를 믿기만 하면 된다. 내 행위, 삶과 관계없이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어떻게 죽은자를 사흘만에 다시 살리셨는지 그 지성에는 충돌이 있겠으나 온 우주를 만드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우리의 부족한 이성을 넘어서 받아들일 수 있다. 문제는 첫번째 조건이다. 우리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것. 9절부터 13절까지 강조하고 반복하는 설명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 첫번째 조건이다.예수를 주(Lord)로 시인하는 것. 이것은 내 삶과 연결된 조건이다. 누가 내 삶의 주인이냐는 선언이다. 두 번째 조건은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우리의 죄(Sin)를 씻는 것이다. 그런데 첫번째 조건은 죄(Sin)의 문제가 아니라 자아(Self)의 문제이다. 내 삶의 주인이 내 자신(myself)인지 예수님인지의 문제이다. 이것이 세례의 핵심이다. 행 22: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이...

다가오는 심판의 그 날

동성애는 숫적으로는 아직 성적소수자라고 하지만 영향력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정치 ,   경제 ,   문화 ,   교육 , 미디어 ,   심지어 종교까지 움직이는 여론이 되었다 .   세계의 서민들이 먹는 햄버거 포장지에 그들을 지지하는 무지개 로고가 들어가고 ,   공공기관인 학교 화장실에 남녀 표시가 무너지고 미국의 수도 워싱톤 디씨의 운전면허증에 남성과 여성 다음으로 중성 (Neutral)   표시가 시작되었다 .   인류의 역사에 없었던 도덕적인 반역이 그들을 지으신 하나님을 대항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   세계의 경제와 문화 중심지 맨하탄에서 공개적인 기독교 행사는 불가능하다 .   횡단보도를 이용한 행사조차도 허가가 나질 않는다 .   그러나 동성애 퍼레이드는 차가 다니는 길을 막아서 시장과 정치가들이 나서는 대형 행사가 되어버렸다 .   이제 동성애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할 수 있는 날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   소돔성에서 롯의 가족이 겪었던 것처럼 . 목성을 지나 토성까지 인공위성을 보내면서 우주 안에 다른 생명체를 찾으려 노력하지만 그들을 지으신 하나님은 찾지 않는 인류 속에서 ,   소돔성에 갇힌 롯처럼 우리는 살게 되고 있다 .   고조선의 중심지였던 중국 집안현에 이집트의 피라밋보다 더 큰 피라밋들이 존재하고 구글어스로 검색할 수 있는데도 정치적으로 역사의 진실은 쉽게 덮히고 정치적으로 이득관계가 없는 목성의 위성에서는 물기둥까지 발견하였다고 언론은 보도한다 .   역사적 진실도 정치적 압력 아래 묻힐 정도로 인간은 그렇게 불의하다 .   독일의 기자가 중국의 피라밋을 사진찍어서 책을 내도 정치적으로 안된다면 없는 것이다 . 죄인인 인간들은 전쟁과 함께 과학은 빠른 속도로 진보하고 있는데 인간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 유전자 정보 지도를 그리는 게놈 프로젝트 (Huma...

구원 영접인가 회개인가

구원 ,   영접 (Receive) 인가 회개 (Repent) 인가 ? 1800 년대를 살았던 청교도 찰스 스펄전 목사 ( Spurgeon, 1834-1892) 는 누구나 인정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   참된 구원신앙을 지키기 위해 국가종교에 의해서   12 년동안 투옥된 존 번연 (1628-1688) 이 감옥에서 쓴 책 ,   천로역정 ( 天路歷程 , Pilgrim Progress) 을 죽을 때까지   100 번이상 읽었다는   그는 말하기를   “ 그리스도를   ‘ 영접 ’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로부터 나야한다 .   거듭나지 않으면 누구도 그리스도를 자신의 마음에 들어오시게 할 수 없다 . ” 라고 하였다 . 현대 전도지에 절대적으로 등장하는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 요 1:12) 라는 귀절에 대한 경고로 스펄전은 다음 구절을 인용한다 .   ‘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 ( 요 1:13)   이들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라는 것이다 .   즉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 영접하는 자들이라는 말씀이다 .   그래서 스펄전 목사는 말했다 .   '거듭나야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다' 허물과 죄로   ‘ 죽은 ’   우리 ( 엡 2:1) 가 당연히   ‘ 살아계신 ’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없다 .   그런데도 여전히   ‘ 죽은 ’   우리가   ‘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는다 ( 롬 10:13)? 구원이 너무 쉬워보이는 이 말씀의 바로 앞에 바울은 모세가 광야 생활   40 년 후 죽기 전에 광야에서 태어난 새 생명들에게 말씀한 신명기   30:11~14 의 긴 말씀을 인용한...

복음에는 사랑이 아니라 의가 나타났다

복음에는   ‘ 사랑 ’ 이 아니라   ‘ 의 ’ 가 나타났다 .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 ’ 라고 전파하는 현대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려고 힘쓴다 .   하나님을 모르는 영혼들이 그 하나님의 사랑을 보면 주께로 돌아올 줄 안다 .   하기야 세상은 온통 사랑을 추구한다 .   그래서 소설과 영화의 주제는 배우들만 바뀔 뿐이지 스토리는 언제나 사랑이다 .   인간은 평생 사랑을 구한다 .   온 세상이 바라는 그 사랑은 자신이 받기 원하는 사랑이다 .   자신이 사랑을 주려는 대상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받기 원하는 그 사랑을 추구한다 .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 ,   아가페 (Agape) 가 아니라 성경에 단 한번도 기록되지 않은 사랑 ,   에로스 (Eros) 이다 .   현대교회는 하나님을 모르거나 거부하는 영혼들에게   ‘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 이라고 노래하며 하나님을 믿게 하려고 힘쓴다 . 그런데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전하시려는 성경 전체의 멧세지는   ‘ 나를 믿으라 ’ 가 아니라   ‘ 내게 돌아오라는 회개 ’ 이다 .   그래서 바울이 로마교회에 전한 복음에는 ‘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 고 기록했다 .( 로마 1:17)   그래서   ‘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난다 ’ 는 말씀이 이어진다 .( 로마 1:18)   하나님의 의가 나타날 때에 죄인들은 죄에서 깨어나 회개할 수 있다 . 사실은 회개와 믿음이 분리될 수 없다 .   거듭남과 세례도 분리되지 않는다 .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내 모든 죄가 예수의 피로 씻어진 것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예수...

노아의 때 부터 인자의 임할 때 까지 구원은 같다

노아의 때부터 인자의 임할 때까지 구원은 같다.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벧전4:18)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는다.‘겨우’라는 헬라어는 ‘어렵게(scarcely)’라는 뜻이다. 구원의 길은 좁고 협착해서 찾는 이가 적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마7:14) 제자들은 물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그 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19:26)  그런데 요즘 구원의 길을 들으면 ‘이렇게 천국가는 것이 쉽다면 누가 구원을 받지 못할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묻고 싶어진다. 요즘 목사들의 사명은 얼마나 구원을 쉽고 간결하고 빠르게 설명할 수 있는 가하는 능력에 달려있는 것처럼 보인다. 거짓말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다. 구원은 아주 어렵고 두려운 것이다. 찾는 이가 적고 등불의 기름이 모자라면 구원의 좁은 문은 방주처럼 닫혀버릴 것이다.  구원은 사람이 진지하게 영접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구원은 사람이 간절히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방주 바깥에 있던 노아의 형제들처럼 노아가 전하는 복음을 듣지 않는다면, 아무도 스스로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종교개혁가들이 회복시켰던 회개의 진리인 전적 타락(Total Depravity)이다. 회개하지 않은 인간은 사랑의 아버지도 버릴 만큼 전적으로 타락했다. 사랑으로 돌이켜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는 동안에도 하나님을 버리는 자들이다. 탕자처럼, 아담처럼 그리고 노아의 동생들처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할 때도 같다.(마24:37) 그 당시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8명이다.(벧전3:20) 므두셀라의 아들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고 595년 동안 자녀를 낳았으니 노아의 형제들만해도 얼마나 많았을까...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 까지 갇혔느니라 성경은 모든 사람을 죄 아래 가두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거룩한 십계명을 주시고, 시내산에서 모세의 얼굴이 영광의 빛으로 말미암아 밝아지고 그 돌판을 가지고 내려오므로 모든 사람들이 죄 아래에 가두어진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약속이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게 하려 하심이다.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는데, 이 일을 한 것이 율법이라는 말이다. 십계명은 우리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이다. 하나님의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를 깨닫게 되고 죄 아래에 가두어진 것을 알게된다. 그래서 시내산에서 주어진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십자가 골고다 언덕에서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의 손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가 제물로 죽은 것이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제물로 죽으신 것이다. 왜냐하면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하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원한 제물로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들 즉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의 손에 의해서 예수님이 죽어신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완전히 율법 아래에 있게 된 것이다. 죄가 없어신 에수님이 율법 아래에서 죽으셨다. 세상에서 이 보다 충격적인 것은 없다. 시내산에서 주어진 그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어 주시지만 그것이 곧 구원은 아니라는 말이다.『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 까지 갇혔느니라』오늘날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홍해 바다도 건너지 않은 상태이다. 그들은 세상을 가장 먼저 사랑하는 자들이다. 입으로는 예수를 부르짖는데, 홍해 바다가 갈라진 적도 없다. 철저히 세상 기준으로, 세상의 가치관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구원은 시작도 안된 것이다. 홍해 바다를 건너므로서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고 세상은 나에 대해서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홍해를 건너는 것이...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데살로니가후서 3장 2절의 말씀은『비이성적이고 악한 사람으로 부터 건져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교회에 비이성적인 사람들이 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주님은 공평하고 의로운 분이시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 디모데전서 3장 9절에서 교회의 직분(집사)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믿음의 비밀은 무엇인가? 구원의 조건은 사도행전 20장 21절에서 바울이『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사도바울은 회개와 믿음을 강조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교회에 나와서 잠깐 동안의 구원의 설명을 듣고 영접 기도를 한다고 해서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천국과 지옥은 하나님의 의에 따라 결정된다. 어둠에 싸여있는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 믿음은 비밀이다. 예수님이『인자가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말씀하셨는데, 오늘날 교회는『주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설교를 하고 있다. 이 말씀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런 열망을 가지고 전도를 하라고 하신 말씀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진짜 교회는 거짓된 믿음을 무너뜨리는 말씀이 있는 교회이다. 거짓된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교회는 참 믿음을 쌓을 수 없다. 뽑아버리고 갈아야 한다. 갓난 아이에게 단단한 음식을 주면 소화를 할 수 없는 것 처럼, 연약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사랑의 말을 전하는 것과 같다. 연약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는 의의 말씀이 필요한 것이다. 의의 말씀을 분별할 수 있는 자가 되면 사랑의 말씀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세례요한이 전한 것은 의의 말씀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의의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그것은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이 필요한 의의 말씀이 필요하다. 무조건 교회에 온다고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사도바울은 골로새서에서 구약성경에서 나오는 할례를 그리스도와 연계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할례는 육적 죄들의 몸을 벗는 것이라고 했다. 옷을 벗는 것은 성경에서 죽음을 가르킨다. 육신의 장막을 벗게되면 하늘에 있는 장막을 입게된다. 그것이 구원이다. 그리스도의 할례는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것이다. 옛사람의 죽음을 가리킨다. 그리고『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할례는 옛사람의 죽음이고,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케 하신 하나님이 예수를 무덤에서 살리신 것 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우리를 다시 일으키신다는 말씀이다. 구약에서 할례를 최초로 약속을 받은 자는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에게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창세기 12장 1절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아브라함이 순종을 한다. 놀라운 일이다. 고향을 떠나 전혀 알 수 없는 땅으로 가는데, 그러나 이것이 구원은 아니라 구원의 시작일 뿐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조카인 롯을 데리고 나온다. 하나님은 친척도 떠나라고 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완전한 순종을 하지 못한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도 순종하지 않는 존재다. 철저하게 나 자신이 주인인 것이다. 구원의 시작은 회개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다. 창세기 13장에서는 조카 롯과의 문제가 생긴다. 창세기 13장 8절에서『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라고 한다. 회개하는 사람은 이기려고 다투지 않는다. 시기와 다툼은 육적인 증거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친척으로 부터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은 『재물을 잘라라』고 하신다. 재물을 쪼갰더니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태워버린다. 그리고 아브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힌 바 되고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골로새서 교회에서는 할례와 세례를 함께 설명하고 있다. 이 교회는 구약성경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골로새서 2장 13절에서는 『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에서『하나님이 먼저 살리시고 그 다음에 죄를 사하시고』라고 되어있다. 죄를 사하심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이 먼저 있어야 함을 말한다. 거듭나야 죄 사하심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정 반대로 생각한다. 죄 사하심을 받고 그 다음에 살리심을 받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들을 율법 아래있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교인들이 예수의 피로만 사하심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 말은 맞지만 죄의 사하심이 먼저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죄 용서가 먼저라고 생각하므로 너무 쉽게 죄 사하심을 생각하는 것이다. 먼저 예수와 함께 살리심을 받아야 한다. 살리심을 받기 위해서는 그 전제가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골로새서 2장 12절에서『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라고 되어있다. 이것이 거듭나는 것이다. 죽고 살리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연합되도록 나를 맡기는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구원은 죄만 사하심을 받는 것이 아니다. 죄악의 원흉인 우리 옛사람이 처리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할례이다. 골로새서 2장 11절에서 『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할례는 육신의 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곧 옛사람이 죽는 것을 말한다. 로마서 6장 3-6절 에서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 그래서 곧 육적인 몸을 벗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육적인 몸은 죄악으로 둘러싸인 몸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옛사람이며, 이것을 제거한 것이 그리스도의 할례인 세례라는 말이다. 골로새서...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라는 도시에 있는 교회에 보내는 편지이다. 그 당시 교회에는 세례받은 교인들이 대부분이다. 당시의 교인들에게 물 세례가 의미하는 것을 사도바울은 설명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물세례를 받았으므로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의가 있는 곳에 사랑이 있다. 사랑이 있다면 의가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물세례 역시 성령세례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분리되어 있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의와 사랑이 분리될 수 없듯이 물세례와 성령세례는 분리될 수 없다. 산소와 수소가 분리되면 물이 될 수 없다. 사랑은 의 만큼 담겨있다. 십자가에는 사랑만 있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다. 예수님이 인간을 대신해서 죽으셨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예수님은 우리 대신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를 초대하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나니』라고 고백하는 자만이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진노하신다. 죄가 없는 자기 아들에게 보인 진노만큼 진노하신다. 이게 의다. 성경은『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하고 있다. 죄인이 필요한 것은 의다.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회개해서 의를 얻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베드로가 말하기를 노아가 120년 동안 전한 것은 의의 도다. 세례요한도 전한 것은 의의 도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회개하고 세상으로 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오늘날 시대는『예수 믿으세요, 그러면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거짓 복음이다. 회개하지 아니한 자는 주님이 받아주지도 않는다. 우리가 회개 할 수 있는 곳은 십자가 뿐이다. 회개는 옛사람(자아)이 죽는 것을 말한다. 십자가에서 옛사람(자아)이 예수와 죽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는 회개(옛사람이 죽는)를 한 적도 없으면서 날마다 회개한다고 한다. 그리고 성령 체험한다고 한다. 사도행전 20장 21절 에서 사도바울이 전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영을 좇는 것이다. 우리가 육신을 좇을 것인가 영을 좇을 것인가에 따라 구원이 결정된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을 생각한다. 생각이 갈라진다. 구약성경에서 가나안 땅을 앞두고 생각이 갈라진다. 애굽을 나올 때는 생각이 하나였다.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칠하고 고기를 함께 구워먹었고, 그 때 바로왕에게는 심판이 임했으며, 사람부터 모든 짐승의 장자는 다 죽었다.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셨다. 하나님은 그들을『내 백성이라』고 말했으며, 백성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면서 광야에서 매일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하나님은 만나를 주셨으며, 하나님이 환경을 통해 이스라엘을 인도하셨다. 유월절을 지키면서 1년이 지나자마자 열두지파 중에서 대표를 뽑아서 가나안에 40일간 정탐꾼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 놀라운 구원의 광경을 보았음에도 열지파의 대표가 민수기 13장 27-28절 에서『그들이 아낙자손을 보았다』고 말한다. 땅은 젖과 꿀이 흐르지만 아낙자손은 거인으로서 그들이 정복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 것이다. 30절에는『그 때 갈렙이 모세 앞에서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라고 말한다. 열지파 정탐꾼이 갈렙의 말을 받아서 말하는 장면이다. 31-33절에『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이 말은 로마서에서 말하는 육신의 생각이다. 성령의 생각은 약속만이 보인다. 이스...

성령으로 시작해서 육체로 마치겠는가

성령으로 시작해서 육체로 마치겠는가 오늘날 교회는 성령을 받았으니 영원한 구원의 확신이라고들 말한다. 긍정적인 설교가 유행한다.『내가 너와 항상 함께 하리라』는 말을 인용한다. 예수님이 공생애 3년이 지난 후 죽기 전에 마태복음 22장에서 사람들이 왕의 아들의 혼인잔치에 초청을 받았는데, 왜 예복이 없으면 쫒아내는 일이 있는가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이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예복이 없는 자의 손과 발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운 곳에 던져버려라』 라는 말씀을 했다. 이런 말을 하는 주님이 어떻게 사랑의 주님이란 말인가? 그리고 마지막에『청함을 받은 많데 택함을 받은 사람은 적다』고 말씀하셨다. 도중에 구원을 잃을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겠는가』라는 말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빌립보서에서는『그러므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의 구원을 이루라』 라고 하신다.『내가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하리라』라는 말씀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라』라는 말의 단계는 서로 다른 단계이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초신자에게도 『내가 너와 영원히 함께 하리라』라는 말을 한다. 이게 거짓 교리이다. 히브리서 4장에서는 『그들은 너희와 같이 복음을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들이 믿음을 화합지 아니하였으므로 멸망하였느니라』라고 한다. 이 자들은 애굽으로 부터 광야에 나온 자들을 말한다. 광야에 나온 자들은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을 보았고, 그 전 날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칠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당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매일 아침마다 만나를 먹은 자들이다. 낮에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은 자들이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를 받았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구원은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적 생명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 만이 구원이다. 어떻게 해야 우리의 내적 생명이 바뀌는 것인가? 예수님의 피 공로로 내 죄가 용서받았다고 하는 것이 내적 ...

세례요한도 선재함

세례요한의 영도 선재하고 있었다 구약성경(말라기)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어 백성들을 돌이키겠다』고 하셨다. 이 말라기 선지자의 말을 믿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믿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