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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로마서 5장 7절『의인(디키이우)을 위하여 죽는 자(티스 아포다네이타이)가 쉽지 않고(몰리스) 선인(투 아가드)을 위하여 용감히(톨마) 죽는 자(아포다네인)가 혹 있거니와(쉬니스테신)』 왜냐하면 의로운 사람을 위하여 누군가가 어렵게 죽을 것이다. 그 선한 사람을 위해 누군가 담대히 죽는 것은 가능성이 아주 적기 때문이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목숨을 내어주신 이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함이다. 그런데 자신의 목숨을 바꿀만한 가치있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의로운 사람(투 아가드)에서 아가드의 기본형인 아가도스는 가치있어서 좋은 것을 의미한다. 의로운 사람이란 가치가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누군가가 의인이나 선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가치있는 일이란 죽었던 영을 살려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쉬니스테신은 함께 세우다 라는 의미다. 쉰(함께)와 히스테미(설립하다)의 합성어이다.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목적은 죄인인 인간도 함께 죽고 함께 하나님의 뜻을 세우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죽었던 영을 살려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다.  5장 8절『우리가 아직(에티:지금도)) 죄인 되었을 때에(하마르톨론 온톤 헤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하마르톨론 온톤 헤몬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위한 것이다. 우리를 죄인의 상태에서 벗어나서 의인의 상태로 바꾸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다.  5장 9절『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디카이오덴테스)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소데소메다)』디카이오덴테스는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분사 수동태이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이라는 의미다. 소데소메다는 직설법 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로마서 5장 1-6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5장 1절『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에크 피스테오스)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디카이오덴테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디카이오덴테스는 분사 수동태로서 믿음으로 의로워졌으니 라는 말이다.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순간적으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하여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에크 피스테오스는 그리스도의 믿음이다. 디아는 ~을 통하여 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면 하나님과 화평이 있게 된다. 하나님나라와 하나님의 의는 반드시 일치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이미 와 있지만, 하나님 나라를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로마서 4장 20절『믿음이 없어(무 테 아피스티야)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에이스 데 텐 에팡겔리안 투 데우 우 디에크리데 테 아피스티아 알 에네뒤 테 피스테이)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두스 독산 투 데오)』무 테 아피스티야에서 아피스티야 앞에 관사 테가 있다. 그 믿음은 하나님 나라의 씨(상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인 것이다. (에이스 데 텐 에팡겔리안 투 데우 우 디에크리데 테 아피스티아 알 에네뒤 테 피스테이) 이 부분은『그런데, 그 하나님의 약속 안으로 들어가면서, 그는 그 믿음 없음과 관련해서 의심하지않았다』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하나님 나라의 씨(상속자)로 삼아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룰 것을 약속했다. 약속에서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이 약속이 성취되려면 그 약속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정관사가 믿음 앞에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믿음이라는 것이다. 두스 독산 투 데오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4장 21-22절『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플레로포레데이스) 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엘로기스데 아우토 에이스 디카이오쉬넨)』플레로포레데이스는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확신 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엘로기스데 아우토 에이스 디카이오쉬넨은 그것(믿음)이 그에게 의로움 안으로 들어가도록 여겨졌다 라는 것이다. 성도가 그런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은 성도를 하나님의 의로움에 들어갈 자격이 있음으로 여기신다. 성도는 하나님의 의로움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된다. 하나님의 의로우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4장 23절『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우크(안) 에그리페(그것이 기록되었다) 데(그런데) 디(인하여) 아우톤(그로) 무논(오직) 호티(왜냐하면) 엘로기스데(그것이 여겨졌다) 아우토(그렇게)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하신 ...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로마서 4장 14-19절)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4장 14절『만일(에이)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헤 피스티스)은 헛것이 되고 약속(헤 에팡겔리아)은 파기되었느니라』가정법 전치사 에이가 사용된 것은 유대인들이 생각하기에 율법으로부터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부르셨다.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는 하나님의 의를 물려받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씨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는데, 헤 피스티스는 그 믿음이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진 후손들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해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겠...

의로 여기심을 받는 자

로마서 4장 4절『일하는(에르가조메노) 자에게는 그 삯(미스도스)이 은혜로(카타 카린)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오페일레마) 여겨지거니와』그런데 사역하는 그에게는 그 삯이 은혜를 따라 여기지 않고 빚을 따라 여겨진다. 사역하는 그는 자기의 의를 따라 행하는 자를 의미하며, 자기의 의를 따라 행하는 의는 도움을 받은 사람에게 빚으로 남는다. 그러나 믿음으로 인한 하나님의 의는 누구에게도 빚으로 남지 않는다.  4장 5절『일을 아니할지라도(메 이르가조메노) 경건하지 아니한 자(톤 아세베)를 의롭다(디카이오쉬넨) 하시는 이를 믿는(피스튜온티)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헬라어를 통해서 보면 『토 데 메 에르가조메노 피스튜온티 데 에피 톤 디키이운타 톤 아세베 로기제타이 헤 피스티스 아우투 에이스 디카이오쉬넨으로서』그런데, 사역하지 않는 그에게 경건하지 않는 자를 의롭게 만드는 그 분 위에서 믿는 그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움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여겨진다.  믿음이 성령을 받는 순간 주어지는 것이다. 이런 믿음은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그 이유는 자기의 의를 따라 살지 말고 하나님의 의를 따라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자기라는 존재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난 옛사람인 것이다. 의롭게 하는 그 분 위에서(에피 톤 디티이운타) 믿음을 가진 자는 아브라함이라는 것이다. 그의 믿음은 아브라함이 소유한 믿음이다. 그러나 그 분 위에서 믿는 그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을 소유했다는 것이다. 이는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친밀한 동행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렇게 될 때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자기라는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죽고, 하늘로부터 새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은 개념인 것이다. 엣사람이 죽지 않는 자는 다시 태어남도 없는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여전히 자기가 주인인 것이다.  4장 6...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

(로마서 3장 28절)『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르곤 노무)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로기조메다)』기독교의 핵심은 복음이지 율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로기조메다는 가치를 판단하다 라는 의미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믿음의 가치때문이지 율법의 가치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에르곤 노무는 율법의 사역이다. 한글 개역개정에는 율법의 행위라고 번역했는데, 이 행위로 인해서 믿음의 행위로 대비시켜 선한 믿음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말들을 하는 것이다. 에르곤은 선한 행위가 아니라 일로 인한 수고(사역)를 의미한다.  (3장 29절)『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세상 사람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보편적인 은혜인 것이다.  (3장 30절)『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디키이오세이 페리토멘 에크 피스테오스)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아크로뷔스티안 디아 테스 피스테오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여기서『디키이오세이 페리토멘 에크 피스테오스』는 할례자를 믿음으로부터 의롭게 하실 것이고,『아크로뷔스티안 디아 테스 피스테오스』 무할례자를 그 믿음을 통하여 의롭게 하실 것이다. 유대인들에게는 관사가 없는 피스테오스(믿음)를 사용했고, 이방인들에게는 전치사(디아)가 있는 피스테오스를 사용했다. 관사가 없는 믿음은 일반적인 믿음이고, 전치사가 있는 믿음은 특별한 믿음인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믿음을 구약시대부터 가져온 것이다. 다만 그들이 아브라함과 같은 그런 믿음을 가지지 못한 것 뿐이다. 그래서 유대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 구원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에게는 이런 믿음이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았다. 스스로 이런 믿음이 없으므로 에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이다.  (3장 31절)『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로마서 3장 19절)『우리가 알거니와(오이다멘) 무릇 율법이(호 노모스) 말하는(레게스)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토이스 엔 토 노모)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라』오이다는 머리로 깨달아 아는 것을 의미한다. 즉 율법의 정체를 깨달아 아는 것이다. 호 노모스는 그 율법이다. 토이스 엔 토 노모는 율법 안에 있는 자들이다. 즉 율법의 범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효력이 발생한다.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 안에 속해 있는 자들이다. 기독교 역시 율법의 범주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은 모세의 율법으로 잘잘못을 가리는 모든 입들을 막으신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이유는 온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3장 20절)『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엑스 에르곤 노무) 그의 앞에(에피니온 아우투)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사륵스)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에피그노시스 하마르티아)』 엑스 에르곤 노무는 율법의 일로부터 라는 의미다. 사륵스는 육신을 의미한다. 번역을 하면, 그러므로 율법의 일로부터 의롭게 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육신이 그의 눈 앞에서 왜냐하면 율법을 통하여 죄의 온전한 지식이 (있게 될 것이다). 에피니온 아우투는 그의 부릎뜬 눈 앞에서 라는 것이다. 율법은 율법을 범한 사람에게 벌을 주는 용도이므로 율법을 잘 지킨다고 해서 최후의 심판 때 하나님에 의해 의롭다 함을 받지는 못할 것이다 라는 것이다. 에피그노시아는 경험을 통해 아는 것을 말한다. 인간이 경험을 통해서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는다.  (3장 21절)『이제는 율법 외에(코리스 노무)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코리스 노무는 율법과 별도로 라는 의미다. 코리스는 영어로 without이다. 별도로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복음이다. 율법이 변하여 복음이 된 것이 아니라, 율법따로 복음 따로 인 것이다. 그런데, 이 복음은 율법 속...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음이라

로마서 3장 9절『그러면 어떠하냐(티운) 우리는 나으냐(프로에코메타:앞서 소유하다)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휘프 하마르티안 에이나이)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프로에티아시메다)』 프로에코메타는 프로(~앞에)와 에코(소유하다)의 합성어로서, 우리가 의로움을 유대인보다 앞서 소유했느냐 라는 것이다. 즉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 보다 의로움에서 앞서 있느냐 라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아닌 것을 말해준다. 휘프(~아래) 하마르티안(죄) 에이나이(존재하도록), 프로에티아시메다는 우리가 앞서 원인을 밝혔다 라는 의미다. 바울은 자신들이 이미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 죄 아래 있을 수 밖에 없는 원인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게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라는 말은 기독교인을 의미한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 죄에 빠진 유대인들을 향해 모욕적인 발언을 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 유대인들은 모욕감을 받았을 것이다. 그들은 선민의식 속에서 살아왔으므로 그 선민사상이 죄를 가려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은 로마교회에 있는 유대인 기독교인과 헬라인 기독교인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로마에 있는,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지칭하기도 한다.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죄 아래 있다는 것이다.  3장 10절『기록된 바(카도스 게그랍타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카도스 게그랍타이는 그것이 기록된 것처럼이다. 의인이 없다는 말은 기독교인들도 포함된다. 의인은 하나도 없는데, 1장 17절에 가면 의인(디카이오스)은 믿음으로 산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신칭의가 등장했다. 믿기만 하면 의로운 자로 칭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회개없는 믿음은 자기가 믿는 믿음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3장 10절의 의인과 3장 17절의 의인에 대해서 정확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디카이오스(일반적 의인)에서 관사가 있을 때는 호 디카이오스(특별한 의인)가 된다. 3장 10절에서 말하는 의인은 일반적인 의인을...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로마서 3장 1절『그런즉 유대인의 나음(페리쏜)이 무엇이며 할례(페스 페리토메스)의 유익(헤 오펠레이아)이 무엇이냐』 페리쏜은 탁월하다라는 의미다. 오펠레이아는 유익하게 함이다. 페스 페리토메스는 그 할례의 라는 말이다. 바울은 유대인의 탁월함이 무엇이며 할례가 다른 사람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라고 질문하는 것이다.  3장 2절『범사에(카타 판타 트로폰) 많으니(폴뤼) 우선은(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타 로기에 투 데우)을 맡았음이니라(에피스튜데산)』 폴뤼는 많은 것이, 카타 판타 트로폰은 모든 방면에 따라, 멘은 참으로, 타 로기에 투 데우는 그 하나님의 그 말씀들을, 에피스튜데산은 그들이 맡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들(복수)을 맡음으로 인해서 유대인들이 다른 민족들보다 탁월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을 이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수인 하나님의 말씀(호 로고스 투 데우)와 복수(타 로기아 투 데우)는 다른 의미다. 단수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복수는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말씀을 의미한다. 구약시대는 하나님의 말씀들이지만, 신약시대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말씀과 말씀들은 성경의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과 말씀들이다.  3장 3절『어떤 자들이(티네스) 믿지 아니하였으면(에파스데산)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티 가르(참으로 무엇이냐)가 앞에서 시작한다. 만일(에안) 어떤 사람들이(티네스) 믿지 않는다면(에파스데산), 아니냐(메) 그(헤) 믿지 아니함이(아피스티아) 그들의(아우톤) 그 믿음을(피스틴) 그 하나님의(투 데우) 쓸모없게(카타루게세이)이다. 텐 피스틴 투 데우는 하나님의 믿음인데, 한글 개역개정에서는 하나님의 미쁘심(믿음직스럽다)으로 번역했다. 다시 번역해보면,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믿음을 폐하겠느냐 라는 것이다. 바울은 인간들이 믿는 믿음과 ...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로마서 2장 26절『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타 디카이오 마타 투 노모)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타 디카이오 마타 투 노모는 율법의 의들이다. 바울은 모세의 율법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할례의 근본 취지는 율법의 조항을 지키는 강제 규정에 있는 것이 나니라, 율법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의를 발견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는 심판과 사랑이다. 죄인에게는 심판이지만, 회개하는 자에게는 사랑으로 대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떠난 죄를 회개하지는 않고,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므로 그들은 죄인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을 완전히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2장 27절『또한 본래(에크 퓌세오스)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텔루사)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에크 퓌세오스는 근본으로부터 라는 의미다. 율법 이전의 근본늘 의미한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할례자들이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는 것을 무할례자들이 율법의 근본이 되는 것을 가지고 온전히 지킨다면 그 율법 조문을 통해서 유대인들을 심판하지 않겠는가 라는 말이다. 텔루사는 온전히 지키며 라는 의미이고, 기본형이 텔레오(완수하다 성취하다)이다. 율법주의자들이 이루지 못한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했음을 보여준다. 즉 예수 그리스도로 안에서 이방인들이 율법을 성취하므로 유대인들을 심판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율법을 완성한 자가 된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율법에 대해서 죽임을 당한 자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율법을 잘지키려고 노력하고 선한 일을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율법의 완성에 들어간 것을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2장 28-29절『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엔 사르키 페리토메)가 할례가 아니니라...

율법에 대해서

율법에 대해서   로마서 2장 13절『하나님 앞에서는(파라 데오)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파라 데오는 주님 옆에서 라는 말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주님 옆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이인이 아니요 라는 말이다. 율법을 행하는 자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을 한다. 율법을 행하는 자라는 의미는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을 영접하고, 심령 속에 임재하신 호 로고스의 음성을 듣고 그 분의 말씀대로 명령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를 주로 믿기만 하고, 주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의로운 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주님은 그때 그때 말씀하시는데, 대부분의 말씀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이 될 것이다.   2장 14-15절『(율법(노무)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투 노무)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노무)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노무)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투 노무)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본문 전체가 괄호로 묶여있다. 사본에 따라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스테파누스 헬라어 성경이나, 넷슬 알란드 헬라어 성경에는 모두 이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율법과 관련한 헬라어에서 노무와 투 노무가 있다. 노무는 일반적인 법의 개념이고, 투 노무는모세의 율법을 의미한다. 이 본문은 모세의 율법을 갖지 않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또한 그것을 양심의 법과 연결시키고 있다. 율법을 받지 않은 이방인이 유대인들이 하는 대로 율법주의를 따라 행할 경우에도 마음에 따라 적용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율법이 없는 이방인은 율법주의에 빠질 이유가 없는데, 유대인들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을 경고하는 것이다.  2장 16절『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키타 토 유앙겔리온 무) 하...

남을 판단하는 사람

2장 1절『그러므로 남(톤 헤테론)을 판단하는(크리논)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엔 호 가르 크리네이스 톤 헤테론)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세 아우톤 카타크리네이스)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톤 헤테론은 예수를 믿지 않는 불신자를 의미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불신자들을 함부러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크리노는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말이다. 주로 재판정에서 사용되지만 운동경기의 심판에서도 사용된다. 그러나 판단하다 라는 말은 정죄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잘못된 번역이다.  『엔 호 가르 크리네이스 톤 헤테론』그것 안에서 네가 다른 사람을 심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죄가 자기를 향하는 것이다. 세 아우톤 카타크리네이스는 네가 네 스스로를 완전히 심판하고 있다는 말로서 성경은 불신자들이 행하는 불의보다 기독교인들이 행하는 불의를 더 심각하게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내에서 행하는 불의를 심판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세상의 법정에 가져가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불의한 삶을 살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은 의로운 삶을 살아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 사람들의 불의를 바라보라는 것이다.  2장 2절『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카타 알레데이안)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오이다멘)』헬라어 성경에서 오이다멘은 맨 앞에 있다. 이는 머리로 깨달아 안다는 말로서 기노스코(히브리어 야다)와는 다른 개념이다. 불의를 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통해 지식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카타 알레데이안은 (성경에 기록된)진리를 따라서 라는 의미다.  2장 3-4절『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에크퓩세) 생각하느냐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메타노이아)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투 플...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1장 22-23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파스콘테스 에이나이 소포이 에모란데산)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파스콘테스 에이나이 소포이 에모란데산은 그들은 지혜가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어리섞게 되었다 라는 의미다.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면 이렇게 된다. 그러한 자들의 어리섞음은 우상숭배로 연결된다.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보이는 형상으로 바꾸는 것이다.  (1장 24-25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엔 타이스 에피뒤미이이스)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엔 타이스 에피뒤미이이스는 마음의 욕망 안에서 라는 의미다. 그리스도인들이 짓는 가장 큰 죄는 성전된 자신의 몸을 더럽히는 것이다. 심령 속에 호 로고스가 임재해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 분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욕망, 탐욕이라는 우상때문이다. 인간의 탐심에서 나오는 우상숭배의 무서운 결과로서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마치 출애굽하여 시내산에서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올라갔을 때, 늦게 내려오므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경배한 사실이다.  (1장 26-27절)『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파데)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텐 푸쉬켄)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파데는 욕정을 의미한다. 텐 푸쉬켄은 본성의 라는 의미다. 표면적으로는 동성애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면적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우상을 숭배하는 그런 일들을 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로마서 1장 17절) 『복음에는(엔 아우토) 하나님의 의(디카이오쉬네)가 나타나서(아포칼륍테타이) 믿음으로(에크 피스테오스) 믿음에 이르게(에이스 피스틴)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엔 아우토는 이것 안에라는 말이다. 이 말은 1장 16절의 토 유앙겔리온(복음)을 말하므로서, 엔 아우토는 복음 안에 라는 의미가 된다. 복음 안에 하나님의 의가 계시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의라고 번역된 디카이오쉬네는 재판에서 사용되는 용어다. 공정한 재판을 의미한다. 그어므로 의롭다는 말은 옳고 그름을 공정하게 판결한다는 의미이며, 불의하다는 말은 옳고 그름을 편파적으로 판결한다는 말이다. 청탁을 받고 편파적으로 판결하는 재판관을 불의한 재판관이라고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는 인간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다. 성경은 재판장으로서의 하나님의 의로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아포칼륍테타이(현재시제, 수동태)의 기본형은 아포칼륍토이다. 아포(from)와 칼륍토(cover)의 합성어로서 덮게를 벗기다 라는 의미이다. 덮개를 벗겨서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을 은연 중에 드러낸다는 의미다. 문법적으로 현재시제 수동태이므로, 복음 안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의가 하나님에 의해 계속적으로 계시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복음은 성경의 말씀이 아니라 호 로고스인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에크~에이스는 영어의 from ~into와 같은 개념이다. 복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가 하나님에 의해 계시되어지는데, 믿음에서 시작해서 믿음 속으로 들어갈 때 까지 그렇게 된다는 의미다. 시작하는 믿음은 초보적인 믿음(내가 믿는 믿음)이고, 믿음 속으로 들어가는 믿음은 거듭난 자의 믿음(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인 것이다.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한글 개역개정으로 번역된 이 부분을 헬라어 성경으로 보면,『카도스(~같이) 게그랍타이(그것이 기록된 것) 호(그) 데...

성령 안에서 복음 안에서

(1장 9-10절) 『내가 그의 아들의(투 휘우) 복음 안에서(토 유앙겔리온) 내(무 엔) 심령으로(엔 토 프뉴마티) 섬기는(라트류오)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프로슈케)에 쉬지 않고(호스 아디알레잎토스) 너희를 말하며(므네이안)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휘몬)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포이우마이)』  여기서 호 라트류오 엔 토 프뉴마티 무 엔 토 유앙겔리온 투 휘우는 내가 섬기는, 나의 성령 안에서, 나의 복음 안에서 라는 의미다. 이 말은 관계대명사 호와 하나님을 연결한다. 즉 바울은 라트류오 엔 토 프뉴마티 무 엔 토 유앙겔리온 투 휘우를 통하여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것이다.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엔 토 프뉴마티(성령 안에서)이고, 엔 토 유앙겔리온 토 휘우 아우투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가 되는 것이다. 프로슈케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하는 기도이다. 바울이 기도할 때마다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언급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호스 아디알레잎토스는 심지어 쉬지 않고 라는 의미다. 호스 아디알렢토스 므네이안 휘몬 포이우마이는 심지어 쉬지 않고 너희의 언급을 만들고 있다 라는 의미다. 포이우마이는 중간태로서 이것은 바울이 기도할 때마다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언급하는 것이 자신을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바울은 단순히 로마교회를 위한 기도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프로슈케의 기도로 인해 하나님과 더 친밀한 관계가 생긴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즉 프로슈케 기도는 기도 대상과 자신에게 다 유익한 기도가 되는 것이다.  (1장 11-13절)『내가 너희(휘마스) 보기를(이데인) 간절히 원하는(에피포도)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엔 휘민) 너희와 나의(에무) 믿음으로(테스 엔 알레로이스 피스테오스) 말미암아(디아) 피차(휘몬 테) 안위함...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로마서 1장1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둘로스) 바울(파울오스)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유앙겔리온)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파울로스의 의미는 작은 자이다. 사도인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작은 자로 살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둘로스라는 종 (노예)와 어울리는 단어다. 바울에게 파불로스라는 이름 외에 사울이라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사울은 히브리식 이름이고고 바울은 헬라너어로 된 이름이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서 태어나면서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던 바울은 출생신고에 필요한 파울로스 라는 헬라식 이름과 집에서 사울이라는 유대식 이름을 가진 것이다. 유앙겔리온은 전쟁에서의 승리의 기쁨과 관련된 용어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유앙겔리온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의 기쁜 소식에 사용한 것이 이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복음을 위해 구별되었다고 말했다. 종은 주인의 소유이며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성도는 사탄의 종이 되었다가 예수님의 핏값으로 구속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란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사도가 되고 기독교인이 된 것을 부르심을 받고 구분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1장 2-4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사륵스)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게모메누 에크 스페르마토스 다위드) 성결의 영(프뉴마 하기오쉐네스)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엑스 아나스테오스 네크론) 능력(두미나스)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복음이 무엇인지를 얘기하는데 그는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에게 성령세례를 주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성령세례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 충만한 ...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고린도후서 12장 11-21절)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  12장 11절『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쉬니스타스다이)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어리석은 자라는 것은 바울이 삼층천에 갔다 온 것과 같은 종교적으로 신비주의를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쉬니스타스다이는 쉬니(하나님과 함께)와 스타스다이(서다)의 합성어다. 우리말 번역의 오류다.『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가 아니라,『너희에 의해서 하나님과 함께 서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해야 한다. 바울이 종교적으로 어리석은 자랑을 한 것은 결국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시킨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종교적인 자랑을 하므로 바울도 종교적인 자랑을 함으로서 그것이 별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바울을 더 세워주신다는 것이다. 바울이 어리석은 자랑을 한 것도 주님이 그렇게 하도록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바울을 깍아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바울도『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라고 말한다.  12장 12절『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휘포모네)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휘포모네는 휘포(~아래)와 모네(머무는 것)의 합성어로 하나님의 보좌 아래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것을 의미한다. 휘포모네를 통해서 표적과 기사와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게 사도라는 것이다. 표적과 기사와 능력은 바울이 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것이다.  12...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린도후서 12장 1-10절)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12장 1절『무익하나마(우 쉼페론)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우(못하다) 쉼페론(유익하다)라고 번역했으나, 쉼페론은 쉼(함께)페론(나르다, 가져가다)의 합성어로서, (하나님)과 함께 가져간다는 의미이며, 그래서 우 쉼페론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라는 의미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닌데, 사람들이 환상을 보았고, 계시를 받았다고 말들을 많이 해서, 바울이 자신의 경험을 말하겠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 것은 무익한 것이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12장 2-3절『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괄호가 있는 이유는 어떤 사본에는 있고, 다른 사본에는 없기 때문에 괄호로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한 사람은 바울이지만, 자신을 직접 나타내지 않으려고 한 표현이다. 셋째 하늘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는데, 하늘은 땅에서 바라보는 하늘도 있고, 인간의 심령 속에 계시된 하나님 나라도 있으며, 영의 세계인 하나님 나라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셋째 하늘은 영의 세계인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하늘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없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첫째 하늘을 대기권의 하늘, 둘째 하늘을 우주, 셋째 하늘을 하나님 나라로 말하는 자들도 있다.  12장 4절『그가 낙원(톤 파라데이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고린도후서 11장 16-33절)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내가 조금 자랑할 수 있도록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 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나는 우리가 약한 것 같이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11장 16절『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내가 ...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고린도후서 11장 1-15절)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11장 1절『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어리섞다는 말은 감각이 떨어지는 의미다.  11장 2절『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젤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파라스테사이)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젤로는 질투하다라는 의미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그리스도에게 중매하려는데, 그들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파라스테사이는 옆에 세우다 라는 의미다.  11장 3절『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하플로테토스)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하플로테토스는 한결 같은 마음을 의미한다. 삼위일체의 신앙은 죄인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때 이해가 된다. 죄인은 하나님께 다가설 수 없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2000년 전에 십자가에서 죽고, 오늘날 성도의 심령 속에 호 로고스로 임재하시고, 마지막 때 심판자로 세상을 멸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여호와 하나님 한 분이라는 사실이다.  뱀은 사탄을 상징하고 그를 따르는 자에게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유혹한 것이다. 하와가 미혹당한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은 천사가 미혹당한 것이다. 뱀은 하나님 처럼 될 수 있다고 탐욕을 주입시킨다. 마귀가 예수님을 광야에서 시험한 것도 성부 하나님 자리에 앉도록 유도한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십자가를 지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는데, 마귀는 세가지의 시험을 통해, 예수님을 성부의 자리에 앉도록 유도하는 것...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린도후서 10장 1-18절)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10장 1절『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파라칼로)』파라칼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타락을 보고 고린도전서에서 강하게 질책했는데, 후서에서는 부드럽게 접근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고린도교회 교인들 중에는 바울에 대해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자가 있었다. 10장 2절『또한 우리를 육신(사르카)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사르카는 신을 찾는 종교심을 의미한다. 사륵스의 힘이 약화될 때는 미신적인 신앙으로 흐르는 것이다. 고린도교회 신도들 중에는 바울에 대해서 좋지 않게 생각하는 자들이 바울과 바울 일행을 연약한 육신을 따르는 자들이라고 생각했다. 바울은 이런 자들에 대해서는 담대히 대한다는 것이다.  10장 3절『우리가 육신으로(엔  사르키) 행하나(페리파툰테스) 육신에 따라 싸우지(스트라튜오메다) 아니하노니』엔 사르키는 육신 안에서, 페리파툰테스는 걸어가다 라는 의미다. 이 세상에 육신 안에서 살지만, 육신을 따라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스트라튜오메다는 사역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종교심으로 사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육신을 따르는 자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간다.  10장 4절『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육신을 따라 가는 자는 하나님의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고린도후서 9장 1-15절)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 지극한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9장 1절『성도를 섬기는 일(테스 디아코니아스)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페리손)』테스 디아코니아는 그 섬김이다. 즉 사역을 의미한다. 사역은 사역자가 신자를 잘 섬기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 교회는 정 반대로 하고 있다. 페리손은 넘쳐난다는 의미다.  9장 2절『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텐 프로뒤미안)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 년 전부터 준비하였다는(파레스큐아스타이) 것을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의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분발하게 하였느니라』텐 프로뒤미안은 텐(앞에, 앞서가는)뒤미안(열정)의 합성어로서 미리 열성을 가지고 준비하는 것이다.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이 신앙에 있어서 좋은 상태가 된 것이다. 파레스큐아스타이는 파라(옆에서)스큐아스타이(배)의 합성어다.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된 배를 의미한다. 고린도교회의 신도들이 좋은 신앙으로 되었다는 소식에 아가야 지역의 교회도 좋은 신앙으로 되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바울이 마게도니야 교회에 자랑하는 것이다.  9장 3절『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가 말한 것 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형제들은 디도를 포함한 신앙이 깊은 자를 의미한다.   9장 4절『혹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가 준비하지 아니한 것을 보면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준비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는 것과 같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9장 5절『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율로기안)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파라칼레사이)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프로에펭겔레...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8장 1-24절)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에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그들에게 보이라』  8장 1절『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그노리조멘)』그노리조멘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아는 것을 말한다. 바울이 마게도냐에 있을 때, 지성소로 들어가라는 주님의 압박에 많이 힘들었지만, 디도를 통해서 많은 은혜를 받았다.  8장 2절『환난(들맆세오스)의 많은 시련(도키메)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바두스) 가난(프로케이아)이 그들의 풍성한(플레토스) 연보(하플로테토스)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들맆세오스는 심령 속의 주님께 나아가도록 압박하는 것을 의미한다. 도키멘은 시도하다 라는 의미다. 하나님의 보좌에 나가도록 시도하는 것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기쁨은 파루시아(보좌에 나아가는 것)가 된 것을 의미한다. 바두스 프로케이아는 가난의 깊이를 의미한다. 가난은 물질적 가난이 아니라 주님의 보좌에 나아가 주님의 은혜를 받고자 하는 간절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플레토스 하플로테토스느 풍성한 연보가 아니라, 풍성한 선물이다. 그 선물은 은혜의 선물이다.『하(not)플로테토스(simple)』는 단순하지 않은 것이다.  8장 3절『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뒤나민)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파라 뒤나민) 자원하여(아우다이레토리)』뒤나민은 신적인 능력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게 된다. 파라 뒤나민은 능력 옆에서 라는 것이다. 파라는 ~ 옆에서 라는 의미다. 아우다이레토라는 자신을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8장 4절『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텐 코이노니아 디아코니아스』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파라클레세오스 데오메노이)』 텐 코이노니아 디아코니아스는 섬김의 교제이다. 파라클레세오스는 권면을 받는 것이고, 데오메노이는 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