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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왜 사탄으로 부터 시험을 받으셨는가(2)

마태복음 4장 1-10절에서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첫번째 시험은『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이 시험에 대해서 예수님은『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이 말씀은 신명기 8장 3절에서 나오는 말씀이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돌을 히브리어로 에벤이라고 한다. 야곱이 돌베게를 베고 잔 에벤이다. 곧 에벤은 성전을 의미한다. 마태복음 4장에서 말하는『이 돌들』은 율법이 있는 돌판을 말한다. 출애굽기 24장 12절에서『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떡...

예수님은 왜 사탄으로 부터 시험을 받으셨는가(1)

마태복음 4장 1-10절에서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사탄이 왜 예수님을 시험했는가? 예수님은 시험받아야만 하는가?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신 인자이시다.『그래서 성령이 충만하셔야만 되는 것이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서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예수님의 시험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들도 동일한 시험을 받게 되는 것을 알려주신다.『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광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방황했던 곳이 광야다. 광야는 물이 없는 곳이다. 광야는 세상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이 40년간 방황한 이유는 가나안 땅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나안에 정탐하러 간 열두명이 40일간 정탐했는데, 열명이 들어가면 죽는다 라고 하나님의 약속...

열두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

마태복음 22장 15-21절『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이 기적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는데, 살리러 가시는 도중에 생긴 일이다. 혈루병은 레위기에서 유출병이라고 해서 부정하다고 말한다. 12년 동안 피가 멈추지 않고 흘렀다는 것이다. 피는 생명을 나타낸다. 12년에서 년(해)을 이해해야만 한다. 성경의 이면에 감추어진 것을 잘 이해해야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뜻을 깨달을 수 있다. 12는 열두 지파와 열두 제자에서 등장한다. 열두 지파에서 하나님이 10과 2로 나누신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거하지 않으므로 나라를 반으로 분열시켰다. 북이스라엘은 10지파, 남유다는 2 지파가 된 것이다. 남유다는 유다지파와 벤냐민 지파다. 유다지파는 예수님이 오신 지파의 혈통이 된다.  창세기 49장 10절에서『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실로는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사도 바울은 벤야민 지파였다. 벤은 아들이라는 뜻이고, 야민은 오른편이라는 뜻이다. 오른편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

마태복음 22장 15-21절『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이 말에 대해서 교회 사람들은 대개 세상의 것은 세금으로 바치고, 하나님의 것은 십일조로 교회에 바쳐야 한다 라고 가르친다. 고린도전서 15장 50절에서『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세상의 것은 하나님 나라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이다.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다. 그러나 거듭난 자, 즉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 자에게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신다. 영의 몸은 하나님과 함께, 육의 몸은 이 땅에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의 육은 언젠가 죽을 것이고, 썩을 것이다.  베드로후서 3장 7절에서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3장 10절에서는『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전도서 12장 7절에서『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흙은 육체를 말한다. 혈과 육은 ...

날때부터 소경된 자는 누구의 죄때문인가?

요한복음 9장 1-3절에서에서『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이 질문에서 날때부터 맹인이 된 사람은 죄때문인가? 라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했다. 여기서 죄라는 것은 부모로부터 받은 육의 원죄인가 아니면 자기의 죄인가라는 것이다. 자기의 죄는 이 세상에 태어난 자가 자기의 죄를 안고 태어난다. 부모로부터 받은 육의 원죄가 아닌 다른 죄가 있다는 의미다. 다른 원죄는 바로 하나님 나라에서 지은 원죄를 말한다. 하나님을 떠나고 싶어서 사탄을 따라간 영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범죄한 영들을 육체 속에 가두었다는 것이다.  육체 속에 가두어진 영들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져버려 죽은 것이다. 그래서 혼적인 상태로 태어났다. 창세기 2장 7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우리말 성경과 영어(kjv)는 다르게 표현되어서 우리말 번역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다.『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생령이 아니라 혼이다. 영이 죽었으므로 혼적인 존재, 살아있는 생명체가 된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에 태어난 아담의 영을 살리기 위해 에덴동산을 창설하셔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시고, 영을 살려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게 만들어주셨다.  맹인이 된 이유에 대해서, 예수님이 하늘의 원죄도 아니고, 땅의 원죄도 아니라고 말씀하셨다.『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 요한복음 6장 29절에서『예수께서 대답...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

누가복음 21장 20-24절에서『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 그 날에는 아이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라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기록된 모든 것은 율법을 말한다.『율법을 이루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이루지 못한 형벌을 받아서 예루살렘이 멸망하게 되었다』라는 누가의 설명이다. 율법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1400 여년 동안 율법을 지키려고 애를 쓰고 살아왔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신 이후 약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국민들은 율법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대체로『하나님이 인간들에게 법을 지키고 살라고 하신 하나님의 법이다』라는 정도로 이해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율법은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이고, 이방인들에게 주신 것이 아닌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방인들은『이스라엘이 율법에 대해서 어떻게 행했는가를 보고 깨달아라』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율법을 이해하려면 하나님이 누구에게, 왜 주셨는지를 모르면 안된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죄인인데, 죄인인 것을 모르는 사람에게 주신 것이다. 사도바울이 율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로마서 5장 13절에서『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죄라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것을 죄라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실정이다.『하나님을 떠났다』라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장막을 버리고 세상에서 육신의 장막을 입은 것을...

사망에 이르는 죄

죄는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다. 사망에 이르는 죄를  많은 교회에서는『육체가 죽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고린도전서 5장 5절에서『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얻게 하려함이라』이 성경 귀절을 근거로 사도요한이 요한1서에서 말한『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를『육체를 사탄에게 내어주는 육체의 죽음이라』고 설명하는 경우다. 그 예로 가롯유다와 같은 경우, 그리고 성경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자기의 전 재산을 팔아서 반은 숨기고 반만 내다가, 성령의 치심을 받고 현장에서 죽는 것들을 떠올리면서『육체의 죽음이라』고 말하곤 한다.  사도요한이 기록한 요한1서의 성경은 영생에 대한 말씀이다. 요한1서 5장 13절에서 말하고 있다.『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하려 함이라』성경에서 말하는『사망에 이르는 죄』는 육체와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영생과 관련된 죄』라는 것이다.『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은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영의 죽음을 말한다. 만일 육체의 죽음이라고 한다면 죄값인 육체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말하는 죄값의 사망은『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이고,『영이 영생에서 멀어진 것이 사망』이다.  사도요한은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는 자를 위해서는『기도하지 말라』고 말했다. 요한1서 5장 16절에서『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왜냐하면 영생과 관계있기 때문이다. 사망에 이르지 않는 자를 위해서『기도하라』고 했다. 사망은 하나님을 떠난 영을 말하며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것을 말한다.  성경에는『용서받지 못하는 죄』를 마태복음에서 말하는데,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

귀있는 자들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니라

요한계시록 3장 15-22절『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깨 앉은 것 같이 하리라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는 오늘날 교회를 예표한다. 오늘날도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은 교회가 있다.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시는데,『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라고 하셨다. 보통 교회사람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행위』를『믿음이 없고, 열심이 없다』는 말씀으로 이해한다.『교회를 안나오는 것도 아니고, 교회에 나와서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라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행위는 어떤 일에 관계되는 것이다.  요한복음 6장 27절에서『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즉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에 관계되는 일이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에 관계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며,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다. 즉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다. 그 영생을 얻는 일에 대해서『더웁지도, 차지도 않다』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은『차지도 않고 더웁지도 ...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라

마태복음 5장 13-16절『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소금은 세상에 대해서 역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너희는』이스라엘을 말씀하신다. 레위기 3장 13절에서『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예수님이 말씀하신 소금은 언약의 소금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소금은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언약은 변하지 않는 영원한 언약을 말한다. 민수기 18장 19절에서『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 역대하 13장 5절에서『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 아니냐』하나님이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이스라엘을 주시겠다는 영원한 소금언약을 하신 것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사무엘하 7장 12-16절에서『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마태복음 7장 6절『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개와 돼지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성경에서 개라고 표현한 부분을 살펴보면, 먼저 마태복음 15장 26-28절에서『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예수님과 가나안 여자가 대화하는 내용이다. 가나안 여인이 자신의 딸이 귀신들렸는데,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애원했다. 그런데 15장 24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라고 하시면서 가나안 여인을 개라고 표현했다.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알고 있었다.『다윗의 자손이여』라는 말 속에서 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그 여인을 외면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나안 여인이『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응답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구원이 유대인으로부터 이방인으로 전파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는 이방인을 의미하는 것이다.  개라고 표현할 때, 개의 습성을 나타낸다. 잠언 26장 11절에서『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이 말은 율법에서 자유함을 주었는데, 다시 율법에 얽매겨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절에서『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는데, 다시 종의 멍에를 메는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켜 주었으며,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었는데, 광...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마태복음 13장 44절『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이 말에 대해서 사람들은 자기의 모든 것을 팔아서 천국을 살 수 있다고 오해할 수 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왜 비유로 말씀하시는가 질문했을 때,『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라고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에게는 감추고, 어떤 사람에게는 알려주시기 위함이다.  비밀이 감추어진 대상에 대해서 마태복음 13장 14-15절에서『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의 비밀을 깨닫는 자는 바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는 자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세리와 죄인들이 그에 해당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자기의 의를 드러내려고 하므로 천국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는 자가 된다.  천국의 비밀을 깨달은 자 중에서 사도바울 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는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빛 가운데서 만났다. 그리고 셋째 하늘에 직접 올라가 하나님으로부터 비밀을 들었다. 그 비밀은 바로 사도행전 26장 17-18절에서 말하는 내용들이다.『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사도바울은 이 말은 에베소서 3장 6절에서 다시 설명한다.『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사도바울은 로마서 11장 25-26절...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마태복음 10장 16절『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뱀은 사탄을 의미한다. 사탄은 속이는 자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신『뱀처럼 지혜롭게』의 뱀은 사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장대에 높이 들린 놋뱀을 의미한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평불만하고 애굽을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하나님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광야에서의 어려운 삶 때문에 불평을 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불뱀을 보내셔서 백성들을 물려죽게 하셨다. 그런데, 모세가 간청하자 놋뱀을 만들어서 공중에 매달도록 하고, 놋뱀을 바라보는 자마다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불뱀은 이스라엘을 징계하고, 놋뱀은 이스라엘을 다시 살려주는 분이시다. 누구인가?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세례요한이 세상에 온 것은 율법을 마감하기 위함이었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율법이 끝났을 때는 이스라엘이 율법을 잘 지켰는지, 하나님이 판단하시고, 율법에 따라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것이다. 율법이 끝나는 시기에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 그래서 세례요한이『회개하라,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도끼가 이미 놓였다』고 말했다.  마태복음 3장 12절에서『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이 말은 심판을 의미한다. 세례요한이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불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했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이 심판받을 자들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가 없다는 것이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는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키려고 했지만,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율법을 지키려는 것을 포기...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마태복음 7장 21-23절에서『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 이 세상 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 오는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를 말한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여야 들어간다고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말씀하셨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에 대해서 보통 교회사람들은 몇가지 중 선택해야 할 것이 있을 때,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인간이 생각할 때『올바르다』라고 생각되는 것을 선택하려 한다.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뜻은 한가지가 아니고 수십 가지가 되기도 하고, 이것이 되기도 하고, 저것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자기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면 천국에 갈 수 있는가? 이것이 천국에 들어가는 필수 조건이 될 수 있는가? 라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필수조건은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정확히 모르면 곤란하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보면『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로 갈 수 있다 라는 말씀이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서 사랑을 실천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예수님 당시에 십자가에서 같이 죽어가던 죄인이라든가, 문둥병자, 간음하다가 붙잡혀 온 여인들이 사랑을 실천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냥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구원받게 된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벗이여 떡 세덩이를 내게 꾸어달라

누가복음 11장 5-8절에서『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내 벗이 여행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떡 세 덩이를 꾸어달라고』하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무엇인가 들어줄 때까지 끈질기게 기도하면 들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하시는 것 외에 기도하는 것은 효력이 없다.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하는 것은 영적인 내용이지만, 인간들의 기도내용은 대부분 이 세상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교회 사람들 중에 이 세상의 것을 위해 기도했더니, 응답받았다고 자랑한다. 누가 그 사람에게 주었는가? 하나님이신가 아니면 사탄인가?  하나님께서는 주시겠다고 약속한 것 외에는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서 기도해야만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다.  누가복음 18장 1절에서『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라고 하시면서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이야기를 하셨다.『낙심하지 말고』이 말에 대해서 영어성경은 kjv는『not to faint』, niv는『not give up』으로 되어있다.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을 기도하라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하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는 것이다.  제자 중에서 예수님께 기도하는 방법에 대해서 요청하자 예수님이 주기도문을 말씀하시고, 바로 누가복음 11장 5절의 말씀을 하신 것이다.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여기서 밤중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창세기 3장 22-24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쫒아 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셨다』라는 것을 잘 이해하려면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일들을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설명해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 세상에서 인간을 만드셨는데, 굳이 에덴동산을 만들 필요가 있었는가? 세상에 태어난 아담은 혼적 존재로 태어났다. 영이 죽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에덴동산을 창설하셔서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게 했다. 그런데 에덴동산에는 생명나무 외에도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도 있었다. 심지어는 사탄도 등장한다. 에덴동산이라고 하면 낙원처럼 느껴지는데, 사탄이 등장하는 것이다.  에덴동산을 통해서 말씀을 깨달아야 하는 그 대상은 누구인가? 바로 하나님을 떠난 존재(영)들이다. 하나님의 처소를 벗고, 육신의 장막 집을 입은 자들이다. 하나님의 관계가 끊어졌으므로, 영이 죽었다고 표현한다. 영이 갇힌 상태에 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게 된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성경에서 에덴동산을 통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창세기 에덴동산과 관련하여 이야기의 흐름을 요약하여 재조명해 보면,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기 전에 창세기 2장 7절에『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생령은 혼(soul)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kjv는 soul, niv는 living being으로 되어있다. 영이 육신의 장막 집으로 들어오므로서 갇히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있던 영을 흙 속에 집어 넣으셔서 육신의 장막 집에 들어가게 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 까지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로마서 11장 25-27절) 사도바울이『이스라엘은 눈이 감겨지고 이방인이 구원을 받게될 것』이라고 설명하는 내용이다. 누가복음 21장 20절에서『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누가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두고『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이방에 빛을 비추어 주시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는 것은 누가는『이방인의 때』라고 했다. 누가복음 21장 24절에서『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이방인이 다 구원 받을 역사가 일어날 때까지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이 차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도 예루살렘은 이슬람교도들이 지배하고 있다. 이방인의 때가 차면 다시 이스라엘에게로 돌아올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도바울이『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고 말한 이방인의 수와 누가가 말한『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에서 이방인의 때는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구원의 개념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모든 인간에게는 영이 있다. 영은 육신 안에 거하지만 원래는 하나님 나라에 있어야 한다. 사도바울이 고린도후서 5장 1절에서『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육신)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하나님 나라)이 우리에게 있는줄 아나니』라고 했다. 육신이 죽으면『영이 빠져 나와 무엇인가를 덧입...

주기도문(3)

⑥『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문자적으로 볼 때, 맞지 않은 것 같은 애매한 표현이다. 먼저『우리가 죄를 용서해야, 하나님이 용서해 주는 방식』이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앞뒤가 바뀌었다고 말한다.『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신 것 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의 죄를 사하여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주기도문에서 말하는 내용이 마태복음 14장 14-15절의 내용과 거의 동일하다.『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사해주신 것은 헬라어의 문법이 과거완료 용법으로 되어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사해주는 것은 현재진행형으로 되어있다. 시제를 따라서 말하면 앞뒤가 맞지않다.『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고 있으므로 과거에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셨다』라는 것은 말이 잘안된다. 그러면『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으므로, 우리도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준다』라는 말은 시제상으로 부드럽다. 그런데 우리 말의 번역은 시제상 반대로 되어있는 것이다. 그리고 논리적으로도『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해주셨지, 우리가 먼저 다른 사람을 사해주고 하나님이 그것을 근거로 사해준다』는 것은 말이 맞지 않는 것 같다.『하나님이 먼저이지, 사람이 먼저』라는 말은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게 된 배경을 살펴보아야 한다. 마태복음 18장 23-35절에서 100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해 주지 않은, 1만 탈란드 빚진 자의 비유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다. 35절의 말씀은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태복음 6장 14-15절에서 말하는『사람의 과실을 먼저 용서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신다』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사람의 용서가 먼저이고, 하나님의 용서는 뒤에 나오는 구...

주기도문(2)

④『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예수님이 주기도문을 통해서 알려주시는 것은『세상에서 무엇을 구하라』는 말이 아니다. 지금 이 땅에 있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구해야 될 것은『창세 때 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있는 것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자기 생각대로 말하고 있다. 세상에서 말하는 단순한 신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하나님은 전지전능 하시다』라고 말은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을 자기 식의『전지전능』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보시기에『심히 좋았더라』라고 하셨는데,『하나님이 전지전능 하시다』는 것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세상을 완전하게 창조하려고 했는데, 사탄이 개입되고, 인간의 잘못으로 인해서 세상이 멸망당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하나님을『전지전능 하신 분』으로 여기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전지전능이 어떤 외부적인 요소에 의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자기 방식으로 하나님을 전지전능으로 말하는 것이다.『하나님의 전지전능』에 대해서 정말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이 세상의 모든 것이 완전하고 복되게 창조하셨다』고 믿으면서, 어쩔 수 없이『이 세상을 파멸시켜야 된다』라고 아무런 느낌도 없이 생각하는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 만이 선하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도 부자 청년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말씀하고 있다.『오직 선하신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그런데 사람들은『하나님이 선과 악을 판단하시는 분』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 이외의 것은 전부 악하다. 하나님이 선과 악을 판단하는 분으로 생각하므로서, 악에 대해서도 하나님이 관여하는 것으로 오해를 한다.『악을 판단한다』는 것은 악에 대해서 알고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악을 안다(야다)라는 말은『경험적으로 안다』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악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분이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악이 없다.『하나님을...

주기도문(1)

마태복음 6장 9-13절에서『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기도는 나의 요구사항을 하나님 앞에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① 예수님이『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말씀하셨다.『하나님이 하늘에 계신다』라는 말이다. 기도하는 자는 땅에 있는 것이다.『하나님과 내가 하나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땅에 있는 인간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이 말은『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 넣으신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기도하는 자는『하나님을 떠난 자요, 세상에 갇힌 자』라는 말이다. 요한복음 17장 11절에서 예수님이『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하나님과 예수님)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를 했다. 17장 22절에서는『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기도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두고 기도하시는 장면이며,『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이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는『아버지와 하나』가 되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땅에 있는 인간이 하나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하나가 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된다.  에베소서 5장 30-32절에서『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라』 (창세기 1장1-5절) 우리가 무엇을 나눈다고 하면, 어떤 전체적인 것을 나누는 것으로 생각한다. 빛과 어두움은 함께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빛과 어두움이 함께 있는데, 그것을 분리했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성립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빛이 오면 어두움이 물러가고 빛이 떠나면 어두움이 온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니까 하나님을 떠난 악은 하나님과 함께 공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시편 5편 4절에 보면『하나님은 죄악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니 악과 함께 유할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빛과 어두움이 함께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선과 악은 공존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을 떠난 것이 함께 공존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빛과 어두움을 나누었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빛과 어두움이 함께 공존하는데 거기서 빛과 어두움을 나눈게 아니다. 죄악된 물질세계에 하나님이 물리적 빛을 창조해 주셨지만, 여전히 어두움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두움을 아직 남겨두신 것이다. 하나님이 빛을 창조해 주셨는데, 어두움이 존재한다는 것은 흑암이 아직 남아있게 하신 것이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이 없는 상태인 어두움 가운데 창조된 존재들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에게 깨닫기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는데, 인간이 물질세계에 살면서 아주 알기 쉽게 해주셨던 것이다.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것을 아무런 의미없이 생각하고, 그냥 빛이 있으니 낮이고, 빛이 없으니 밤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시는 의미를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빛을 ...

사망에 이르는 죄

죄는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다. 사망에 이르는 죄를  많은 교회에서는『육체가 죽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고린도전서 5장 5절에서『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얻게 하려함이라』 이 성경 귀절을 근거로 사도요한이 요한1서에서 말한『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를『육체를 사탄에게 내어주는 육체의 죽음이라』고 설명하는 경우다. 그 예로 가롯유다와 같은 경우, 그리고 성경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자기의 전 재산을 팔아서 반은 숨기고 반만 내다가, 성령의 치심을 받고 현장에서 죽는 것들을 떠올리면서『육체의 죽음이라』고 말하곤 한다.  사도요한이 기록한 요한1서의 성경은 영생에 대한 말씀이다. 요한1서 5장 13절에서 말하고 있다.『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하려 함이라』성경에서 말하는『사망에 이르는 죄』는 육체와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영생과 관련된 죄』라는 것이다.『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은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영의 죽음을 말한다. 만일 육체의 죽음이라고 한다면 죄값인 육체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말하는 죄값의 사망은『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이고,『영이 영생에서 멀어진 것이 사망』이다.  사도요한은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는 자를 위해서는『기도하지 말라』고 말했다. 요한1서 5장 16절에서『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왜냐하면 영생과 관계있기 때문이다. 사망에 이르지 않는 자를 위해서『기도하라』고 했다. 사망은 하나님을 떠난 영을 말하며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것을 말한다.  성경에는『용서받지 못하는 죄』를 마태복음에서 말하는데,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

내가 그틀 중에 거할 곳은

출애굽기 25장1-9절에서『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찌니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찌니라』 하나님께서 왜 성소를 지으라고 하셨는지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애굽은 세상을 상징하고 가나안 땅은 천국을 상징한다. 모세를 통해서 유월절 어린 양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 부터 건져내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어주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내가 그들 중에 거할 처소를 짓도록 하라』하셨다. 거할 처소를 지으라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 중에 안계신다 라는 것을 말씀해준다.『안계신다』라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떠난 것은 죄이다. 하나님이 처소를 짓도록 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났으며, 죄인이기 때문에 지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스라엘에게 오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스스로 하나님을 떠난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오신다 라는 말은 하나님이 직접 오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그 곳에 두시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성소를 지어서 법궤를 성막 안에 두고 하나님이『그 곳에 계신다』라고 선언하셨다. 성막에 하나님이 계시므로 하나님과 백성들은 만날 수 있다. 그런데 만나기 위해서는 제사를 지내야만 했다. 하나님이 성소에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것은 여전히 죄인이기 때문이다. 많은 교회사람은 하나님은 단지 거룩하시기 때문에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