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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모친이며 내 형제이냐

마태복음 12장 46-50절『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하니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하나님에 대해서 잘 이해해야만 한다. 요한복음 1장 1절에서『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말씀은 로고스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하나님이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것이다.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라는 이름은『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의미를 가진다. 온 백성을 구원하시는 분이다.  빌립보서 2장 6-8절에서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고린도후서 5장 19절에서『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그들의 죄를 돌리지 아니하시는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율법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으로 죄를 묻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어서 구원받는 자가 된다.『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에서 자기 백성은 원래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던 자를 말한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하므로, 이 세상에 갇혀 있게 되었다. 그래서 죄...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요한복음 5장 1-16절『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 로마서 2장 28-29절에서『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하나님이 이스라엘이라고 표현하는 이스라엘은 천하만민을 나타낸다. 지구상에서 어느 지역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표면적 이스라엘이지만, 영으로 거듭난 자들이 진정한 이스라엘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이면적 이스라엘이라고 사도바울이 설명했다.  유대인의 명절은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이 있다. 명절은 출애굽과 관계가 있다. 그런데 명절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갔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었는데, 하나님을 떠난 것을 깨닫고, 율법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안식일 지키므로서 자신이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자가 된다는 말씀이다. 가나안 땅이 그리스도이다. 그러나 출애굽한 백성들은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소 아이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하나님은 그들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수많은 기적을 나타내 보이셨지만, 계속 그들은 하나님을 시험했던 것이다. 히브리서 3장 7-11절에서『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

이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누가복음 5장 1-6『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이 말을 두고 『전도를 해서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겠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하여, 마태복음 4장 19절에서『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마가복음 1장 17절에서도『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그런데, 단순히 전도를 해서 구원을 이르게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어부는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다. 베드로가 사람을 낚는다면, 어디서 낚아야 하는가? 바다는 어디를 말하는가를 알아야만 한다.  우리가 바다를 이해하려면, 인간들이 왜 이 세상에 살고 있는가를 알아야만 한다. 이사야서 42장 7절에서『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이사야서 61장 1절에서는『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가난한 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난한 자를 말한다. 왜냐하면 흑암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영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세상에 육체로 오므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다 잊어버린 것을 말한다. 감옥에 대해서 시편 142편 7절에...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갈라디아서 4장 1-7절『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에서『이 후로는』언제인가? 아들의 영이 신자들의 마음에 들어오는 때를 말한다. 그래서『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로마서 8장 14절에서『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하나님의 아들은 종의 신분이 아니다. 아들의 영을 주시는 것과 속량을 연계되어 있다. 속량이라는 말은 종을 값을 주고 사는 개념이다. 아들이 되기 전에는 종이었는데, 값을 주고 사므로서 아들이 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14절에서『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우리가 저주를 받아야 하는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신 것이 속량이라는 것이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저주를 받는 자들이다. 그런데 율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속량을 받아야 한다. 속량을 받은 자들은 종의 신분이 아니라 아들의 신분이 되어 율법으로부터 벗어난다. 율법의 요구는 저주요, 사망이다.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는 것은 로마서 8장 3-4절에서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니라

마태복음 37-44절에서『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많은 교회 사람들은 기적을 체험하고, 환상을 보고 싶어한다. 그래서 자신의 믿음을 확증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사탄의 시험에 빠져들 수 있다. 사탄은 속인다. 요한계시록 12장 9절에서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사탄은 온 천하(세상 사람들)를 꾀는 자다. 하나님은 사탄이 인간들을 어떻게 시험할지 다 알고 계시다. 그래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마귀의 시험을 허락하셨다. 예수님의 시험을 보고 깨달아서, 마귀의 시험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마귀는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는 자를 미혹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유혹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교회에서 미혹한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식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는 자는 구원받을 수 없다. 마귀는 구원의 주체를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처럼 만드는 것이다. 『내가 예수를 믿으면』이라고 말한다. 나는 죽고, 예수만 존재하는 것이 구원이다. 그래서 구원의 주체는 예수님이시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그리스도로 인해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3장 20절에서『그들은 전에 노...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에베소서 6장 10-20절)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마귀의 간계는 하나님의 능력을 흉내내는 것이다. 마치 무당이 귀신을 쫒아내는 것처럼 그런 일들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귀신 쫒아낸 것처럼 오늘날도 교회 사람들이 귀신 쫒아내는 일을 하나님의 능력을 입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하나님의 능력인가? 예수님이 귀신을 쫒아낸 것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나타내고 메시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교회 사람이 귀신을 쫒아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인가? 고린도후서 11장 14-15절에서『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우리가 하나님께 능력을 달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생각하면 곤란한다. 하나님은 직접 싸움의 능력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주 안...

눈가림만 하여 사람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에베소서 6장 1-9절)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에베소서 5장에서는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비유하여 말씀했지만, 에베소서 6장 1-9절에서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 상전과 종의 관계로 설명한다.『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이 말씀은 생명의 말씀과 관계 있다. 하늘의 생명을 주는 분이 부모이고, 부모가 생명의 말씀을 줄 때는 그 말씀을 듣고,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영적인 이야기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물론 이 땅에서의 부모에게도 공경해야 할 것이지만, 영적 생명이 없는 부모도 있을 수 있는데, 영적 생명이 없는 부모의 말은 이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한다. 세상에서 복을 받기 위한 그런 내용들이 주를 이루는 것이다. 출애굽기 20장 12절에서『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그래서 사람들은 이 세상의 이야기로 받아드린다.  마태복음 23장 9절에서『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이 말씀은 영적인 아버지가 ...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누가복음 5장 36-39절『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이 비유 앞에는 금식에 대한 비유와 바리새인과 세리에 대한 비유가 있었다.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에게『왜 너희 선생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가』라고 다소 불만섞인 질문을 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마태복음에서는 생베 조각이라고 했는데, 누가는 새 옷이라고 표현했다. 유대인들의 옷은 세마포를 재료로 겉옷을 만들었다. 누가복음 23장 53절에서『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마가복음 14장 51-52절에서『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그래서 겉옷은 베로 짠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겉의 베옷은 흰색이었다. 흰옷은 의를 상징한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입고 있었던 낡은 옷은 율법을 상징한다. 율법을 통해서 나타나는 자기의 의를 낡은 베옷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나는 의의 옷은 흰 베옷으로 나타낸다.  아무도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일을 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의의 옷은 낡은 옷을 버리지 않으면 입을 수 없다는 뜻이다. 율법을 버려야만 새 옷인 의의 옷을 입을 수 있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너희들은 낡은 옷인 율법 속에 있으므로, 의의 옷인 새 옷을 입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신다. 예수님이 세리와 같은 죄인들에게 가서 함께 식사...

잃어버린 양을 찾아오신 예수님

누가복음 15장 1-7절『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예수님이 이 비유를 하신 배경은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불만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은 의인들인데, 메시야가 오면 당연히 자기들에게 올 것이라고 확신했는데, 메시야라고 하는 예수가 죄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식사를 하므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이 이 사실을 아셨다. 그래서 이 비유의 말씀하신 것이다.  비유는 숨겨진 뜻이 있다. 듣고 깨닫는 자만이 알게된다. 들을 귀가 없는 자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13장 11-13절에서 씨뿌리는 비유가 있다.『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서 55장 1절에서『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목마르고, 돈 없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면 하나님이 주신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세리와 죄인들이 하나님 나라를 구한 것이다. 마태복음 5장 3절에서『심령...

씨뿌리는 비유

마태복음 13장 3-9절『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이 비유는 천국의 비밀을 말하고 있다. 마태복음 13장 11절에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여기서 너희는 제자들이다. 오직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만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예수를 믿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제자가 된다.  왜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시는가? 『자기』가 바로 영을 죽이는 육의 옛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영을 살리기 위함이었다. 그 영은 하나님 나라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던 자들이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있던 자들이 사탄의 유혹을 받아, 그리스도로부터 이탈되어, 이 세상에 갇힌 것이다. 성경은 에베소서 5장 31-32절에서『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교회는 성도의 영을 말한다. 영이 이 세상의 물질인 흙에 갇히므로서 죽어버리고, 인간이 된 생명체는 혼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을 말한다.  천국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씨뿌리는 자가 누구이며, 씨가 누구인지, 밭(땅)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한다. 씨뿌리는 자는 하나님이시며, 씨는 하나님 말씀이다. 밭은 사람들의 마음을 말한다. 요한복음 15장 1절...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마태복음 9장 1-8절『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중풍병자는 병을 고치러 왔는데, 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는가?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라고 생각했다. 유대인들은 죄를 사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신데, 예수라는 사람이 와서 죄를 사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하나님을 모욕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교회 사람들은 중풍병자가 간절한 믿음을 가지고 왔으므로 병의 고침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우리도 간절히 기도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라고 확대해석 한다. 예수님은 중풍병자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보셨다. 그래서 잘 알고 있었다. 예수님이 보신 중풍병자의 믿음과 오늘날 교회 사람들이 생각하는 믿음과는 차이가 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메시야이셨다. 그들은 오랜기간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예수님은 그들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그 기대는 이스라엘이 메시야를 깨닫고 맞이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메시야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메시야를 기다리기는 하지만, 메시야에 대한 간절한 믿음은 없었던 것이다. 마태복음 ...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누가복음 16장 19-26절『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빨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한 부자가 있어』부자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다. 부자는 돈이 많아서 부자이기도 하지만, 자기 스스로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부자인 사람을 말한다. 하나님께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율법을 잘 지키면 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므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의를 높이려고 한다.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자색 옷은 임금이나 귀족들이 입었던 옷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제사장 옷을 만드는데, 자색이 들어간다.  출애굽기 28장 2-8절에서『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 너는 무릇 마음에 지혜 있는 모든 자 곧 내가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이 지을 옷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라 그들이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아론이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마가복음 4장 26-29절『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여기에서 사람은 하나님을 상징하고, 땅은 이스라엘 사람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씨(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이 씨는 하나님의 율법을 의미한다.『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그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상관하시지 않는다는 말이다.『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통해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기를 바랐는데, 그들이 율법을 통해서 스스로 의인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 되는 것은 의롭게 되는 것이다. 율법을 통해서 그들이 도저히 율법을 지킬 수 없는 그런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발견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심판의 대상이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의 합당한 열매가 맺어져야 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마가복음의 이 말씀은 세례요한의 외침과 함께 연결하여 살펴보아야만 한다. 마태복음 3장 7-10절에서『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

알곡과 가라지

마태복음 13장 24-30절에서『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알곡과 가라지를 비교하면서 말하는데, 알곡은 신앙생활을 잘하는 자들이고, 가라지는 신앙생활을 잘 못하는 자들을 지칭하기도 한다. 신앙생활 잘 하는 것에 대해서 예배에 빠지지 않고, 십일조 잘 하고, 교회에 봉사 잘 하는 식으로 설명한다.  누구의 관점인가? 하나님이신가, 아니면 사람들인가?  알곡은 밀이다. 그런데, 가라지는 밀과 비슷하지만 먹지 못하는 독초를 말한다. 추수때까지 알곡과 가라지를 그대로 두라는 것이다. 가라지는 추수때 불사르시겠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를 하신 이유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13장 24-30절에서 말한 내용을 13장 36-43절에서 설명한다.『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망대를 세우려는 자와 전쟁을 하려는 자

누가복음 14장 25-33절『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예수님이 어떤 사람의 집에 청함을 받고 식사를 하면서, 식사를 초청하거든 부한 사람을 초청하지 말고, 가난한 자를 초청하라고 말씀하셨다. 가난한 사람이 갚을 길이 없으므로 복되다는 것이다. 그런데, 같이 먹던 사람이『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아마도 바리새인인 것 같다. 그래서 자기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예수께 말을 한듯하다.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이 혼인잔치의 비유(누가복음 14장 16-24절)를 통해서 이방인이 구원받는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을 수 있는 자를 설명하시는데,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

신랑을 빼앗기는 날 그때에는 금식하라

마태복음 6장 16-18절『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금식기도를 하는 이유가 어떤 목적을 해결받기 위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의 금식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유대인들은 왜 그 당시 금식기도를 했는가? 성경에는 왕들이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금식을 선포한 적이 있다. 레위기 16장 29-31절에서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리하라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 너희의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이는 너희에게 안식일 중의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대속죄일에 하나님이 규례로 주셨다.『자기를 괴롭게 하는 것』이 금식이다.  레위기 23장 28-29절에서는『이 날에는 어떤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스스로 괴롭게 하라』고 하셨는데, 이 방법으로 금식을 택하였을 뿐, 하나님이 금식하라고 명령하시지는 않았다. 하나님이 대속죄일에 스스로 괴롭게 하라고 명령하셨는가? 백성들이 하나님 나라를 떠난 자들이였다는 것을 깨닫고 통회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대속죄일에 죄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고,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을 떠난 존재였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세리나 죄인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는데, 바리새인들은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먹고 마시는 자

고린도전서 11장 23-34 절에서『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성찬식을 할 때 강조하는 말이다.『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여기에서『합당하지 않은 것』과『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어야만 한다.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지난 한 주간 경건하게 살았는지 살펴보고, 죄가 기억나면 마시면 안된다 라고 생각한다.  사도바울이 말하는 고린도교회의 당시 상황은 오늘날 교회처럼 의식을 갖추어서 하는 그런 성찬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음식들을 가지고 와서 서로 나누어 먹으면서 말씀을 나누고 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그런데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가지고 오는 음식이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먼저 음식을 먹어버리는 사람 때문에, 음식이 부족해서 마음 상하는 일이 생겼다. 이로 인해서 약간의 파당이 생긴 것이다. 사도바울이 말하는 요지는 음식 때문에 잘못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합당치 않다는 것이다.  성찬의식의 유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 전날 밤에 마지막 유월절을 제자들과 함께 나누기를 원해서 시작된 것이다. 누가복음 22장 15절에서『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유월...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마태복음 11장 16-17절『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이 비유는 세례요한과 연계되어 있다. 이사야 40장 3절에서『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세례요한은 외치는 자의 소리다. 그런데 말라기 3장 1절에서『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라고 세례요한에 대해서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스도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온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엘리야가 세례요한이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엘리야의 심령(spirit)과 능력으로 이 세상에 온 세례요한은 마태복음 3장 4절에서『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아합왕 당시 엘리야는 아세라 선지자들과 바알 선지자들과 영적 전쟁을 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다 태워버린 것이다.  아합왕이 죽은 후에 그의 아들이 왕이 되었는데, 갑자기 병이 생겼다. 그런데 이 왕이 신하에게 자기의 병에 대해서 이방신에게 물어봐 달라는 것이다. 엘리야가 이 사실을 알고 사람을 보내어 하나님께 묻지 않았던 왕을 책망했다. 그래서 왕이 엘리야를 궁으로 오도록 신하를 보냈는데, 엘리야에게 가는 신하들이 다 죽은 것이다. 1차에 50명, 2차에 50명의 신하가 죽어버렸다. 왕이 3차에 신하를 보낼 때,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궁으로 가도록 명령했다. 왕이 엘리야가 어떤 사람인가를 신하에게 물어보니 열왕기하 1장 8절에서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져라

요한복음 21장 1-6절『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누가복음 5장에서도 유사한 이야기다 있다. 요한복음 21장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의 이야기이고,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베드로를 제자삼기 전에 이야기이다. 베드로가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하자, 배를 육지에 대니,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베드로에게 배를 바닷가에서 좀 멀리 띄우라고 하시고, 거기에서 가르치시고,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셨다. 물고기가 많아서 그물을 들 수가 없었다고 한다. 요한복음에서는『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잡힌 물고기가 153마리였다.  예수님은 마지막 성찬에서 떡과 잔을 들고 난 후에 말씀하셨다.마태복음 26장 32절에서『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이 갈릴리에 나타나셨다. 예수님과 함께 다녔던 여인들은 무덤에 가서 천사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천사가 말하기를 마가복음 16장 7절에서『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여자들이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제자들이 갈리릴로 가서 그물을 밤새도록 던졌는데, 한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때 예수님이 바닷가에 서 계셨지만, 제자들은 아무도 예수님...

예수님의 산상수훈(2)

마태복음 5장 1-12절에서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긍휼의 의미는 하나님의 자비를 말한다. 우리가 긍휼히 여길 수 있는 대상은 사람(형제)이다.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은 형제의 죽어있는 영을 살리는 것에 참여하는 것이다. 긍휼히 여기는 자가 하나하나님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  레위기 19장 18절에서『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사랑의 의미는 영을 살리는 것을 말한다. 형제가 사망에 빠져있는데, 생명의 빛을 전해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씀이다. 요한1서 3장 14-15절에서『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요한1서 4장 20절에서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예수님의 산상수훈(1)

마태복음 5장 1-12절에서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복에 대해서 잘 알아야만 한다. 율법은 모든 인간들이 죄인임을 알려주신다. 그런데,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면 여전히 죄인인 것이다.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자가 복이 된다. 복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로마서 3장 19-20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죄를 깨닫는 것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는 것이다. 율법이 알려주시는 것은『너희들의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스라엘에서『가난하다』는 것은 땅이 없어서 먹고 살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지파별로 기업(땅)을 분배해주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가 생겼다. 여러가지 이유로 땅을 팔기도 하고 해서, 경작할 땅이 없어지는 경우다. 그래서 ...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물고기 입을 열면

마태복음 17장 24-27절『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이 말은 비유의 말씀이다. 사람들은 성전세라는 것에 대해서 성전을 보수하고 성전에 봉사하는 일을 위하여 내는 세금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에 성전세라는 규정은 없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출애굽기 30장 12-16절에서 말한 속전을 근거로 세겔을 내라는 것이다. 속전(반 세겔)은 몸값(히브리어:코페르)을 말한다. 반 세겔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차별없이 내라는 것이다.  속전은 성막을 봉사하는 자를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반 세겔(구약성경)은 헬라(그리스)의 돈, 두 드라크마에 해당한다. 드라크마는 노동자의 2-3일의 품삯 정도다. 속전의 속은 대속의 의미를 갖는다. 속전은 몸값을 대신해서 내는 것이다. 우리의 대속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께 회개하는 자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기 아들을 죽게 하신 것이다. 피값을 사탄에게 지불하고, 회개하는 자를 사탄으로부터 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왜 속전을 내라고 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월절 어린양의 대속으로 애굽으로부터 건져주셨다. 유월절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신다.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속되었다. 대속되었으므로, 그들은 하나님께 바쳐진 백성들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고, 홍해바다를 건너 광야로 들어갔을 때, 출애굽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 유월절을 지키게 하시고, 레위사람들을 ...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누가복음 17장 11-19절『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오늘날에 많은 교회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것을 믿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약속을 믿지 않은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이 죄인을 부르러 이 세상에 왔다고 말씀하셨다. 죄인은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간들을 말한다. 그래서 자신이 하나님을 떠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자만 예수님의 말씀의 뜻을 알게된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난한 자들이요, 눈먼 자들이요, 병자들이요, 갇힌 자들이라고 표현한다. 심지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모른 자들은 귀신들린 자들이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사탄의 권세아래 있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들이다.  성경에서 열(10)은 충만한, 전체라는 뜻이다. 열 나병환자는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다. 열 나병환자는 하나님을 떠난 모든 자들을 말한다. 열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고침을 얻기 위해 왔다. 예수님이『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제사장에게 가라는 의미는 너희들은 아직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말해주신다. 예수님이 어느 나병환자를 고쳐주시고 제사장에게 가서 모세가 정한 예물을 드려서 깨끗하게 된 것을 증거하라고 하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