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21의 게시물 표시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로마서 3장 1-8절)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바울은 2장 후반부를 통해 선민이라는 자부심 속에 율법과 할례소유를 자랑으로 여기며 과시해 오고 있던 유대인들을 향해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이면적 유대인, 곧 중심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진정한 유대인』임을 강조했다. 그런 바울의 논지와 관련, 이 서신을 읽고 반박해 올 일부 유대인들의 모습을 예측하며 바울은 그들의 가상질문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바울의 지적에 대해 분명 일부 유대인들은 『그렇다면 유대 사람의 특권은 무엇이며 할례의 이로움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해 올 것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선민이라 여기며 아주 특별한 존재들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바울의 평가에 따르면 그들에게는 그 어떤 변별성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들의 예상 질문에 대해 바울은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모든 면에서 많이 있지만 무엇보다도『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점이 바...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로마서 2장 17-29절)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하나님께 율법을 받았으며, 자신들의 몸에 할례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하나님께서 특별한 대우를 해 주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맡은 사람들이기에 하나님의 뜻을 알고 선한 것을 분간하며, 어둠에 있는 사람들을 인도하는 빛이자 어리석은 자와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렇게 스스로 믿고 있는 유대인들을 향해『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로마서 2장 16절)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바울이 복음이라 말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말이다. 사도행전 17장 30-31절에서도『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라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무시무시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격려와 용기를 북돋워 주는 사랑의 하나님을 소개한다.『세상의 모든 것은 소멸되고 바뀌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는다』고 말한다. 복음은 사랑을 전하는 것인 것인가 아니면 심판을 전하는 것인가? 누가 중심인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인간 중심은 늘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은 죄인을 바라보는 심판자이시다. 그 중간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는가?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생각하는 자는 미혹에 빠진 자다.  사도바울이 17장에서 말한 곳은 그리스 아테네, 아레오바고 라고 하는 곳이며 종교재판을 하는 장소였다. 하나님이 온 우주와 땅을 창조했다고 바울은 설교한다. 그런데 설교의 마지막에『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셨고, 생명과 호흡을 주셨지만 알지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지만 이제는 어느 곳이나 모든 사람에게 명령하여 회개하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는『예수믿으면 구원받는다』고 말한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이 말은 회개한 자에게 하나...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로마서 2장 6-15절)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장은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구원사역과 인간의 참상을 낱낱이 파헤쳤다. 인간의 참상은 대단히 동물적인 욕구들, 형이하학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2장 1-15절은 다른 두 가지 형태의 죄를 폭로한다.『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사도바울은 우선, 형이상학적인 죄를 다룬다. 형이하학적 죄는 단번에 드러나지만, 형이상학적 죄는 은밀하여 자칫 은폐되기 쉽다. 죄는 발현된 것뿐만 아니라, 드러나지 않은 내면화된 것도 죄다. 예수님께서 미워하는 것이 곧 살인이며, 음욕을 품는 것으로도 곧 간음했다고 선언하셨다. 인간은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십자가에 높이 들린 인자를 바라보지 않고서는 구원받을 수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십자가에 높이 들린 죄의 몸을 하고 있는 자가 바로 나라는 사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로마서 1장 20-25절)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그것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우리는 모두 그 하나님을 찾을 이유도 없고, 그 하나님 앞에 나올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또 다른 하나의 모습은 공의(진노)라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고백하는 사랑의 하나님은 또한 진노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사랑보다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언급이 더 많다.  하나님의 진노는 죄를 용서하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나타내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죄를 그냥 용서하실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먼저 이해하고 그 진노에 대한 신앙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해야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진노를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로마서 6장에서 하나님은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시키셨고,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다. 진노 중에 가장 큰 진노는 십자가의 진노다. 인간의 모든 죄를 보시고 진노하실 수밖에 없으신 하나님은 그 진노를 십자가 위에 달리신 당신의 아들 예수...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로마서 1장 17-19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바울이 로마교회에 편지했는데, 복음에는『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 앞에 서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구약성경이나 신약성경 모든 것을 비추어 볼 때, 죄인이 주님을 만나면 죽은 자처럼 된다. 율법 판을 받으러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갈 때도, 성막을 지을 때도 그렇다. 죄인은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죄인은 하나님의 의 앞에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야만 하는데, 만날 수 없다. 그래서 회개해야만 하는 것이다.  오늘날『예수믿으면 구원받는다』고 말들을 하는데, 죄인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자기를 신뢰하고 예수도 믿는다. 사도바울이 사도행전 20장에서 자기가 죽을 것을 알고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마지막으로 만났다. 그리고『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고 전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기적을 일으키고 귀신을 쫒아내므로,『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었다. 그들의 믿음은 회개하여 믿는 믿음이 아니라 자기의 문제들을 해결받기 위한 믿음에 불과한 것이다.  복음서에서 소개하는 믿음이 이런 것들이다. 베드로도 바다 위를 걷고, 온갖 기적을 경험했던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는 예수를 세번이나 부인하는 그런 믿음의 소유자였다. 믿음은 어제의 믿음과 오늘의 믿음이 서로 다를 수 없는 것이다. 어제는 믿었는데, 오늘은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 믿음이 아니다. 과거에는 주님을 바라보고 감동을 받았을지라도, 오늘 작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로마서 1장 8-16절)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바울은 복음에 대해서 크게 두 단락으로 구성하여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단락은 로마 교회 교인들을 향한 감사와 기도 그리고 로마를 방문하고자 하는 바울의 심정을 밝히는 내용이다. 그는 로마교회를 한번도 방문하지 못했지만 마치 자신이 일하다 떠나온 것처럼 성도들에게 편지했다. 그러한 일들을 소망했고 기도했기 때문이다. 그런 감사와 기도는 자연스럽게 바울의 복음전파의 사명으로 이어진다.  둘째 단락은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에 대해 본격적으로 해설하는 내용이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고 했다. 그 같은 표현은 당시 헬라 문화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사람들을 나타낸 말이다. 네 부류라고 할 수 있지만 실은 두 부류의 사람들로 압축할 수 있다. 즉, 헬라인을 지혜 있는 자로, 야만인을 헬라 문명...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

(로마서 1장 7절)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만 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만 주어진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를 말한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라는 말은 아무에게나 아버지가 되지 않으신다.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거듭난 성도 만이 그렇게 부를 수 있다. 그 외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영적 아버지는 사탄이다. 예수님은『내 말 안에 거하지 않으면 아비가 마귀』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을 흙으로 빚으시고, 혼적인 존재로 만드셨다. 영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어야만 한다. 생명나무의 과실이 하나님 말씀이다. 그래서 말씀 안에 거하지 않으면 다 마귀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사람들이 거의 알지 못한다. 하나님이 빛을 비춰주셔서 깨닫지 못하면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은혜로 베푸신다. 사람이 살면서 나타나는 여러가지 어려움 속에서 자신의 죄악됨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회개한다면 큰 은혜가 될 것이다.  로마서 16장 20절『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하나님은 거듭난 자를 위하여 사탄을 상하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로마서와 욥기의 내용은 다 같은 이야기다. 하나님이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사탄의 공격을 허락하지만, 회개하는 자를 위하여, 사탄을 상하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어려움이 올 때, 자신을 돌아보아야만 한다. 자신이 회개하지 않고 있는 자인가 아닌가를 살펴야만 한다.  사탄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대적했다. 그는 하나님처럼 삼위일체를 흉내낸다. 그가 악령을 퍼뜨려, 모든 인간들에게 악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

(로마서 1장 1-6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서라는 이름이 말하듯이 당시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쓴 편지로 사역자가 없이 자생적으로 커 나가던 로마의 성도들에게 정확한 교리를 설명하기 위해 쓴 편지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정말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기회가 없어서 갈 수 없었다고 말한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가지 못하도록 막으신 것이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라고 생각했다. 만약 사도 바울이 로마에 가서 직접 교리를 가르치고 편지로 교리를 써야할 이유가 없었다면 우리는 위대한 서신인 로마서를 통해 복음이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로마서는 바울의 소개로 시작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구별되었는데』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복음을 위해 구별되었다고 말했다. 종은 주인의 소유이며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성도는 사탄의 종이 되었다가 예수님의 핏값으로 구속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란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사도가 되고 기독교인이 된 것을 부르심을 받고 구분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나님이 아나니아에게 나타나셔서 사도바울에게 가라고 했으며,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에게도 아나니아가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아나니아의 안수...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1장 1-5절)『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사도행전은 전편이라 할 수 있는 누가복음의 기록을 언급하며 시작하고 있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내용에 관한 것과 누가복음 끝부분에 기록된 부활에서 승천까지 40일간의 예수님의 행적을 사도행전의 서두에 언급하며 사도행전이 누가복음과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아울러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주제가 하나님 나라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데, 이는 사도행전 전개의 중심 역시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임을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본 증인들은 부활을 전하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부활의 증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전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감추어 두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간 하나님 나라의 일을 설명했는데, 성경에는 써놓지 않았다. 십자가의 일은 모든 이가 볼 수 있고, 알 수 있도록 했지만 부활은 회개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따른 400여명 외에는 보여주지 않았다.  바울이『모든 사람은 다 구원받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했다. 그러나 부활은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으셨다. 승천은 더 적은 수의 사람 만이 보았다. 로마서 10장 9절『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예수님이 주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예수를 다시 살리신 것을 믿으면 구원받는데, 부활을 아무...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마태복음 27장 55-66절)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주라 명령하거늘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 그의 무덤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났다. 요셉이란 사람이 등장하여 주님의 시체를 장사지내는 모습이 나오는가 하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무리들이 빌라도를 찾아가 예수의 무덤을 지키는 일의 허락을 받아 무덤을 막은 돌에 인봉하고 파수꾼으로 무덤을 굳게 지키게 하는 모습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함께 우리가 반드시 생각되는 인물로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란 사람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예수의 제자라고 했다. 그는 공회원이라고 했다. 공회원이란 이스라엘의 최고 재판 기관이요 종교적 의결 기관인 산혜드린공회의 의원을 말한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후 빌라도의 재판석에 서셨다. 이 기관은 이스라엘의 가장 존귀한 사람들, 대제사장, 서...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누가복음 13장 31-35절)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어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와서 자리를 피하라고 말했다.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 헤롯은 헤롯 대왕의 아들인 안티파스를 가리킨다. 누가복음 3장 1절에 따르면 이 헤롯 안티파스는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있었고, 그의 동생 헤롯 빌립은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있었다. 예수님의 활동 무대가 이 헤롯 안피파스의 지역과 겹친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게 일종의 망명을 권고한 것이다. 예수님을 꽤나 생각해주는 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위협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은 헤롯의 명령을 전달했거나 아니면 헤롯을 핑계로 예수님에게 겁을 주는 것이다. 당시에 헤롯이 예수님을 불편하게 생각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예수님과 헤롯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누가복음 9장 7-9절에 나온다. 당시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례 요한, 또는 엘리야, 또는 선지자 중의 하나가 다시 살아난 분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소문을 들은 헤롯은 마음이 꺼림칙했다. 누가복음 9장 9절에서『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가 하며 그를 보고자 하더라.』헤롯이 세례 요한을 죽인 사건은 마태복음 14장 1-12절과 마가복음 6장 14-29절에 자세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태복음 28장 11-20절)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두가지를 깨달을 수 있다. 마귀의 자식들은 마귀가 시키는대로 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명을 깨닫고 실천한다.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대제사장들이 예수가 부활했다는 말을 듣고 자기의 교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는 일을 했다. 사단의 역사라는 것은 언제나 돈을 가지고 활동한다. 세상에 마귀의 세력이 가득하므로 궤휼적인 세력은 강해지고 세상 권리를 교섭하는 일이 강해지고, 회개 없이 충동을 받는 일이 강해지므로 사탄의 자식들은 교권과 물권과 정권을 쥐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가 세상에 탄생하면서부터 마귀의 세계에서 역사하는 일도 시작되었다. 예수님의 부활을 거짓이라고 하는 사탄의 음모는 오늘날에도 대중의 심리를 끌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명은 인간이 볼 때는 너무나 미약하고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고 인간의 방법으로는 너무나 허무한 일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사탄의 세계로부터 오는 역사는 대중을 움직여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역사는 큰 박해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승리는 필...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누가복음 2장 8-20절)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미가서 5장의 예언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나 그는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여진다. 그리스도란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뜻으로 기름부음은 구약에서는 대제사장, 선지자, 왕에게 주어지는 의식이다. 그리스도에게는 이 세 가지 직분이 모두 적용이 된다. 그러므로 그는 대제사장, 선지자, 왕이시다. 그러나 그의 본래의 신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감히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그가  마구간에서 비밀스럽게 아주 초라하게 태어나셨다. 그의 요람은 짐승들의 먹이통인 구유였다. 이것은 인류를 대표하는 제2아담으로 그가 행할 역할 때문이었다. 그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사탄과 죄에 묶여있던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 놓기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가 철저하게 낮아 지심으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요한복음 11장 27-32절)『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 『베다니』라는 가난한 동네에서『나사로』라는 사람이 죽었다. 그때 나사로의 누이였던 마르다가 나온 것이다. 마르다에게『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라고 했는데, 24절에서『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했다. 이것은 진리가 아니라 교리에 해당한다.  교리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냥 지식에 불과하다. 요한계시록에서 주님이 사데교회에 말씀하시기를『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지만 죽은 자』라고 하셨다. 성경 지식으로 말을 하고 두뇌 속에서 지식으로 쌓여있을 수 있지만, 죄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다.『너희가 내 말 안에 거하고 참 나의 제자가 되면 진리를 알지니』에서『진리를 안다는 것』은『체험한다』는 말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는 성경 지식이 쌓여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받드는 자라야만 한다. 마르다가 말한 것은 지식으로 다 아는 내용이다.  예수님이『너의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와『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의 차이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24절에서『내가 바로 부활이고 생명인데,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고 했다. 사람들은 이 말을『죽은 후에 언젠가 다시 살아나겠지』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죽음은 과거형이다. 영어로 ...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마태복음 20장 17-28절)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박히고 삼일만에 살아아니라 라고 말씀하셨는데도, 제자들은『누가 크냐』라고 다투고 있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마실 잔의 의미를 모르고 있었다. 인자가 오신 목적은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었다. 대속물에서 속은 속량의 의미다. 속량은 값을 지불하고 노예를 사는 개념이다. 사탄의 지배하에 있는 사람들을 예수의 피값으로 사는 것이다.  로마서 3장 25-26절에서『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

(요한복음 1장 4-13절)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사람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대한 이 세상 사람들의 반응은 분명하게 나뉘어졌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죽음의 절망가운데 있던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을 주신 생명의 주인되심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빛되신 구원자 예수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미리 한 사람을 선택하여 보내심으로 장차 오실 빛, 구원자에 대하여 선포하도록 하였다. 이 일을 맡은 요한은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신 목적 즉, 자신은 빛이 아니요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성실히 맡겨진 일들을 감당해 나갔다.  『빛이 아니고 빛에 대해 증언하러 온 자』자신을 소개하는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가겠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이 빛이 되어 주목받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해준다. 창조주이시고, 태초에 말씀으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요한복음 1장 1-3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장1절은『태초에 말씀이 계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말씀은 창세기 1장 1절 에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는 장면을 떠올리게 해 준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로부터 물질세계(세상)를 분리해 내었다 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물질세계를 분리했을 때는 땅(물질세계)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곳이었다. 물질세계는 물로 되어 있었다.『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운행한다는 말은 알을 품은 것 같은 감싸는 의미다.  왜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로부터 물질세계를 분리하셨는가? 하나님 나라에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자기 처소를 떠난 자들을 가두기 위한 것이었다. 이사야 53장 6절에서『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양은 시각적 분별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미혹을 받기 쉬운 동물로 표현했다. 그릇 행했다는 말은 사탄의 미혹에 빠졌다는 것이다. 『각기 제 길(이쉬)로 갔거늘』하나님이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 남자(이쉬)에게서 여자를 이끌어내었다. 여기서 이쉬라는 히브리어의 단어는 아담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자들이 이 세상에 각자 들어왔다는 것이다.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다. 죄를 담당한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자들의 영을 물질세계에 내 보내는데, 육체를 가진 희생양과 같은 생명체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게 바로 아담이 역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담으로부터 하와를 분리해 내고, 그들을 통해서 후손들이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범죄한 영들을 육체 속에 가두는 것이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12...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누가복음 4장 31-37절)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다 놀라 서로 말하여 이르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  귀신들린 자는 하나님을 떠난 모든 자를 의미한다. 예수님이 귀신을 쫒아냈다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자를 사탄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것이다.『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사탄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왔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심판을 시작하기 위해서 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사탄은 예수님을 죽이면 모든 것이 자기들 의도대로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사탄을 심판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모르고 있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가르쳤다는 것은 곧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안식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히브리서 4장 8-10절에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주었다면 그건 가나안 땅이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는 그림자이다. 참 안식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있다는 말이다. 참 안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는 것이 바로 참 안식이다. 하나님이 참 안식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연결되어 있으면『...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마태복음 26장 14-25절)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가롯유다가 제사장으로부터 은 삼십을 받고 예수님을 팔았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예수님을 배반하고 팔았다. 왜 예수님의 제자인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팔았는가? 가롯유다는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선택되었지만,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예수님을 향해 주 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았고, 그 대신 예수님을 랍비 라고 부르며 선생 이상으로는 인정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12장 5-6절에서 볼 수 있듯이, 유다는 탐욕에 사로 잡혀서 예수님 뿐만 아니라 동료 제자들의 신뢰를 배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다는 단지 예수님에게 많은 추종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단체를 위해 거둬지는 모금으로부터 이익을 취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

예수를 버리는 믿음

(마태복음 26장 47-56절)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한지라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그들이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베드로는『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계시해 주셔서 알았다. 그래도 육신으로 부터 나오는 혼은 변하지 않는다. 많은 교회 사람들도『베드로가 검으로 귀를 베는 그런 식으로』믿고 따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성경은 이것을『육신』이라고 표현했다.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영은 죽는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기적을 보고 배우고 해도, 십자가의 죽음을 따를 믿음은 없는 것이다. 이것이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믿음이 오기 전의 상태는 베드로가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풍랑 위를 걷는 기적을 체험하고, 변화산의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듣고 예수를 믿는 그런 상태다.『믿음이 오기 전』이란 내적 ...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요한복음 7장 37-39절)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명절 끝날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출애굽기 23장 14절에서 하나님은 출애굽한 백성들에게 매년 세 번 절기를 지키도록 명령하셨다. 출애굽한지 49일째 되던 밤에 모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시내산으로 올라갔다. 그 다음 날, 모세는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내용을 백성들에게 설명했다. 그 내용이 23장의 내용이다. 백성들이 지켜야 할 절기로서 무교절에 대해서 14절에서『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이는 이미 애굽에서 나올 때 지켰던 것을 다시 들었다.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출애굽하는 그 날밤에 어린양이 죽었던 것처럼, 유월절에 죽으셨다. 그리고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바다를 건너기까지 고난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이는 신약시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기억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23장 16절에서『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맥추절은 바로 레위기에서 오순절로 불린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설명하는 날이 바로 맥추절(오순절)이었다. 이 오순절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성령이 임하신 날이다. 수장절은 곡식을 저장하는 절기였다. 수장절은 레위기에서 초막절로 불리운다. 그러니까 오순절에 추수를 시작하고 그리고 7월 1일(연말)에 나팔을 불면 더 이상 추수하지 않고, 저장하는 것이다. 세상의 달력은 두가지다. 로마제국에서 완성된 ...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요한복음 5장 19-24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창세기 2장 3절에서『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라고 했다. 안식은 하나님의 나라 그 자체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하나님 안에 있으면 안식이 된다. 하나님이 내 안에 성령으로 거하시면 내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하나님과 하나가 되며, 그것이 안식이다. 하나님이 창세기 1장 1절의 천지창조를 하기 전에 바로 안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생긴 것이다. 그게 바로 세상을 창조해야 할 일인 것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게 되어도 하나님 나라에서는 안식이 유지되고 있다. 즉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히브리서 4장 10절에서『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여기에서 자기의 일은 헬라어로『사적인, 개인적인』이라는 의미를 담는 말로 사용되었다. 자기의 일은 천지창조를 의미한다. 즉 창세기 2장 3절에서 천지를 다 창조하시고 나서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요한복음 11장 17-26절)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마르다가 말하기를『예수님이 하나님께 구하면 무엇이든지 다 주실 것을 믿는다』고 했다. 그래서 예수님이『다시 살리라』라고 했는데, 마르다는『다시 사는 것』을 현재적이 아닌, 육이 죽은 후 미래 마지막 날 부활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현재적이다. 죄에 대해서도『언젠가 내 죄가 사하심을 받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현재적인 죄의 사하심이다. 믿음은 지금이다.  예수님이 마르다에게 말씀하시는 것은『나는 항상 부활이요 생명이야, 나를 믿는 자는 영이 죽었었지만 살아나고, 영이 살아나면 하늘로 부터 오는 믿음의 선물을 받아 영원히 죽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말씀을 육의 관점에서 보면『나를 믿는 자는 육이 죽지만 언젠가 살아나고, 육이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문장의 구조가 대단히 어색하다. 성경의 말씀은 영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육의 방향으로 돌리고 있다.  성경 지식을 많이 알고 있다 하더라도, 지금 믿음이 중요하다. 주님이『지금 무엇을 말씀하시는가』가 중요하다. 요한복음 5장 24-25절에서『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요한복음 9장 1-3절)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이 질문에서 날때부터 맹인이 된 사람은 죄때문인가? 라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했다. 여기서 죄라는 것은 부모로부터 받은 육의 원죄인가 아니면 자기의 죄인가라는 것이다. 자기의 죄는 이 세상에 태어난 자가 자기의 죄를 안고 태어난다. 부모로부터 받은 육의 죄성이 아닌 다른 죄가 있다는 의미다. 다른 원죄는 바로 하나님 나라에서 지은 원죄를 말한다. 하나님을 떠나고 싶어서 사탄을 따라간 영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범죄한 영들을 육체 속에 가두었다는 것이다.  육체 속에 가두어진 영들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져버려 죽은 것이다. 그래서 혼적인 상태로 태어났다. 창세기 2장 7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우리말 성경과 영어(kjv)는 다르게 표현되어서 우리말 번역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다.『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생령이 아니라 혼이다. 영이 죽었으므로 혼적인 존재, 살아있는 생명체가 된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에 태어난 아담의 영을 살리기 위해 에덴동산을 창설하셔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시고, 영을 살려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게 만들어주셨다.  맹인이 된 이유에 대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다.『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 요한복음 6장 29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

(요한복음 6장 60절)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이렇게 말하기 전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55-57절에서『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하셨는데, 제자들이 어렵다고 한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성경 전체에서 짐승의 피를 마시면 안 되도록 되어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따르는데,『내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수군거리는데, 예수님이 63절에서 다시 말씀하셨다.『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사람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받아드리기 어려웠다.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는데, 예수님은 구약성경을 잘 알고 있는 니고데모에게『다시 태어나야만 한다』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을 했을까? 오늘날도『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을 했더라도 예수를 따르는 자가 있고, 어렵기 때문에 따르지 않는 자가 있다. 그냥 어려운 말은 제쳐두고 자신이 믿기 쉬운 말을 선택해서 구원에 이르고 싶은 것이다.  예수님은 65절에서 다시 말씀하신다.『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사람들은 요한복음의 이 말씀보다 마태복음의『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는 말씀에 익숙하다. 요한복음과 마태복음 두 가지가 왜 서로 차이가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