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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어 세례를 받은 자

(갈라디아서 3장 28-29절)『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어 세례를 받은 자는 예수님의 부활 생명으로 하나님이 다시 살려주신다. 이것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이다.  인간은 모두 하나님이 보시기에 진노의 자녀다. 사단에게 속아서 모르고 살았다. 에덴동산을 창설하셨을 때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지만 그 이후는 하나님 보시기에『사람들이 생각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다』고 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것이다. 마지막 때는 『노아의 때와 롯의 때와 같다』고 했다.  인간들은 율법을 무시하므로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들이 스스로 자각하는 죄가 있고, 하나님이 보여주시기 전에는 모르는 죄가 훨씬 더 많다. 그래서 하늘의 거룩한 빛이 비춰지면 사울과 같이 넘어지고 만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이 은혜다. 다윗은 시편 19편 12절에서『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라고 고백했다.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선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없이 산다면 하나님께 악한 것이다.  에베소서 2장 1-3절에서 모든 자들은 하나님께 대하여『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이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실을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다. 노아 당시 120년 동안 사람들에게 알려주셨다. 그러나 가족 7명 외에는 깨닫지 못했다. 노아와 함께 살던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당대의 의인은 노아 밖에 없었다. 노아만 하나님과 동행했다. 하나님은 노아를 통하여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이다. 당시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세상을 멸하시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한 것이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는 말은 심판받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가? 노아의 가족과...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라디아서 3장 26-27절)『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교회에서 26절의 말씀을 가르치기를 즐겨 사용하지만, 처음 교회 나온 사람에게『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라고 한다면, 처음 교회 나온 사람에게는 믿음의 의미를 모른채『내가 믿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잘못된 것을 가르쳐 주는 결과가 된다. 그래서『믿음을 잃어버리면 천국 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믿으려고 애쓰다가 잘못된 길로 가게 되는 것이다.  3장 27절에서『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그리스도의 옷은 그리스도와 합한 자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십자가에서『자기』라는 주체를 부인해야만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을 살게된다. 결국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믿음이 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자기』부인도 없으면서 내가 믿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율법 아래 매인바 되는 것이다.  3장 25절에서 말하는 바『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이 믿음은 온 것이다. 사람이 스스로 믿겠다고 결심한 그런 믿음과 다른 믿음이다.  믿음이 오는 것에 대해서 3장 23절에서도 말하고 있다.『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사도바울이 세례 앞에 이 믿음을 두 번이나 설명하고 있다.  율법 아래 매여있으면『오는 믿음』이 없다. 오는 믿음은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믿음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믿기로 결단하고 성실하게 열심히 믿으려고 하면서 성경 공부도 하고, 새벽기도도 나가고 예배도 빠지지 않고 봉사도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해서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된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갈라디아서3장25절)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라는 도시에 있는 교회에 보내는 편지이다. 그 당시 교회에는 세례받은 교인들이 대부분이다. 당시의 교인들에게 물 세례가 의미하는 것을 사도바울은 설명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물세례를 받았으므로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의가 있는 곳에 사랑이 있다. 사랑이 있다면 의가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물세례 역시 성령세례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분리되어 있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의와 사랑이 분리될 수 없듯이 물세례와 성령세례는 분리될 수 없다. 산소와 수소가 분리되면 물이 될 수 없다. 사랑은 의 만큼 담겨있다. 십자가에는 사랑만 있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다. 예수님이 인간을 대신해서 죽으셨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예수님은 우리 대신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를 초대하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나니』라고 고백하는 자만이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진노하신다. 죄가 없는 자기 아들에게 보인 진노만큼 진노하신다. 이게 의다. 성경은『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하고 있다. 죄인이 필요한 것은 의다.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회개해서 의를 얻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베드로가 말하기를 노아가 120년 동안 전한 것은 의의 도다. 세례요한도 전한 것은 의의 도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회개하고 세상으로 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오늘날 시대는『예수 믿으세요, 그러면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거짓 복음이다.  회개하지 아니한 자는 주님이 받아주지도 않는다. 우리가 회개 할 수 있는 곳은 십자가 뿐이다. 회개는 옛사람(자아)이 죽는 것을 말한다. 십자가에서 옛사람(자아)이 예수와 죽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갈라디아서 3장 22-24절)『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갈라디아서 3장 23-25절『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초등교사 라는 말은 우리 말 성경에서 몽학선생이라고 번역된 바 있었다. 몽학선생은 헬라시대, 귀족의 종(하인)이었는데, 귀족들은 자기의 자녀들을 하인들 중에서 학식이 높은 자들에게 어릴 때부터 교육을 맡겨, 그 아이가 16세가 되면, 아버지로부터 시험을 받아야 하는데, 시험을 통과하는 자에게 아버지의 모든 기업을 물려받을 수 있었고, 통과하지 못하면 육으로는 아들이지만, 법률적, 시회적으로 아들이 되지 못하는 그런 시대의 선생이었으므로, 자녀에게는 중요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갈라디아서 4장 1-2절에서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고린도전서 4장 15절에서『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여기서 스승이 바로 초등교사(몽학선생)와 같은 의미다. 성경에서는 율법이 바로 초등교사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이 말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면서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많지 않다고 했다. 즉 자식을 낳은 자가 많지 않다는 것...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

(갈라디아서 3장 15-18절) 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사도바울은 언약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약속의 자녀와 땅을 주신다는 것이다. 약속의 자녀는 세상적으로 말하자면 이삭과 가나안이 되지만,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이시요, 약속의 땅은 하나님 나라다. 그런데, 이 언약은 율법으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약속으로 말미암은 것이다.『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이 세상에도 수많은 법들이 존재한다. 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낙원과 같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제재를 가하므로서 세상이 더 이상 악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율법은 범법하기 때문이다.  범법은 인간의 죄성으로 인하여 율법을 어기는 것, 죄를 짓는 것을 말한다. 인간의 죄성은 원죄를 말한다. 원죄는 하늘의 원죄와 땅의 원죄가 있다. 원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영들이 사탄의 미혹을 받아서 하나님을 떠나고자 한 것이 하늘의 원죄다. 그래서 이 세상에 갇혔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에덴동산에 들어갔지만, 사탄의 미혹을 받아서 죄에 빠지게 된 것이다. 디모데전서 2장 14절에서『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죄에 빠졌다는 것이 범법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적은 모든 인간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떠난 존재들이라는 것을 깨...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갈라디아서 3장 10-14절)『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율법을 완성시켰으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또한 마찬가지로 율법에서 벗어났는데,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믿는 자가 스스로 율법을 지켜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율법을 세우면, 그것이 기준이 되어 하나님이 그 율법대로 판단하신다는 것이다. 자기가 쳐놓은 덧에 자기가 걸려드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2장 18절에서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모든 죄인들은 율법에서 완전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 사람들 대부분,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믿지만,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율법을 바라보고 지켜나간다고 생각한다. 즉 율법을 지켜나가는 것은 구원이 아니라, 다만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데서 기인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예수를 믿는 믿음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는 것은 단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다는 것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연합되는 믿음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로마서 6장 3-4절에서 『...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갈라디아서 3장 7-9절)『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다』는 것을 믿는 자는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갈라디아서 4장 4-6절에서『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는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자만 그렇게 부를 수 있다. 그래서 율법으로 부터 속량이 된다.  율법을 지켜행해야 한다는 말은 그리스도가 내 안에 없다는 말이다. 율법을 지켜행해야 한다는 말은, 다시 율법으로 그리스도를 하늘에서 이 땅으로 끌어내리는 모양이다. 그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을 하면서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율법을 지켜행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믿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을 지켜행하는 것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율법을 지켜행하려고 하는 자들은 그 속에 성령이 계신 것이 아니라 사탄의 영이 그 안에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10장 10-12절에서『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갈라디아서 3장 4-6절)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이 믿음은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이 의로 여기심을 받은 백세 때의 믿음이다. 3장 2절에서『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섞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믿음으로 성령을 받은 것이 아브라함이 백세 때의 믿음으로 이것을 그에게 의롭다 함을 정하심과  같다는 말씀이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갈대아 우르를 떠났는데, 그래서 그 때 부터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었다. 짐승을 쪼개게 하시고,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서 그 쪼갠 짐승 사이로 횃불이 지나가게 하므로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내가 너에게 후손을 주겠다. 그리고 너에게 땅을 주리라』아브람이 『이를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라고 반응하니 바로 이 횃불로 약속하신 것이다. 그리고 아브람은 멜기세덱이라고 하는 하늘의 제사장도 만나는 영적 체험을 한다. 그런데도 이스마엘을 낳는 것이다.  성경을 읽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멜기세덱을 만나는 영적 체험을 해도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이 열두살이 되었을 때, 백세가 되었을 때, 육체로부터 생명이 나올 수 없을 때까지 기다리셨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이 99세 때 나타나셔서『아브라함아 내년에 약속한 자녀를 주리라』라고 하셨다. 속으로 웃으며 『내가 백세(사래는 구십세)나 되거늘 내가 어찌 자녀를 낳으리료, 이스마엘이나 살게하소서』라고 대답했다.  아브람은 99세까지는 육신의 생각 밖에는 없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한다. 그 해에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할례를 명하셨다. 할례는 육신을 제거하고 씨의 약속을 ...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갈라디아서 3장 1-3절)『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그러나 kjv 성경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완전해지려 하느냐(Are ye so foolish? having begun in the Spirit, are ye now made perfect by the flesh?)』라고 되어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밖힌 것이 밝히보이는데, 그렇다는 것이다.  이게 구약성경의 아브라함의 이야기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너는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데, 하나님의 영이 아브람에게 역사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아브람에게는 두 자녀가 있었다. 갈라디아서 4장 22-23절에서『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다. 두 여자는 두 언약을 가리킨다. 하나는 시내산으로 부터 종을 낳은 여자 하갈이다. 여전히 율법을 지키고 성전을 지키는 유대인들이 그 후손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어머니는 하갈이다. 지금 있는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그런데 사라는 4장 26절에서『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사도바울의 눈에 이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하갈로 보이고, 하늘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어머니 사라로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유대교를 완전히 벗어나, 자유함을 입은 것을 말해준다.  4장 28-29절에서『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갈라디아서 2장 20-21절)『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바라보는 시각과 이방인들이 유대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먼저 유대인들의 시각을 살펴보면 신명기 7장 1-4절에서 잘 나타난다.『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센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선민 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기들은 율법을 잘 지키고 있으므로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방인을 바라볼 때, 그들은 죄인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이방인들과 함께 교제하는 것은 율법에 어긋나는 것으로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이방인들도 율법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알고 있었으므로 의도적으로 유대인들을 기피했다. 그런데, 유대인이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한 것이다. 베드로는 환상 중에 부정한 동물이 하늘에서 보자기에 싸여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하나님이 먹어라는 것이다. 부정한 동물은 이방인을 상징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고넬료에게...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

(갈라디아서 2장 1-4절)『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사도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 삼년동안 있다가 베드로를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게된다. 그리고 고향 다소에서 지냈다. 바나바가 다소에 있던 바울을 찾아가서 안디옥으로 가서 활동하도록 권유받고 바울은 바나바와 다시 안디옥으로 갔는데, 가서 활동하는 중에 유대인들이 지키는 율법의 문제를 들고 2장 1절에서『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라고 말한다.  당시 안디옥 교회에 유대인들이 들어와서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가르쳤던 것이다.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의 교회였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의 신도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으로 파견하여 이 문제를 매듭짓게 한 것이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 총회가 열리기 전에 베드로와 야고보 등과 만나서 사전에 안디옥 교회의 상황을 전했다.  갈라디아서 2장 2-4절에서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그래...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갈라디아서 2장 5-10절)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사도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가서 지내다가, 3년후에 예루살렘에 베드로를 만나기 위해서 갔었으며, 14년이 지나서 예루살렘에 간 것이다. 사도행전 15장에서 나타나는 사건들과 동일한 사건이다. 사도행전 15장에서 사도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에 가게된 이유는 안디옥 교회의 문제와 동일한 문제인 율법에 대한 것이었다. 안디옥 교회에서 사도바울이 성도들을 가르쳤다. 바울이 다소라는 그의 고향에서 7년간 거주하고 있었는데, 바나바가 찾아가서 안디옥 교회를 맡아보라는 권고에 따라 사도바울이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이 도착하기 전에 유대인들이 그곳에서 율법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었으므로 큰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비단 안디옥 교회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교회도 같은 문제로 당면하고 있었다.  사도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 가서 율법에 의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인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가르침에, 안디옥의 신자들이 혼란에 빠진 것이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에서 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갈라디아서 1장 11-12절)『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복음은 그리스도의 계시로 된 것이지, 사람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만히 몰래 들어온 다른 복음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직접 계시한 것이다. 다른 복음은 율법주의자들의 말을 따라가는 것이다. 결국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율법을 따라 행하면 저주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생명을 얻지만, 율법 아래 있으면, 저주를 받게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1장 8절에서『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교회 안에서도 두 종류의 신도들이 있다. 예수를 믿지만 율법을 잘 지켜 죄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와,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신도들이 있다. 물론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 라고 말하지만, 그 믿음 역시 자기의 믿음인지, 하늘로부터 온 그리스도의 믿음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자기가 믿는 믿음은 여전히 율법에 갇혀있는 것이다. 오직 하늘로부터 믿음이 와야만 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여기서『계시될 믿음의 때』는 율법을 통하여, 의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않으면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를 말한다.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이 곧 그리스도의 미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나의 미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그리스도 안으로 들...

다른 복음은 없나니

(갈라디아서 1장 7-10절)『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쓰게된 배경에는 율법을 신봉하는 유대주의자들 때문이었다. 그래서 율법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으며,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이 서신을 썼다. 사도행전 15장 1-2절을 보면, 사도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서 성경을 가르쳤는데, 유대주의자들이 등장한다.『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안디옥교회는 이방인 중에서 처음으로 생겨난 교회였다. 그런데, 유대주의자들이『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라고 말하므로 혼란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고, 총회가 이루어져서 정리가 된다. 베드로가 말하기를 다시는 율법이라는 멍에를 메게하지 말라고 했다.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라고 말했다. 조상들도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서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셨는데, 다시 하나님을 시험하려는가 라는 것이다.  사도행전 15장 2...

다른 복음을 쫒는 것

다른 복음을 쫒는 것 (갈라디아서 1장 1-6절)『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쫒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사도바울의 일곱 교회 서신 중에서 고린도교회와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하면서『이러한 자는 저주를 받으라』고 말을 했다.『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성령의 법이 우리를 해방하였다』고 말하면서『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두번이나 말을 했다.『다른 복음을 전하면 천사라 할지라도 안된다』고 했다. 바울이 왜 이렇게 강력하게 말을 하게되었는가? 우리는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약 100여년 동안 현대교회에서 다른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갈라디아서 3장 1절에서『어리섞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힌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라고 말했다. 계시록에는 죽임 당한 어린양을 노래한다. 그리고 일곱교회에 보낸 편지에『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시작한다. 거기에 성령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 아들의 복음 안에만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바로 만날 수 없다.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을 직접 만날 수 없었다. 야곱 조차 환도뼈가 부러진 다음에 말하기를『내가 그 분의 얼굴을 뵈었는데, 죽지 아니하였도다』그렇게 말을 했다. 우리는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도 없지만 만나면 죽게된다...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고린도후서 13장 1-13절)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리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그는 너희에게 대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 . . . .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13장은 서신의 마지막 장으로써 사도 바울의 고린도교회를 향한 권면과 끝인사로 구성되어 있다. 이 권면에는 사도 바울의 다른 서신들에서 나타나는 끝 인사의 일반적인 권면과는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고린도후서는 사도 바울의 대부분의 다른 서신들이 교리나 신학적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과는 달리 개인적 경험과 신앙적 체험이 포함되어 있다. 고린도후서의 특징을 이해한다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를 통해 고린도교회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강조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를 첫 번째 방문(A.D.51년경)한 것은 사도행전 18장에 기록되어 있듯이 사도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때였다. 고린도는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지로써 같은 아가야 지방에 속한 아덴(그리스 아테네)의 다음 행선지였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천막을 만드는 생...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고린도후서 12장 1-10절)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비난받았다. 만약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의 배반에 치를 떨었다면, 그는 서신서를 통해 자신을 배반한 교인들을 인정사정없이 공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시종일관 고린도 교인을 향한 사랑과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그는 10장부터 12장18절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혼란에 빠뜨린 거짓 교사들과 자신을 비교해가면서 여러 상황들을 설명하고 있는 이유는 혹여 자신이 전한 복음에 대한 오해로 인해 고린도 교인들이 그리스도인으로 바로 서지 못할까...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고린도후서 11장 16-33절)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내가 조금 자랑할 수 있도록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 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나는 우리가 약한 것 같이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고린도후서 11장 16절에서 33절까지의 말씀은, 고린도후서를 크게 셋으로 나누었을 때 마지막 부분...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고린도후서 11장 1-15절)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 . . . . . 나는 내가 해 온 그대로 앞으로도 하리니 기회를 찾는 자들이 그 자랑하는 일로 우리와 같이 인정 받으려는 그 기회를 끊으려 함이라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 하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뱀에 관한 이야기다. 뱀은 하와를 미혹하여 하나님께 범죄하게 했다. 고린도교회에도 뱀이 있었다. 뱀은 번듯한 모습으로 고린도교회에 다가갔다. 뱀은 예수와 영과 복음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뱀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뱀은 의도를 가지고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으로 미혹한다. 뱀은 예수와 영과 복음을 말하는 듯 하지만 다른 예수와 다른 영과 다른 복음을 고린도교회에 심는다. 복음을 운운하며 교묘하게 복음을 왜곡하는 오래된 방식...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고린도후서 10장 1-18절)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또한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 . . . . . . . . . . 이는 남의 규범으로 이루어 놓은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역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변호의 말씀이다. 고린도교회 안에 바울에 대해 바울은 비겁하고 이중적이며 육적인 정욕의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바울은 하나님의 사도가 아니라고 한 것이다. 그럼에도 바울은 사도의 자격과 권위로 그렇게 말하는 자들을 담대하게 대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그런 비방과 모함에도 위축되지 않고 사도됨의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그런 자들을 대하겠다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울의 삶이 이미 사도됨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런 사실을 이미 고린도전서 9장2절에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라고 말씀하며 고린도전서 4장 16절과 11장 1절에『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사도됨은 ...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고린도후서 9장 1-15절)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 년 전부터 준비하였다는 것을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의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분발하게 하였느니라 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 . . . . . .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로 말미암아 넘쳤느니라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그들과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또 그들이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바울이 고린도교회가 받은 은혜만큼 연보를 미리 준비하여 교회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라고 하였다. 헌금과 연보에 대해서 정확하게 잘 알아야만 한다. 예수님이 부자들과 과부가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고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과부가 훨씬 많이 헌금을 했다는 것이다. 구약시대의 헌금과 신약시대의 헌금은 의미가 다르다. 어떤 교회에서는『구약시대의 십일조가 신약시대는 연보로 바뀌었다』고 말하는 목사들도 있다. 예수님은 헌금이라고 했는데, 목사들은 연보라고 한다.  연보라는 말은 구약시대에서 사용되었으며, 연보궤는 구약시대에서는 보물창고, 국고창고의 개념이다. 히브리어는 리시카, 헬라어는 가조필라케오로 번역되었으며, 하나님의 성전 뜰에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 창고를 말하는 것이다. 신약시대 교회에 작은 헌금통이 아니라는 ...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

(고린도후서 8장 16-24절) 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가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고 또 그와 함께 그 형제를 보내었으니 이 사람은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 이뿐 아니라 그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아 우리가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아무도 우리를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또 그들과 함께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었노니 우리는 그가 여러 가지 일에 간절한 것을 여러 번 확인하였거니와 이제 그가 너희를 크게 믿으므로 더욱 간절하니라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료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에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그들에게 보이라  『기록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출애굽기 16장 18절의 말씀을 연상시킨다. 출애굽 한 후 광야에서 먹일 것이 없어 굶주리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하늘에서 내려주신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가 있었음을 말해주는 부분이다. 하나님은 만나를 주시면서, 하루에 필요한 이상의 양은 거두지 말라고 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 다음 날 아침에는 그 날에 맞는 신선한 양식을 준비해놓으시고 제공해주시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이 아침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묵은 양식이 아닌, 신선한 양식을 먹여주셨다. 그들이 아침 일찍 장막주위에 나가 거두어드린 만나는 한 사람 먹기에 부족함 없는 충분한 양이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날마다 공급하신 하나님의 공급 하심이었다.  거두어들인 만나의 양이 개인마다 다 편차가 있을 텐데, 가족마다 가족 수가 다 다를 텐데 놀랍게도 남지도 않았고 모자라...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8장 1-15절)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그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 하였노라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로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일에 관하여 나의 뜻을 알리노니 이 일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 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이제는 하던 일을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완성하되 있는 대로 하라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균등하게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기록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사도 바울은 이미 고린도전서 16장에서도 연보, 즉 헌금에 대해 이야기 했다. 고린도전서 16장 2절에서『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이 말씀은 헌금의 시기와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고린도후서 7장 1-16절)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우리는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서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를 정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나는 너희를 향하여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 . . . . . . . . . . .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가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로 말미암아 안심함을 얻었음이라 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 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가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 그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과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내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  교회와 세상을 구별하며 교회를 교회되게 해주는 것은 거룩함이다. 교회되게 하는 것은 교회의 본질이 드러나는 것이다. 교회의 본질은 십자가다. 즉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들의 모임이라는 것이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성령이 함께 하는 성도들이다. 성도들이 교회이며, 성도들이 모인 곳이 교회인 것이다. 그래서 성도들 간에 말씀 속에 들어가, 말씀으로 교제를 나누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죽은 자임을 기억하고 세상과 싸울 힘을 얻는 것이다. 죽은 자는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요, 죄에 대해서 죽은 자임을 기억해야만 한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고린도후서 6장 1-18절)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고린도후서는 한숨과 기도로 적은 편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