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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요한복음 16장 12절『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성령이 임하기 전에는 알지 못하지만, 진리의 성령께서 성도를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16장 13절『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진리의 성령께서 제자들을 십자가로 인도하신다. 십자가 만이 진리가 되는 것이다. 십자가를 말하지 않는 것은 진리의 성령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의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인지 아닌지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것을 믿는 성도에게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성도를 깨닫게 해 주신다. 호 로고스께서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가셔서 성도와 더불어 교제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16장 14절『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성도가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은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나타내시는 것이다.  16장 15절『무릇 아버지(성부)께 있는 것은 다 내(그리스도)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성령)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아버지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역하시고,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해서 사역하신다.  16장 16절『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성령의 일을 말씀하신 예수님은 이어 애매한 말씀을 하신 것이다. 특히 『조금 있으면』, 곧 『잠시 후면』이 여러 번 반복되고 있는데, 예수님 말씀하신 대로 잠시 후에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일이 일어났듯이, 우리가 예수님을 모르던 그때로부터 잠시 후에 우리가 죽음과 부활의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알았고, 잠시 후에 예수님이 다시 오심을 알고 있듯이, 인생의 시간이 길어도 긴 것이 아니요, 기다림의 순간이 긴 것 같아도 긴 것이 아님을 알고, 끝까지 살아계신 ...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한복음 16장 1-11절)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16장 1-2절『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성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때, 주위에 있는 신자들이 비방하고 이단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죽이는 일까지 벌어진 것이다. 오늘날도 종교화된 교회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면 싫어하신다. 이렇게 하는 일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16장 3절『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에그노산) 못함이라.』에그노산은 기본형이 기노스코이다. 이 말은 히브리어 야댜와 같은 말로서 관계를 통하여 아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오직 지식으로 알고 있음을 말해준다. 지식으로 아는 자들은 결국 종교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요한복음 15장 18-27절)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15장 18-19절『세상(호 코스모스)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호 코스모스는 표면적으로는 물질세계를 의미하나, 이면적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예수를 핍박하는 자들이다. 즉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의미한다. 오늘날에는 이단을 포함한 종교화된 교회를 의미한다.  15장 20절『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톤 로곤)도 지킬 것이라(에페테산)』톤 로곤은 심령 속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의미...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요한복음 15장 1-2절『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메 페론 카르폰)는 아버지께서 그것을(아우토) 제거해 버리시고(아이레이)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카다이레이) 하시느니라』아이레이는 들어올리다 라는 의미다. 제거해 버린다는 말은 번역의 오류다. 아우토는 그 가지다.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가지가 된다. 메 페론 카르폰은 “열매를 아직 맺지 않은” 이라는 의미다. 즉 열매를 아직 맺지 않은 가지는 들어올린다는 말이다. 들어올리기 위해서 가지를 고정대에 묶는다. 그래서 열매가 맺게 해 주는 것이다. 카다이레이는 포도열매가 맺히면 열매가 잘 자라도록 주변의 보잘것 없는 열매들을 제거해 버리는 것이다. 즉 포도 알이 풍성하게 되기 위해서  솎아내는 작업을 깨끗하게 한다고 번역해버린 것이다. 개역개정으로 볼때,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있는 자도 열매가 없으면  잘라버린다는 의미가 되는데, 그렇지 않다. 열매가 없으면 열매가 맺도록 잘 관리해주는 것이다.  15장 3-4절『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디아 톤 로곤)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디아 톤 로곤은 심령 안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자들은 이미 깨끗해 진 자들이다. 즉 열매가 풍성하게 잘 열리도록 주변에 작은 열매들을 제거해 준 그 가지들이다. 그래서 호 로고스인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는 것이다. 가지는 나무에 붙어있기만 하면 열매를 맺는다.  15장 5-6절『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한복음 14장 15절『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엔트라스)을 지키리라』 엔트라스는 명령이다. 개역개정에는 계명으로 되어있다. 마치 율법적인 느낌을 준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당부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언제까지나 함께 계실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명령을 지키리라』 명령은 심령 속에서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명령은 사랑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요한복음 13:34-35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새 명령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이 말씀은 영에 대한 말씀이다. 죽어 있던 영이 살아나서 거듭나게 되는 것이 하나님께 대하여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고, 이웃의 영을 살리는 것이 또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온 인류를 사랑하셨다. 그러나 사랑이전에 십자가의 죽음이 있어야 한다.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의 공의이시다. 공의가 없는 사랑은 아무 사랑도 아닌 것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 사랑도 공허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당부하시는 것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합되어 그 분의 십자가가 성도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14장 16-17절『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알론 파라클레로톤)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알론은 약간 다른 것이고 파라클레톤은 옆에서 돕는 분이라는 의미다. 보혜사가 있는데, 또 다른 보혜사가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보혜사가 두 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요한복음 14장 1절『너희는 마음에(헤 카르디아) 근심하지 말라(메 타라쎄스도) 하나님을 믿으니(에이스 톤 데우) 또 나를(에이스 에메) 믿으라』헤 카르디아는 마음이 라는 의미로 주어이다. 메 타라쎄스도는 근심되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이 있으면 근심되지 않는다. 에이스 에메는 내 안으로 들어와서 라는 의미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그 분을 의지하여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이다.  14장 2-3절『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파라렘프소마이)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거처를 예비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에서 집을 짓는 것은 성도의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가 임재하는 것으르 의미한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파라렘프소마이는 파라(옆에서)와 렘프소마이(받아드리다)와 합성어이다.  14장 4-5절『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오이다테)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오이다테는 알아왔다는 완료형이다. 너희는 알았지 않느냐 라는 것이다.  14장 6-7절『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메 디 에무)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에그노카테)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그노세스데)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메 디 에무는 나를 통하지 않고는 이라는 의미이다. 길이라는 의미는 그리스도가 목적지가 된다. 에그노카테는 현재완료이고, 그노세스데는 미래이다. 둘 다 관계를 통해서 아는 것을 의미한다.  14장 8-9절『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

새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 요한복음 13 장 21-38 절 )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니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자가 없고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한복음 13장 1절『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메타베)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아가페사스)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아가페센)』메타베는 장소를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돌아간다는 말은 원래의 장소로 돌아가는 의미가 된다. 예수님이 원래 있던 곳은 아버지의 집이다. 성도의 입장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시는 곳은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는 지성소로 돌아가는 것이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다. 예수님이 그들을 지켜 나가신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유월절은 가장 중요한 절기라고 할 수 있다. 유월절이 있어서 이스라엘이 존재할 수 있고, 유월절이 있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애굽으로부터 불러내신 백성이 될 수 있었다. 유월절 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시간적인 의미만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유월절 어린 양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의도적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1장에서 세례 요한은 주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표현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도 요한 역시 주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드러내실 때가 되었음을 유월절이라고 하는 시간적 배경 속에 담아 두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예수님이 자기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끝까지는 마지막까지라는 의미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주님이 살아계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하셨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끝까지는 죽음 이후에도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까지라는 말도 포함되어 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는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는 하나님 나라이다. 아가페 사랑은 가치에 대한 사랑이다. 그 가치는 죽었던 영을 살리는 일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와 영을 지켜주시는 것이다.  13장 2절『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가롯유다는 돈 궤...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요한복음 12장 41-50절)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12장 41절『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이사야 53장의 고난 받는 종의 모습을 인용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우아하고 장엄하고 화려한 왕의 모습이 아니라 초라하고 부족한 모습의 왕, 그러나 인류를 위해 친히 낮아지신 고귀한 사랑을 그려낸다. 이사야를 통해 주신 말씀은 신약에서 성취된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유대인들에게 달가울리가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기대와 본성과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힘이 없다.  12장 42-43절『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유대 관리 중 믿음을 지닌 사람들이 꽤 있었다고 기록한다. 그런데 그들은 공동체에서 쫓겨날까 두...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요한복음12장37-40절)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사도바울이 말한 것을 사도행전의 마지막에 기록한 내용이다. 사람들의 생각은 성령의 능력을 입게되면 저절로 회개가 일어난다고 믿는다.  사도행전에서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는데, 성령의 역사가 이사야서에서 언급한 내용과 같이 이렇게 제목에서 보듯이 끝난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래서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간다는 말이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는데, 그런데도 28장에 와서는 이방인에게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이방인에게로 가노라』 라고 말한다.  마가복음 4장 1-10절까지 예수님이 씨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시고는 11절에서『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12절에서는『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네가지 밭에서 길가에 뿌린 씨는 하나님 말씀을 새가 쪼아먹는 것이고 그 새는 마귀이다. 성경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바로 마귀의 방해 때문이다. 두번째는 돌짝 밭이다. 하나님 말씀을 심었지만 그 흙속에 돌이 있는 것을 먼저 기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의 싹이 자랐지만 햇빛이 나면 말라버린다. 말씀으로 인한 핍박과 어려움이 올 때, 통과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세번째는 가시떨기 밭이다. 하나님 말씀이 심겨졌지만 가시떨기(탐심) 때문에 자라지 못한다는 말이다. 탐심은 세상의 염...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요한복음 12장28절『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영광은 승리자가 하는 표현이다. 예수님이 그 승리의 결과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이 아버지께는 영광이 된다.  12장29-30절『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천둥이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하게 들어야 하나님의 메시지를 알게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천둥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12장31절『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세상의 통치자가 사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바뀌는 것이다.  12장32-33절『내가 땅에서 들리면(휲소도)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휲소도는 들림이 아니라 높힘을 받으면 이라는 의미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높이면 예수님은 높이는 자를 이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드려지는 예배가 중요한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은 부활이 있기 때문이다. 그 분은 부활하시고 성도의 심령 속으로 임재하여 오시는 것이다.  12장34절『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인자는 그 사람의 그 아들이다.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여기도 들린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로 부터 높힘을 받는 것이다.  12장35-36절『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요한복음 12장 12-13절『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많은 무리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배웅하러 나왔다. 그리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기쁨의 함성을 외쳤다. 그들은 저마다 호산나를 외쳤다. 호산나는 『구원하소서』의 의미를 가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의 통치로부터 해방되고자 하였고 그들의 숙원을 이룰 왕을 찾았으며 정치적인 자유를 외쳤다. 따라서 그들이 원하고 기다렸던 영웅은 이스라엘의 왕좌에 앉아 자신들을 통치하며 로마로부터 구원해낼 자였고 그들이 본 예수님이 이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셨다. 오천 명을 먹이신 것과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리신 주님의 기적 가운데, 그들이 원하는 것은 마치 자신을 해방시킬 마법과도 같은 하나님의 강한 힘이었다. 하나님의 힘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영웅, 그것이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시는 모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하였다.  12장 14-16절『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휴론) 타시니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휴론은 발견하다 라는 의미다.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 그들이 보고 들은 기적은 전투마를 타고 입성하는 마치 하나님의 오른손을 붙잡고 있는 힘 있는 장군의 모습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힘으로 자신들을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로마 병정을 단번에 무너트릴 천상의 칼을 소유한 영웅을 바라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원하는 영웅의 모습을 이해하셨다...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요한복음 12장 1-2절『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가족처럼 지내던 베다니에 있는 나사로 집에 방문하신 것이다. 그 이유는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함이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과 가까워, 유대인들에게 붙잡혀 죽을 수도 있는 곳이었다. 『그들이 예수를 찾으며 성전에 서서 서로 말하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가 명절에 오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이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신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음이러라.』유대인들과 대제사장들이 이미 예수님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잡아들이기 위해 이미 체포 명령이 내려진 상태에서 예수님은 나사로의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찾아오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사로 가족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주님을 위해 잔치를 준비하였다. 여기에는 네명의 중요 인물이 등장한다. 첫째, 나사로다. 나사로는 이 잔치가 있게 된 중요한 원인을 제공하였다. 몸이 약해 죽었다가 예수님으로 인해 다시 살아난 기적의 대상자요,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 사람들과 친밀하게 교제하고, 예수님을 직접 전하고 증거 하는 역할을 맡았다. 나사로의 증거와 섬김으로 인하여 복음의 도구로, 통로로 쓰임 받게 되었다.  둘째는 마르다이다. 마르다는 직접 식탁을 준비하고, 시중을 들면서 마음의 존경심과 사랑을 표현하였다. 이전에 분주한 일로 예수님께 책망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그런 책망을 핑계로 불편한 마음을 갖지 않았고, 마르다는 자신이 가진 은사를 따라 변함없이 계속해서 주님을 섬기고 봉사했다. 마르다가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즐거운 방법은 대접을 위해 손으로 직접 일하는 것이었다.  12장 3절『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요한복음 11장 45-46절『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으나(에피스튜산 에이스 아우톤)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알리니라.』 마리아는 신앙심이 깊은 여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유대인들은 마리아와의 친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죽은 나사로가 있는 무덤까지 오도록 하고 표적과 기적을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온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된 것이다. 에피스튜산 에이스 아우톤은 그의 안으로 들어가 순간 믿었다는 것이다. 에피스튜산은 아오리스트 시제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유대인들 중 몇사람은 예수를 떠나 바리새인에게 가서 이 일을 알렸다. 같은 유대인이지만 이렇게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다.  교회 안에도 두 종류의 믿음이 있다. 자기가 믿는 믿음과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이다. 거듭난 자의 믿음은 모든 자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아서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받은 믿음이다. 내가 믿겠다고 되는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믿음 뿐이다. 디도서 1장 1절에서『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이 바로 십자가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믿음이다.『부르심을 받은 자는 많지만 택하심을 입은 자는 적다』라고 말했다. 구원의 기준은 택하심을 입어야만 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메시야를 보냈지만 아무도 믿지 않고 그를 십자가에서 죽여버렸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방인을 부르신 것이다. 그런데 예복을 입지 않은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 예복은 의의 옷이라고 한다. 정결케 된 자를 말한다. 예수님의 언약의 잔을 마시는 자가 정결케되는 자들이다. 언약에 참여하는 자는 그 잔을 함께 마시는 것이다. 그 잔은 십자가에서 흘리는 피에 참여하는 자의 잔이다. 십자가의 예수와 함께 죽음에 참여함을 나...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 요한복음 11 장 33-44 절 )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   나사로가 병이 들어서 죽게된 것이 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잘 알아야만 한다 . 요한계시록 21 장 23 절에서『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여기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빛이시다 . 출애굽기 34 장 29 절에서『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이것에 대해서 사도바울이 고린도후서 4 장 6 절에서 대비적으로 설명한다 .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요한복음 10장 22-23절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겨울에 있는 이스라엘의 절기, 수전절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수전절은 예루살렘 성전 재봉헌을 기념하는 절기다. BC 167년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안티오쿠스4세는 이스라엘의 헬라화 정책의 일환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헬라 신전으로 바꾸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 제단에 율법이 부정하게 여기는 죽은 돼지를 제물로 바쳤다. 이로 인해 분노한 이스라엘 백성의 민심을 등에 업고 마카비를 중심으로 성전 탈환과 독립투쟁이 일어났다. 이는 3년후인 BC164년 성전탈환과 성전예배 회복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는데 이를 기념하는 명절이 수전절 곧 성전 봉헌절이다.  성전을 거니는 것은 성전을 회복하는 분이 자신이라는 것을 나타내심이다. 성전회복을 기념하는 이스라엘의 명절, 수전절에 예수님은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고 계셨던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되시는 예수님을 깨닫지 못하고, 절기만 지키는 것이다.   솔로몬 행각은 성전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이방인의 뜰 영역 동쪽에 위치해 있다. 기둥들이 서 있고 지붕이 덮여져 있어서 성전에 들어오시면 예수님은 이곳에서 주로 사람들과 대화 나누시고 말씀을 가르치셨다. 이곳은 이방인들의 출입이 가능한 영역이었기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면 이방인이라도 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성전에 오시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곳에 자주 들리셨다. 예수님 승천후에도 사도들과 믿는 자들이 함께 모였던 장소이기도 했다.(행5:12) 10장 24절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에이 쉬 에이 호 크리스토스)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에이 쉬 에이 호 크리스토스는 『당신이 그리스도같이 보이는데, 당신이 그리스도라면』 의미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생각했지만, 완전하게 믿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믿음...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요한복음 11장 17절『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죽은 자는 어둠에 있는 자임을 의미한다. 구원의 시작은『자신이 어둠 속에 있구나』라는 것을 깨닫는데서 부터 시작한다. 전에는 영적으로 죽었지만 살아나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 단순히 부활을 믿는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영적으로 살아서 믿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 영이 죽은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 영이 곧 생명이라는 말이다.  11장 18-20절『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에쿠센) 곧 나가 맞이하되(휘펜테센)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많은 유대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좋은 자들이다. 에쿠센은 아오리스트 시제이다. 마르다가 사람의 말을 들은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음성을 들은 것이다. 성령의 음성이 집에 그대로 앉아서 기다리라는 것이다. 휘펜테센은 휘포와 안티라는 동사의 합성이다. 이 말은 반대하는 의미를 갖는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빨리 오셔야 하는데, 지체하고, 나사로가 죽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성령의 음성에 반대해서 집에 대기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맞으러 나간 것이다. 마리아는 집에서 머물렀다.  심령 속에 울리는 음성은 세가지가 있다. 하나님의 음성과 자기 생각과 마귀의 음성이다. 영적 분별이 필요하다. 그 음성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는가를 잘 살펴보아야만 한다. 하나님 나라인가 아니면 세상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음성이 들렸는데, 세상적인 것이라면 마귀의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하와가 마귀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 처럼 될 수 있다고 선악과를 먹은 것이다.  11장 21-22절『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마르다의 신앙은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의 신앙과 다를...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요한복음 10장 1-2절『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디아)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에이세르코메노스)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아나바이온)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디아는 통과하여 라는 의미다. 에이세르코메노스는 중수디포테로서 의지를 써서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아나(위)바이온(올라가다)은 하늘로 올라가는 의미다. 양의 문을 통과해서 하늘로 올라가야 하는데, 다른 문을 통해서 하늘로 올라가려고 하는 자는 다 도둑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양의 목자는 문으로 들어간다』고 하셨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들이 진정으로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고 싶은 거냐? 그렇다면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베푸는 구원을 받아들이고 나에게 배워라.』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임을 자처하는 그들에게 참된 목자의 모습이 무엇인지 이렇게 일러주고 계시는 것이다.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로 올라가야 하는, 어떤 목사를 통해서 하늘로 올라가려고 하는 자들도 있다는 말이다.  10장 3절『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에쿠에이)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다. 『너희들이 나를 어리석은 백성들의 지도자라고 하지만 사실은 너희들이야 말로 도둑이자 강도와 진배없다. 너희들은 문으로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아주 강한 어조로 바리새인들을 향해 날 서린 말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 표현은 9장의 맹인과 주님의 관계를 떠올리게 해준다.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은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눈을 떴다는 사실보다 그를 치료해준 이가 불법을 저질렀다는 점에 더 격분했다. 그리고 급기야 맹인을 출교시키고 말았다. 그들은 맹인의 목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맹인은 자신을 고쳐준 주님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믿음을 시...

네가 인자를 믿느냐

요한복음 9장 22-23절『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라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그가 장성하였으니 그에게 물어보소서 하였더라』 부모는 아들에게 직접 물어보라는 것이다. 사실상 표적을 경험 한 자에게 직접 듣는 것이 옳은 것이다. 표적은 대신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표적의 결과를 말해줄 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대신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9장 24-25절『이에 그들이 맹인었던 사람을 두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줄 아노라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영광이라는 말은 최고의 위치에 있는 자를 영광이라고 표현한다.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다. 최고의 자리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과 관계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영광이라는 의미도 모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을 한다. 맹인이었던 자가 눈을 뜨므로 그것이 그에게는 영광인 것이다.  9장 26-27절『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으되 듣지(에쿠사테)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아쿠에인)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에쿠사테는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의미한다. 아쿠에인은 현재시제로서 사람의 음성을 듣는 것을 의미한다.  9장 28-29절『그들이 욕하여 이르되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하난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오경을 목숨처럼 생각하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메시야가 직접 그들 눈 앞에 와서도 영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율법주의에 빠지면 표적을 보여주어도 믿지 못하는 것이다.  9장 ...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레위기 1장  4-5절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וְסָמַ֣ךְ יָדֹ֔ו עַ֖ל רֹ֣אשׁ הָעֹלָ֑ה וְנִרְצָ֥ה לֹ֖ו לְכַפֵּ֥ר עָלָֽיו׃ וְשָׁחַ֛ט אֶת־בֶּ֥ן הַבָּקָ֖ר לִפְנֵ֣י יְהוָ֑ה וְ֠הִקְרִיבוּ בְּנֵ֨י אַהֲרֹ֤ן הַֽכֹּֽהֲנִים֙ אֶת־הַדָּ֔ם וְזָרְק֨וּ אֶת־הַדָּ֤ם עַל־הַמִּזְבֵּ֨חַ֙ סָבִ֔יב אֲשֶׁר־פֶּ֖תַח אֹ֥הֶל מֹועֵֽד׃ 웨사막(얹다) 야도(손) 일(위에) 로쉬(머리) 하올라(번제물) 웨니르차흐(받으시다) 로(그에 관하여) 르카페르(속죄하다) 아라오(그를 위하여) 와샤하트(죽일 것이다) 에트(격조사) 벤(어린) 하바카르(수소) 리프네(앞에) 야훼 웨익리부(가져다가) 브네(아들들) 하아론(아론) 하코하님(제사장) 에트(격조사) 하담(피) 웨짜르쿠(조금) 에트(격조사) 하담(피) 알(위에) 핫미즈베아흐(제단) 시빕(주위에) 아세르(관계사) 페타(문) 오헬(성막) 모에드(만남의)   그는 죄인이다. 죄인이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한다는 것은 죄를 전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제물을 잡아서 제사장이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에 뿌린다. 죄인의 역할은 여기까지이다. 그 다음에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이 하는 일이다. 하나님 나라를 떠나 그 영이 흙속에 갇혀 사람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에덴에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말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고 하는 네피림과 같은 존재들이다. 하나님은 천하만민 중에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제사를 지내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