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020의 게시물 표시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마태복음 22장 41-46절)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이 말씀의 영어성경을 살펴보면, 『The LORD said unto my Lord, Sit thou at my right hand, until I make thine enemies thy footstool.』 (kjv) 앞의 The LORD는 보좌의 하나님이시다. 뒤의 my Lord는 보좌의 우편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신다. The LORD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는 신중을 기해야만 한다. 하나님은 한분이시지만, 삼위로 역사하신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다. 이 세상에 오시기 전과 이 세상에 육신으로 오신 분과 재림하실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셔서 스스로『구약에서도 있었다』라는 말씀을 하고 있다. 아브라함과 함께 있었다고 하셨다. 요한복음 8장 55-59절에서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예수님이 요한복음 5장 39절에서『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마태복음 24장 36-44절)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인자의 때가 언제인지 모르지만 노아의 때와 같다는 의미이다.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왜 멸망당했는가?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었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반드시 멸망당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수가 엄청나다. 그러나 구원받을 자가 많지 않다고 말한다. 왜 그런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떠난 자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율법에 대해서 죽으셨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죄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도 죽었다는 것을 믿는다. 죽지 않은 자는 여전히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다. 말로만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의식과 절차,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율법적인 생활, 죄를 회개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들, 수많은 것들이 좁은 문을 닫게 하는지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예수님은 노아의 때와 같이 사람들이 왜 멸망당하는지를 모른...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마태복음 26장 30-35절)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나아가니라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신앙이 바로 베드로가 말한『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와 유사하다. 베드로는『주는 그리스도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하지만, 예수님은『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믿는 믿음이 육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영으로부터 비롯된 것인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에서『육신을 따르는 자는 반드시 죽는다』고 말하고 있다.『성령을 따르는 자만이 구원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하나될 것을 기도하셨다. 예수님을 버리고 흩어질 자들인데, 그들을 위하여『하나되게 하실 것』을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가 산상수훈의 말씀을 배웠고, 삼년 동안 기적을 보았지만 육신의 힘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18장 25-27절에서『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베드로는『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계시해 주셔서 알았다. 그래도 육신으로 부터 나오는 혼은 변하지 않는다. 많은 교회 사람들도『베드로가 검으로 귀를 베는 그런 식으로』믿고 따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성경은 이것...

은 삼십을 가지고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마태복음 27장 1-10절)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이르되 이것은 핏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나니 일렀으되 그들이 그 가격 매겨진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가격 매긴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대제사장과 장로들 그리고 가룟유다 간에 은 30 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가롯유다에게 은 30을 다시 주면서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하면서 네가 당하라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말하므로,  유다가 다시 그 돈을 받아서 성소에 던져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메어 죽음을 택것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불의의 삯을 받고 예수를 파는 자가 결국은 사망으로 가게 된다는 교훈이 되는것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를 파는 자는 사탄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지 않는 삯꾼 목자들이 다 그러하다. 예수님은 율법으로부터 자유함을 주셨는데, 율법으로 다시 가두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의의 삯이라는 말은 일만악인 돈을 신자로 부터 받아내는 삯꾼목자인데, 이들이 받을 죄에 대하여 가룟유다를 예표로 하나님이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하나님앞에 십일조나 헌금을 바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고 말한다.  예수님이 오신 후로는 우리가 하나님앞에 드리는...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마태복음 26장 69-75절)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믿음은 내 속에서 생긴 믿음과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서로 다르다. 인간이 쌓은 믿음은 모래 위에 집을 쌓은 것과 같은 믿음이다. 삼년간 제자들이 엄청난 기적과 경험을 했음에도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가는 믿음인 것이다. 베드로는 배를 나와 물위를 걷는 목숨을 거는 믿음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환경이 바뀌어 목숨을 걸 수 있는 믿음 속에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런데 주님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그런 믿음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거듭난다는 것에 대해서,『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거듭나지 않은 자는 베드로처럼 자기 자신을 믿는 것에 불과하다.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인간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육적 존재인 옛사람이기 때문이다. 거듭나는 믿음은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는 예수와 연합되는 믿음이다. 못박혀 죽는 예수와 연합되는 믿음은 내적인 옛사람도 함께 죽는 것을 의미한다. 그 옛사람은 바로 사탄의 유혹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  그 죽는 것은 창세기 3장 15절 외에는 방법이 없는...

그가 신성 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마태복음 26장 57-68절) 예수를 잡은 자들이 그를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이르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예수께 묻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 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들었도다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대답하여 이르되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이르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된 죄목은 신성모독이었다. 즉 성전 모독죄였다. 레위기 24장 16절에서『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거류민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유대인들이 예수님의『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라고 하는 말을 듣고 신성모독죄로 고발한 것이다. 신성모독죄는 하나님이 아닌 자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과 그리스도 밖에서 하나님처럼 되는 것은...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태복음 26장 36-46절)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예수님도 마음(혼:soul)이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기도하러 갈 때 고민하고 슬퍼했다고 26장 37절에서 말한다. 그리고 38절에서『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영어성경을 보면 Then saith he unto them, My soul is exceeding sorrowful, even unto death: tarry ye here, and watch with me. (kjv)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그 분이 예수님이시다. 그런데 위대하신 이 분도 죽음 ...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마태복음 19장 13-15절)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  하나님은 어린아이와 같이 자신을 낮추시는 자를 통해서 예배받기를 원하신다. 삶의 현장에서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 예배는 사람들이 주일이라고 정한 날만 하는 것이 아니라『주는 영이시니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항상 삶의 현장에서 단을 쌓는 예배가 있어야 한다. 야곱은 도망가다가 어느 장소에서 꿈을 꾸는데, 하늘에서 사다리가 내려와서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게된다. 야곱의 영이 전심으로 하나님나라를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눈을 뜨자마자 돌베개를 세워서 여기가 하나님의 집이라고 했다. 삶의 현장이 돌기둥을 세우는 성소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하나님을 떠난 존재였음을 깨닫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게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예배는 승리다. 도망자의 삶을 사는 야곱인데도 그 곳이 하나님의 집 벧엘이 되는 것이다. 일터와 가정에서 전심으로 예배하므로 그 곳이 하나님의 집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성도의 삶이다. 하나님은 광야에서『내 백성으로 예배하게 하라』라고 하셨다. 놀랍게 바로왕이 말한다.『그냥 애굽에서 예배하라』라고 했다. 주님이『안된다』고 하셨다.『삼일 길을 가서 예배해야 한다』고 하셨다. 삼일 길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한다. 세상에 대해서 단절되어 죽은 가장 귀한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예배를 드린다고 표현하고 있으나 예배는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어떤 시간이든 세상과 단절된 시간 속에서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다.  애굽으로 부터 삼일 길을 떠나라고 주님이 명하셨다. 주님은 예배를 위해 기적을 주시고, 히브리 ...

십자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된 자

갈라디아서 3장 22-23절『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믿음이란 어떤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과 관계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믿음의 대상으로부터 관계적 신뢰가 오는 것이다. 일방적인 것은 믿음이 아니다. 짝사랑이 사랑이 아니듯이 사랑은 상호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이것을 모른다면 일방적인 생각에 갇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마음을 결정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상호신뢰 관계는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죄인은 신뢰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다. 그 사이에 화목관계가 있어야만 한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의 죽음을 통해서, 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린 악한 마음의 돌이킴을 통해서 화목되어진다. 하나님이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하셨다. 그 다음은 죄인이 반응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화목관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죄인의 반응은 악한 마음으로부터 돌이키는 것이다. 이것이 회개다. 돌이키는 것은『자기부인』이라는 용어로 설명된다.『자기부인』은 하나님 말씀과 반대되는 모든 생각을 버리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마찬가지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어떤 사실을 알고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신뢰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믿는 자라는 것이다. 옛사람의 옷을 벗고 들어오라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는 그의 믿음과 결부되어, 하나님이 예수 안에 있는 자도 살리신다는 것을 믿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는 삼위의 하나님 중 여호와였지만, 이 세상에 인간으로...

육의 몸과 영의 몸

(마태복음 1장 18-20절)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했다고 한다. 그 당시 약혼은 결혼과 같아서 법적인 구속력이 있었다. 즉, 그 약혼은 간음이 아니고는 결코 파혼할 수 없는 사실상의 기혼상태였다. 그런 이유로 요셉과 마리아를 본문에 남편 요셉, 아내 마리아라고 소개하였던 것이다. 그 약혼기간은 대략 1년 정도였다. 만약 그 기간 중에 남편이 죽으면 아내는 과부가 된다. 동거는 안 할지라도 결혼한 상태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기간 중 부정을 저지르면 간음으로 간주되어 죽음의 형벌을 받을 수도 있었다. 신명기에 여자가 부정을 저질렀을 경우 돌로 쳐죽여야 한다는 율법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잉태되고, 태어나는 것은 창세기 1장에서 설명하는 인간창조와는 다른 창조를 말한다. 창세기 2장 7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생령으로 번역된 이 말은 혼이다.(kjv) 아담은 이렇게 태어났다. 그런데, 하와는 다르게 태어났다.『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창세기 2장 21-22절) 하와는 아담을 통해서 태어난 것이다. 원래 하나였던 아담(첫사람)에서 하와가 분리되므로 아담은 남자가 된 것이다. 예수님의 태어나심은 마치 아담처럼, 하나님이 흙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과 같은 그런 이치가 된다. 예수님은 성령이 마리아의 육체 속에 들어가므로 잉태되어 마지막 아담이 되...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마태복음 24장 29-35절)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다 알게오신다. 도적같이 오시는 예수님과 온 족속이 다 알게오시는 예수님은 어떻게 차이가 있는가? 도적같이 오시는 예수님은 휴거를 당하는 자를 말하고, 모든 족속이 보는 상황에서 오시는 것은 7년 대환란 후에 오시는 지상재림인 것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때 나타날 현상을 말하고 있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징조가 나타날 것인데, 이와 관련하여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말씀하셨다. 무화과 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대해서 생각하고 말한다. 이스라엘이 로마에 의해 멸망했지만 거의 2000년이 지나서 이스라엘이 독립했다는 것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율법을 고수하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예수님이 무화과 나무에 대해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 있다. 누가복음 13장 6-9절에서『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

왜 세리가 먼저 의롭다 하심을 받는가

(누가복음 18장 9-14절)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자기의 의에 대한 비유의 말씀이다.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을 많이 하셨다. 제자들이 왜 비유로 말씀하시는자에 대해서 예수님께 물었다. 마태복음 13장 9-11절에서『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라고 대답하셨다.  바리새인과 세리를 비교하면, 세리는 의롭다 하심을 위해서 한 일이 없었다. 오직, 세리는『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의를 얻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세리와 같지 아니하고,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리가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에서 영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사탄을 따라 가므로 하나님께 범죄했다. 하나님은 영들을 어두운 곳에 가두어버렸다. ...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히브리서 6장 4-6절『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많은 교회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는데, 다시 죄를 지으면 구원에서 떨어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날마다 율법을 바라보며 죄를 짓는지 않짓는지 살펴보면서, 또한 죄를 지으면 즉시 회개하여 예수의 보혈로 깨끗함을 받아야만 한다고 가르친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가 아니면 구원은 변경될 수 있는 것인가?  요한복음 10장 28절에서『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그들은 누구인가? 양들이다. 예수님은 목자이시고, 그의 양들은 영원히 멸망당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요한복음 10장 25-26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의 양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생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 양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하시는데, 구원에서 떨어질 수 있다고 말을 하는 자는 누구의 생각인가? 아마도 자기 생각일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자들은 아마도 예수님의 양이 아닐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양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이다. 좁은 문은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들이다. 그리스도와 연합되지도 않았으면서 예수믿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의 육의 눈으로 구원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6장 44절에서『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

영적 간음죄

(마태복음 19장 1-12절)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큰 무리가 따르거늘 예수께서 거기서 그들의 병을 고치시더라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간음은 육적 간음과 영적인 간음이 있다. 육적 간음에 대해서 예수님은『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육적인 간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영적인 간음을 동시에 말씀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성도는 부부로 비유한다. 그래서 열처녀의 비유도 이와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와 성도는 성령으로 하나가 되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은 하지만 여전히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 자들이 바로 영적 간음을 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을 하지만,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 자들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태복음 4장 15-17절『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회개하라』는 말을『어떤 잘못을 저질러서 뉘우치고 고백하고 용서를 빌라』라는 말로 이해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않은 일을 했거나, 다른 사람에게 좋지않은 일을 했을 때, 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남들이 보기에 손가락질 받을 만한 일을 하게되면 교회에 와서 그 행위에 대해서 회개를 하고,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회개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하신 『회개하라』의 의미를『어떤 잘못을 저질러서 뉘우치고 고백하고 용서를 빌라』라는 말로 이해를 한다면 성경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부자청년이 예수님께 찾아와『선한 선생님이여』라고 하면서『자신은 율법을 잘 지켰다』고 말했다. 그래서『죄가 없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율법을 잘 지켰으므로『죄가 없다』고 생각했다. 예수님이『죄인을 부르러 왔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라고 말을 했을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와 상관없는 일로 생각했던 것이다. 요한복음 8장 31-32절에서 예수님께서『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누구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왜 우리가 자유케 된다고 하십니까』라고 되물었다. 예수님이『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율법을 가지고 잘 지켰으므로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은『다 죄인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가 있다고 생각하면, 율법에 따라서 제사를 드릴 때『죄가 다 없어지는 것』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로마서 4장 3절『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무엇을 믿었기에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는가? 창세기 15장 4-6절에서『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로마서 4장 19-22절에서『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아브람은 99세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다. 그런데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이 그를 의로 여기셨는가? 단지 여호와의 말씀을 믿으므로 의로 여기셨는가? 하나님은 다시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서 그를 의로 여기셨다.  창세기 12장 1절에서『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했다. 하나님은 새로운 환경으로 나가라는 것이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고향 떠나는 것을 순종했다. 그런데, 그는 친척 롯을 데리고 나왔으며, 상속자를 고향 사람 엘리에셀로 생각했고, 자신의 몸에서 나온 자라고 생각해서 이스마엘을 낳았다. 고향을 떠났지만 순종하지 않은 모습을 나타내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자신이 믿을만한 것에만 순종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의 생각이 부딪히면 자신의 뜻대로 결정하는 것이 타락의 결과다.  창세기 14장에서 첫번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롯과의 소유 분쟁 때문이었다. 세례요한의 회개의 외침과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말씀은 소유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마태복음 20장 29-34절)그들이 여리고에서 떠나 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르더라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맹인 두 사람은 세상적으로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지만, 영적으로 말하자면 흑암에 갇혀있는 자를 말한다. 사탄의 굴레에 묶여 있는 자를 말한다. 마태복음 4장 16절『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예수님이 사역을 처음 시작했을 때 이사야 예언을 인용하셨다. 복음의 시작은 사람들이 더러움을 씻는 것이 아니라, 어둠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는 어두움보다 죄사함을 강조한다. 죄인이 죄사함을 받는다고 어둠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어둠에 있으면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죽어있는 것이다. 아담은 범죄한 후 두려워하여 어둠에 숨었다. 내가 주인인 사람은 어둠 속에 숨어있는 자들이다. 자기 생각, 자기 행동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저 나는 더러움에 있으므로 더러움을 씻으려고만 한다. 더러움을 씻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어둠에 있음을 깨닫는 것이 먼저다. 구원의 시작은 내가 어둠 가운데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어둠 가운데 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는 죽은 자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주시고, 빛이 비추어져서 어둠 속에 있는 것을 깨닫기를 바랄 뿐이다. 사울왕은 주님의 기름부음이 떠나 가 버렸다. 그 증거로 사무엘이 다시는 만나주지 않았다. 주님이 사울왕을 어둠 속으로 버린 것이다. 그래도 상당기간 ...

엘리야의 영

마태복음 3장 1-10절『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이 말의 뜻이 무엇인가? 엘리야의 영이 인간으로 태어난 자가 세례요한이다. 그래서 그 일을 세례요한이 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1장 17절에서『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영)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여기서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다. 자식은 이스라엘을 말한다. 이스라엘이 거스르는 자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는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세례요한)이 준비되는 것이다.  세례요한이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친 것이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말했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라는 말이 여기서 적용되는 것이다. 세례요한이 부르짖는 요지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으므로 회개하여, 율법 속에서 죄인됨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는 바로 그리스도를 발견...

광야교회, 가나안교회, 하나님의 교회

고린도전서 1장 2절에서『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먼저 성경이 말하는 교회가 무엇인가를 잘 알아야한다. 세상적인 교회는 건물과 그 건물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교인들을 모두 총칭해서 교회라고 한다. 그래서 건물을 유형교회, 신도들을 무형교회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건물이 교회라고 부르는 것과 신도가 모두 구원받는 성도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는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를 말하며, 성도들이 모이는 곳에 하나님의 권능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 코로나시대에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교회 건물이 아니라 각자 집에서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다. 인터넷 예배를 권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건물을 교회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장 2절의 기준으로 교회라고 부를 수 있는 성도에 대해서 살펴보면, 먼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다. 거룩하여진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졌다는 것이다. 교회를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부른다. 교회 건물에 앉아있다고 모두가 거룩해진 성도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예수 그리스도를 부르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이라는 고백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르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것이다. 종은 주인과 모든 것을 함께 한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만이 예수님의 종이 될 수 있다. 그냥 예수님의 이름을 부른다고 예수님의 종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와 하나가 되는 자가 교회라는 것이다...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

갈라디아서 3장 29절『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그리스도의 것이 되어야 구원받는다.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소유가 된다는 말이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의 것이 되어야만 구원받는다.  회개하여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것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자기를 부인해야만 그리스도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주님이 회개하는 자를 피값으로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약속대로 유업을 이루게 하시고, 믿음의 선물을 주신다. 이 믿음은 하나님께서 거듭난 자에게 주시는 것으로, 교회 나가서『예수를 믿겠다』는 그런 믿음이 아니다. 믿음의 선물은 계시되는 믿음이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 22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라고 했다. 계시될 믿음이 오기 전에는 율법이라는 그물에 걸려서 그리스도에게로 갈 수 없는 것이다.  계시될 믿음이 와야만 율법이라는 그물망에서 풀려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율법을 말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죄인들이 그물에 갇혀있다고 할 때, 그물로 부터 나오는 방법은 그물의 주인이 그물을 풀어줄 때다. 스스로는 빠져나올 수 없다. 그물에 갇혀있는 자는 내가 왜 이 그물에 갇혀있는가를 생각하고 이렇게 죽을 자라는 것을 고백하고 죽은 자 같이 될 때 풀어주는 것이다. 죽은 자가 같이 되지 않으면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 율법의 그물망이다.  그물이 죄인을 가두는 수단이지만 그물을 통해서 죄인됨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율법이다. 갈라디아서 3장 24절『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하나님의 빛이 비춰져서 인간의 상태가 어떠한지 드러나는 것이 은혜다. 율법 아래 매여있다는 것은 로마서에 의하면『인간은 모두 육신에 따라 사형죄와 같이 살고...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마태복음 18장 1-7절)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세상의 관심은 크고 높아지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높은 자리, 큰 자리, 또 영향력 있는 자리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천국에서는 누가 큰 사람입니까』라고 예수님께 물었다. 당시의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에 널리 통용되던 생각이 있었다. 천국은 아주 큰 부자, 높은 자, 영향력 있는 자를 위한 곳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그와 같은, 세상에 물든 생각을 고쳐 주시면서 천국에서 큰 자는 누구인지 나아가, 천국에 갈 수 있는 자는 누구인지 이렇게 두 가지의 답을 주셨다. 천국에서 큰 자와 천국에 갈 수 있는 자는 바로 어린 아이와 같은 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가치와 세상의 가치가 얼마나 상충되는지를 보여주는 가르침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가치는 세상의 가치와 다르다. 세상에서는 큰 자가 중요하다. 세상에서는 높은 자가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천국에서는 작은 자가 큰 자다. 그곳은 겸손한 자에게 허락하시는 곳이다. 어린 아이와 같이 약하여,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한 존재가 자신임을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서는 큰 자이다. 다시 말해서 스스로 율법을 통해서 의를 이룰 수 있는 자들은 작은 자들이라는 것이다. 나는 아...

저희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마태복음25장31-46절)『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양과 염소는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존재를 상징한다. 스스로 존재한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에베소서 6장 18-19절『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1-5장에서 창세로부터 감추어진 비밀을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그는 직접 셋째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께 말할 수 없는 것을 보고 들었다고 성경은 기록하였다. 구원은 하나님을 떠난 자들을 다시 하나님 나라로 복귀시켜 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떠난 자들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 자들은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어 대속으로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회개하여 돌아오고자 할 때,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을 아는 것이 복되며, 믿는 자들에게는 복음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비록 육은 이 땅에 살아있지만, 그 영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우편에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이 세상의 그 어떤 죄에 대해서도 심판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로마서 8장 1절에서『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사도바울은 하나님 나라를 보고 왔으므로 기쁨은 대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주와 떠나 있어도 소망이 늘 있었으므로 기쁜 것이다. 고린도후서 5장 8절에서『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마찬가지로 빌립보서 1장 22-24절에서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사도바울은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나라를 가기를 원하지만, 이 땅에서의 사명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마태복음 13장 36-43절)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 심판이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동안에 스스로 하나님 말씀을 버리고 마귀를 선택했다. 마귀의 질문에 반응하고 답하므로 마귀의 말을 쫒아갔다. 하나님의 사랑 만을 생각한다면 구원에서 멀어진다. 그들은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다. 구약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받은 예표가 솔로몬이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여디디아』라고 이름을 주셨다. 그 말의 뜻은『사랑받는 자』라는 말이다. 아버지로부터 왕위를 물려받고, 하나님으로 부터 지혜를 물려받았다. 그는 아담처럼 모든 것을 다 받은 자였다. 그러나 하나님을 잊어버렸고,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다.  탕자는 솔로몬처럼 사랑의 아버지 집과 아버지를 버리고 떠났다. 마치 아담처럼 그렇게 된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것이다. 이게 바로 노아가 전한 것이다. 노아가 전한 것이 바로『의의 도』라고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다. 세상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사랑의 도』가 아니라『의의 도』다. 의가 없으면 아무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다 소경이 되어버렸다.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 말하기를『백성들에게 말하라, 올라오는 자는 다 죽으리라』그러...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마가복음 4장 26-29절『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여기에서 사람은 하나님을 의미하고, 땅은 이스라엘 사람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씨(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이 씨는 하나님의 율법을 의미한다.『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그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상관하시지 않는다는 말이다.『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통해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기를 바랐는데, 그들이 율법을 통해서 스스로 의인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 되는 것은 의롭게 되는 것이다. 율법을 통해서 그들이 도저히 율법을 지킬 수 없는 그런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발견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심판의 대상이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의 합당한 열매가 맺어져야 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마가복음의 이 말씀은 세례요한의 외침과 함께 연결하여 살펴보아야만 한다. 마태복음 3장 7-10절에서『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