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20의 게시물 표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요한복음 5장 44절)『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사람들에게 영광을 구한다면, 사람들로부터 칭찬 듣기를 원한다면, 사람들에게 자랑한다면, 하나님으로 부터 영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으로 부터 영광을 구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긴 설교(14-16장)를 들었다.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아서 예수님께 말했다. 요한복음 16장 30절에서『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예수님이 31-32절에서 대답하시기를『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믿느냐?』 라는 말은『너희가 나를 믿는다고?』라는 것으로, 믿지 않는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헬라어 본문에서『이제는』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지금』이라는 뜻이다.『지금 믿는다고?』이다.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취하려고 하고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영광을 취하려고 하지 않는데, 어떻게 나를 믿느냐』라는 말이다. 오늘날 지적으로 성경을 알고 깨달았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영광을 취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지만 유대인의 사회에서 출회를 당할까봐 감히 말을 못한다는 것이다. 믿음은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과 연합되는 것만이 참 믿음이다. 이렇게 되지 못하면 지적인 동의일 뿐이다. 연합되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며,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부인하고 예수 안에 있어야만 하나가 된다. 나를 부인하지 않는 자는 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자이기 때문이다. 예수 안에 있지 않으면 옛뱀에 물린 ...

십자가에서 모욕당하는 예수님

(마태복음 27장 27-44절)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키더라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빌라도의 사형 언도가 확정되자 예수는 많은 무리들의 희롱을 받게 되었다. 빌라도의 관정 안으로 예수를 데리고 들어간 총독의 군병들은 마치 이성을 잃고 광적으로 날뛰는 사육제의 주인공들 같았다. 관정 안으로 끌려 들어가신 예수님은 후안무치한 무리들에 의해 말할 수 없는 희롱을 당하셨다.  먼저 그들이 주님께 행한 일은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힌 일이다. 홍포는 왕들이 입는 옷이다...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요한복음3장 14-15절)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하신 마지막 부분의 말씀이다. 처음 부분은 물과 성령으로 위로부터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다. 구원의 핵심은 위로부터 거듭남이다. 예수의 피로 죄를 씻는 것은 세례의 결과다. 세례는 죄를 짓는 옛사람을 처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전에 이 땅에서 천국으로 살게하신다. 그래서『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회개하면 이 땅에 천국이 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에 살기 때문이다. 거듭나는 자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3장 14-15절의 말씀을 니고데모가 받지 못한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당신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입니다』라고 했다. 사람들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는 것 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신앙인도 구원받지 못하는 사례가 열처녀의 비유에서 나타난다. 모두가 다 신앙인이었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는 구원받지 못했다. 미련한 다섯처녀의 기름이 떨어질 때 주님이 오신다는 것이다. 율법에 가로 막혀있으면, 장대에 높이 들린 인자를 믿는 믿음이 없는 것이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으로 부터 들은『인자가 뱀처럼 들린 것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민수기 21장 8-9절에서『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라고 하신 말씀을 재조명하신 것이다. 예수를 믿지만 예수를 믿는 자가 다 뱀에게 물린 자라는 것이다. 이것을 니고데모가 믿지 못하는 것이다. 즉 자기가 뱀에게 물린 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우리도 예수를 믿지만 뱀에게 물려서 뱀의 독이 퍼...

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누가복음 12장 54-59절)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 가고 재판장이 너를 옥졸에게 넘겨 주어 옥졸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네게 이르노니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고발하는 자는 사탄이다. 사탄이 항상 참소한다. 무엇을 가지고 참소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법을 통해서 참소한다. 하나님의 법은 율법을 의미한다. 즉 율법(모세의 법)을 근거로 고소한다. 고소하는 것은 반드시 법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 『화해하기를 힘쓰라』는 말은『고소가 안되게 하라』는 말이다. 『법에서 해방되다』는 의미이다. 사도행전 19장 12절에서『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니라』에서『떠나더라』는 말은『해방되었다』는 뜻이다.  히브리서 2장 15절에서도『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 평생 매여 종 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라』여기에서도『놓아준다』는 말은『화해한다』는 말이다. 고소할 수 없는 상태가 되게 하라는 말이다. 즉 율법을 가지고 고소를 당하게 되는데, 고소를 당하지 않으려면 율법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급히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갈라디아서 4장 4-5절에서『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즉 율법 아래에 나시고 율법에 의해서 죽으심을 당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율법으로 ...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마태복음 27장 45-54절)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두 강도가 등장했다. 두 강도는 인류를 대표한 죄인들의 모습이다.  로마서 5장 12절에서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죄인임을 말씀하고 있다. 두 강도의 경우는 바로 죄 값은 사망임을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이 두 강도가 인류의 죄를 말해준다면 우리 인간에게는 절대로 의인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 두 강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류가 두 길로 갈라진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강도에 대하여 누가 좌 우편에 서 있었는지에 대하여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편의상 구원받은 강도에 대하여 오른편에 있었던 것으로 말하고 있으며 멸망 받은 강도를 왼편에 있었다고 말한다. 왼편에 있는 강도는 율법의 정죄를 받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자들을 보여 주신 것이다. 율법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정죄하지 못하지만,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 자들은 율법에 의해 심판을 받을 것이다.  우편 강도...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마태복음 27장 45-54절)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두 강도가 등장했다. 두 강도는 인류를 대표한 죄인들의 모습이다.  로마서 5장 12절에서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죄인임을 말씀하고 있다. 두 강도의 경우는 바로 죄 값은 사망임을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이 두 강도가 인류의 죄를 말해준다면 우리 인간에게는 절대로 의인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 두 강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류가 두 길로 갈라진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강도에 대하여 누가 좌 우편에 서 있었는지에 대하여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편의상 구원받은 강도에 대하여 오른편에 있었던 것으로 말하고 있으며 멸망 받은 강도를 왼편에 있었다고 말한다. 왼편에 있는 강도는 율법의 정죄를 받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자들을 보여 주신 것이다. 율법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정죄하지 못하지만,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 자들은 율법에 의해 심판을 받을 것이다.  우편 강도...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장 43-51절)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세례요한이 두 제자와 함께 서 있다. 두 제자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와 이 글을 적고 있는 사도 요한이었다. 요한복음이 쓰일 당시에 안드레와 사도 요한도 세례요한의 증언이 없었다면, 예수를 랍비 중 하나로 여겼을지 모른다. 세례요한은 다시 한 번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 이신 것을 증언했다. 안드레와 요한은 예수님이 어디 계신지 물어보았다. 이것은 위치적인 의미도, 누구와 함께 있는지도, 근원이 어디부터인지 소속의 부분도 해당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설명하지 않으시고 와서 보게 하셨다. 그렇게 자기의 삶을 떠나 예수의 삶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랍비에게 가르침을 받기 위해 왔지만, 결국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예수의 부르심을 따른다.  안드레는 자신의 형제를 찾아 메시야를 전했다. 빌립 또한 나다나엘을 데려온다. 안드레는...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누가복음 2장 1-7절)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예수님은 육신의 동생들도 있었다. 예수님 만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셨다. 그런데 구유에 뉘었다. 왜냐하면 여관에 있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거절했기 때문이다. 첫번째의 성탄은 이렇게 심각한 상황이었다. 오늘날 성탄절은 축제 분위기다. 성탄의 주인이 누구인가 알 수 없을 정도다. 성탄절은 예수님이 주인공이다.  동방박사는 예수님 만을 경배했다. 성탄절은 예수님 만을 경배하는 날이 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관에 누울 곳이 없어서 구유에서 태어났던 분이시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지만 기적을 일으키는 예수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거절당하는 예수였다.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는 예수가 된다. 마리아와 요셉은 베들레헴에 호적 등록하러 왔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 날 마리아는 오직 예수님의 출생 만을 생각했을 것이다. 첫번째의 성탄은 아무도 영접하지 않은 예수였다. 또한 하나님은 마리아에게 출생할 때,『어느 집으로 가라』라는 등의 상황을 계시하시지 않으셨다.  베들레헴의 첫성탄은 축제가 아니라 비극이었다. 헤롯이 세살 아래 모든 사내 아이를 다 죽였다. 모세가 태어날 때, 모세가 유대민족의 구원자임을 마귀가 알고, 바로왕을 시켜서 아기 때부터 사내 아이를 자 죽인 것 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셨을 때 마귀가 알았으며, 헤롯왕을 시켜서 그렇게 죽인 것이다. 세계의 역사상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첫성탄은 통곡 만이 있을 뿐이었다. ...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누가복음 1장 27-38절)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예수라 부르라』 히브리어로 그 이름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라는 뜻이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는 예수라는 이름의 뜻을 설명한다.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예수님에 대해서는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 그러나 요한에 대해서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세례요한과 비교할 때 예수님은 스스로 큰 자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마리아의 태중에 있는 그리스도에게 주어질 다윗의 왕권에 대한 말씀은 구약성경에서 나타난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기다리고 기다린 그 메시야이다....

할례할 팔 일이 되매

(누가복음 2장 21-40절)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예수님은 탄생직후부터 고난 중에 계셨다. 마태복음 2장 13절에서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예수님은 이집트에 피신하여 있게 된다. 그리고 헤롯이 죽자 예루살렘에 돌아온 요셉은 아기 예수를 모세의 법대로 결례를 행하기 위해 성전을 방문하였다. 예수님께서는 탄생 후 팔일 째 되는 날에 율법을 좇아 할례를 받으셨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부과된 의무였다.  예수님은 율법이 아닌 은혜를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셨지만 율법에 복종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에 매여 있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율법에 흠이 없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율법에 따라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율법의 완성이 되셨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율법의 마침이 된다.  예수님은 할례를 받고나서 정식으로 예수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결례란 남자를 낳은 산모는 33일 동안 부정하고, 여자를 낳은 산모는 66일 동안 부정하다. 이것은 인간에게 에덴에서의 죄과를 잊어버리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레위기 12장 1-5에서 언급되고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을 떠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마리아가 베들레헴에서 7일간과 33일 간 합하여 40일을 지난 뒤에 결례를 행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율법에 의해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지고 하나는 번제로, 또 한 마리는 속죄제로 드...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마태복음 27장 11-18절)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  빌라도란 인물은 성경에 기록된 것 외에 아무 것도 알려진 것이 없다. 빌라도는 그의 권력에 비해 사람이 우유부단한 인물이었다. 자기 양심의 소리를 들을 줄은 알았지만 그 양심의 소리를 관철할만한 인물은 못되었던 것이다. 빌라도는 예수님에 대하여 매우 호의적인 태도를 가졌다. 그는 예수님의 무죄 판결을 내리려고 애를 썼다. 그는 예수님을 헤롯 안디바에게 보내기도 하였고, 다만 매로 때린 후 놓아주자고 제의도 했다. 그는 명절에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관례에 따라 예수를 놓아주려고도 했다. 그러나 빌라도는 군중에게 압도당해 버리고 말았다. 빌라도는 민란이 나려는 것을 두려워했다. 민란이 일어나면 이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빌라도는 민심 수습책으로 무리들에게 만족을 주고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었다. 빌라도는 자신의 현재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양심을 져버렸다. 그가 예수를 고소하는 무리들에게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고 물었을 때 대제사장들이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고 외쳐 댔다. 이 말에 그는 예수를 방면하면 가이사 외에 다른 왕을 인정하는 모함을 받은 것이 우려되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총독으로서의 현재 지위는 박탈당하고 로마 황제 가이사...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누가복음 13장 18-22절)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겨자씨이며, 누룩이라는 것이다. 여자는 그리스도의 신부를 말한다. 에베소서 5장 31-32절에서『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아내는 교회를 말한다. 교회의 성도들이 세상에 나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퍼지게 만드는 것이다. 가루 서 말은 세상을 비유하신다. 이 말씀은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하여지고, 확산됨을 의미한다.  마태복음 13장 31-32절에서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천국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했다. 이 겨자씨 한 알을 자기 밭에 심었다. 겨자씨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자기 밭은 바로 이스라엘을 나타낸다. 겨자씨 비유는 처음에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가 미약해 보이지만, 메시야의 죽음과 부활 이후 성령의 오심으로 인하여 복음이 이방인에게 확산될 것을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볼 때도 하나님 나라는 아주 초라하게 시작되었다. 그들은 이런 미약한 시작에 실망도 했고 절망도 했다. 그러한 그들에게 이 겨자씨 비유는 엄청난 위로를 주는 동시에 도전도 주었을 것이다. 씨 중에 가장 작은 겨자씨가 자라서 새들이 깃들일 정도로 큰 겨자나무가 되는 것처럼,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누가복음 13장 1-5절)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신 당시 이런 유형의 사건이 두 가지가 있었다. 먼저는 빌라도라는 사람이 갈릴리 사람을 죽여 그의 피를 제물에 섞은 사건이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빌라도의 악과 빌라도에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 물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은 갈릴리 사람에 대해서『그 죽은 갈릴리 사람이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로 생각하느냐?』라고 되물었다. 그리고『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같이 망하리라』라고 말했다. 이 사건을 가지고 질문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말한 것이다.  그리고 또 예루살렘 실로암의 망대가 무너져 18명이 죽은 사건을 더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의 모든 사람보다 죽은 그 사람의 죄가 더 있는 줄로 생각하느냐? 라고 물었다. 사고로 인하여 먼저 죽었는데, 살아있는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고 없이 더 오래 산 사람이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을 더 쌓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비록 죽었지만 일찍 죽는 사람의 죄가 덜 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살아있다는 것이 은혜의 기회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예수님은 회개를 지적하기 위해서『회개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망하리라』라고 하셨다. 이게 예수님이 보시기에 회개하지 않는 것이 죄의 기준이 된다.  오늘날도 욥처럼 엄청난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은 이 고통 받는 사람들로 인하여 주님의 뜻을 알아야만 한다. 욥기 42장 5-6절...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마가복음 1장 1-8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마가복음은 가장 먼저 쓰여진 복음서다. 마가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중의 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바나바의 조카였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나타나는 마리아가 마가의 어머니였다. 사도행전 13장 5절에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즉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 여행을 떠날 때, 수행원으로 가게 된 것이다. 요한이라는 사람은 바로 마가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마가의 또 다른 이름이 요한이었다. 사도행전 13장 13절에서『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마가가 버가에서 중도하차를 하게된 것이다. 버가는 험지인 산악지방을 앞두고 있는 지역이다. 중도하차 한 이유에 대해서 정확히 표현되지 않으나, 이를 계기로 바울이 마가를 선교 활동에 좋지 않은 선입감을 갖게된다. 아마도 힘든 선교 여행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사도행전 15장 36-41절에서『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마가복음 1장 16-20절)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예수님은 제자를 부르실 때 갈릴리 해변에서 시몬(베드로)과 그 형제 안드레를 부르셨다.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도 갈릴리 해변으로 가셨다. 바다와 베드로에 대해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바다는 하나님이 궁창의 아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해서 궁창 아래의 물을 바다라고 하셨다. 궁창 아래 있는 물은 땅에 속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고 율법을 뜻한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해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을 세상(바다)에서 낚는 것이다. 율법에 매여있는 인간들을 그물에서 건져 자유를 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베드로가 낚시를 던져 보니 물고기가 올라왔다는 말은 세상(율법)에 가서 낚시를 던져 사람을 건져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의미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바다에 있던 물고기가 물밖인 세상으로 올라온 것이다. 그래서 하늘의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것이다.  물밖의 세상에 올라온 물고기는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지만 영으로는 생명을 얻게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서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베드로는 어부였다. 그래서 바다에서 물고기를 건지듯이 흑암 속에 빠져 있는 죽은 영들을 구원하라는 것이다. 흑암 속에서 죽어 있는 영을 구하기 위해서는 생명의 빛을 보내주어야만 한다. 흑암에 있는 자들은 바로 ...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누가복음 2장 41-52절)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예수님이 열두살 되었을 때의 일이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갔는데, 부모가 어린 예수를 잃어버린 사건이다. 부모가 예수를 찾으러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무려 삼일만에 다시 찾았다.『왜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마리아의 책망은 왜 우리에게 성전에 있겠다고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서 3일간 근심하며 찾느라 애를 썼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대답은 놀라움에 대한 반문이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어린 예수의 대답은 아버지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아들이 당연히 아버지의 집인 성전에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토록 저를 위해 근심하시며 그토록 찾을 것이 아니라 그냥 바로 성전으로 오셨더라면 저를 금방 찾으셨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마리아에게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마태복음 21장 1-9절)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구원하소서』를 뜻하는 히브리에서 유래한 말이며, 기쁨과 승리를 표현하는 말이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은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여호와여, 호산나』(시편 118:25)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받으소서』(시편 118:26)라고 부르짖으며 찬양하였다. 이 구절은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등의 축일에 찬양했는데, 호산나를 외치면서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흔들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백성들은 위의 시편 구절(118:25-26)을 되풀이하면서 나뭇가지를 길에 깔고 예수님을 환영하였다.  이 땅에서 예수의 이름은 하나님 나라에서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 아무나 하나님 아버지 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다. 회개하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만 예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로마서 10장 13절『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여기서『부르다』는 말...

예수님과 세례요한

(누가복음 1장 39-56절)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마리아가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 마리아의 방문을 받고 엘리사벳이 반응한 내용과 마리아가 하나님을 찬양한 내용이다. 마리아의 찬양은 누가복음의 핵심 주제로, 그 내용은 가난한 자와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구원받고 승리하는 놀라운 구원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일어나 빨리 유대의 한 산골 마을로 갔다. 친척 엘리사벳이 사는 동네이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왔다고 했다. 여기에서 주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유대 관습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결혼하기 1년 전에 정혼(약혼) 한다. 같이 살지 않을 뿐이지 법적으론 결혼과 같다. 그런 마리아가 남편과 상관없이 임신을 했다. 율법으로 심판받는 죄...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장 21-23절)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 이 세상 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 오는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를 말한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여야 들어간다고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말씀하셨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에 대해서 보통 교회사람들은 몇가지 중 선택해야 할 것이 있을 때,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인간이 생각할 때『올바르다』라고 생각되는 것을 선택하려 한다.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뜻은 한가지가 아니고 수십 가지가 되기도 하고, 이것이 되기도 하고, 저것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자기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면 천국에 갈 수 있는가? 이것이 천국에 들어가는 필수 조건이 될 수 있는가? 라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필수조건은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정확히 모르면 곤란하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보면『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로 갈 수 있다 라는 말씀이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서 사랑을 실천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예수님 당시에 십자가에서 같이 죽어가던 죄인이라든가, 문둥병자, 간음하다가 붙잡혀 온 여인들이 사랑을 실천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냥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구원받게 된 것이다.  성경에서 말...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마태복음 28장 1-10절)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 어두운 때, 예수님의 무덤을 향해가는 여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부활절 장식을 할 때 흰 백합을 사용하여 장식을 했다.  이 여인들은 정말로 예수님을 사랑했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어 재판을 받을 때, 곁에 있던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지만 그러나 이 여인들은 예수님 곁에 있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도 지켜 보았고, 예수님께서 무덤에 장사될 때에도 곁에 있었다.  그렇게 예수님을 사랑했던 이들이 이제 또 무덤을 찾아 가는 것이다.  무덤으로 향하는 이들은 두려움과 슬픔에 가득 사로 잡혀 있었다.  사랑하는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슬픔에 사로 잡혀 있었다. 예수님께 걸었던 모든 기대들이 무참히 깨짐으로 인해서 희망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절망에...

부활한 이후의 상태

(마태복음 22장 23-33절)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 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 주고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마태복음 22장 29-30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부활 때는 영이 신령한 영의 몸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천사와 같다고 표현했다. 거듭난 자의 현재적 모습이다. 거듭난 자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했음을 믿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이다.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께 대하여는 죽은 자가 된다. 야고보서 2장 26절에서『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영이 죽으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진 것이므로 죽은 자가 된다. 거듭난 자가 되지 않으면, 다 이렇게 된다는 것이다. 거듭난 자의 믿음은 행함으로 증거된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새생명이 없으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없다. 새생명은 부활생명으로 주님이 함께 하신다. 그렇지 않으면 진노의 대상이...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마태복음 23장 23-28절)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말라기3장 6-12절에서 십일조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말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한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과 오늘날 십일조를 바치지 않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신명기 18장 15-22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 형제 중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우겠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 그렇게 말씀하시고,『그의 말을 들으라 듣지 않으면 벌을 내리겠다』고 하셨다.『내가 고하라고 명하지 않은 말을 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그 선지자가 하나님의 지시대로 말씀하는지를 어떻게 아느냐』라고 물으니,『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여호와의 말씀이 아니라 방자히 한 말이니 두려워 말찌니라』라고 하셨다.  선지자가 자기 스스로 방자히 말한다면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에 예레미야와 하냐나(거짓 선지자)의 말이 소개된다. 하냐나는 거짓 말을 하다가 죽었다. 오늘날에도 자기 소견대로 성경을 해석하여 말...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태복음 23장 29-39절)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저주하셨다.그리고 장차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핍박할 것을 예언하셨다. 핍박의 결국은 심판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지자들을 통해서 여러 차례 회개하여 돌이킬 것을 말씀하셨으나, 백성들은 돌이키지 않았다.  뱀을 계시록에서 사단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뱀이 왜 사단인가? 뱀은 뱀이지 사단인가? 사단이라는 것은 대적자의 생각을 받아서 대적자의 생각과 대적자의 말과 뜻을 옮기는 자가 똑같이 사단이 되는 것이다. 사단이 뱀에게 자기의 말과 생각을 다 주었다. 그러니까 뱀이 하와에게 가서 사단이...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마태복음 20장 13-16절)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이방인에 대한 구원은 마태복음에서 어느 왕의 혼인잔치 비유라든가, 로마의 백부장 부하를 치유한 사례,『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된다』 라는 표현들을 통해서 이방인의 구원이 먼저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로마서 11장 25-27절에서『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사도바울이『이스라엘은 눈이 감겨지고 이방인이 구원을 받게될 것』이라고 설명하는 내용이다.  누가복음 21장 20절에서『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누가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두고『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이방에 빛을 비추어 주시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는 것은 누가는『이방인의 때』라고 했다.  누가복음 21장 24절에서『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이방인이 다 구원 받을 역사가 일어날 때까지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이 차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도 예루살렘은 이슬람교도들이 지배하고 있다. 이방인의 때가 차면 다시 이스라엘에게로 돌아올 것...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마태복음 23장 1-14절)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없음)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해서 말씀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의 의에 빠져 있는 자들이며, 외식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깨닫지도 못하고, 악이 가득한 자이며, 자기도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는 자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만드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셨다. 로마서 3장 9-18절에서 표현한다.『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태복음 18장 15-20절)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성경(누가복음 17:20-21)은 말한다.『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사람들이 이해하려고 할 때 일반적으로 땅의 개념으로 이해할 때가 많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너희 안이라는 말은 두가지의 뜻을 내포한다. 첫째, 사람의 마음 속(in)에 있다는 뜻이다. 이 말씀은 회개하고 거듭난 자 속에 거하시는 성령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성소나 성전에 계신다고 했다. 죄인들은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 속죄 제물과 제사장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속죄 제물인 동시에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나아 갔으므로, 예수와 연합된 자에게는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서『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여기서 말씀하시는 성령을 구원의 성령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성령이 믿는 자에게 내재하실 때, 그 사람을 하나님의 백성이라 칭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 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