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021의 게시물 표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로마서 8장 1-6절)『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로마서 7장 4절에서 보면『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율법에 의해서 죽었다는 것이다. 율법에 의해서 죽은 이유는『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고 말했다. 열매를 맺히는 일에 대해서 대부분 사람들은 예수 잘 믿고,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이 되었다 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열매맺는 일은 이웃의 죽어있는 영을 살리는 일이다.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맺는 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는 일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일이다. 그 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육의 몸(옛사람)이 죽고,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예수를 믿는다』라는 말은 예수님과 함께 죽고, 다시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탕자의 아버지가 탕자에게 바라는 것은 회개하여 죽은 자같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5장 14-15절에서『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로마서 7장 23-25)『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사도바울이 왜『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말했는가? 자기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없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라는 존재가 예수와 함께 죽으라는 것이다. 죽는 것은 율법에 의해 죽은 것을 믿는 것이다. 7장 4절에서『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율법에 의해 죽은 자가 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율법이 폐하여진 것이다.  에베소서 2장 15절에서『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골로새서 2장 14절에서도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율법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나, 다만 예수와 함께 율법에 의해 죽은 자만 율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기 위함이었다.   율법에 의해 죽은 결과가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서『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이 세상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율법에 적용받는 자와 율법으로부터 벗어난 자들이다. 율법에 적용받는 자들은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율법에서 벗어난 자는 세상에 대해서도 못박혔다고 말한다.  로마서 7장 13절에서『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율법이 죄를 깨...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로마서 7장 13-22절)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사도바울이 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말했는가? 자기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없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라는 존재가 예수와 함께 죽으라는 것이다. 죽는 것은 율법에 의해 죽은 것을 믿는 것이다. 7장 4절에서『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율법에 의해 죽은 자가 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율법이 폐하여진 것이다.  에베소서 2장 15절에서『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골로새서 2장 14절에서도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율법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나, 다만 예수와 함께 율법에 의해 죽은 자만 율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로마서 7장 7-12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이니라. 많은 사람들은 율법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율법을 지키므로서 죄를 짓지 않게된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아주 이중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인간은 죄인이 되며, 결국 의에 이르지 못할 수 있다』는 애매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믿지만, 죄로 인하여 율법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탐심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죄다. 탐심은 자기가 주인이 되는 것이다. 창세기 4장 7절에서『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죄의 소원은 하나님 말씀을 벗어나서 육체가 원하는 것을 하고자 하는 것이 죄의 소원이다. 탐욕에 대해서 신명기 5장 21절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로마서 7장 1-6절)『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예수를 믿는다』라는 말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마태복음 16장 24절에서『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이 말은 세상에서 어떤 어려운 고난을 견디고 참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세상에 대해서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었음을 믿으라는 것이다.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죽은 자는 율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죽어야 한다는 말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도『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라고 하고 있다. 사도바울이 부부관계를 통해서 율법을 설명한다. 남편이 살아있을 때,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가 된다고 말한다. 자기 남편이 율법을 의미하고, 다른 남자는 성령을 의미하는데, 율법에 대해서 죽지도 않았으면서, 성령을 따른다고 말하므로 영적 간음죄를 짓는 ...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로마서 6장 17-23절)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사울은 죄의 종의 길을,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 교훈을 좇아 의의 종의 길을 걸어갔다. 마침내 사울은 왕좌에서 내려오고, 다윗은 새로운 은혜의 시대를 열어갔다. 성도는 은혜의 영향 아래 살아간다. 더는 나의 기준이 아닌 주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성도는 살아간다. 성도는 은혜 아래 있기에 의의 사고와 행동, 그리고 삶을 이어가야 한다. 그러나 현실이 만만하지 않다. 그래서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성도들은 은혜와 구원 아래서 의롭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간은 의롭게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의롭게 되는 것은 나라고 생각하는 것을 부인할 때, 즉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을 못박을 때, 하나님께서 의롭다 함을 칭해주시는 것이지 내가 그렇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의 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므로 원죄로 인하여 죄의 종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원죄는 영의 원죄와 육의 원죄가 있다. 하나님 나라를 떠난 자들이 바로 영의 원죄라는 것이다. 육의 원...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로마서 6장 8-16절)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예수님과 함께 죄에 대하여 십자가에 죽은 자만이 진정 예수님과 연합된 자가 된다. 다시 말하자면 죄에 대하여 죽지 못한 자는 예수님과 연합되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죄의 문제에 대하여 해결할 방법을 깨닫게 하셨다. 그것은 바로 예수와 함께 죽을 때, 우리의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단번에 죽었다는 사실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예수와 함께 죽지 않으면 죄는 그대로 있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죄는 그대로 있는 것이다.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이제...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로마서 6장 4-7절)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할례는 그림자요, 실체는 골로새서에서 세례라고 말한다. 바울은 세례를『씻는 것이 아니라 죽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례는 예수 앞에서 죄의 고백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장사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구약의 할례와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할례는 씨의 약속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육체를 베어버리는 뜻이다. 육체에 대하여 죽는 것이다. 그래서 할례가 세례의 그림자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린양의 피를 칠하고 출애굽(세상을 나온다)했다. 하나님의 진노를 지나간다. 그리고 광야를 지나서 요단강을 여호수아와 함께 건너간다. 홍해를 건널 때(세상을 나올 때)는 모세(율법의 상징)와 함께 나왔다.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는 여호수아(히브리어, 헬라어는 예수)와 함께 요단강을 건넌다. 그 요단강에서 할례를 행했다. 할례는 애굽을 나올 때 행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할례는 가나안에 들어갈 때 행한 것이다. 구원을 받는 세례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세례요한의 세례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세례요한의 세례는 죄를 씻는 것을 의미하지만 가나안에 들어가는 세례는 옛사람이 죽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의 대부분 교회에서는 어린양의 피를 칠한 후 애굽을 나와,  홍해바다를 건넌 후 광야에서는 어린양의 피만 의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광야에서는『회개하라』는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구원은 죄를 씻는 것이 아니라 옛사람이 죽는 것...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

(로마서 6장 3절)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사도바울의 서신이 일곱 개인데,『성령세례를 받으라』라는 말이 없다. 다 물세례가 무엇인지를 설명을 하고 있다. 오늘날 교회는 축복과 성령충만에 빠져있다. 그리고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 그런데 바울은 물세례를 설명하고 있다. 물세례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다.『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이것 만이 구원의 시작이다.  물은 죄를 깨닫고 괴로워하고 인정하여, 죄를 씻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서『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과 합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합하기 전에는 구원이 아닌 것이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하나님은『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집을 떠났지만 친척인 조카 롯을 데리고 나왔다. 회개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도 하나님은 믿어는져도, 온전한 순종은 나올 수 없다. 아브라함도 순종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은혜를 받아 방언을 하고, 천사의 소리를 말하면 대단하게 여겨지고 구원받은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육적 죽음의 회개가 있는가 이다.  회개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25년 동안 전쟁도 이기고, 멜기세덱(재림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라는 신령한 영적인 존재를 만났지만 그가 떠난지 11년 만에 아내 사래의 말을 듣고 이스마엘을 낳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인간적인 ...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로마서 6장 1-2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예수님은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것을 전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이 말씀을 전했을 때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특히나 신앙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미워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곳에 반드시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교회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사람들이 원하는 길이 아니라, 싫어하는 길이다. 그래서『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이 싫은 것이다. 관념적으로는 이해하지만, 삶 속에서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 되고 만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은 오직 자기를 부인하는 삶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주님이 되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계속 보내셨다. 왜냐하면 믿는다고 하는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몰랐으므로 보내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옛사람의 옷을 벗어버리고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 사람들의 원하는 것은 예수믿고 회개하여 죄 사함을 얻는 것이다. 무엇이 차이가 있는가?  교회에 나온지 얼마 안된 사람이나, 예수를 믿기로 했지만 구원의 길을 뚜렷하게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 분이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었으며, 또 그 분이 나를 대신하여 죽었음을 회개하고 믿으면, 모든 죄가 다 사해지고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을 듣고 그렇게 믿고 있지만,  삶 속에서 스스로 구원받았는지 참으로 의심할 때가 많다고 말하는 자들이 많다. 그래서 말씀 전하는 사람들은 구원의 확신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  로마서 6장 1절에서『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라고 하고 있으며, 로마서 6장 4절에서 보면『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로마서 5장 12-14절)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는 말에서 모든 사람이 아담과 같이 죄를 가지고 이 세상에 들어왔으며, 아담은 대속제물인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방법으로 세상에 죄를 가지고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로마서 5장 14절에 아담의 후손은 아담과 같은 범죄를 짓지 않았다고 한다. 교회사람들은 아담 때문에 죄인이 되었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인이 되었다고 하는데, 아담의 후손은 아담과 같은 범죄(법을 어긴 것)를 짓지 않았다는 것이다.  로마서 5장 14절에서 아담의 후손들도 사망이 왕노릇 했다고 한다. 아담의 후손들이 아담과 같은 그런 범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사망이 저희들 위에 왕노릇 했다는 것이다. 즉 아담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해졌다. 아담과 같은 죄를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이 저희들 위에서 왕노릇 했다는 것이다.  아담의 후손들이 죽는 것은 아담 때문이 아니라 지신들의 죄때문이라는 것이다. 대부분 교회에서는 이렇게 말한다.『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아름답고 선한 계획에 의해 창조되어, 행복한 삶을 누렸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의 교만과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죄를 지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채 그 후손인 인간 모두에게는 고통과 아픔이 들어왔고, 심판을 받아 죽음과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에덴동산에...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로마서 5장 5-11절)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가 그의 인생에서 어떤 혜택을 누리게 되는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먼저, 새로운 신분증을 발급받게 된다. 그의 신분증에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라고 기록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 된 자는 더 이상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라,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  두 번째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좁고 협착한 길을 걸어가게 된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니라.』 세번째, 환난 중에서 즐거움을 찾아낸다. 왜냐하면 환난 중에 인내하게 되고, 인내하면 단련되어 더욱 성숙하게 되며, 결국 천국을 향한 소망이 더욱 또렷해지기 때문이다.  그 때에 보게 될 소망은 현재 지나는 고난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난은 또한 성도를 지치게 만든다. 그러나 이 때, 성령이 도우시는 것이다.『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로마서 5장 2-4절)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로마서 1-3장을 읽지 않고, 로마서 4장으로 건너 뛰면 문제가 생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단순히 가르치거나 듣기 때문이다. 믿음은 사람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런 믿음은 환경이 해결되는 믿음이 될 수 있다. 믿기만 하면 병도 나을 수 있으며, 풍랑을 가라앉을 수 있다. 그러나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의 공로와 연합되어야만 구원받는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는 것은 회개를 통한 내적변화가 뒤따르게 된다. 이게 거듭남이다. 거듭남은 옛사람은 죽고 새새람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로마서 6장에서 세례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사도바울이 로마교회에 편지를 하는데, 로마교회 사람들의 영적 상태는 죄에 대해서 죽은 자들임을 말한다. 6장 1-2절에서『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죄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죄의 원인인 악이 죽는 것이다. 악한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는다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게 세례라는 것을 3절에서 설명한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는 것이 우리의 죽음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죽음은 바로 내적 악의 죽음을 뜻한다. 이게 옛사람이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욕망이라는 것이다. 회개하여 우리의 내적인 옛사람(악)이 죽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새생명(새새람)으로 살리신다는 것이다.  6장 4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로마서 5장 1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의로우심을 얻어야 하나님과의 사이에 화평이 이루어진다. 바로왕의 노예로 살던 히브리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이렇게 어려움을 당할 때 부르짖는다. 그래서 주님이 보여주신 것은『내 백성으로 나를 예배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이게 안식이다.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 회복이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안식이다. 주님이 안식하실 때 그 속에 있는 자도 안식하게 된다. 그래서 주님이 주인되는 것이다. 주인이 되실 때 기업을 주신다. 하나님이 없는 자는 기업을 먼저 얻고 싶어한다. 기업 안에서 안식을 찾으려고 한다. 다 자기가 주인인 것이다.  바로왕은 히브리 노예를 풀어주지 않는다. 바로왕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마지막 재앙을 보이신게 하나님의 진노였다.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다. 그러나 안에 있지 않은 자는 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가『하나님은 진노하신다』가 아니라『하나님은 사랑이시라』를 생각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인간은 스스로의 상태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계시를 깨닫는 자만 하나님은 진노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래서 세상(애굽왕:사탄)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어린양의 피를 칠하고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먹은 후에 애굽을 빠져 나오는 것이다. 어린양의 피를 의지하여 주님께 나가는 자만 세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어린양의 피를 통해서 세상으로 부터 구속하기 때문이다. 구속은 피값으로 자기 백성을 사탄으로부터 사는 것이다. 자기 백성은 부르짖고 예배하는 자가 된다. 어린양의 고기를 불로 구워먹은 자다. 죽은 어린양의 고기가 몸 속으로 들어가, 먹은 자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어린양의 죽음과 하나가 되지 않으면 어린양의 피가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사탄)으로 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로마서 4장 23-25절)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말은 마치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것처럼 생각된다. 이것의 원인은 로마서 4장 2-3절에서『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나님을 믿으면,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바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게 그(자기)의 의다. 그러나 하나님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어야만 된다. 그 믿음은 회개한 자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와야한다. 자기의 의에 대한 대표적인 인물이 욥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의에 빠져있는 욥을 사탄에게 내어주었다.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들 대부분은『예수믿는다』는 고백으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 믿음은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하심을 얻기 위해서는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예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기 위해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다시 태어나는 것이 부활이다. 부활을 위해서는 이전의 것이 죽어야만 한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어버이날이 되면 수많은 교회에서 이 말씀을 이야기한다. 이 말씀은 에베소서 5장 31-33절과 연계되어 있다.『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앞의 것을...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로마서 4장 13-22절)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1장 18절부터 3장 20절까지의 절망적이고 죄인된 인생의 대표자로,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죄인된 인생이 하나님의 약속으로 은혜를 입어 복의 근원이 되었음을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죄인 된 인생은 무력함과 불가능한, 절망적인 상태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 밖에 없음을 알기에, 하나님 말씀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의지하는 신앙이 믿음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자기 믿음, 자기편에서 발동된 믿음은 흔들거리고 요동치고 체념하고 절망했지만, 자기를 부인하고 그 은혜에만 절박하게 붙들려 있는 그 믿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자기가 믿는 믿음은 자기의 의를 위한 믿음이지만, 하나님 말씀 앞에서 자기를 부인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로마서 4장 1-3절)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신앙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자신이 죄인이며, 죄인인 자신의 능력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자각이 있을 때 구원자를 찾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씀의 근거를 아브라함에서 찾아 설명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의인이 되었는데, 그의 행위로 된 것이라면 자랑할 것이 있겠지만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하나님 말씀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는 과정이 드러난다.  아브라함은 계속 자기의 생각을 하나님 말씀에 적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자기의 생각을 부인했을 때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드려서 하나님이 의롭다고 여기신 것이다. 아브라함이 어떤 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를 부인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이를 믿음으로 여기신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자기를 부인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믿음은 자기부인의 결과다.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은 그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한 것임을 설명한 후, 바울은 다윗의 시로서 결론 맺고 있다.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 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다윗은 죄악에 오염된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밝히 드러났으며, ...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

(로마서 4장 4-12절)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율법과 복음에 대해서 잘 이해해야만 한다. 율법은 행위를, 복음은 믿음을 내포한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의미다. 그런데 믿음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자기의 의에 빠질 수 있다. 믿음은 자기가 주체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 앞에서 육으로 반응하는 자기, 이를 부인하는 믿음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로 인정받는 믿음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75세에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친척 롯을 데리고 나온다. 약속의 자녀를 주겠다고 말씀하시지만 이스마엘을 낳았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99세 때에『내년에 약속의 자녀를 주겠다』고 말하는데도 속으로 웃었다. 이전의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는데 25년이 소요된 것이다. 로마서 4장 19절에서『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그래서 4장 23-24절에서『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로마서 4장 1-12절)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신앙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자신이 죄인이며, 죄인인 자신의 능력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자각이 있을 때 구원자를 찾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씀의 근거를 아브라함에서 찾아 설명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의인이 되었는데, 그의 행위로 된 것이라면 자랑할 것이 있겠지만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하나님 말씀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는 과정이 드러난다. 아브라함은 계속 자기의 생각을 하나님 말씀에 적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자기의 생각을 부인했을 때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드려서 하나님이 의...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로마서 3장 27-31절)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안디옥 교회와 유사하게 자생적으로 세워진 로마교회는 로마 제국의 다른 지역에 세워졌던 여타 초대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함께 섞여 있었다. 유대교 전통 신앙을 배경으로 한 유대인 성도들과 헬라 문화권의 종교적 배경을 지닌 이방인 성도들 간에는 분명 문화, 종교적 차이로 인해 관점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이에 바울은 1장 16절에서『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라고 구원의 보편성을 선포한 후, 1장 18절- 2장 16절에서 이방인 성도들의 죄를 지적했고, 2장 18-3장 8절에서 종교적 특권으로 율법과 할례를 내세운 유대인 성도들의 죄를 지적한 다음, 이 둘 모두를 종합해서 3장 9-18절에서 온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일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3장 19-20절에서 그는 율법을 소유했다고 해서, 또 율법의 행위(선행)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준다고 단호하게 밝혔다.  그리고 3장 21-22절에서『그러나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라고 말화면서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설명했다.  바울은 다시 한 번 하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로마서 3장 25-26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오늘날 교회는『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를 생략한채, 뒤의 부분을 말한다.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한다. 속량이 없이는 죄사함을 받을 수 없는데도, 예수를 믿으므로 그의 피로서 죄사함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예수의 피값으로 사신바되었으니, 이것이 값없는 은혜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 죄인은 죽지 않으면, 죄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는 존재다. 반드시 대가를 지불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회개하는 자를 위하여 자기 아들로 하여금 죽음의 대가를 치르게 하셨다.  회개가 무엇인가? 하나님께 대하여 죽을 자임을 깨닫고,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죄의 대가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죄의 대가를 예수님께 전가시키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은 죽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을 주라고 말하면서, 세상도 좋은 것이다. 하나님 나라도 좋고, 이 세상도 좋은 것이다. 하나님이 예수를 믿는 자를 위하여 피의 대가를 치른게 아니라, 예수와 함께 죽은 자를 위하여 피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은 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가 된다. 피의 대가는 어디에서 이루어지는가? 바로 지성소에서 화목제물로 이루어진다. 화목제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기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10가지 재앙이 내려졌다. 백성들이 장자의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린양...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로마서 3장 27-31절)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안디옥 교회와 유사하게 자생적으로 세워진 로마교회는 로마 제국의 다른 지역에 세워졌던 여타 초대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함께 섞여 있었다. 유대교 전통 신앙을 배경으로 한 유대인 성도들과 헬라 문화권의 종교적 배경을 지닌 이방인 성도들 간에는 분명 문화, 종교적 차이로 인해 관점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이에 바울은 1장 16절에서『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라고 구원의 보편성을 선포한 후, 1장 18절- 2장 16절에서 이방인 성도들의 죄를 지적했고, 2장 18-3장 8절에서 종교적 특권으로 율법과 할례를 내세운 유대인 성도들의 죄를 지적한 다음, 이 둘 모두를 종합해서 3장 9-18절에서 온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일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3장 19-20절에서 그는 율법을 소유했다고 해서, 또 율법의 행위(선행)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준다고 단호하게 밝혔다. 그리고 3장 21-22절에서『그러나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라고 말화면서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설명했다.  바울은 다시 한 번 하나...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로마서 3장 25-26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오늘날 많은 교회는『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를 생략한채, 뒤의 부분을 말한다.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한다. 속량이 없이는 죄사함을 받을 수 없는데도, 예수를 믿으므로 그의 피로서 죄사함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예수의 피값으로 사신바되었으니, 이것이 값없는 은혜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 죄인은 죽지 않으면, 죄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는 존재다. 반드시 대가를 지불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회개하는 자를 위하여 자기 아들로 하여금 죽음의 대가를 치르게 하셨다.  회개가 무엇인가? 하나님께 대하여 죽을 자임을 깨닫고,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죄의 대가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죄의 대가를 예수님께 전가시키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은 죽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을 주라고 말하면서, 세상도 좋은 것이다. 하나님 나라도 좋고, 이 세상도 좋은 것이다. 하나님이 예수를 믿는 자를 위하여 피의 대가를 치른게 아니라, 예수와 함께 죽은 자를 위하여 피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은 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가 된다. 피의 대가는 어디에서 이루어지는가? 바로 지성소에서 화목제물로 이루어진다. 화목제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기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10가지 재앙이 내려졌다. 백성들이 장자의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로마서 3장 21-24절)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율법 외』라는 말은 율법 밖이란 뜻이다. 율법 안에서는 오직 율법을 완전히 지키는 자만 의를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아무도 율법으로는 의를 얻을 수 없다. 율법을 통해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그런데 율법 밖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그 의는『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예수 그리스도의 믿음』(faith of Jesus Christ: KJV)이다. 이 믿음은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말하는『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저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와 같은 믿음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의 믿음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모세가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저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통해서 모든 인간들은 뱀에 물린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니고데모는『당신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고는 당신과 같은 기적을 할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너는 민수기에서 말하는 뱀에 물린 자야 놋뱀을 바라보아야지만 살 수 있어』라는 것이다. 자신이 뱀에 물린 자라는 것을 깨닫기 전에는 이 말씀의 뜻을 알 수 없다. 『뱀에게 물린 자』라는 뜻은 사단에게 지배당한 자라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회개의 시작이다. 그래서 이 독을 제거하는 것이 사는 길이다. 장대에 높이 들린 인...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로마서 3장 9-20절)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1-3장에서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깨달아야만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들이 허물과 죄로 죽어있는 자라는 것을 알게된다. 상한 심령이다. 죽을 때까지 통회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이 죽어야 함을 말한다. 이런 일이 없으면 4장의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4장 2-3절에서『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이 믿음은 요한복음 3장 16절과 같은 내용이다.『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이 믿음에 대해서 로마서 4장 19절에서 설명한다.『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