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21의 게시물 표시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에베소서 4장 22-32절)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유혹은 속이는 것(deception)이다. 옛사람과 새사람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옛사람을 벗어버리면 주님이 새사람을 입혀주신다.『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에서 옛 성경을 보면『너희가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라고 되어있다.『심령』이라는 말은『생각의 영』이라는 표현이다. 영어로는 niv와 kjv가 차이가 있다.『in the attitude of your minds』(niv)『in the spirit of your mind』(kjv), attitude 가 아니라 spirit 다. 그리고 우리말 성경에는 spirit이 혼과 영으로 섞여 해석된 경우도 있으며, mind도 마음과 생각이라는 표현으로 섞여있다. 이 mind는 생각이라는 단어다. 마음은 heart로 표현한다. 너희의 생각의 영으로 새롭게 되어 24절에서『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는 것이다. 이게 거듭남이다. 이 말씀을 전후로 에베소서 5장 6-9절에서『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에베소서 4장 11-21절)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그 생명이 누구에게서부터 왔으며, 그 생명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알게하는 책이다. 이스라엘 백성들(바리새인들)이 오랫동안 메시야를 기다려왔지만, 정작 사람들이 메시야(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했다. 자기들이 생각하는 메시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성경의 말씀도 사람들이 자기들이 생각하는 식으로 성경을 바라보면, 하늘의 말씀을 알 수가 없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을 하면서도 세상의 풍조에 빠져 있거나, 어린아이와 같이...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4장 1-10절)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에서『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는 시편의 말씀에 나오는 것인데, 이것을 인용하면서 그래서 선물을 주셨다는 것이다. 선물은 8-9절의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앞에서부터 자신이 왕이심을 나타내셨다. 그리고 지옥에 가셨어도 왕이심을 선포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지옥으로 내려가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셨다. 승천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승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에베소서 1장 3절에서『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1장 10절에서『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될 때 능력이 나타난다. 하나님의 능력은 1장 20-21절에서『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승천은 권세를 나타낸다. 예수님이...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에베소서 3장 12-21절)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회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충만함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한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 자신이나, 영을 구하기 위해 직접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다. 정말 넘치는 사랑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이 넘치는 사랑이 마음 속에 깊히 박혀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마음속 깊히 뿌리 박힐 때 속사람이 바뀐다. 육의 몸에서 영의 몸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영을 살리는 사랑이다. 그래서 영을 살리는 삶을 살아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았는데, 여전히 구원에 대해서 자신이 없으며, 세상의 것들을 구하고 있으면,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담대히 나갈 수 없는 것이다. 속사람과 겉사람에 대해서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겉사람은 육의 몸을 말하고 ...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

(에베소서 3장 1-11절)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말씀은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많은 부분을 세상의 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여기에서『이러므로』라는 말은 이방인에게 하나님이 복음을 전하게 하셨는데,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으로 연결된다. 초대교회 시절에는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는데, 이해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울을 택하시고 이방의 전도를 위해서 바울을 사용하셨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되었음을 1-2장에서 길게 설명했던 것이다.  이방인은 원래 하나님에 대해서는...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에베소서 2장 11-22절)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나 현재나 율법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다. 율법을 받은 것을 대단한 것으로 여기고, 지금까지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사람들의 대부분은 율법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예수님이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고 하므로 율법을 지켜나가야 한다 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예수님이 율법을 폐하러 오셨다고 하므로 율법을 안지켜도 된다고 말하면서도, 율법을 지켜나가는 모습을 본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율법은 완성되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율법의 효력이 없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에베소서 2장 8-10절)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8-9절을 10절과 따로 읽으면 안된다.  8-10절을 함께 읽어야 한다.『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이 말씀은 부모로 물려받은 육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왜 다시 태어나야만 하는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라는 것이다. 선한 일을 위하여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거듭남은 구약성경에서 출애굽 사건과 광야를 지나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이 된다. 가나안이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대부분 교회에서는 어린양의 피를 칠하고 애굽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한다. 광야는 이 세상에 살면서 사탄과 싸울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원을 받았지만 가끔 넘어지기도 하기 때문에, 잘 훈련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이 아니고서는 아무리 애굽을 나오고 광야에서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았다 할지라도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세상이 어려워지면 하나님을 찾게된다. 마치 바로왕의 억압 속에서 부르짖은 히브리 백성들처럼 하나님을 찾게된다. 어린양의 피를 칠하는 믿음이 있었고, 어린양의 고기를 먹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었으며, 매일 구름기둥과 불기등으로 따르는 것처럼 예배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열심히했다고 해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으로 자동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열두 정탐꾼의 이야기다. 열두지파의 대표는 지파별로 약 오만명 중에 가장 믿음이 좋은 자 한명을 택하여 선발된 자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에베소서 2장 5-7절『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이 말은『세례』를 표현한다. 모든 사람은 허물과 죄로 죽어있다.『영이 하나님께 대하여 죽어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세상에 대해서는 살아있다. 그래서 허물과 죄로 죽은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구원이다. 이것이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나오는 내용이다.『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구원은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다는 말씀이다. 사람이 믿기로 하여『하나님을 영접한다』는 말은 성립이 안된다. 사람의 믿음과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 만나야 한다.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 믿음이 오기 전에는 여전이 율법 아래 있는 자라는 것이다. 두 믿음이 만나는 곳이 십자가이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가 바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구원의 핵심은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예수와 함께 살리신다. 허물로 하나님께 죽어있는 것을 깨닫고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이 회개요, 이렇게 죽으므로 다시 예수와 함께 태어나는 것이다.『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선물은 예수와 함께 죽을 때 받는 것이다. 이 믿음은 거듭남 자에게만 생기는 믿음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영접하게 된다.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권세가 에베소서 2장 6절의 말씀이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믿는 인간의 존재는 이 땅에 있는데,『하늘에 앉히셨다』고 한다.『승천하신 주님과 하나가 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은 것이다. 그래서 요한복...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에베소서 2장 4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영이 죽어있다. 왜냐하면 원죄로 죽어있으며, 육이 오염되었다. 원죄는 육적인 원죄와 영적인 원죄가 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는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원죄는 육적 원죄다. 육적 원죄는 악(죄성)이라고 말하며, 세상에 살면서, 이 악이 하나님 말씀과 세상의 법을 어기게하며, 죄를 짓게 만든다. 그러나 영적인 원죄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죄다. 그래서 인간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대적하며 우상을 섬기며 살게된다. 그래서 이 두가지를 합하여 원죄라고 말한다.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를 원죄라고 말하지만, 영적인 원죄는 하나님 나라에서 사탄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 영적 원죄의 시작이다. 그래서 사탄을 따르는 모든 존재들은 영적 원죄를 물려받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육적인 원죄는 이 땅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영적인 원죄는 영적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 되어있는 것은 이 두가지의 원죄를 다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죄성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우상이다. 죄성은 육의 몸을 오염시키지만, 우상은 영을 죽인다. 그래서 육의 몸(죄성)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성령의 능력으로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영이 살아날 수 없게된다. 그래서 구원의 조건은 육의 몸이 죽고, 영의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에베소서 2장 1절에서『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And you hath he quickened, who were dead in trespasses and sins;(kjv)...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에베소서 2장 3절)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된 이유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육체의 욕심은 바로 탐심이다. 골로새서 3장 5-6절에서『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그런데, 하나님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를 큰 사랑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려면, 함께 먼저 죽어야만 한다. 로마서 6장 3-4절에서『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지는 것이다.『합하여 지는 것』은『하나가 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하나가 되는 것』에 대해서『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통해서 말했다. 에베소서 5장30-32절에서『우리는 그의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가 마치 부부가 하나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 말은 창세기에서도 있다. 창세기 2장 22-24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에베소서 2장 3절)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된 이유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육체의 욕심은 바로 탐심이다. 골로새서 3장 5-6절에서『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그런데, 하나님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를 큰 사랑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려면, 함께 먼저 죽어야만 한다. 로마서 6장 3-4절에서『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부모로부터 받은 육의 몸은 죽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영의 몸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지는 것이다.『합하여 지는 것』은『하나가 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하나가 되는 것』에 대해서『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통해서 말했다. 에베소서 5장30-32절에서『우리는 그의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가 마치 부부가 하나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 말은 창세기에서도 있다. 창세기 2장 22-24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에베소서 2장 1-2절)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쫒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다음, 그들의 육은 살아있었지만 영으로는 하나님께 대하여 죽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계속 들을 수 있었지만 에덴동산 숲에서 숨어 있었다. 교회의 예배나 의식은 에덴동산의 숲이 될 수 있다. 이런 예배나 의식 속에서 숨어서 지내다가 사회에 나가서 육이 원하는 대로 살아간다면 영으로는 하나님께 대하여 죽은 자들이 될 것이다. 교회의 예배나 의식이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것은 그림자에 불과하다. 구약시대는 성소에 올 때마다 짐승을 가져와서 피를 받아야 했다. 그게 예배였다.  피흘림이 없이는 예배가 아니었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 사하심을 얻지 못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값없이 거저 갈 수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단 한번의 죽음 때문이다. 그래서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예수님이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 허물과 죄로 죽어있던 자들이다. 영이 죽었다는 말이다. 예배를 드렸다고 영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허물과 죄에서 허물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지은 죄를 말하고 죄(sin)는 원죄를 의미한다. 허물과 죄로 죽었다는 말은『하나님이 주신 영』이 죽어 에베소서 1장 2절의 상태가 된 것을 말한다.『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회개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은 이런 상태라는 것이다. 교회를 다녀도 세상 풍속을 쫒는 사람들이 있다면 에베소서 1장 2절의 상태가 된다. 출애굽했을 때 홍해바다가 갈라졌는데, 그 때는 바로왕의 군대로 부터 육체적인 구원을 얻게 된다. 소고치며 기뻐서 뛰놀았다. 그런데 광야를 나왔는데 길이 험하다고 삼일 만에 하나...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에베소서 1장 15-23절)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무슨 일이 있었으며, 인간이 왜 이 세상에 있으며, 구원받는 주체가 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자신이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죄악 가운데 있음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에게 그리스도께서 다가가신다. 그래서 구원의 길을 발견하게 되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인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회복시켜주시는 것이 너무나 풍성한 은혜가 되는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의 죽음으로 그와 연합되는 자에게 베푸신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바울의 기도내용이다. 에베소교회가 이렇게 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 되어야만 한다. 자신이 무엇을 해보겠다는 의지를 다 버리고 오직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구원하...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에베소서 1장 7-14절)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속량은 대속의 의미를 갖는다. 값을 주고 종을 사는 의미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의 피값을 사탄에게 지불하고 사탄의 종을 사는 개념이다. 사탄은 이 세상의 임금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 종말때까지 너희 나라를 이루어보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사탄을 무저갱에 넣고, 심판하실 것이다. 사탄은 이 세상에서 왕노룻하고 있다. 흙에 갇힌 인간들을 종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탄의 노예가 된 것을 깨닫고 부르짖으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천하만민의 모델인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약속하셨다. 그런데, 요셉의 때에 기근을 통하여 야곱의 가족들을 애굽으로 들어가게 하시므로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이 되었다. 그들을 바로의 지배하에서 고통을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애굽은 세상을 상징하고, 바로는 사탄을 상징한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있는 존재들이 사탄의 종이 된 것을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으라는 메시지다. 이것이 비밀이요, 이 비밀을 깨닫는 것이 지혜와 총명이다.  예수님은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창세 전의 비유를 깨닫기를 바라셨다. 제자들에게는 허락되었...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에베소서 1장 1-10절)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창세 전에 예정하신 것이 무엇인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성경의 전체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난 일과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일은 하늘과 땅에서 일어난 일로서 그 성격이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땅의 일을 통해서 하늘의 일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하늘에서 일어난 일은 사탄이 하나님께 범죄하므로 그를 추종하는 악한 영들을 물질세계를 만들어 가두어 인간이 되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을 청조하시고, 인간을 세상에 가두고, 그리스도를 예정하시어,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이 창세 전에 계획하신 것이다. 사람들은 에덴동산에서 인간들이 범죄할 것을 미리 아시고, 창세 전에 그리스도를 예정하셨으며, 그래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인간들의 생각이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을 단순히 인간들의 죄의 결과에 대입시키려고 한다. 정말 모순인 것이다. 인간의 육체 속에 있는 영들은 원해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 아들들이었다. 그러나 사탄의 유혹, 즉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속임에 넘어가,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두어버린 것이다.   요한계시록 12장 9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갈라디아서 6장 14-18절)『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가 주가 되어야만 한다. 사도바울은 삼층천에 가본 경험이 있다고 말한다. 바울이 삼층천에 있는 창조주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의 예수님을 자랑한다는 말씀이다. 대부분 교회에서는 부활을 강조한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계시록에서 천사들이 죽임당한 어린양을 노래한다. 그 분은 하나님 나라에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인데, 이 땅에 와서 죽었다는 말씀이다.  갈라디아서 6장 13절에서는『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은 자는 육체를 자랑하려고 하는 자들이다. 출애굽한 백성들이 애굽을 나왔을 때는 애굽이 히브리 백성을 버린게 아니라 히브리 백성들이 애굽을 버렸다. 그래서 애굽의 군대는 히브리 백성을 죽이려고 쫒아온 것이다. 홍해바다는 애굽과 단절한 것을 나타낸다.  그런데 광야에 나온 백성들이 애굽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매일 맛나를 먹었던 백성들이『차라리 애굽이 나았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먹을 것을 가지고 불평하면서 애굽을 동경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세상이 교회 사람들에게 못박아버리는데, 그들이 세상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자랑하려고 하는 육신이다.  육은 흙으로...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

(갈라디아서 6장 9-13절)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선을 행하는 일은 율법을 벗어나는 일이다. 왜냐하면, 율법은 죄가 생각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율법으로부터 벗어나는 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 요한1서 3장 9절에서『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그런데, 율법주의자들이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와 할례를 행해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었다.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육체를 자랑한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율법주의자들은 완전하게 율법을 지켜 의를 이루지도 못하면서, 할례를 마치 의를 얻는 조건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말이다.  로마서 3장 19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이게 복음이다. 이게 모든 사람의 영적 실상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육체와 육으로 비롯된 생각이 원하는 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교회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말씀은...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장 1-8절)『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초대교회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아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점차 믿게 되었지만 율법에 대해서는 혼란이 있었다. 그래서 율법을 바탕으로 죄를 지적하거나 자신의 죄를 바라보는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을 벗어버리고,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함을 말해주신다.  로마서 8장 1-2절에서『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모든 인간들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들이다. 그러나 죄인들이 회개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될 때, 비록 죄가 있지만,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를 덮어주신다. 그래서 거듭난 자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육적인 것은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직 영의 몸으로 거듭난 자만 하나님이 죄를 넘어가시는 것이다. 성도들 간에 이런 진리의 말씀을 서로 나누어서 잘못된 율법적 생각을 버려야만 한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라디아서 5장 19-26절)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자유는 멍에로부터 자유다. 멍에는 종의 멍에인데, 바로 사탄의 지배하에 있다는 것이다. 왜 인간들이 사탄의 지배하에 있게 된 것인가? 교회 사람들은 대부분 에덴동산을 떠 올린다. 에덴동산에서 지은 원죄로 인하여 사탄의 종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원죄는 두가지다. 하늘의 원죄와 땅의 원죄다.  에덴동산의 원죄는 이 세상의 원죄이지만, 하늘의 원죄는 하나님 나라에서 영들이 사탄의 미혹을 따라 갔으므로, 하나님께서 영들을 이 세상의 흙 속에 집어 넣으므로서 사탄의 종들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창세 전에 그리스도를 계획하시고, 이 세상에 보내시어 갇힌 영들을 구하도록 계획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온 자들은 자유함을 입게 되는 것이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율법을 완성하셨으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그리스도로 인해서 율법이 완성되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이웃의 죽어있는 영들을 살리려고 하는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일은 바로 영을 살리는 일이다. 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갈라디아서 5장 16-18절)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5장 13절에서는『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라고 했다. 자유는 멍에로부터 자유다. 멍에는 종의 멍에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자유다. 구원은 멍에를 지고 있는가, 자유를 누리는가의 문제다. 율법은 종의 멍에이며, 그리스도는 자유를 준다. 자유를 받았다고 하는 자들이 종의 멍에를 메려고 한다면, 말이 안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받았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지 않으면, 사탄의 종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탄의 종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사탄의 종도 될 수 없는 것이다. 분명히 둘 중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중간은 없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면, 마음에 성령의 법이 있으며, 사탄의 종이면, 마음에 죄가 있어, 율법에 갇혀있게 된다. 성령의 법에 적용되면서, 율법을 적용할 수 없는 것이다. 율법 아래 갇혀있는 있는 자는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사는 자가 되며,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는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는다.  사도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는 율법 아래 있지 않다 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서 율법 아래 있는 자, 곧 육체의 욕심을 이루고자 하는 자에 대해서 말했다.『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그런데, 비교하면서 성령을 따르는 자에 대해서도 5장 22-23절에서 설명한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갈라디아서 5장 3-15절)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바울은『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으로부터 자유케 해주셨으므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말라』라고 말했다. 종의 멍에는 율법이다. 특히 할례가 대표적인 것으로 율법주의자들이 가만히 들어와 할례를 받아야만 한다고 누룩과 같이 퍼뜨리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사람들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두 종류가 있는데, 단순히 율법을 지키는 자와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율법을 지키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율법을 지키므로 율법을 지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면 정말 술 취한 자의 소리다. 어떠한 경우도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는 성령이 없는 자가 된다.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유대인과 같은 율법주의자는 아니지만, 성경 말씀에 비추어, 죄를 짓는지 않짓는지 살펴보고, 성경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데, 그게 어떻게 율법주의자인가 라고 반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십계명을 통해서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뜻에 벗어났는지 살펴보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라고 반문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 5장 1-2절)『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바울은『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으로부터 자유케 해주셨으므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말라』라고 말했다. 종의 멍에는 율법이다. 특히 할례가 대표적인 것으로 율법주의자들이 가만히 들어와 할례를 받아야만 한다고 누룩과 같이 퍼뜨리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사람들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들을 보면, 두 종류가 있는데, 단순히 율법을 지키는 자와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율법을 지키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율법을 지키므로 율법을 지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령께서『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율법을 지키는 자』를 보호하신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말한다면 정말 술 취한 자의 소리다. 성경에도 없는 말들을 하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도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는 성령이 없는 자가 된다.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유대인과 같은 율법주의자는 아니지만, 성경 말씀에 비추어, 죄를 짓는지 않짓는지 살펴보고, 성경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데, 그게 어떻게 율법주의자인가 라고 반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십계명을 통해서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뜻에 벗어났는지 살펴보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라고 반문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율법 특히 십계명을 주신 것은 죄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여전히 십계명 속에서 죄를 발견해야만 한다고 말하므로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자가 되는 것이다. 십계명을 통해서 의인이 되고 싶은 자에게는 하나님이 율법으로 다스리신다. 모든 율법 중에서 하나라도 어기면 하나님으로부터 심판받는 것이다.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들은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십계명의 첫번째 계명은『나 외에는 위하는 신들을 ...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갈라디아서 4장 30-31절)『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  사도바울이 갈라디아 지방을 전도 여행을 하는 중에 병에 걸려서 그곳에서 병을 치료했었다. 병이 든 중에서도 전도를 진행했었다. 그래서 갈라디아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는데, 갈라디아 교인들은 병이 든 바울을 좋게 대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 사람들의 마음이 돌아선데 대해서 바울은 마음의 고통이 있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복음을 다시 설명하는 것이다.『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율법을 지키려는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을 향해서 율법을 설명하려고 한다.  율법을 다시 지키려고 하는 것은 갈라디아서 5장 3절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율법적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사람은 율법의 어느 한 부분 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조항을 다 지켜서 행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할례는 율법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그것만 지키고 다른 것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선별적 생각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다 지키던지, 다 안지키던지 두가지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율법을 잘 지키다가 그 중의 하나라도 어기면, 율법을 모두 범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율법을 떠난 자들이고,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율법 아래 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들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을 하면서 율법을 지키려한다면, 그리스도 밖으로 나가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바울은 비유를 들어서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설명했다.『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되...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갈라디아서 4장 12-29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라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12-19절까지는...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갈라디아서 4장 8-11절)『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다시 종노릇한다는 의미는 천학 초등학문을 지킨다는 것이다. 여기서말하는 초등학문은 율법에서 말하고 있는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는 것을 말한다. 물론 이외에도 율법 속에 있는 여러가지를 포함할 것이다. 초등학문을 지키는 행위는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은 의미가 헛되게 되는 것이다. 잠언 26장 11절에서『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율법에서 벗어나, 은혜에 들어갔다고 말을 하면서, 다시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마치 개의 미련한 행동과 같다는 것이다. 베드로후서 2장 22절에서 사도 베드로도 같은 표현을 했다.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베드로는 거짓교사들을 향해서 이런 말을 했다. 2장 20절에서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얽매인다는 것은 다시 율법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바로왕의 지배 아래 있던 이스라엘이 노역이 괴로우므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출애굽기 2장 23절에서『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어 말씀하셨다. 출애굽기 3장 7절에서『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갈라디아서 4장 4-7절『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아들이기 전에는 사탄의 종이라는 의미다.『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여기서 이후의 의미를 깨달아야만 한다.『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즉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실 때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즉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을 때, 하나님이 성령으로 부활시켜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살게된다.  로마서 8장 14절에서『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이 아들의 영을 주시는 이유는 종의 신분에서 자유함을 입는 신분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그것이 속량이다.『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하나님이 하나님을 떠난 자가 회개하여 돌이킬 때, 속량해주신다. 회개하여 돌이키는 것이 곧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의미한다.  속량은 예수의 피값을 지불하고 사탄으로부터 종을 사는 개념이다. 사탄의 종이 회개하여 돌이킬 때, 예수님의 죽으심이 적용되어 하나님이 아들이라는 신분으로 바뀌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서『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속량되는 것이 율법의 저주에서 이루어지고, 나무에 달린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속량받은 자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으로 부터 저주를 받은 것이며,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받으신 저주가 믿는 자에게도 적용되려면, 예수와 함께 연합...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갈라디아서 4장 1-3절『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에서『이 후로는』언제인가? 아들의 영이 신자들의 마음에 들어오는 때를 말한다. 그래서『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로마서 8장 14절에서『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하나님의 아들은 종의 신분이 아니다. 아들의 영을 주시는 것과 속량을 연계되어 있다.  속량이라는 말은 종을 값을 주고 사는 개념이다. 아들이 되기 전에는 종이었는데, 값을 주고 사므로서 아들이 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14절에서『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우리가 저주를 받아야 하는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신 것이 속량이라는 것이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저주를 받는 자들이다. 그런데 율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속량을 받아야 한다. 속량을 받은 자들은 종의 신분이 아니라 아들의 신분이 되어 율법으로부터 벗어난다. 율법의 요구는 저주요, 사망이다.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는 것은 로마서 8장 3-4절에서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이 자기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육신이 주인이 될 때는 하나님이 거하지않는다. 왜냐하면 육신은 영을 가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신을 따르는 자들은 율법주의자들이다. 율법이 죄를 정해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