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20의 게시물 표시

주님이 오실 때 나는 데려감을 당할까

요한복음 17장 21절『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 각자 성경귀절을 근거로 나름대로 생각한다. 그 근거가 세상에 죄가 있는가 없는가를 중심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세상죄 사함받는 것이 구원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구원은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죽어서 나중에 천국에 간다는 생각은 구약시대의 생각이다. 예수님이 마리아와 마르다와의 대화에서 마르다는 죽어서 언젠가는 부활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현재적 부활을 말씀하고 있다. 즉 옛사람(육의 몸)이 예수와 함께 죽고,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거듭남)이 현재적 부활인 것이다. 육체가 현재 이 땅에 있지만 영의 몸으로 거듭나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과 같은 그런 신령한 몸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하늘에 감추어진 바 되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거듭난 자가 살다가 육체가 죽으면, 아브라함의 품(낙원)에 있다가 예수님의 재림때 예수님과 함께 신령한 몸으로 왕노릇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육체가 죽기 전에 예수님의 재림을 만나게 되면, 홀연히 육체는 사라지고, 신령한 몸으로 주를 영접하게 될 것이다.  누가복음에서 바리새인들이 예수께『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니이까』라고 물었다. 예수님이 대답하시되『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있다 저기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라고 대답하셨다. 요한복음 17장 21-23절에서『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

야곱이 벧엘에서 서원한 십일조

창세기 28장 20-22절에서『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너희들은 율법을 지켜서 의를 이룰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율법을 완성하셨다. 그런데도, 율법을 지켜 행하고자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믿지 않는 것이다. 십일조는 율법의 한 조항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십일조라는 말이 필요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온전한 십일조를 이미 다 바친 것이다.  야곱이 서원하여『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하였다.  그런데, 야곱이 서원한 것을 오늘날에 그대로 적용하여 십일조를 바쳐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성경에도 없는 말을 만들어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야곱이 돌베게를 하고 잠을 자다가 꿈을 꾸게된다. 창세기 28장 12-15절에서『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에베소서 6장 10-17절) 마귀의 간계는 하나님의 능력을 흉내내는 것이다. 마치 무당이 귀신을 쫒아내는 것처럼 그런 일들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귀신 쫒아낸 것처럼 오늘날도 교회 사람들이 귀신 쫒아내는 일을 하나님의 능력을 입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하나님의 능력인가? 예수님이 귀신을 쫒아낸 것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나타내고 메시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교회 사람이 귀신을 쫒아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인가?  고린도후서 11장 14-15절에서『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우리가 하나님께 능력을 달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생각하면 곤란한다. 하나님은 직접 싸움의 능력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한다.『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허리 띠를 띠면 옷을 입은 상태가 안정적이 된다. 진리가 허리 띠다. 진리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의의 호심경을 붙이고』호심경은 방탄복과 같은 것이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육의 몸...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에베소서 6장 1-9절) 에베소서 5장에서는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비유하여 말씀했지만, 에베소서 6장 1-9절에서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 상전과 종의 관계로 설명한다.『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이 말씀은 생명의 말씀과 관계 있다. 하늘의 생명을 주는 분이 부모이고, 부모가 생명의 말씀을 줄 때는 그 말씀을 듣고,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영적인 이야기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물론 이 땅에서의 부모에게도 공경해야 할 것이지만, 영적 생명이 없는 부모도 있을 수 있는데, 영적 생명이 없는 부모의 말은 이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한다. 세상에서 복을 받기 위한 그런 내용들이 주를 이루는 것이다.  출애굽기 20장 12절에서『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그래서 사람들은 이 세상의 이야기로 받아드린다.  마태복음 23장 9절에서『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이 말씀은 영적인 ...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비밀

(에베소서 5장 30-33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큰 비밀은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이것이 큰 비밀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말씀 속에 숨겨진 이면의 뜻이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원의 기준을 죄사함을 받는 것으로 판단한다.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구원이다. 이 땅에 살다가 죽어서 천국간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구약시대의 믿음에 불과한 것이다. 예수님과 마르다와의 대화에서 마르다는 『마지막 때 죽어서 부활하는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오늘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는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부활한 것을 믿는 것이 구원이다. 아직은 부활하지 못했지만, 언젠가 죽어서 부활한다고 믿으면 그 믿음은 구원받는 믿음이 아니다. 물과 성령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은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거듭남이 바로 부활이기 때문이다.  부활은 이 땅에서 먼저 이루어지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누가복음 17장 20-21절에서『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요한복음 17장 21-23절에서『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에베소서 5장 14-21절)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여기서『그러므로』는 에베소서 5장 8-9절에서 빛의 자녀에 대해서 언급한 말을 연결시킨다. 잠자는 자는 깨어 일어난다. 그런데,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고 한다. 깨어날 자는 잠을 자는 자이고, 깨어나지 못하는 자는 죽은 자를 의미한다. 죽은 자들은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다. 그들 중에 깨어나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회당장 야이로의 딸에 죽었을 때, 예수님이 살려주신다. 예수님이 회당장의 집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딸이 죽었으니, 선생을 괴롭게 하지 말라』고 했을 때, 예수님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라고 말했다. 잔다는 말이 여기서 말한 잠자는 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아이야 일어나라』라고 말했을 때, 영이 돌아와 살아나는 것을 일어난다 라고 표현했다.  예수님이 죽었던 나사로를 살린 일이 있었다. 요한복음 11장 23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다시 산다는 말이 깨어난다는 의미다.  잠자던 자들이 언제 깨어나는가?『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그리스도께서 빛을 비추실 때 깨어난다. 요한복음 1장 4-5절에서『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에베소서 5장 8-14절)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라는 말에 대해서 잘못이해하면, 곤란하다. 이것을『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와 연결시키면, 마치 착하게 사는 것,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이 빛의 자녀들의 삶인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서 살았던 모범된 사람들을 예화로 들면서, 이런 사람들처럼 살아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라고 하므로, 앞에서 말한 그런 모범된 삶이 주를 기쁘시게 할 사람이라고 결론 맺을 것이다. 그래서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엄청난 결단과 노력으로 그렇게 되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이 자기 생각에 그렇게 여기는 것이다. 심지어는 교회에서 구원얻는 사람이 살아야 하는 모범된 삶의 모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세상은 사탄의 지배를 받는 세상이다. 하나님이 없는 이 세상은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악하다는 사실이다. 즉 세상에서 아무리 선하게, 착하게, 의롭게 산다고 말을 한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저 악한 자의 다양한 모습일 뿐이라는 것이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 즉 하나님은 이 땅의 것을 받지 않으신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는 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자, 의로운 자로 여기시고,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주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사실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의 ...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에베소서 5장 1-7절) 탐욕이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의 우상이다. 우상숭배하는 자가 곧『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하나님처럼 의를 이루어보겠다고 하는 자들이 모두 이런 우상숭배자들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을 떠난 영들이 물질세계의 흙속에 갇혀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되었다. 하나님은 죽어서 돌아오라는 말씀을 하고 있다. 모든 인간이 육으로 죽는 이유는 모든 인간 속에 있는 영들이 하나님을 떠난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옛사람의 옷을 벗어버리고,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 세상의 모든 죄와 모독을 다 사해주신다. 그래서 죽은 자가 되어서 돌아오라는 것이다.  마치 세상에서도, 죄수가 형기를 마치면 수의를 벗고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런데, 감옥에서 큰 잘못을 저질렀으면, 기간이 만료되어도 수의를 벗을 수 없게된다. 그래서 죄수의 아버지가 큰 잘못에 대해서 책임을 지도록 하고 죄수가 옷을 벗을 때까지의 발생했거나 앞으로 발생할 모든 값을 지불하는 것이다. 그래서 죄수는 아버지가 값을 다 지불했다는 말을 믿고 수의를 벗고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수의를...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며

에베소서 4장 11-14절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그 생명이 누구에게서부터 왔으며, 그 생명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알게하는 책이다. 이스라엘 백성들(바리새인들)이 오랫동안 메시야를 기다려왔지만, 정작 사람들이 메시야(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했다. 자기들이 생각하는 메시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성경의 말씀도 사람들이 자기들이 생각하는 식으로 성경을 바라보면, 하늘의 말씀을 알 수가 없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을 하면서도 세상의 풍조에 빠져 있거나, 어린아이와 같이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를 따는 자가 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세상의 풍조는 옛날부터 내려온 전통들을 말한다. 예를 들어 조상에 제사를 지낸다던가, 미신적인 행사를 한다든가 하는 일들이다. 특히 기독교인이 율법을 따르지 않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율법에 얽매여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십일조를 내야 한다든가, 성전 건축을 위해 헌금을 해야한다든가. 안식일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든가(주일도 안식일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례받았지만, 죄를 지으면 반드시 죄를 예수의 피로 용서받아야만 한다든가 하는 일들이 포함된다. 십일조는 율법의 하나로서 예수님이 다 완성하였으므로 십일조가 아니라, 교회 운영을 위한 헌금으로 표현되어야만 한다. 성전은 예수님이 성전이...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4장 8-10절)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십자가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지 않으신다. 반드시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르게 하신다. 그러나 회개하는 죄인들을 위해서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다. 이것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곧 나의 죽음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는 믿음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에게 전달되지 못하는 것이다. 창세 전에 예정하시고, 예정된 것을 충만하게 하시고, 이 땅에서 완전하게 이루심으로 그리스도의 충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땅으로 내려오셨다가 하늘로 올라가시는 이유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했다. 에베소서 4장 1절에서 사도바울이『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라고 말했다. 이 말은 이 세상의 것을 사랑하지 말고,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를 따르는 것이다. 합당하게 행하는 것은 로마서 6장 4절에서처럼 예수와 함께 장사지낸 바가 되라는 것이다.『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와 함께 죽는 자는 심령이 가난한 자임을 깨닫는다. 심령은 영을 말한다. 영이 가난하다는 말은 영이 집을 빼앗겼다는 말이다. 누군가가 영의 집을 주지 않으면, 절대로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영이 가난하다는 의미를 깨닫는 자는 복을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깨닫는 자는 하나님께 회개하여, 영의 몸을 입을 수 있기...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에베소서 3장 17-19절『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사도바울이 하나님께로 받은 계시와 환상을 통해서 알게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회개하는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이 창세 전의 비밀이었다. 사도바울은 사도행전 26장 16-18절에서 아그립바 왕에게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계시에 대해서 설명한다.『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이방인이나 유대인들이 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소경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눈을 뜨게해서 어둠의 권세로부터 벗어나야만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자신이 어둠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자만이 회개하여 빛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죄를 사해주시고, 거룩하게 해 주셔서,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얻게 해 주신다. 예수님의 대부분의 비유는 율법에 얽혀있는 유대인들보다 이방인들이 먼저 구원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것이 창세로부터 감추어진 비밀이다. 사도바울이 알게된 천국의 비밀이나 같은 의미를 갖는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율법을 지켜나가는 유대인들이 아니라 이방인들이 먼저 들어간다.  에베소서 3장 9-12절에서『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에베소서 2장 1-2절) 『허물과 죄』를 세상죄와 원죄를 의미한다.『And you hath he quickened, who were dead in trespasses and sins』허물(trespasses)과 죄(sins)는 어떤 의미인가? 허물은 헬라어 원어(파라토마)를 보면,『넘어지다, 떨어지다』라는 의미를 갖는다.『파라토마』의 어원인 동사『파라픽도』는 파라와 픽토가 결합된 합성언어다. 파라는 영어의 from에 해당하며, 픽토는『떨어지다』라는 의미를 갖는다.『떨어진다』라는 말은 위에서 아래로『떨어진다』는 의미를 갖는다. 누가복음 10장 18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그리고 21장 24절에서『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칼날에 죽임을 당한다』(they shall fall by the edge of the sword)는 말이 떨어진다는 표현이다. 그리고 사도행전 5장 5절에서『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Ananias hearing these words fell down)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고린도전서 10장 8절에서『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fell in one day three and twenty thousand),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결국 하나님 나라에서 이 세상에 들어온 자체가 죄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들은 다 죄인들이다. 그래서 허물과 죄는 하늘로부터 이 세상에 들어와 존재하는 모든 죄를 포함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 나라에서 영들이 자기 지위를 지키지 못하여 범죄하므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곳에 가...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에베소서 1장 17-19절) 하나님이 창세 전에 계획하고 예정하신 복은 하늘에 속한 복이다.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 자신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 신령한 복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시는 것이다. 에베소 교회는 이방인들이 주를 이루는 교회였다.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이루게되었다고 하지만, 그들이 어떤 과정으로 구원을 얻게 되는지를 알지못하고 있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 교회 교인들을 위해서 기도를 했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저희들에게 주시기를 기도한 것이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받아야 하나님에 대해서 알게된다. 내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나를 알기 위해서는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받아야만 한다. 교회 사람들 대부분에게『하나님을 정말 잘 알고 있는가』 이렇게 질문하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지혜와 계시의 정신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어야 답을 할 수 있다.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에서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는 자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으며,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고,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지혜가 있는 자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를 믿으면...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에베소서 1장 3-4절) 하늘에 속한 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적인 복을 말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땅의 것(그림자)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을 받으라고 하신다.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으므로, 땅의 것을 통해서 하늘의 복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요한복음 3장 12절에서 말씀하시기를『땅의 일도 믿지 않는데, 어떻게 하늘의 일을 믿겠는가』라고 하셨다. 하늘의 신령한 복을 이해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셔서, 이 땅에서 율법을 잘 지키면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백성들은 열심히 율법을 지키므로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보겠다고 했지만,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고, 자기의 의만 높이는 결과가 되었다. 하나님의 뜻은 율법을 지키려고 하다가, 그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는 죄인들임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의도이셨는데,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자기가 스스로 노력하여 의를 이루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포기하고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직접 백성들을 대신해서 의를 이루어주시겠다는 것인데, 자기 의를  포기하고 하나님께로 오는 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하는 복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인 가나안 땅이었다. 가나안 땅에서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 나라를 상고하고, 그리스도를 찾으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하여 이 세상에 왔으므로, 다시 돌아가는 길을 찾아 돌아오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것을 보지 못하는 자가 바로 영적인 소경이 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장 8절)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다』는 것을 믿는 자는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갈라디아서 4장 4-6절에서『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는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자만 그렇게 부를 수 있다. 그래서 율법으로 부터 속량이 된다.  율법을 지켜행해야 한다는 말은 그리스도가 내 안에 없다는 말이다. 율법을 지켜행해야 한다는 말은, 다시 율법으로 그리스도를 하늘에서 이 땅으로 끌어내리는 모양이다. 그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을 하면서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율법을 지켜행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믿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을 지켜행하는 것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율법을 지켜행하려고 하는 자들은 그 속에 성령이 계신 것이 아니라 사탄의 영이 그 안에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10장 10-12절에서『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거룩한 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믿는 자들도 자신이 거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마음 안에 ...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갈라디아서 5장 16-18절) 5장 13절에서는『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라고 했다. 자유는 멍에로부터 자유다. 멍에는 종의 멍에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자유다. 구원은 멍에를 지고 있는가, 자유를 누리는가의 문제다. 율법은 종의 멍에이며, 그리스도는 자유를 준다. 자유를 받았다고 하는 자들이 종의 멍에를 메려고 한다면, 말이 안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받았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지 않으면, 사탄의 종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탄의 종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사탄의 종도 될 수 없는 것이다. 분명히 둘 중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중간은 없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면, 마음에 성령의 법이 있으며, 사탄의 종이면, 마음에 죄가 있어, 율법에 갇혀있게 된다. 성령의 법에 적용되면서, 율법을 적용할 수 없는 것이다. 율법 아래 갇혀있는 있는 자는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사는 자가 되며,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는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는다.  사도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는 율법 아래 있지 않다 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서 율법 아래 있는 자, 곧 육체의 욕심을 이루고자 하는 자에 대해서 말했다.『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그런데, 비교하면서 성령을 따르는 자에 대해서도 5장 22-23절에서 설명한다.『성...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갈라디아서 4장 30절『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사도바울이 갈라디아 지방을 전도 여행을 하는 중에 병에 걸려서 그곳에서 병을 치료했었다. 병이 든 중에서도 전도를 진행했었다. 그래서 갈라디아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는데, 갈라디아 교인들은 병이 든 바울을 좋게 대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 사람들의 마음이 돌아선데 대해서 바울은 마음의 고통이 있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복음을 다시 설명하는 것이다.『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율법을 지키려는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을 향해서 율법을 설명하려고 한다.  율법을 다시 지키려고 하는 것은 갈라디아서 5장 3절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율법적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사람은 율법의 어느 한 부분 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조항을 다 지켜서 행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할례는 율법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그것만 지키고 다른 것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선별적 생각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다 지키던지, 다 안지키던지 두가지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율법을 잘 지키다가 그 중의 하나라도 어기면, 율법을 모두 범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율법을 떠난 자들이고,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율법 아래 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들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을 하면서 율법을 지키려한다면, 그리스도 밖으로 나가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바울은 비유를 들어서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설명했다.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되었으되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이스마엘)는 여종에게서, 하나(이삭)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갈라디아서 5장 1-2절『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바울은『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으로부터 자유케 해주셨으므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말라』라고 말했다. 종의 멍에는 율법이다. 특히 할례가 대표적인 것으로 율법주의자들이 가만히 들어와 할례를 받아야만 한다고 누룩과 같이 퍼뜨리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사람들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들을 보면, 두 종류가 있는데, 단순히 율법을 지키는 자와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율법을 지키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율법을 지키므로 율법을 지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령께서『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율법을 지키는 자』를 보호하신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말한다면 정말 술 취한 자의 소리다. 성경에도 없는 말들을 하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도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는 성령이 없는 자가 된다.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유대인과 같은 율법주의자는 아니지만, 성경 말씀에 비추어, 죄를 짓는지 않짓는지 살펴보고, 성경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데, 그게 어떻게 율법주의자인가 라고 반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십계명을 통해서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뜻에 벗어났는지 살펴보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라고 반문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율법 특히 십계명을 주신 것은 죄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여전히 십계명 속에서 죄를 발견해야만 한다고 말하므로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자가 되는 것이다.  십계명을 통해서 의인이 되고 싶은 자에게는 하나님이 율법으로 다스리신다. 모든 율법 중에서 하나라도 어기면 하나님으로부터 심판받는 것이다.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들은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십계명의 첫번째 계명은『나 외에는 위하는 신들을 네게...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갈라디아서 4장 8-11절『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다시 종노릇한다는 의미는 천학 초등학문을 지킨다는 것이다. 여기서말하는 초등학문은 율법에서 말하고 있는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는 것을 말한다. 물론 이외에도 율법 속에 있는 여러가지를 포함할 것이다. 초등학문을 지키는 행위는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은 의미가 헛되게 되는 것이다. 잠언 26장 11절에서『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율법에서 벗어나, 은혜에 들어갔다고 말을 하면서, 다시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마치 개의 미련한 행동과 같다는 것이다. 베드로후서 2장 22절에서 사도 베드로도 같은 표현을 했다.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베드로는 거짓교사들을 향해서 이런 말을 했다. 2장 20절에서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얽매인다는 것은 다시 율법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바로왕의 지배 아래 있던 이스라엘이 노역이 괴로우므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출애굽기 2장 23절에서『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어 말씀하셨다.  출애굽기 3장 7절에서『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갈라디아서 4장 4-7절『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아들이기 전에는 사탄의 종이라는 의미다.『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여기서 이후의 의미를 깨달아야만 한다.『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즉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실 때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즉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을 때, 하나님이 성령으로 부활시켜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살게된다. 로마서 8장 14절에서『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이 아들의 영을 주시는 이유는 종의 신분에서 자유함을 입는 신분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그것이 속량이다.『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하나님이 하나님을 떠난 자가 회개하여 돌이킬 때, 속량해주신다. 회개하여 돌이키는 것이 곧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의미한다. 속량은 예수의 피값을 지불하고 사탄으로부터 종을 사는 개념이다. 사탄의 종이 회개하여 돌이킬 때, 예수님의 죽으심이 적용되어 하나님이 아들이라는 신분으로 바뀌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서『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속량되는 것이 율법의 저주에서 이루어지고, 나무에 달린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속량받은 자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으로 부터 저주를 받은 것이며,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받으신 저주가 믿는 자에게도 적용되려면, 예수와 함께 연합되는 믿음이 되어야만 ...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갈라디아서 3장 23-25절『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초등교사 라는 말은 우리 말 성경에서 몽학선생이라고 번역된 바 있었다. 몽학선생은 헬라시대, 귀족의 종(하인)이었는데, 귀족들은 자기의 자녀들을 하인들 중에서 학식이 높은 자들에게 어릴 때부터 교육을 맡겨, 그 아이가 16세가 되면, 아버지로부터 시험을 받아야 하는데, 시험을 통과하는 자에게 아버지의 모든 기업을 물려받을 수 있었고, 통과하지 못하면 육으로는 아들이지만, 법률적, 시회적으로 아들이 되지 못하는 그런 시대의 선생이었으므로, 자녀에게는 중요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갈라디아서 4장 1-2절에서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고린도전서 4장 15절에서『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여기서 스승이 바로 초등교사(몽학선생)와 같은 의미다. 성경에서는 율법이 바로 초등교사라는 것이다.『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이 말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면서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많지 않다고 했다. 즉 자식을 낳은 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남의 자식을 데려와서 교육을 시켜서 기업을 물려받을 수 있는 자식으로 만들지 못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을 물려받을 수 있는 자식을 만든 것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복음으로 너희를 낳았다』고 표현한다.  『믿음이 오기 전에』믿음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는 믿음이 하늘로 부터 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이 오지 않으면, 율법...

약속한 자손이 오시기까지

갈라디아서 3장 19절『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범법하므로』정해진 규칙이나 규정을 어기는 것을 의미하지만, 여기에서 의미하는 뜻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죄에 빠졌다는 의미다. 디모데전서 2장 14절에서『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그 죄로 인하여, 율법을 더해주셨다는 것으로 사도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와가 범한 것은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한 그 열매를 먹은 것이다. 즉 사탄의 미혹을 받아서 하나님없이도 스스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열매를 먹었다는 말은 사탄의 말을 믿었다는 말이며, 하나님을 떠나겠다는 말이며, 하나님의 자식에서 사탄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사탄의 자식이 되면, 하나님에 대해서는 죽는다.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 죄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탄의 말을 쫒아간 영들을 흙속에 가두어 인간이 되게했지만, 인간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육체를 입을 때는 하나님이 주신 영이 그 속에 들어가지만, 육체를 벗을 때는 영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잊어버린 영들은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육체로부터 나온 영들은 무엇인가 영의 옷을 입어야 하는데, 입지 않으면 벌거벗은 영이 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2-3절에서『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하나님은 선하시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악하다라는 의미다. 그래서 인간들은 육에 갇혀있으므로 악한 존재가 된 것이다. 인간들은 자기들이 생각하고 보기에 좋으면 선하다고 생각한다. 기준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라는 것이다. 그것이 자기의 의다. 하나...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갈라디아서 3장 13절『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율법을 완성시켰으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또한 마찬가지로 율법에서 벗어났는데,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믿는 자가 스스로 율법을 지켜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율법을 세우면, 그것이 기준이 되어 하나님이 그 율법대로 판단하신다는 것이다. 자기가 쳐놓은 덧에 자기가 걸려드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2장 18절에서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모든 죄인들은 율법에서 완전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 사람들 대부분,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믿지만,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율법을 바라보고 지켜나간다고 생각한다. 즉 율법을 지켜나가는 것은 구원이 아니라, 다만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데서 기인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예수를 믿는 믿음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는 것은 단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다는 것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연합되는 믿음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로마서 6장 3-4절에서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은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한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예수와 함께 죽으므로 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그런데, 다시 율법으로 들...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갈라디아서 3장 8절『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사도바울이 갈라디아교회 교인들에게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믿음으로냐 라고 말한다.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면서 성령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어리섞다』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얼마 전의 일인데, 『누가 이렇게 속이던가』라고 묻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1절에서『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예수님이 소경된 자, 귀머거리를 고쳐주시므로, 유대인들이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서 이런 일을 한다고 말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12장 27-28절에서『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성령모독죄를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지 못하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12장 31절에서『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죄와 모독(훼방)을 지고 가셨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는다. 그래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실적인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율법을 바라보는 것이다. 율법을 바라보므로 자신이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자, 곧『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함을 믿는 자』에게는 세상죄의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이다. 결국 예수님이 세상죄를 다 가져가신 것을 믿지 않는 자는 예수와 함...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는가

갈라디아서 2장 21절『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바라보는 시각과 이방인들이 유대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먼저 유대인들의 시각을 살펴보면 신명기 7장 1-4절에서 잘 나타난다.『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센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선민 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기들은 율법을 잘 지키고 있으므로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방인을 바라볼 때, 그들은 죄인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이방인들과 함께 교제하는 것은 율법에 어긋나는 것으로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이방인들도 율법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알고 있었으므로 의도적으로 유대인들을 기피했다. 그런데, 유대인이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한 것이다. 베드로는 환상 중에 부정한 동물이 하늘에서 보자기에 싸여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하나님이 먹어라는 것이다.  부정한 동물은 이방인을 상징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고넬료에게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베드로를 만나라는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와 고넬료가 만나게 되고, 복음을 전하게 된다. 사도행전 11장 2-4절에서『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