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21의 게시물 표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고린도후서 5장 11-21절)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에게는 소망이 있었다. 그것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에 대한 소망이었다. 바울은 그 소망으로 인하여서 큰 환난을 당...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고린도후서 5장 1-10절)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16절에서 비록 겉 사람은 낡아지나 그의 속이 날로 새로워지고 있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외부적으로 겪고 있는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그 어려움들은 그가 장차 경험하게 될 영원한 영광의 무게와 비교해 본다면 감히 비교할 수 없는 것 이었기 때문에 지금 환난을 당하고 있더라도 보이지 않는 세계의 영광을 바라보며 현재 당하고 있는 고난을 이겨낼 수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현실 너머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진 바울은 고린도후서5장을 시작하면서,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는 상황을 이야기 한다. 이는 이 세상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영원한 집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땅에서 무너질 수 있는 유한한 인생을 비유한 장막 집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과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장막은 몸으로 비유된다. 육의 몸과 영의 몸이다. 하나님 나라로부터 오는 영원한 장막(처소)이 바로 영의 몸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고린도후서 4장 8-18절)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진다는 것은 성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임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 죽음 뒤에 들어날 예수의 생명이 직분 맡은 질그릇 같은 성도들에게 나타나게 하려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린 것은 부활의 승리 때문이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에 참여할 때 부활의 영광에도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마지막 권면을 했다.『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은혜로 말미암아 직분을 받은 자들은, 질그릇에 보배를 담고 살아가는 이들은 겉사람은 계속 낡아지지만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기 때문이며, 직분맡은 이들은 잠시 받는 환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린도후서 4장 1-7절)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4장은 3장에 이어 하나님의 영광이 율법이나 사람에게 있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음을 설명한다. 고린도교회에 바울의 가르침과 사역에 오해를 갖고 대항하던 자들은 유대의 전통을 따라 율법을 지켜야한다고 주장하던 이들로 여전히 율법에 매여 그리스도인의 규범(음식, 성, 결혼, 그리고 법적 소송 등)은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채, 고린도의 개방된 문화 속에서 근친상간 죄를 범한 자들이었다. 사실, 바울은 이러한 복잡한 문제들로 인해 고린도 교회에 2차방문을 했었다. 누가도 사도행전에 기록하지 않았지만 고린도후서 (12:14; 13:1-2)에 세번째 방문이라 언급함으로 가슴아픈 방문이 있었음을 유추 할 수 있다.  특별히, 가슴 아픈 방문이었기에 다시는 가지 않기로 결심까지 했었던 차였다. 그로 인해, 사도바울은 디도를 교회에 보내 일어나는 일을 자세히 알아보면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고. 에베소에서 고린도전서를 쓴 바울은 드로아에 가서 디도의 소식을 듣기 위해 기다렸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디도의 도착이 늦...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고린도후서 3장 1-18절)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당시 고린도교회 내에는 사...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

(고린도후서 2장1-10절)『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바울은 자신을 대적하며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자신을 대적하는 한 사람을 용서하라고 권면한다. 용서할 뿐만 아니라 위로하라고 권한다. 바울은 자신을 대적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그의 명예를 존중해 주고 있다. 바울이 대적자를 용서하라고 한 것은 그의 영혼이 끝내 구원에서 멀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바울이 눈물의 편지를 썼을 때 그의 주요 관심사는 대적자를 처벌하는 데 있지 않았다. 고린도교인들이 범사에 순종하는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바로 잡아 주려는 데 있었다.  바울이 대적자를 용서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를 드러내고 있다.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용서하지 않는 것은 곧 사탄에게 속는 것이기에 속지 않기 위하여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탄의 목적은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하여 자신의 종으로 삼는 것이다. 범죄한 사람의 마음을 낙담케 하여 완전히 좌절에 빠지게 하는 것이나 피해자...

고린도교인에 대한 바울의 마음

(고린도후서 2장1-9절)『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한다면 내가 근심하게 한 자밖에 나를 기쁘게 할 자가 누구냐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모두에 대한 나의 기쁨이 너희 모두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모두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지나치게 말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이러한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는 것이 마땅하도다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 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교회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드러내고 있다. 당시 바울은 3차 전도여행 중이었다. 고린도로 먼저 보낸 디도를 빨리 만나기 위해 마게도냐까지 갔는데 거기서 디도를 만나 고린도 교회의 여러 문제들을 듣고 마음이 아픈 나머지 본 서신을 써서 보냈다. 만약 원래의 전도여행 계획대로 고린도를 방문하여 성도들이 저지른 잘못을 지적하고 엄단했다면 그것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큰 근심의 요소가 될 것이기에 곧바로 고린도로 가지 않고 계획을 변경하였다.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할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함이었다. 바울이 그렇게 하므로 훗날 기쁨으로 만나기를 원했던 바울의 깊은 배려가 담겨 있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유익하고, 자신에게도 기쁨이 되는 세심한 배려를 보여준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부류의 교인들이 있었다. 복음을 전한 바울의 기쁨이 되는 교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반면 고린도 지역의...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고린도후서 1장 12-14절)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완전히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너희가 우리를 부분적으로 알았으나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  고린도는 동서양 무역의 요충지, 아가야의 수도였다. 다양한 문화의 교차점으로 유행, 우상의 도시였다. 복음은 그곳을 강타했다. 복음 안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길을 발견했고, 새롭게 살도록 초청받았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과거 삶의 방식과 작별하지 못하였다. 추악한 음행과 당파싸움, 심지어 종교적 문제인 은사 분쟁 등으로 교회는 몸살을 앓았다. 특히, 바울의 사도권을 향한 심각한 도전이 일었다. 심지어 바울이 고린도 방문계획을 변경하고 번복하자, 진실성 문제가 대두된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이 보아야 할 것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의 외모나 행동, 언행이 거슬려서 하나님을 놓쳤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과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을 전했다.『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완전히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너희가 우리를 부분적으로 알았으나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 바울은 고린도전후서를 통해, 복음을 알려주고 복음과 관계 맺는 법을 알려주고자 한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희미하게 보이는 고대 청동거울처럼, 진리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 희미하다. 그렇기에 성도는 복음 안에서 치열한 전쟁을 벌인다. 고린도교인은 하나님을 알아가고 있었다. 고린도교인들은 복음...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고린도후서 1장 1-11절)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 교회는 바울에게 여러가지 걱정을 일으키게 했다. 바울은 첫 번째 편지인 고린도전서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설명하며 그 결과로 공동체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분명하고 확신에 찬 글로 보내었다. 그러나 바울의 글이 그들 중 일부에게 거북하고 민망하여 그의 지도력에 반기를 들었다. 따라서 바울은 그러한 그들에게 두 번째 편지를 보내야만 했다. 고린도 교회의 교인 중 일부는...

바울의 동역자들

(고린도전서 16장 10-24절)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그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고린도교회를 이끄는 영적지도자들, 바울의 동역자에 관한 내용이다. 먼저 디모데에 대한 내용이다. 디모데가 고린도교회에 갔을 때에 그를 반갑게 맞을 상황이 아닌 것을 바울은 잘 알고 있었다. 고린도 교회는 몇 개의 분파로 나뉘어 서로 다투고 견제하는 관계가 있는데다가, 어떤 사람들은 경제적인 부와 영적 은사 때문에 크게 교만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바울의 제자인데다 젊은 디모데의 지도력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바울은 디모데를 존중하고 두려움 없이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하라고 권면한다.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

연보에 관하여

(고린도전서 16장 1-9절)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내가 이를 때에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그들이 나와 함께 가리라 내가 마게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가서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겨울을 지낼 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내가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머물기를 바람이라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첫째 부분은 1절에서 4절까지인데 연보 즉 헌금에 관한 부분이다. 고린도교회가 헌금하는 것에 대해 자세하게 말씀하고 있다. 헌금의 시기, 헌금의 방법, 헌금의 사용 등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었다. 먼저는 헌금은 매주 첫날 즉 주일에 모일 때마다 하고, 미리 준비하여 모아놓으라고 하였다. 헌금의 방법은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하라고 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비롯하여 마게도냐 지역교회들의 가난한 교우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충성스럽게 헌금한 일을 아름다운 헌금의 사례로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고린도후서 8장 12절에서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고린도 교회는 헌금에 인색하였다. 바울이 헌금하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품었다. 왜 하라고 하는지, 그 헌금을 어떻게 예루살렘교회에 전달하려고 하는지 등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헌금의 사용에 대해서는 헌금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인정한 사람들과 믿을만한 편지와 함께 직접 어려움과 고난당하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의 형제들을 방문하여 전달하겠다고 하였...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고린도전서 15장 45-58절)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첫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에 대해서 이해가 필요하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들을 가두기 위해 하나님은 창세 전에 예비하신 것이 있다. 하나님의 빛을 거두시고, 흑암의 물질세계를 창조하시고, 그리스도를 예정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첫사람 아담으로 범죄한 천사들을 데리고 이 세상에 죄의 몸으로 육신을 입고 오셨으며, 마지막 아담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죄인들을 위해 죄의 값을 치르고 영의 몸으로 자기의 영들을 데리고 하나님 나라로 ...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고린도전서 15장 35-44절)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고린도교회 구성원 중에 일부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다. 부활의 증인들 중의 일부가 살아 있고, 그 증인들이 목숨을 걸고 부활을 증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활을 부정한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주장이 교회 안에 퍼지게 되면 교회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부활문제를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사도바울에게 부활에 대해서 질문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들 중에서 살아나심으로써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말했다. 예수님의 부활의 모습은 이후 예수님께서 다시 재림하실 때 믿는 신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부활하는지를 미리 보여주는 셈이 되는 것이다. 성도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다같이 부활의 영광의 몸으로, 함께 재림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부활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전서 15장 21-34절)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부활의 근거와 과정을 밝히며 장차 부활될 사람답게 살라고 권면하는 내용이다. 부활이 있기 때문에 바울은 날마다 죽을 수 있다고 단언하며 교인들은 깨어 있어라고 한다. 본문은 크게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곧 한 사람 아담과 그리스도, 부활의 차례, 부활의 유익, 불신에 대한 경계다.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고린도전서 15장 12-20절)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쓸 당시 고린도교회 안에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이런 저런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이들은 여러 가지 추측과 나름대로 부활에 대한 주장을 펼치면서 성도와 교회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의심하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단호히 말했다. 『예수그리스도는 분명히 부활하셨다. 그의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만 해도 오백 명이 넘으며 그 목격자 중에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살아있어 언제든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직접 증언할 수 있다』고 함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모든 잡다한 이견들을 일축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임을 밝히고 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다시 한 번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확인시키고 있다. 바울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복음을 전했고 그 복음 위에 그들의 신앙을 세웠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린도전서 15장 1-11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15장은 부활의 교리를 체계적으로 입증하고 있는 부활장으로 알려져 있다. 기독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영혼불멸을 믿고 있다. 영혼불멸을 믿고 있다고 해서, 모두 육체의 부활을 믿는 것은 아니다. 유대교에서 파생된 사두개인들은 영혼 불멸과 육신의 부활 모두 부인했다. 당시 헬라인들은 영혼불멸을 믿었으나, 육신의 부활은 믿지 않았다. 그들은 영생을 육신을 벗어버리고 영혼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이러한 헬라 문화의 영향 속에서 고린도교회에는 부활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부활을 부인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부인하는 것이며, 이는 결과적으로 복음의 진리를 부정하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실제로 십자가 사건(죽으심)과 부활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진리가 되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기 전의 몸과...

예언과 방언에 대해서 (3)

 (고린도전서 14장 34-40절)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일반적으로 누군가 신령한 은사인 방언과 예언을 받았는데, 교회에서 남자는 입이 무거운 사람들, 여자는 입이 가벼운 사람들이라는 것으로 전제하고, 말을 함부러 하지 말라는 것으로 말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남자와 여자는 첫사람 아담으로부터 자기의 뼈를 분리해낸 이후의 남자, 그리고 첫사람 아담으로부터 분리된 뼈의 사람인 여자인 것이다. 따라서 남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온 그리스도, 여자는 하나님 나라를 떠나 자기의 의를 이루어보겠다고 하는 영들의 모습이다. 그래서, 여자는 교회 안의 모든 성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모든 성도는 남자인 그리스도 안에서 잠잠하라는 것이다.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행함과 같이 하라는 것이다. 모든 성도가 방언이나 예언을 받으면 큰 능력을 받은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지 말고, 그런 은혜를 받았으며, 왜 성도들이 이 땅에서 살고 있는가를 기억하고 자신들이 하나님 나라를 떠난 사실을 깨닫게 됨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잠잠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방언과 예언을 주신 이유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음을 더욱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은혜를 바탕으로 개인적으로는 신령한 은혜로, 교회에 대해서는 덕을 세우는 일로 나가라는 ...

교회 안에서의 방언과 예언(2)

(고린도전서 14장 20-33절)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고린도 교회가 여러 일로 시끌시끌했다. 교회 안의 파벌 문제(1장), 근친상간 사건(5장), 소송 사건(6장), 우상 제물 문제(8장), 성만찬 갈등(11장)으로 요란하더니, 14장은 성령의 은사로 인해 소란했다(12-14장). 내가 더 좋은 은사를 가졌느니, 내가 더 큰 은사를 ...

방언과 예언에 대해서

(고린도전서 14장 1-19절)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고린도전서 13장 1-13절)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13장은 사랑이 무엇인지를 밝혀주고 깨닫게 하는 말씀이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이 없으면 신령한 은사와 그럴듯한 말도 실은 시끄러운 소음일 뿐이고, 사랑이 빠...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고린도전서 12장 1-11절)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고린도 교회는 복잡한 은사의 문제가 있었다. 은사의 문제로 인해서 오는 어떤 것, 어떤 사건들, 그것에 대해서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잘 알아두기를 원한다』고 말씀했다. 신령한 것들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누가 방언을 했다든가, 계시를 받았다더라, 환상을 보았다든가, 환청을 들었다든가, 또는 병을 고친다든가, 이런 것이 다 신령한 것, 은사에 해당된다. 신령한 것이라고 할 때에, 우리가 알 수 있는 방법은 느끼는 것이다. 신령한 것을 느끼고, 경험하고, 체험하는 그런 것이다. 그러나 성경말씀은 『알아야 한다』고 한다. 느낀대로 반응하고 따라가다 보니까 문제가 되더란 말씀이다.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 라고 말한다. 우상이 끄는 대로 끌려가는 것이다. 거기에 이성적 비판이나 합리적 질문은 없다. ...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고린도전서 11장 27-34 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잡으리라  성도는 유월절 새언약의 의미를 잘 알고 있어야만 한다. 누가복음 22장 15절에서『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하나님이 애굽에 들어가 종살이 하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어서, 하나님이 들으시고,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모세를 택하여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켜 주신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지 못하게 했지만 열가지 재앙으로 바로가 출애굽을 허용한 것이다. 열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재앙이 장자의 죽음이었다.  애굽 사람들의 장자는 다 죽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장자를 죽이지 않으셨다. 어린양을 죽여서 피를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고 있던 문설주에 바르면, 죽음의 사자들이 넘어가는 것이다. 영어로 pass over(유월)의 의미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장자들이 죽지 않았지만 하나님께 바쳐진 자들이었다. 하나님께 바쳐진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죽는 것을 말한다. 마치 동물을 제사로 드리는 것은 죽여서 바쳐지는 것이다. 하나님께 바쳐진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멸해지는 것이다. 유월절은 출애굽하여, 구원받은 것을 기억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유월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고린도전서 11장 17-26 절)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기독교에서 중요한 두가지 예식은 세례와 성찬이다. 이 두 가지는 예수님이 직접 이 땅에 계시는 동안 행하셨고 성도들에게 행하라고 명령하신 것이기에 신앙의 핵심을 눈으로 보여주는 거룩한 예식이다. 물에 잠기는 세례를 통해, 죄악된 인생이 예수와 함께 죽었음이 선언되고, 물에 잠긴 몸이 물에서 건져지면서 부활한 예수의 생명으로 새롭게 호흡하게 되는 새로운 피조물,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났음이 선포되어진다.  성찬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삶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성례다. 요한복음 6장 48-51절에서『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고린도전서 11장 1-16절)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사도바울은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이 땅에서 시작되었는가를 암시적으로 설명한다. 『창세기 2장 23-24절에서『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아담이 말하고 있다.『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남자는 아담이고, 그리스도의 표상이다. 여자는 하나님을 떠나 아담을 통해서 이 세상 온 모든 사람들을 말한다.  창세기 3장 21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갈빗대는 쌍으로 된 문짝을 말하고, 『살』이라는 단어는 호흡이 있는 모든 육체를 말한다. 창세기 6장 3절에서『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여기서 말하는 육신이 바로 살이라는 것이다.  6장 12절에서『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혈육이...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고린도전서 10장 22-33절)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