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23의 게시물 표시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사도행전 7장 35-38절『그들의 말이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으로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서 보내셨으니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로기아)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로기아는 로고스의 복수형이다. 구약시대는 하나님이 천사들을 통해서, 모세를 통해서 말했다. 그런데, 백성들이 모세의 말에 복종하지 않았다. 나 같은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스데반 집사가 이처럼 자신을 변론하고 있는 이유는 전쟁 중 포로로 잡혀갔다가 해방된 유대인 자유민들이 모인 회당에서 논쟁을 벌였는데, 이 논쟁에서 패배한 몇 몇 자유민들은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을 충동시켜, 스데반이 거룩한 성전과 거룩한 경전인 모세의 율법을 거슬려 말함으로써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했다고 산헤드린 공회에 고소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거룩한 성전과 모세의 율법을 모독했다고 거짓 증인을 내세우면서까지 스데반집사를 고소한 이유는 단순히 스데반집사를 향한 것이 아니라 스데반집사가 전하는 복음, 즉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대한 반발이었다.  7장 39-41절『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 그 때에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이들의 주장에 대해 스데반은 공회에서 담대하게 출애굽을 이끌었던 모세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갈등 사건을 밝힘으로서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모세 이야기

모세 이야기 사도행전 7장 17-28절『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 오르매 그가 우리 족속에게 교활한 방법을 써서 조상들을 괴롭게 하여 그 어린 아이들을 내버려 살지 못하게 하려 할새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 버려진 후에 바로의 딸이 그를 데려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한 사람이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 이튿날 이스라엘 사람끼리 싸울 때에 모세가 와서 화해시키려 하여 이르되 너희는 형제인데 어찌 서로 해치느냐 하니 그 동무를 해치는 사람이 모세를 밀어뜨려 이르되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어제는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하니』 초대교회가 세운 일곱명의 집사가운데 한 사람인 스데반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많은 사람들에게 행하였다. 그러나 스데반의 가르침은 당시 많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고, 결국 이들은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하여 스데반을 잡아 공의회 앞에 세우게 된다. 7장의 말씀은 신앙의 수호라는 이름 아래 본질이 사라진 껍데기 만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던 유대인들과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선포된 스데반의 설교다. 그 가운데 요셉의 이야기에 이어 7장 17절부터 38절의 스데반의 설교가운데 나타난 모세 이야기는 유대인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하게 잘 알려진 이야기였다. 그런데 스데반은 왜 이미 잘 알고 있는 모세의 이야기를 굳이 다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인가?  모세 이야기...

스데반의 설교

사도행전 7장 1절『대제사장이 이르되 이것이 사실이냐』 스데반이 산헤드린 법정에 서서 했던 설교의 내용 중 첫 시작부분이다. 거짓증인들은 스데반이 예수님께서 성전을 헐어버릴 것이라고 설교했다고 말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는 신성모독죄로 여겨졌기에 산헤드린 법정의 의장인 대제사장이 스데반에게 이 말이 사실이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 본문의 내용이다.  2절부터 시작된 스데반의 진술이 53절까지 이어지는데 그 내용에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아론, 여호수아, 다윗, 솔로몬 등 신앙선조들을 언급하고 있다. 스데반은 성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 이야기의 시작은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하나님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성전이 세워지는 것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단계가 있는데 그 첫 단계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심에서부터임을 말하고 있다. 이는 성전의 주체는 성전건물이 아니라 곧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심을 스데반은 말하고 있다.  7장 2-16절『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 만한 땅도 유업으로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그와 그의 후손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후손이 다른 땅에서 나그네가 되리니 그 땅 사람들이 종으로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종 삼는 나라를 내가 심판하리니 그 후에 그들이 나와서 이 곳에서 나를 섬기리라 하시고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 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열두 조상을 낳으니라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사도행전 6장 1절『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디아코니아)에 빠지므로(파레데오룬토)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과부들은 초대교회 당시 여전도사를 지칭한다. 디아코니아는 봉사, 섬김이다. 파레데오룬토는 소홀히 하다라는 의미다. 헬라파 여전도사가 히브리 신도들에 대해서 섬기므로 헬라파 신도들을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으로 헬라파 신도들이 히브리파 신도들을 원망했다는 것이다.  6장 2절『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톤 로곤 투 데우)을 제쳐 놓고 접대(디아코니아)를 일삼는(트라페자이스)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톤 로곤 투 데우는 하나님의 호 로고스(그리스도)이다. 제자들의 사역은 호 로고스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디아코니아는 봉사, 섬김이다. 6장 1절에서는 구제로 표현했으나, 2절에서는 접대로 표현하는 등 번역의 오류들이다. 디아코니아 트라페자이스는 식탁의 섬김이다. 하나님 말씀은 전하지 않고 음식 봉사만 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6장 3-4절『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테 디아코니아 투 로구)에 힘쓰리라 하니』교회의 지도자를 세우는 기준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자라는 것이다. 열두 사도들은 기도하는(프로슈케)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쓴다는 것이다. 프로슈케는 지성소 기도다. 심령 속의 지성소로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께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인 것이다. 테 디아코니아 투 로구는 그 말씀(호 로고스)의 섬김(사역)이다. 호 로고스로부터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신도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 사역자들이 하는 기도는 대개 세상적인 기도가 많고, 말씀도 호 로고스로부터 받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책에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말하는 것이다. 교회 지도자로 세워진 일곱 집사들은 섬김 봉사 일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6장 5-...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사도행전 5장 21-24절『그들이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부하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키는 사람들이 문에 서 있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호 로고스의 사람은 예수님이 천사를 보내어 끌어낼 만큼 보호하시고 지키신다는 것을 말해주신다.  5장 25-28절『사람이 와서 알리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성전 맡은 자가 부하들과 같이 가서 그들을 잡아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더라 그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에피 토 오노마티 투토)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에피 토 오노마티는 이 이름 위에서 라는 의미다. 대제사장들이 말씀이신 그리스도 위에서 말씀을 전하지 말하고 한 것은 그들이 그 위에서 능력이 나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5장 29절『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데오)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데오는 관사가 없으므로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5장 30-31절『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아페신)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유는 인간들(이스라엘)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고 죄사함을 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페신은 죄로부터 자유함이다. 죄사함이 아니라 죄로부터 해방이다.  5장 32절『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로마서 5장 1-3절『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사탄과 성령이 등장한다. 아나니아가 소유를 팔아 얼마를 감추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다 내놓기로 했는데, 감추었다는 것이다. 자기 밭인데,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가? 그게 사탄이 마음에 들어와 속이게 된 것이고, 성령을 속이는 것이다.  5장 4절『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메논) 네 땅이 아니며(에메넨) 판 후에도 네 임의로(엔 테 세) 할 수 없더냐(엨수시아 휘페르펜)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메논은 땅(중성)이 머물러 있을 때다. 에메넨은 그것(땅)이 머물러 있지 않았다 라는 의미다. 즉 땅을 소유하고 있을 때는 땅에 대한 애착이 없었다는 것이다. 엔 테 세는 네 자신 안에서, 엨수시아 휘페르펜은 권한이 우두머리 안에 존재했다는 것이다. 팔려져서 돈이 들어왔지만, 그 돈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주님의 권세아래 있는 것이다 라는 의미다. 돈이 들어오므로 애착이 생겨서 돈을 지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심령 속에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권세로 있어야 하는데, 갑자기 욕심이 생겨서 사탄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사탄은 정반대이다. 돈에 대한 욕심을 내는 것은 사탄의 미혹을 받는 것이다. 성령이 없는 특징은 사탄이 지배한다는 사실이다.  5장 5-6절『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엨세프슄센)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포보스)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엨세프슄센은 숨을 거두다 라는 의미다. 포보스는 경외하여 두려워하는 것을 의미한다.  5장 7-8절『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베드로가 이르되 그 ...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사도행전 4장 25-30절『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파르레시아스) 하나님의 말씀(톤 로곤 수)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디아 투 오노마투스)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파르레시아스는 많은 말로 말 잘하는 것을 의미한다. 톤 로곤 수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당신의 호 로고스이다. 하나님께 호 로고스로 말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호 로고스가 제자들의 입을 빌려 말하게 하는 것이다. 복음 전도는 자기가 지식으로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호 로고스로 말하는 것이다. 디아 투 오노마투스는 이름(호 로고스)를 통하여 라는 의미다.  4장 31절『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엘람룬)』엘람룬은 많은 말을 하다 라는 의미다. 그들이 성령 충만을 받아서 하나님의 호 로고스로 말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4장 32절『믿는 무리(톤 피스튜산톤)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톤 피스튜산톤(아오리스트 시제)은 믿는 자들 중 성령세례를 받은 자를 의미한다. 아오리스트 시제는 순간적으로 믿는 것으로, 성령세례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4장 33절『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토 마르튀리온)하니(아페디둔)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토 마르튀리온은 증거다. 예수의 부활에 관한 증거다. ...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사도행전 4장 1-2절『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네크론)의 부활(텐 아나스타신)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디다스케인) 전함(카탕겔레인)을 싫어하여』네크론은 영적으로 죽은 자,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자를 의미한다. 텐 아나스타신은 위로 세우심을 받는 것이다. 예수님이 위로 세우심을 받는 목적은 죽은 자들을 살리기 위함이다. 살아난 자가 죽은 영을 살리는 것이다. 디다스케인은 가르치고, 카탕겔레인은 선포하다 라는 의미다.  4장 3-4절『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말씀을 들은 사람(톤 아쿠산톤 톤 로곤)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톤 아쿠산톤 톤 로곤은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들은 사람들이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호 로고스를 사람들에게 전했는데, 호 로고스의 말씀을 듣고 믿는 사람들이 오천이나 되었다는 것이다. 제자들의 말을 듣고 믿은 사람이 아니라 호 로고스의 말씀을 순간적으로 듣고 믿은(아오리스트 시제)사람들이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호 로고스로 말하는 자가 되지 않으면 믿음이 되지 않는다. 전하는 자의 지식으로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성도가 성령세례를 받고 성령 충만해져서 복음을 전할 때, 성도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호 로고스가 말을 하시는 것이다.  4장 5-7절『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엔 포이야 뒤나메이)와 누구의 이름으로(엔 포이오 오노마티) 이 일을 행하였느냐』엔 포이야 뒤나메이는 무슨 능력 안에서 라는 의미다. 엔 포이오 오노마티는 무슨 이름 안에서 라는 의미다.  4장 8-9절『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사도행전 3장 17-18절『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몰랐지만, 선지자들이 말한 그 분이라고 베드로는 분명히 말하며, 말씀이신 호 로고스에 대해서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3장 19절『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메타노에사테) 돌이켜(에피스트렢사테)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네가지가 있다. 회개하고, 돌이키고, 죄 사함을 받고, 새롭게 된다는 것이다. 메타노에사테는 메타(뒤에)와 노에사테(인식하다)의 합성어로 뒤에 둔 것을 인식한다는 의미다. 내가 호 로고스를 뒤에 두고 가다가 깨닫는 것(회개)이다. 그래서 호 로고스에게로 방향을 돌리는 것이다.(돌이킴) 그래서 회개와 돌이킴은 연장 선상에 있으므로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뒤에 있는 분은 호 로고스이다. 에피스트렢사테는 에피(~위에서)와 스트렢사테(방향을 바꾸다) 라는 말의 합성어다.  3장 20-21절『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예정하시고, 스스로 성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되신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이 땅에 태어나 범죄한 영들을 데리고 와서 다시 데리고 돌아가는 임무를 가지는 것이다. 이 말은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서 전해졌다. 만물을 회복한다는 말에서 만물은 창세기 2장 1절에서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와 같은 만물이다. 즉 하늘의 군대와 땅의 군대가 다 원래의 상태로 회복되는 그 날까지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시고, 성도의 심령 속에서 임재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게 하시는 것이다.  3장 22절『모세...

오른손으로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사도행전 3장 1절『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아네바이온)』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번씩 성전에서 기도를 했다. 예루살렘 성전에 갈 수 없는 자들은 그 방향으로 기도(프로슈케)를 했다. 아네바이온은 미완료 동사로서 규칙적으로 계속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동사다. 프로슈케는 하나님의 면전에서 얼굴을 대면하는 기도를 의미한다.  3장 2절『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에바스타제토)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에티둔) 자라』 에바스타제토 역시 미완료 동사로서 늘 그렇게 규칙적으로 해왔다는 것이다. 에티둔은 앉혀두다라는 의미로서 미완료동사다.  3장 3-5절『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이돈)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아데니사스)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에이펜)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이돈은 아오리스트 시제다. 순간적으로 보는 것이다. 아데니사스도 아오리스트 시제다. 우연히 순간적으로 보는 것이다. 에이펜도 마찬가지다. 베드로와 요한이 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들이다. 평소에는 무관심하다가 그날 바라본 것이다.  3장 6절『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엔 토 오노마티 예수 크리스투 나조라이우)일어나 걸으라 하고』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순간적으로 베드로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온 것이다. 성령의 사역도 마찬가지로 어떤 계획하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순간 성령이 이끄는 대로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를 명령을 할 때 치유가 없다면, 예수의 이름을 땅에 떨어뜨리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아무나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 성령이 말하는 대로 해야만 한다. 『엔 토 오노마티 예수 크리스투 나조라이우』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라는 말이다. ~으로(영어 by) 와...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사도행전 2장 39-40절『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다. 특정한 사람만 구원받는다고 말하는 자들은 이단들이 되는 것이다. 성령 세례를 받지 않으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성령세례를 말하는 교회는 많지 않다.  2장 41절『그 말(톤 로곤)을 받은(아포덱사떼노이)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프슈카이)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프로데테데산)』톤 로곤은 베드로가 한 말이 아니라,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아포덱사떼노이는 호 로고스를 받아드리는 자들이다. 프슈카이는 혼(soul)이다. 사람들이 호 로고스를 받아드리고 성령세례를 받자, 신도들이 많이 몰렸다고 한다. 그 수가 삼천이나 더 했다. 프로데테데산은 성령세례를 받은 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세례를 받으려고 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회개하여 거듭난 성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영어 성경을 보면 더 확연하다. 『about three thousand were added to their number that day.』 (NIV), 『there were added unto them about three thousand souls.』 (KJV) 아직 성령으로 거듭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2장 42절『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코이노니아)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코이노니아는 사도들이 하는 일에 참여하다는 의미다. 떡을 떼는 것은 성찬을 의미한다.  2장 43-45절『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디아 톤 아포스톨론)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디아 톤 아포스톨론은 사도들을 통하여 라는 의미...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사도행전 2장 22-24절『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복음은 십자가에서 죽음과 부활이 핵심이다. 육의 몸이 죽고, 영적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영의 몸으로 살아나는 것이 부활이다. 부활은 이전의 몸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변화되는 몸인 것이다. 이것이 큰 권능이요 기사이며 표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뜻은 그리스도의 예정이다. 그리스도의 예정대로 계획이 진행되는 것이다.  2장 25절『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톤 퀴리온)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부활하셔서 성도의 심령 속에 호 로고스로 임재하시는 분은 다윗에게도 있었다는 것이다. 톤 퀴리온은 호 로고스인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2장 26절『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프쉬켄)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프쉬켄은 혼을 의미한다. 이전의 혼(육의 몸)은 죽고, 하늘로부터 새로운 영의 몸(새 혼)이 태어나야 한다. 그래서 이 혼은 영원히 죽지 않는 몸이 되는 것이다.  2장 28-30절『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에크 카르푸 테스 오스퓌오스)을 그 위(에피 톤 드로논)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에크 카르...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사도행전 2장 1절『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홀연히 하늘(투 우라노)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관사가 있는 단수 하늘은 영적인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영적인 귀와 눈이 열렸다는 것이다. 이는 성령세례와 같은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으면 영적인 귀와 눈으로 호 로고스의 음성을 듣고, 눈으로 대면할 수 있다.  2장 4절『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성령세례를 받으면 성령 충만해진다는 것이다. 방언은 성령이 다른 언어로 말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표적이 귀와 눈과 입으로 이와 같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방언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충만한 가운데 성령이 하게 하는 것이 방언이다.  2장 5-13절『그 때에 경건한(율라베이스)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헤테로스)은 조롱하여 이르되(프로스 알론)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방언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성령의 은사는 두가지와 일곱가지로 분류된다. 은사(카리스마)는 성령이 주시는 선물이다. 카...

예수의 승천

사도행전 1장 15-16절『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 제자들은 그냥 흩어질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늘로 올리우셨고, 그들을 인도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예수님의 명령은, 곧 성령을 받기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이었다. 제자들은 그들의 마음속에, 알 수 없는 흥분과 기대와 소망을 갖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제자들은 평소에 모이던 한 다락방에 모이기를 시작을 했다.  예수님의 열 한 제자의 이름이 나와 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빠졌다. 자살한 가롯유다다. 가롯유다 한 사람 빼놓고 열 한명이 다 모였다. 예수님의 열한 제자만 모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해서 십자가에 까지 쫒아갔던 여자들과, 무덤에 까지 쫒아가 부활을 목격하게 된 여자들까지 다 모였다. 또 예수님의 어머니를 비롯한 친척들이 다 모였다. 이 모인 숫자가 약 120명이 모였다고 말씀한다. 이들은 주님을 사랑했고, 그들이 지금 다 모였는데 그 숫자가 약 120명 이었다.  1장 18-19절『(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피밭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27장 8절에서 『그러므로 이 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하느니라』라고 하고, 사도행전 1장 19절에서도 『이 일을 예루살렘에 거하는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으므로 그 밭을 자기들 고유의 말로 아겔다마라 하니 이것은 곧 피밭이라는 뜻이라』라고 했다. 대부분 교회사람들은 마태복음에서 말하...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사도행전 1장 12-14절『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프로슈케)에 힘쓰더라』  감람산은 예수님이 기도하던 산이었고, 승천하신 산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를 했다. 기도를 할 때 율법주의 사람들은 기도의 형식을 중시한다. 그래서 성전, 기도원(산)에서 기도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골방에서 기도하라고 하셨다. 형식에 얽매이지 말하는 것이다. 프로슈케는 보좌에 나아가 주님의 뜻을 가지고 하는 기도이며 성령을 간절히 바라는 기도가 된다. 유케는 세상의 복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1장 15-16절『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 제자들은 그냥 흩어질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늘로 올리우셨고, 그들을 인도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예수님의 명령은, 곧 성령을 받기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이었다. 제자들은 그들의 마음속에, 알 수 없는 흥분과 기대와 소망을 갖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제자들은 평소에 모이던 한 다락방에 모이기를 시작을 했다.  예수님의 열 한 제자의 이름이 나와 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빠졌다. 자살한 가롯유다다. 가롯유다 한 사람 빼놓고 열 한명이 다 모였다. ...

하나님 나라의 일

사도행전 1장 1절『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톤 멘 프로톤 로곤 에포이에사멘) 에는 무릇(혼) 예수께서(호 예수스)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톤 멘 프로톤 로곤은 참으로 첫번째 되는 말씀이신 호 로고스에 대해서 쓴 글이라는 의미다. 에포이에사멘은 에포(~위에서)와 이에사멘(행하다)의 합성어로서, 중간태이다. 내가 내 자신을 행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즉 첫번째 되는 호 로고스에 대해서 내가 썻다는 것이다. 혼(소유격) 호 예수스는 그것들의 예수 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심령 속에서 거하시는 호 로고스이신 예수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으로 가르치고 행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1장 2절『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디아 프뉴마토스)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그는 호 로고스이시다. 디아 프뉴마토스는 성령을 통하여 명하신 것이다. 호 로고스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일하시는 것이다. 삼위일체 신앙에서 하나님은 한 분인데, 그 분의 역사하심이 세 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님이 유일신인 여호와 한 분인데, 이 세상 인간의 입장에서는 세분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이 땅의 인간이 바라볼 때 세분이 계시고, 하나님 나라에서도 세분의 하나님이 있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세분의 하나님이 하나인 관계 속에서 하나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한 분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세분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이시다.  이 땅에서 바라보는 여호와 하나님은 성부와 하나님의 아들과 성령이라는 것이다. 성부 하나님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고, 아들이 성령을 보낸다는 것이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께 복종하고, 성령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한다. 그래서 이 세분 사이에 질서적인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집중한다.  1장 3절『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16장 17절『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스코페인:주시하다) 그들에게서 떠나라』로마서 마지막 장의 초반부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바울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어조로 이어지는 문안인사가 있다. 그런데 17절에 이르러서 바울은 이전과는 달리 강하고, 단호한 어조로 로마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권면하는 내용이다. 거룩한 믿음 공동체 안에 분쟁을 만들어 공동체를 허물려 한다거나,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 방해가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자들을 멀리하라는 바울의 권면은 이어지는 18 절에서 바울이 왜 그렇게 이야기 하는지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16장 18절『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아카콘)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아카콘은 아(부정)와 카콘(악)의 합성어이다. 악한 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사람들을 멀리하라고 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첫째 그리스도를 섬기지 않는 자들이고, 둘째 자기들의 배만 섬기는 자들이고, 셋째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율로기아)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 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교회 안에 분쟁을 야기하고, 믿음에 방해가 되는 이러한 자들을 멀리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율로기아는 아름다운 말이다. 언변이 좋은 자가 그럴듯하게 말하면 순진한 자들이 다 넘어가는 것이다.  당시에는 율법주의, 인본주의, 영지주의가 신앙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있었다. 부드럽고 평안하게 성도들을 향해 문안하던 바울이 교회의 평화를 깨고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실랄한 어조로 경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상하고 사랑이 많지만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엄격한 아버지의 마음을 바울이 교회들을 향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16장 19절『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로마서 16장 1-2절『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프로스타티스)가 되었음이라』바울이 직접 로마교회로 갈 수 없는 형편으로 뵈뵈를 통하여 로마서 편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프로스타티스는 후원자이다.  뵈뵈는 교회의 여자 지도자였음을 유추할 수 있고, 후원한 이였음을 알 수 있다. 로마교회는 하나의 건물에 다수의 성도들이 있던 교회가 아니라, 여러 가정 교회의 연합체였음을 알 수 있고, 바울이 쓴 이 편지 또한 이 가정 교회들이 돌아가며 회람했던 것이다. 또한 언급된 이름들을 살펴보면, 여자의 이름이 더 많이 언급되어 있고, 부부가 호명될 때 남자 그리고 여자 순이 아니라 여자 그리고 남자순으로 되어다. 대표적인 예가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다. 뿐만 아니라, 노예들 또는 전에 노예였던 자들도 아리스도볼로와 나깃수 같이 사회 경제적으로 지위가 높은 집안 출신들도 있는 다문화 교회가 바로 로마교회였음도 알 수 있다.  16장 3-4절『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아스파조마이)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아스파조마이는 아(연합한다는 의미)와 스파조마이(끌어 안는)의 합성어이다. 즉 포옹한다는 의미다. 주 안에서 하나가 되는 모습이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아닌 하나의 가족으로서 연합을 의미한다.  로마교회의 대표적인 가정교회로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소개한다. 그들은 함께 죽을 각오를 하고 복음과 교회를 위해 헌신한 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내인 『브리스가』가 먼저 언급된 것을 보면, 이 가정교회에 지도자 또한 브리스가였음을 알 수 있다. 사도행전 18장 1-3절에서 로마시민이었던 이들이 글라우디오 황제가 유대인들을 추방할 때 고린도로 ...

성도를 섬기는 일

로마서 15장 20절『또(후토스)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오노마스데) 곳(호푸)에는 복음(유앙겔리제스다이)을 전하지 않기(우크)를 힘썼노니(필로티무메논)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후토스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라는 것이다. 필로티무메논은 필로스(사랑)와 티메(명예)의 합성어이다. 오노마스데는 현재완료 수동태로서 이름이 불려지다 라는 것이다. 헬라어 성경을 보면『필로티무메논 유앙겔리제스다이 우크 호푸 오노마스데 크리스토스』인데, 그리스도의 이름이 불려지지 않은 곳에 복음을 전한 것을 명예롭게 여긴다 라는 말이다.  15장 21-22절『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옾손타이)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쉬네수신) 함과 같으니라』기록된 성경은 이사야서이다. 옾손타이와 쉬네수신이 서로 연결을 이룬다. 본다는 말과 깨닫는다는 말이 같은 의미가 된다.  15장 22-23절『그러므로(디오)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이제는 이 지방(클리마시 투토이스)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에피포디안』』디오는 ~때문에 라는 의미다. 그 이유가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에 집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로마에 가지 못한 것이다. 클리마시 투토이스는 복수, 여격으로서 여러 지방이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일루리곤까지 동부 지방의 여러 도시들을 의미한다. 그래서 바울은 이제 로마의 서쪽 서바나로 향하는 것이다. 서바나로 가기 위해 오래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이 부분은 헬라어 성경에는 24절에 있지만 개역개정은 23절에 포함시켰다. 에피포디안은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로마를 방문하는 이유는 서바나(스페인)를 가기 위한 기지로 생각했을 뿐 아니라 로마교회에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려는 것도 있었다. 이는 로마서 1장 11절에 잘 나타나 있다.『내가 너희 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

로마서 15장 14절『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아가도쉬네스)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그노세오스)이 차서(뒤나메노이) 능히 서로 권하는(누데테인)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아가도스는 가치있는 이라는 의미다. 이 가치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가치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노세오스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아는 것을 의미한다. 뒤나메노이는 완료 수동형으로 충만해 졌다는 것이다. 누데테인은 이해시키다, 바로 잡다, 가르치다 라는 의미다. 강한 자가 약한 자 입장에서 이해하듯이 그렇게 이해하고 이해시키라는 것이다.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해하라는 것이다. 사도행전 20장 31절에서『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헤나 헤카스톤)을 훈계하던(누데테온) 것을 기억하라』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잠잔다는 것이다. 바울은 눈물로 삼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훈계하고 기도했다. 훈계하다 라는 말이 누데테온이다. 헤나 헤카스톤은 각 사람을 대상으로 그렇게 했다는 말이다. 고린도전서 4장 14절에서도 누데톤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다.『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누데톤) 하는 것이라』바울이 이해시키려고(누데테온) 하는 목적은 골로새서 1장 28절에서 잘 나와있다.『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완전하다는 것이다. 바울이 이해시키려고 하는 목적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라는 말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2절에서 바울이 누데둔타스로 말한다.『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누데둔타스) 자들을 너희가 알고』 15장 15절『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에파나밈네스콘)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톨메로테론) 대략(아포 메루스) 너희에...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로마서 15장 6절『한마음과 한 입으로(엔 에니 스토마티)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독사제테) 하노라』엔 에니 스토마티는 하나의 입이다. 바울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기 때문에 한 입이라고 했다. 예레미야 15장 19절에서『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 표현은 삼위일체의 표현이다. 하나님은 성부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 라는 것이다. 주라는 말은 주인이며, 머리되시는 분이다. 같은 몸에 있으면, 같은 머리의 지시를 받으므로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성부는 곧 우리의 아버지라는 말이다. 아버지의 영광이 아들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성도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빛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독사제테의 기본형은 독사조이다. 독사조는 영광으로 가득차다 라는 의미다.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은 표현이 맞지 않다. 하나님께 영광스러운 빛에 참여한다는 말이 어울린다. 즉 같은 마음과 같은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은 그 영광의 빛을 성도에게 비춰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빛을 삶을 통해서 나타내는 것이다. 바울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것을 소원한다는 것이다.  15장 7절『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프로스람바네스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카도스) 너희도 서로(알레루스) 받으라』알렐루스는 믿음의 능력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는 것처럼 사로 받으라는 것이다. 프로스람바네스데는 영접한다는 말이다. 영접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서로 영접함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카도...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로마서 15장 1절『믿음이 강한(두나토이)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아두나톤)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두나토스의 복수형이 두나토이이다. 기본형은 두나마이로서 능력있는 자 라는 의미다. 반대로 아두나톤는 능력이 없는 자다. 아(부정)와 두나톤(능력)의 합성어이다. 먹는 것과 절기에 대해서 자유를 가지고 있는 자가 능력이 있는 자가 된다. 확정된 믿음을 소유한 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믿음의 능력이 있는 자는 믿음의 능력이 없는 자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믿음의 능력이 없는 자는 아직도 믿음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형제들이 걸림돌이 된다면 그 형제를 위해서 자유를 행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기준은 형제에게 있는 것이다. 믿음의 능력이 있는 자는 먹을 수도 있고 먹지 않을 수도 있다.  믿음의 능력을 소유자가 믿음의 능력이 없는 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한다는 권면으로 읽기 쉽다. 그러면 믿음의 능력이 있는 자는 어떤 약점도 없고, 믿음의 능력이 없는 자는 대단히 문제가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리고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표가 믿음의 능력으로 여기게 될 수 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그 믿음을 바라보는 성도들의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믿음의 능력으로 강하게 또는 약하게 반응할 뿐, 믿음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을 믿음의 능력이 있는 자로 이해하는 경우, 강한 믿음을 지니기 위해 어떤 노력도 불사해야 할 거 같은 유혹에 빠지게 된다. 내가 믿는 믿음은 의지에 의해 결정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에베소서 2장 8절에서『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믿음은 내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나의 소유도 아니다. 그러니 자랑할 것이 아니다. 강한 믿음을 최고라고 말하지 않고, 선물로 받은 믿음을 통해 성도가 무엇을 해야 할지 다루고 있다. 나의 의지로 믿는 믿음을 부인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인도받는 믿음이 참...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로마서 14장 18절『이로써(엔 투토)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유아레스토스 토 데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도키모스 토이스 안드로이스)』 엔 투토는 이것 안에서 라는 말이다. 즉 거룩한 영 안에서 이다.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께 종노릇하는 자들이다. 율법에 종노릇하지 말고 그리스도께 종노릇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유아레스토스는 유(좋은)아레스토스(만족시키다)의 합성어로서, 잘 만족케하는 이라는 의미이고, 도키모스 토이스 안드로이스에서 도키모스는 도키마조(시도하다, 입증하다)에서 온 형용사로 입증된 이라는 의미다. 성도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께 종노릇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이 아주 만족해 하시고 사람들에게도 의와 평강과 희락의 삶으로 하나님의 백성임을 입증하게 된다는 말이다.  14장 19절『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타테스 오이코도메스)을 힘쓰나니(오코멘)』오코멘(기본형:디오코)은 박해를 가해 몰아내다 라는 의미다. 즉 먹는 것에 관한 그런 일로 다투는 것을 몰아낸다는 것이다. 오이코도메스는 오이코스(집)와 도마(세우다)의 합성어이다.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서로 먹는 것으로 다투면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것이 안된다는 것이다.  14장 20절『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토 에르곤 투 데우)을 무너지게(카탈뤼에)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디아 프로스콤마토스)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카콘)』 토 에르곤 투 데우는 하나님의 그 일이다. 카탈뤼에는 카타(강조 접두사)와 뤼오(완화하다)의 합성어이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너무 느슨하게 풀어주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먹고 마시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바울은 세상에 있는 모든 음식들은 다 깨끗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장애물을 통과하면(디아 프로스콤마토스)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다는 것이다. 장애물은 율법을 의미한다. 악으로 번역된 카콘은 가치없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음식은 깨끗하...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로마서 14장 13절『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프로스콤마)이나 거칠 것(스칸달론)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알라 투투 크리나테)』알라 투토 크리나테는 오히려 너희는 이것을 비판하라는 것이다. 주어는 우리가 아니라 너희다. 앞의 문장(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은 주어가 우리이지만, 뒤의 문장(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는 주어가 너희라는 것이다. 음식이나 절기라는 것으로 서로 다투지 말고 정말 비판할 것이 있는데, 형제들에게 부딪히는 것이나 거치는 것을 놓는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라는 것이다. 부딪히는 것이나 거친 것은 장애물이다. 프로스콤마는 바다의 피도와 같은 장애물이고, 스큰달론은 육지의 돌과 같은 장애물이다. 바울이 이 비유를 쓴 장애물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장애물로 놓은 것을 판단하라는 것이다. 바울이 말하는 핵심은 제대로 된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고 이로 인해 그것을 받아드리지 못하고 걸려 넘어지는 일이 있게 해야지 쓸데없는 먹는 날과 절기로 인해서 서로 걸려 넘어지는 일이 있게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14장 14절『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오이다) 확신하노니(페페이스마이)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오이다는 깨달아 알게된 것을 의미하고, 페페이스마이는 확신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모두 현재완료 시제이다. 이것은 바울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은 뒤 부터는 그것을 알았고 확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믿고 성령 받은 뒤에는 율법주의 신앙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 안에서 깨닫고 확신하게 된 것이다.  14장 15-16절『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륌페이타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아플리에) 하지 말라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륌페이타이는 깊은 ...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로마서 14장 8절『(에안)우리가 살아도(조멘:기본형 자오)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아포드네스코멘:기본형 아포드네스코)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투 퀴리우 에스멘)』자오와 아포드네스코는 ㅅ상의 삶과 죽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과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의 사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을 의미하는 것이다. 주님을 위하여 라는 말도 주님과 함께 라는 의미다.  에안이라는 가정법 접속사를 사용했는데, 쉽지는 않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에 사용된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살거나 함께 죽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투 퀴리우 에스멘에서 에스멘(1인칭 복수 현재동사)은 존재한다는 것으로서 우리는 존재한다는 의미다. 즉 우리는 주님의 것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14장 9절『이를 위하여(에이스 투토)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아페다넨) 다시 살아나셨으니(에제센) 곧 죽은 자(네크론)와 산 자(존톤)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에이스 투토는 주님의 것 속으로 라는 의미다. 주님의 소유한 것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살아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살아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성도의 각 사람 속에 실제로 들어가기 위함이다. 아페다넨(기본형 아포드네스코)과 에제센은 아오리스트 시제를 사용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간적으로 죽으시고 살아나셨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죽은 자와 살아있는 자의 주님이 되기 위함이었다. 재림 후의 일이 아니라 현재적으로 죽고 부활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네크론(형용대명사)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영적으로 죽은 자를 의미한다. 존톤(현재분사)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루어져서 영적으로 살아있는 자이다. 존톤이 현재 분사로 사용된 것은 죽은 상태의 사람들을 살려서 그들의 주가 되기 위함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