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23의 게시물 표시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요한복음 7장 25-27절『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되 이는 그들이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그들이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말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나사렛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나사렛으로부터 그리스도가 오는 것이 맞는가 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사렛 출신이 그리스도가 되겠는가 회의적으로 생각했다. 7장 42절에서도 성경 기록에 선지자들이 그리스도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예언했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으며, 나사렛에서 살았던 것이다. 예수님은 나는 베들레헴 출신이야 라고 말을 하면 될 것인데, 예수님은 그 말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것이 맞는 말이 된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무지는 인류 역사와 함께 동행하고 있다. 인류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달았던 시기는 단 한 번도 없거나, 알아도 극소수의 사람만 알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하나님께서 자신 스스로를 감추셨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매 순간마다 자신을 모든 인류에게 나타내셨다. 신명기 7장 9 절에서『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호세아 6장 3절에서는『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늘 하나님을 떠나고 반역하며, 배신했다.  출애굽기 32장 8절에서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요한복음 7장 1-3절『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초막절은 유대인들에게 큰 의미가 있는 명절이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후 광야에서 40년동안 장막 생활했던 것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이 명절에 행해졌던 중요한 행사 중 하나는 이 기간 동안 매일 제사장이 금으로 만든 물단지로 실로암 연못에서 물을 길어와 제단에 붓는 의식이었다. 이 의식은 광야생활 중에 물이 없을 때 반석에서 생수를 내게 하신 그 사건을 상기시켜 주었고, 이 의식을 치르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하였다. 그리고 초막절 마지막 날을 구원의 날로 지켰다.  이 날이 지난해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마지막 사죄의 날이라 믿었고, 그래서 마지막 날 제단에 물을 부으며 사죄의 은총에 감사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생수를 내시고, 구원의 길을 내실 메시야를 간절히 고대하며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초막절의 진정한 주인공이시며, 그토록 그들이 고대하던 메시야인 예수님이 오셨음에도 그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의와 공의를 말하는 예수님을 미워하고 죽이려 했던 것이다.  유대인의 큰 명절이 되면, 각지에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몰려들곤 했었는데, 유대인들이 지키는 3대 명절 중에 하나인 초막절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이에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께 유대로 갈 것을 요청하였다. 그런데 그들의 의도는 단순히 예수님께서 명절을 지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의 차원이 아니었다.  7장 4절『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에 대해 냉담해하던 갈릴리 사람들의 반응을 보았고, 또한 예수님께...

인자의 살을 먹지 않고 피를 마시지 않으면

요한복음 6장 52-53절『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사륵스)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사륵스)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예수 그리스도의 살인 사륵스는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며 인자의 피도 하늘의 생명을 의미한다. 부모로 부터 온 사륵스와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체하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을 믿는 것이다.  6장 54-55절『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피를 마신다는 말도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혈통을 가지고 있는데, 세상의 육신으로부터 혈통에 대해서 죽고, 하늘로부터 다시 태어나라는 말이다.  6장 56절『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는 그 분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분 안에 들어가고, 그 분도 내 안에 들어와 역사하시는 것이다.  6장 57절『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성부 하나님의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성도들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6장 58절『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죽는 것은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유대인들의 조상이 출애굽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하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떡은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신다. 조상들이 먹은 떡은 맛나를 의미한다. 신령한 맛나를 먹었더라도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는 것이다.  6장 59-61절『이 말씀은 예수께서 ...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요한복음 6장30-31절『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유대인들은 조상의 경험 중에서 만나를 먹는 사실을 말하고 예수님께 표적을 보여달라고 말한다. 즉 이보다 더 큰 표적이 있느냐 라는 것이다.  6장32-33절『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디도신)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조엔)을 주는 것이니라』디도신은 현재시제이다. 지금 주시는 그 떡을 먹으라는 것이다. 모세는 당시 백성들을 위해 기도해서 하늘로부터 맛나를 내리신 것인데,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지금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자신을 하늘로부터 온 떡이라는 것이다. 조엔은 하늘의 생명을 의미한다.   6장34-35절『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조엔)의 떡이니 내게 오는(에르코메노스)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호 피스튜온 에이스 메)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예수님을 찾아온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생명의 떡에 대한 의미를 깨달은 것이다. 에르코메노스는 문법적으로 중수디포테(사역)로서 오게 하는 자이다. 자기가 스스로 예수님께 오게 하는 자라는 말이다. 호 피스튜온 에이스 메는 내 안으로 들어와서 믿는 자를 의미한다.  6장36-37절『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보자가 되어 결코 내쫒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분과 함께 연합하여 십자가에서 죽고 ...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요한복음 6장16-18절『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어두움은 여전히 제자들이 율법이라는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나타내신다. 바람이 불어 파도를 일으키는 것은 율법을 벗어나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될 것을 나타내신다. 6장19-20절『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마태복음 14장 22-36절에서도 같은 표현을 하고 있다.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질렀다. 삶이 물 위를 걷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제자들이 누군가 물 위를 걷는 것을 보고 유령으로 생각했다. 그의 스승 예수 그리스도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만큼 예수님의 표적에 대해서는 여전히 기대감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표적은 어떤 이면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표적을 체험한다는 것은 대단히 신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 표적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뜻을 깨닫지 못하면 오병이어의 표적에서 보듯이 먹고 배부르는 정도가 되는 것이다. 물은 율법을 의미하고 배는 노아의 방주처럼 구원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은 율법 위에 계시는 분이라는 의미이고, 예수님이 배에 올라가신다는 것은 예수님 자체가 방주라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면 살게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6장21절『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그리스도가 배로 들어오시니 제자들이 기뻐했다. 역시 그들도 그 배에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기쁜 것이다.  6장22-23절『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가 배 한 척 외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

큰 무리가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요한복음 6장1-2절『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세메이아)을 보았음이러라』예수님의 표적은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나타내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예수께로 올려오는 것이다.  6장3-4절『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유대인의 3대 명절은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이다. 유월절은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온 날을 기념하여 지키는 날이다. 한 주간 내내 누룩이 들어 있는 것을 먹지 않는다. 누룩이 들어가지 않고 만든 무교병으로 일주일 간의 양식을 삼는다. 칠칠절은 일곱 번의 일곱 날이라는 의미로 밀을 심고 수확하기까지 걸리는 49일간을 나타낸다. 보리를 첫 수확하는 초실절(맥추절) 이후 50일째 되는 날에 지켜졌기 때문에 오순절이라고도 불린다.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는 과정을 상징한다. 숙가(sukkah)라 불리는 초막(임시 장막)을 집 앞에 지어서 7일간 장막안에 거하며 먹고 즐기는 축제이다. 6장5-절『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페이라존) 하심이라』페이라존은 유혹하다라는 의미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이 단어가 등장한다. 예수님의 표적에 대한 기대가 부정적일 때는 마귀의 유혹에 빠질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예수님은 빌립을 표적과 기사에 대한 기대가 어떤지를 시험하시는 것이다. 그에 대한 기대가 없고, 있어도 마귀의 능력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도 표적과 기사가 등장하면, 두가지의 반응이 나온다. 하나님의 능력과 마귀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표적과 기사를 마귀의 것으로 이상하게 바라보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6장7절『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요한복음 5장 30절『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크리노)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크리시스)은 의로우니라』예수님은 아버지의 음성을 듣는 대로 판단하고 행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판단은 아버지의 판단과 같은 것이다. 크리노, 크리시스는 판단이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라는 것이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면 성부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  5장 31-32절『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 증언이 참인 줄 아노라』예수님도 자신에 대해서는 스스로 증언하지 않고 아버지가 증언하는 것이 참이라고 말한다. 완전히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5장 33절『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였느니라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받게(소데테) 하려 함이니라』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이 증언하는 것에 관심없다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이 증언하시는 것만 듣는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구원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5장 35-36절『요한은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라 너희가 한때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에르가) 곧 내가 하는 그 역사(에르가)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에르가는 사역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사역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과 기사들이며, 그로서 그 분의 음성을 듣고 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에 대해서 아버지가 보내신 자라는 것을 아버지가 증언한다는 것이다.  5장 37절『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요한복음 5장 20절『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필로이)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필로이는 친구간의 우정을 의미한다. 예수님도 그의 사도들을 친구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것은 관계적인 모습이다. 예수님과 친구가 되면 그 분과 깊은 교제가 이루어진다. 심령 속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환상으로 보고 그 분의 음성을 듣는다면 모두가 놀랄 것이다.  5장 21절『아버지께서 죽은 자들(네크루스)을 일으켜(에게이레이)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조오포이에이)』부활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나, 육체적으로 죽고 난 뒤에 임하는 부활이 아니라 현재적 영적인 부활을 의미한다. 네크로스는 하나님과 단절되어서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다. 말씀이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성령의 능력으로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이 바로 영적으로 사는 것이다. 조오포이에이는 영적으로 생명으로 사는 것이다. 부활의 이 역할을 아들이 한다는 것이다.  5장 22절『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크리네이) 아니하시고 심판(크리신)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크리네이는 최후의 심판이 아니라, 판단하다는 의미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심령 속으로 들어와 판단하신다.  5장 23절『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아버지를 공경하고 아들을 공경하는 것은 2000년 전의 그 분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심령 속에 들어오신 그 분을 공경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심령 속에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 자체가 안된다는 것이다.  5장 24절『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톤 로곤 무)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크리신)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다나투)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톤 로곤 무라는 말은 나(성자)와 톤 로곤(말씀...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한복음 5장 1절『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유대인의 명절은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이 있다. 유대인들이 명절을 지키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광야에서 멸망당했는데, 이제 그들은 이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자 말자는 뜻으로 명절을 지키면서 각오를 다지는 것이다. 명절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목적은 이스라엘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5장 2-4절『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이 말은 당시 미신이 얼마나 심각하지를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이 이스라엘의 모습이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과거 광야에서 40년간 방황한 유대인들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병자는 죄인을 의미한다. 죄인들은 성전에서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받아야 하는데, 신비주의에 빠져 성전을 두고 베데스다 못에 가서 고침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5장 5-6절『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휘기에스) 하느냐 』 예수님이 이스라엘에게『38년된 병자』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이스라엘이 시내산 앞에서 금송아지를 만든 것처럼, 우상과 미신을 믿고 있는 것을 보여주신다. 예수님이『네가 낫고자 하느냐』에서『낫다(휘기에스)』라는 말은 히브리어『하야』이라는 말로『살아있는』이라는 말이다. 그래서『너 살기를 원하느냐』라는 말이다. 그 말은 『너는 죽은 자』라는 것을 말해주신다.  5장 7절『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병자가 살려달라는 말을 하지 않고,...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요한복음 4장 43절『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갈릴리는 나세렛이 갈릴리에 속해있는 동네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란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예수님 일행이 다시 갈릴리로 돌아오는 여정 중에 생긴 일로 요한복음이 전하는 일곱개의 표적 중에서 두 번째 표적으로 예수님께서 왕의 신하의 아들의 병을 고쳐주신 이야기다. 갈릴리에 이르자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말하고 있다.  4장 44-45절『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모든 일은 표적과 기사를 행한 것을 의미한다. 표적과 기사가 복음을 전하는데 탁월한 것이다.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 않았지만, 표적과 기사를 보고 영접까지 한 것이다.  이들이 예수님을 영접한 이유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첫 번째 이적의 소식은 갈릴리 지역에 사람들의 입에 입을 타고 전해졌을 것이다. 목격하지 않고는 믿지 못할 이 소식에 사람들은 의심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유월절 행사를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갔는데, 예루살렘 성전에서 한 청년이 서슬이 퍼렇게 성전 앞에 늘비하게 있었던 장사꾼들을 나무라며 상을 엎어버리는 것을 목격했다.  유월절 행사를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제물을 구입할 때마다 폭리를 취하는 이들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한 청년의 이 용기 있는 행동에 속으로 갈채를 보냈다. 바로 그 청년이 가나 혼인잔치의 이적을 행한 예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은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 했을 것이고, 이후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머물면서 말씀을 전하는 집회에 참석했다. 그 청년 예수가 갈릴리에 도착했다는 소식에 갈릴리 사람들은 나와서 예수님을 환대했다. 4장 46절『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4장 27절『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우데이스 멘토이 에이펜)』제자들은 유대인으로서 사마리아인들을 경멸하였으나 그들의 선생인 예수께는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는 것을 순간 따지지 못한 것이다. 우데이스 멘토이 에이펜는 그렇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에이펜은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성령의 감동으로 말하지 않아야 할 상황임을 깨달은 것이다.  4장 28절『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사마리아 여인이 행한 모든 일을 예수님이 다 알고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4장 30절『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에르곤토)』에르곤토는 아오리스트 세제로서 중간태이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예수께 왔다는 말이다. 자발적으로 나오게 된 경위는 예수님이 상대방의 십중을 알아맞추는 놀라운 기적의 말씀이다.  4장 31-32절『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제자들은 세상의 음식을 말하고, 예수님은 하늘의 양식을 말하므로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다.  4장 33-34절『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팸프산토스)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펨포는 심부름시키는 것이다. 심부름을 이루는 것이 양식이라는 말이며, 날마다 그 심부름을 이루기 위하여 일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일하는 것은 영적으로 생명을 건지는 추수와도 같은 일이다.  4장 35절『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세상의 밭에는 씨뿌리고 넉달이 지나야 추수하지만, ...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우물 요한복음 4장 1-2절『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제자들이 세례를 베푼 것은 물세례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이 세례를 베푸셨다면 성령세례였을 것이다. 성령세례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일어날 일이며, 현재는 예수님이 직접 이 땅에 제자들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  4장 3절『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싫어했다. 남유대와 북이스라엘이 분열되었을 때 북이스라엘은 앗시라아의 점령 하에서 혼혈된 사람들이 된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자기들과는 다른 존재(이방인)라고 생각한 것이다. 특히 사마리아 사람들은 산에서 그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갈 수 없었으므로, 북이스라엘은 그리심산에서 황금 송아지를 두고 예배하도록 명한 것이다.  4장 5절『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예수님이 사마리아에 가셨으며 수가라는 동네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는데, 이 여인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던 여인이었다. 구원은 간절히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이 손길을 내미는 것을 말해주려고 하는 것이다.   4장 6절『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야곱의 우물은 율법을 상징한다. 오후 여섯시는 하루가 저무는 그 시점이다. 세상의 관점에서 율법은 저물고, 생명의 법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작하는 시점을 암시하는 것이다. 여섯시는 로마의 시간을 따르는 것이다.  4장 8절『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사러 동네 안으로 보내시고 혼자 사마리...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장 22-23절『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에밮티젠)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밥티존)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에밮티젠은 물세례를 베푸는 것이다. 세례를 베푼 자는 예수님의 제자들이다. 예수님이 세례를 주는 것을 허락하신 것이다. 세례는 물에서 육의 몸이 죽고 다시 하늘로부터 영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요한이 주는 밥티존도 물세례이다.  3장 24-25절『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카다리스무)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제테시스)』제테시스는 한 논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카다리스무는 결례(의식)로서 요한이 주는 세례를 의미한다.  3장 26절『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논쟁의 핵심은 요한이 물세례를 주었는데, 강 저편에 있는 예수라는 분(요한이 증언하던 분)도 왜 물세례를 주는가 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4장 2절에서 말한다.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3장 27절『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에안)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요한은 물세례의 의미를 정확히 알려준다. 하늘에서 태어나는 것이 세례라는 것이다. 세례를 행하는 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례받는 자가 하늘로부터 태어나는 의미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세례의 형식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닌 것이다. 만일 세례의 형식이 중요하다면, 모두 물 속으로 들어가 침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물을 뿌리는 의식 자체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특히 요한이 주는 물세례는 정결의식을 나타내는 것으로 하늘로부터 태어나는 세례가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곧 예수님이 주는 세례가 참 세례라는 것이다. 참세례는...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3장 12절『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땅의 일라는 것은 예수님이 객관적인 사실을 증언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를 지내면서 메시야를 기다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시야가 왔는데도 그를 믿지 않은 것이다. 예수님이 희생제물이 되기 위해 온 메시야라는 것을 말해도 믿지 않고, 표적을 여러 번 보여주었는데도 믿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하늘의 일이란 성령에 대해서 말을 하면 과연 믿겠는가 라는 말이다. 성령으로 난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말을 해도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3장 13절『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여기서 인자로 번역된 말의 헬라어를 보면 ὁ Υἱὸς τοῦ ἀνθρώπου(그 아들 그 사람)이다. 그 아들과 그 사람은 사람이면서 하나님의 아들을 의미한다. 즉 그리스도이다. 하늘에서 그리스도가 내려왔다는 말이다. 이 말은 첫사람 아담이기도 하고 마지막 아담이기도 하다. 번역을 다시 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자가 곧 그 아들 그 사람(그리스도)이며 하늘에서 내려옴이 없었다면 올라감도 없었을 것이다. 즉 그리스도가 첫사람 아담으로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이 되셔서 죄의 몸을 영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다시 그리스도가 마지막 아담으로 내려와서 예수라는 이름의 사람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간 것이다. 3장 14절『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휘포센)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휩소데나이) 하리니(데이)』휘포센은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모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간 들었다. 능동형이다. 휩소데나이는 들려지는 것이다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수동형이다. 하나님이 높이 들어올린 것이다. 부활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한다. 데이는 반드시 해야한다는 의미다. 출애굽한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므로 하나님이 불뱀을 보내어 죽게 했는데, 모세가 살려달라는 간구의 기도를 통해서 놋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장 1절『그런데 바리새인 중에(에크)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아르콘)라』에크는 ~로부터 라는 것으로서, 바리새인들로부터 나온 자라는 의미다. 아르콘은 우두머리다. 니고데모가 바리새인의 우두머리였지만, 그 파로부터 나온 자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었으며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임마누엘 신앙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니고데모가 예수를 바라볼 때 임마누엘로 바라본 것이다.  3장 2절『그가 밤에(뉙토스)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뉙토스는 명사 소유격으로 “밤의”가 된다. 수식하는 명사가 없을 때는 소유대명사가 된다. 밤의 것을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영적 어둠의 상태로 예수님께 왔다는 말이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행하는 표적을 보고 그가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을 믿은 것이다.  3장 3절『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아멘) 진실로(아멘)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겐네데 아노덴) 아니하면(에안) 하나님의 나라(톤 바실레이안 투 데우)를 볼 수 없느니라』아멘 아멘이라는 말은 정말로 그러하다는 말의 표현이다. 겐네데 아노덴은 위로부터 태어나다 라는 의미다. 아노덴은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순간 태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톤 바실레이안 투 데우)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통치의 개념이다. 아직 성도에게 성령이 임하지 않으므로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세상과 반대되는 하나님 나라를 표현한 것이다. 에안은 만일 이라는 가정법이다. 가능하지만 정말 어려운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3장 4절『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예수님은 하늘로 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말했는데, 니고데모는 두번 태어나야 한다는 말로 오해한 것이다. 그래서 한글 개역개정에도 거듭난다...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요한복음 2장 13-14절『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휴렌)』휴렌은 아오리스트 능동태로서 생각지도 않게 발견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지키는 3대 명절 중에 하나인 유월절이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지역에서 남쪽 방향으로 예루살렘으로 가셨다. 갈릴리 사역을 잠시 중단하고 힘든 여정으로 예루살렘에 도착하셨던 예수님께서는 제일 먼저 성전 안에 들어가셨다.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 들어가셨을 때 놀라운 풍경을 보게 되셨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에 왔던 사람들은 비단 예수님과 제자들만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지역이 아닌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왔다. 먼 거리 여행을 하게 되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을 것이다.  여러 가지 준비물들 중에 특히 제사를 드리기 위한 제물인 짐승을 손수 이끌고 먼 길을 이동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므로 제물을 예루살렘에서 구입하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제물뿐만 아니라 로마의 경제적 지배를 받고 있었던 모든 나라들에서는 로마의 화폐를 상용했다. 이스라엘 지역에 와서는 로마의 화폐보다는 유대인의 화폐로 환전을 해야지만 제사를 위한 제물 구입이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지리적 상황이 성전 이방인들의 뜰에서 제물을 구입하기 위한 환전행위와 제물로 드려질 짐승의 매매행위를 자연스럽게 정착하게 했다.  2장 15-17절『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성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메:하나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솔로몬이 건축했던 성전이 아니었다. 예루살렘 성전은...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요한복음 2장 1절『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에게네토)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엔)』에게네토는 문법적으로 아오리스트 중간 디포테로서, 순간 있게하다 라는 말이다. 엔은 과거용법으로 어머니는 혼인잔치에 필요에 따라 초대받은 것이다. 잔치의 일을 도우러 간 것인지 아닌지는 명확하지 않다.  교회사람들은 예수님의 첫 표적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신 것으로 생각을 하기도 한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믿음, 그리고 하인들의 순종 등등 이런 이야기를 이야기한다. 물이 포도주로 바뀐 것은 예수님의 처음 표적이었다. 성경에는 혼인잔치에 대해서 세군데 나온다. 가나의 혼인잔치, 마태복음 22장에서 나오는 어떤 임금이 자기 아들을 위해 베푼 혼인잔치, 요한계시록에서 나오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이다. 세 혼인잔치는 모두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장 2절『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에클레데)』에클레데는 아오리스트 수동태이다. 예수와 그 제자들이 생각지도 않게 그곳에 가게 된 것을 의미한다. 혼인잔치의 혼주와는 관계가 깊지 않은 모양이다.  2장 3절『포도주가 떨어진지라(휘스테레산토스)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휘스테레산토스는 아오리스트 시제이다. 아오리스트 시제를 사용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가나의 혼인잔치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를 설명하기 위한 모형이다. 혼인잔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상태가 되어야 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다. 혼인잔치가 끝나기 전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말은 혼인잔치가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혼인잔치는 온전한 혼인잔치가 아니라는 말이다. 완전한 혼인잔치가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를 설명한다. 2장 4절『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여자여 라고 표현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그 사역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는...

하나님 사자들이 인자위에 오르락 내리락

요한복음 1장 43절『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휴리스케이) 이르시되 나를(모이) 따르라 하시니』휴리스케이는 ~을 찾다가 발견하다라는 의미다. 예수님은 믿음의 열정이 있는 자를 찾은 것이다. 모이는 목적격이 아니라 여격이다. 나에게 따라와서 어떤 관계를 맺으라는 것이다.  1장 44절『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빌립과 안드레는 예수님과 하루 함께 머물렀던 자들이고, 안드레가 베드로를 예수님께 소개하는 것이다. 그들은 같은 동네 사람들이었다. 벳세다라는 곳이 메시야를 찾는 마음이 강한 신앙의 도시였다는 것이다.  1장 45절『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유리스케이)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유리스케이는 ~을 찾으로 다니는 것이다. 나다니엘도 메시야를 간절히 찾던 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장 46절『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아가돈)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에르쿠) 보라(이데) 하니라』아가돈은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결국 죽었던 영을 살리는 것을 의미한다. 아가돈이라는 것은 하나님 외에는 사용될 수 없는 것이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만나서 선한 선생이여 라고 말을 했을 때, 예수님이 하나님 만이 선한 분이라고 말했다. 에르쿠는 오게하라는 의미다. 문법적으로는 명령법, 현재시제, 중수 디포테를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네 자신이 네 자신에게 반드시 가도록 명하라는 것이다. 이데는 명령법, 아오리스트 시제, 능동태이다. 네가 (그리스도를) 순간적으로 보게 될 것이다 라는 것이다.  1장 47절『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알레도스)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돌로스 우크 에스틴)』알레도스는 진실하다라는 의미다. 돌로스 우크(not) 에스틴(be)는 교활함이 없다는 것이다.  1장 48절『...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복음 1장 29절『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아이온)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호 암노스)이로다』아이온은 들어올리다 라는 의미다. 세상에서 꿈쩍도 않는 죄를 들어올려서 이동시키는 개념이다. 호 암노스는 그 어린양이다. 즉 희생제물 어린양이다.  1장 30절『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엠프로스덴)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엠프로스덴 무 게고넨)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엠프로스덴 무 게고넨은 나보다 앞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되어졌다는 말이다. 앞서라는 엠프로스덴은 시간적인 개념이다. 호티(왜냐하면) 프로토스(먼저) 무(나의) 엔(존재했다), 여기서 프로토스는 질서적으로 앞선 것을 의미한다. 나보다 먼저 된 자라는 말은 아르케(우두머리)라는 말이다. 그 분은 모든 피조물보다 앞서 존재했던 분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존재했다는 말이다. 호 로고스는 처음부터 먼저 계셨으므로 왕이라는 개념이 된다. 첫사람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왕으로 존재한 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적으로도 성도는 심령 속에서 왕으로 모시고 있다.  1장 31절『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파네로데) 함이라 하니라』세례요한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이 독생자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파네로데는 3인칭 단수 아오리스트 중간태로서 그가 나타내지도록 이라는 의미다. 세례요한이 세례를 주는 이유는 그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이스라엘에 나타내지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에 의해서 하나님이 아들이라는 것이 나타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되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증거한다고 해서 그 듣는 사람이 예수를 알게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예수에 대해서 듣고, 예수와의 체험적 관계를 통해서 알게된다는 것이다.  1장 32절『요한이 또 증언하여(에마르튀레센) 이르되 내가 보매 ...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한복음 1장 15절『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마르튀레이) 외쳐(케크라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후토스 엔 호 에이폰)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엠프로스덴 무 게고넨)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호티 프로토스 무 엔)』마르튀레이는 증거한다는 것인데, 어떤 사실을 밝히드러내는 것이다. 케크라겐은 현재완료로서 그 동안 계속 외쳐왔다는 것이다. 후토스 엔 호 에이폰에서 호는 관계대명사이다. 내가 전에 말했던 이 사람(후토스)이다. 에이폰은 아오리스트 시제이다. 순간적으로 말한 사실을 의미한다.  엠프로스덴 무 게고넨은 나보다 앞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되어졌다는 말이다. 앞서라는 엠프로스덴은 시간적인 개념이다. 호티(왜냐하면) 프로토스(먼저) 무(나의) 엔(존재했다), 여기서 프로토스는 질서적으로 앞선 것을 의미한다. 나보다 먼저 된 자라는 말은 아르케(우두머리)라는 말이다. 그 분은 모든 피조물보다 앞서 존재했던 분이라는 말이다.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호 로고스는 처음부터 먼저 계셨으므로 왕이라는 개념이 된다. 첫사람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왕으로 존재한 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적으로도 성도는 심령 속에서 왕으로 모시고 있다.  1장 16절『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플레로마토스)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카린 안티 카리스토스)』플레로마토스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는 의미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 할 이유는 그 분으로부터 은혜와 진리의 충만함을 받으려는 것이다. 카린 안티 카리스토스는 은혜를 대신하는 은혜이다. 안티를 위에라고 번역했으나, 안티는 반대되는 의미다. 앞에 있는 은혜는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이고, 뒤의 은혜는 율법을 통한 은혜이다. 즉 율법을 대신하는 은혜로다 라는 말이다.  1장 17절『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디아) 주어진 것이...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요한복음 1장 8절『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토 포스)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그는 세례요한을 의미한다. 토 포스는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1장 9절『참(토 알레디논) 빛(토 포스)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엔)』 토 알레디논은 진리로서, 진리되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엔 토 포스 토 알레디논』엔은 있었다는 의미인데, 한글 개역개정은 문장의 마지막 부분에 포함시켰다. 진리의 참 빛이 있었는데 라는 의미다. 진리는 말씀이신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가 없는 자는 하늘로부터 오는 진리가 없는 것이다. 빛이 없는 어둠에 갇혀 있는 자인 것이다. 그런데, 진리이신 그리스도가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들에게 비추고 있다는 말이다.  요한이 말하는 성육신은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이야기가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가서 임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1장 10절『그가 세상(토 코스모)에 계셨으며 세상(호 코스모)은 그로 말미암아(디) 지은 바 되었으되(에게네토) 세상이 그를 알지(에그노) 못하였고(우크)』코스모는 우주이지만, 관사가 붙으면 세상을 의미하게 된다. 토 코스모, 호 코스모는 세상이지만, 성도를 의미한다. 『그(그리스도)가 세상에 있는 성도에 계셨으며, 세상에 있는 성도는 그(그리스도)를 통하여 지은바(하나님 나라로) 되었으며』라는 의미가 된다. 디는 ~을 통하여 라는 의미다. 에게네토는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순간 되게 하시는 것이다. 에그노는 기본형이 기노스코로서 관계를 통해서 아는(히브리어:야다)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세상에 있는 교회 성도라고 하는 사람들이 심령 속에 임재하는 호 로고스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1장 11절『자기(타 이디아) 땅에 오매(에이스 엘덴) 자기(호이 이디오이)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타 이디아와 호이 이디오이는 자신의 것들이다.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태초에 라고 번역된 아르케는 우두머리, 첫번째로서 이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요한복음 1장 1절『태초(엔 아르케)에 말씀이 계시니라(엔)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엔(~안에) 아르케(처음에, 첫번째에)는 엔과 여격명사가 결합되어 있어서, 시간적 태초가 아니라 첫째되는 분이라는 것이다. 창세기 1장 1절에서 베레쉬트(태초에)와 같은 개념이다. 첫째 되는 분은 바로 성도를 이끄는 호 로고스라는 말이다.  호 로고스는 말씀이신 그리스도이시다. 즉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로고스와 레마가 있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말씀은 레마이다. 그러나 심령 속에서 하시는 말씀은 로고스이며, 관사가 붙으면 호 로고스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로고스는 여성명사인데, 동사는 레고(말하다)이다. 엔(영어의 be동사)은 3인칭 단수 과거를 나타내므로 있었다 라는 것이다. 호 로고스가 있었다 라는 것이다. 어떤 호 로고스인가 하면 첫번째 되시는 분인 말씀으로 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로고스는 다른 의미로서 이성, 지혜, 합리적인 생각, 그 생각의 외적으로 표현되는 말의 합성어라고 해야할 것이다. 당시 헬라인들은 이런 합리적인 지식을 통해서 로고스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는 로고스가 구원의 수단이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로고스를 요한이 복음을 전하려고 헬라인에게 익숙한 로고스를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관사인 호를 붙이므로, 복음의 말씀 속에서 나타나는 그리스도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그 복음의 말씀은 성도의 심령 속에서 성령의 역사로 나타나시는 호 로고스라는 것이다. 바로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된다.  구약성경에서 말씀은 창조의 수단이 된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를 통해서 구원을 인간에게 알려주시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계시가 된다. 그래서 말씀으로 창조하는 가운데, 그 말씀이 곧 그리스도임을 계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곧 창조와 구원의 주체라는 것이다. 이 세상...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마가복음 16장 1-18절)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마가복음 16장 17-18절)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16장 ...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 마가복음 15 장 1-47 절 ) 『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