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019의 게시물 표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누가복음 16장 8-9절에서『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불의한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임의로 탕감해 주므로서 주인의 재산을 탕진했다. 그런데 주인이 이 불의한 청지기를 보고『잘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물들에 대한 특성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주인은 하나님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빚을 탕감해주기를 원하신다. 마태복음 18장 23-35절에서 1만 달란트 빚진 자의 내용이 나온다. 어떤 관원이 왕에게 1만 달란트의 빚을 졌는데, 왕이 빚을 갚으라고 독촉을 하는데, 갚을 능력이 없다고 하니까, 왕이 불쌍히 여겨서 빚을 탕감해 주었다. 이 관원이 왕으로 부터 물러나서 집으로 가다가 자기에게 100데나리온(아주 적은 돈) 빚을 진 사람을 발견하고는 빚을 갚으라고 요구했으며, 그 사람이 갚을 능력이 없다고 하니까 그를 끌고 가서 옥에 가두어 버렸다. 그런데 다른 관원이 왕께 이 사실을 고하니 왕이 분노하여 1만 달란트 빚진 관원을 옥에 가두고 빚을 다 갚기 까지는 옥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다는 내용이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가지고『형제의 죄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두번째의 인물은 불의한 청지기인데, 불의한 청지기는 부자의 재산을 관리하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불의한 청지기는 바로『나』라는 사실이다. 나의 육체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모든 재물은 다 내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누가복음 12장 16-21절에서 비슷한 비유가 나온다. 농부가 소출이 많아져서 창고를 더 많이 지어, 양식을 가득 채우고 말하기를『이제 내가 양식이 충분하므로 내가 먹고 살아도 문제가 없겠다』라고 하니까 예수님이 그 비유를 통해서『어리섞은 자여,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것이 다 무슨 의...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안식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쉬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창세기 1장 1절에『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에서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하나님 나라는 안식 그 자체다. 성경(요한계시록)에서는 마지막 때,『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는 자가 안식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하나님 스스로가 안식이요, 예수 그리스도가 안식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안식을『쉰다』라고 생각하면 그 다음에는 또 일해야 하는 날이 오지만, 하나님 나라 안식에 들어가면 일하고 쉬는 개념이 아닌 것이다.  천지창조를 하기 전에는 안식이었는데, 천지창조를 하게 되므로 안식이 깨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천지창조를 다 끝내고 하나님이 이 땅에서 손을 떼시고 안식을 하신 것이다. 창세기 2장 1-3절에서『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복을 주시고 안식하시니라』라는 말은 하나님 나라 즉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안식과 같은 것이다. 천지창조에서 말하는 안식은 이 세상에서 창조의 일이 끝나는 멈춤이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일곱째 날에 복을 주셨다』라는 말은 세상에 복을 주신 것이 아니라, 날에 복을 주신다는 것이다. 날은 물질세계의 시간과 공간 속에 있는 날이다. 하나님이 물질세계 속에서 이 날에 복을 주신 것은 물질적 복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복을 주신다는 말이 담겨져 있다. 즉 이 세상이 끝나는 날에 하나님이 영원한 안식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 안식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히브리서 4장 8-10절에서『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였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있도다 그런즉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하나님만 구하는 기도

고린도후서 5장 1-4절에서『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장막은 하나님과 만나는 언약의 장소를 말한다. 율법 시대 이전에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만난 곳이 장막이었다. 하나님이 손으로 지은 집은 바로 육체를 말한다. 하나님이 흙으로 빚어셔서 인간을 만드셨다. 그리고 아담을 에덴동산에 넣어주셔서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게 했다. 아담의 육체 속에 있는 영이 살아나서 하나님과 교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서 육체는 오염되고, 영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모든 인간들의 장막이 무너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가 있다. 이 처소가 바로 영의 몸이다. 영의 몸을 입지 않으면 벗은 자들이 되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그들이 벗었음을 발견한 것이다. 영의 몸을 입지 못하면, 벗은 자들이 된다.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덧입는 것을 말한다. 『덧입는다』는 말은 옷을 하나 더 입는다는 말이다. 육의 몸에 영의 몸을 입는다는 의미다. 거듭나는 사람은 두가지 옷을 입고 있는 셈이다. 육의 몸과 영의 몸이다. 육의 몸이 죽어야 생명으로 이어진다. 생명은 영의 몸이다. 로마서(6장 4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죽을 것(육의 몸)이 생명(영의 몸)이 삼켜지는 것이다. 그래서 죽...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한 것이라

베드로전서 1장 3-4절『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베드로가 카타콤(갑바도기아)에서 살고 있던 성도들에게 편지를 한 내용이다. 성도들이 핍박을 피해 산에서 동굴을 파서 피난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분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 회개하여 거듭나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수 없다. 베드로도 예수가 죽기 전에 예수님을 세번 부인했었다. 회개하지 않은 자의 모습이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는 왕의 모습이 아니라 죄인의 모습이었다. 왜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아 죽으셨는가? 하나님은 죄악을 용서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다.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으로 죽은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위하여 기꺼이 자기 아들을 죽게 하신 것이다. 회개하는 인간들이 무슨 잘못이 있었기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아 죽음을 당해야만 했는가? 이것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회개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다.  로마서 5장 12-14절에서『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특히 15장 14절에서『Nevertheles...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다

에베소서 2장 4-5절『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영이 죽어있다. 왜냐하면 원죄로 죽어있으며, 육이 오염되었다.   원죄는 육적인 원죄와 영적인 원죄가 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는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원죄는 육적 원죄다. 육적 원죄는 악(죄성)이라고 말하며, 세상에 살면서, 이 악이 하나님 말씀과 세상의 법을 어기게하며, 죄를 짓게 만드는다. 그러나 영적인 원죄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죄다. 그래서 인간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대적하며 우상을 섬기며 살게된다. 그래서 이 두가지를 합하여 원죄라고 말한다.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를 원죄라고 말하지만, 영적인 원죄는 하나님 나라에서 사탄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 영적 원죄의 시작이다. 그래서 사탄을 따르는 모든 존재들은 영적 원죄를 물려받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육적인 원죄는 이 땅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영적인 원죄는 영적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 되어있는 것은 이 두가지의 원죄를 다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죄성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우상이다. 죄성은 육의 몸을 오염시키지만, 우상은 영을 죽인다. 그래서 육의 몸(죄성)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성령의 능력으로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영이 살아날 수 없게된다. 그래서 구원의 조건은 육의 몸이 죽고, 영의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에베소서 2장 1절에서『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And you hath he ...

내 마음의 우상이 탐심이다

로마서 3장 24-26절『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오늘날 많은 교회는『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를 생략한채, 뒤의 부분을 말한다.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한다. 속량이 없이는 죄사함을 받을 수 없는데도, 예수를 믿으므로 그의 피로서 죄사함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예수의 피값으로 사신바되었으니, 이것이 값없는 은혜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 죄인은 죽지 않으면, 죄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는 존재다. 반드시 대가를 지불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회개하는 자를 위하여 자기 아들로 하여금 죽음의 대가를 치르게 하셨다.  회개가 무엇인가? 하나님께 대하여 죽을 자임을 깨닫고,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죄의 대가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죄의 대가를 예수님께 전가시키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은 죽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을 주라고 말하면서, 세상도 좋은 것이다. 하나님 나라도 좋고, 이 세상도 좋은 것이다. 하나님이 예수를 믿는 자를 위하여 피의 대가를 치른게 아니라, 예수와 함께 죽은 자를 위하여 피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은 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가 된다. 피의 대가는 어디에서 이루어지는가? 바로 지성소에서 화목제물로 이루어진다. 화목제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기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10가지 재앙이 내려졌다. 백성들이 장자의 죽음으로부터 벗어나...

속함을 받아야 사함을 받는다

레위기 23장 26-29절『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희는 성회를 열고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이 날에는 어떤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 속죄일은『스스로 괴롭게 하라』는 것이다. 나팔절부터 10일간은 고통과 환란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10일간이 끝나면 속죄절이 되고, 속죄절 5일 후에 초막절이 시작된다. 나팔절은 추수가 끝났다는 의미다. 오순절부터 넉달동안 추수가 완전히 끝나서 나팔을 분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말을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가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절기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잘 기억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는 절기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월절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어린양으로 죽으시고, 초실절에 부활하셨으며,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셨다. 그리고 나팔절에 공중 재림하실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재림하시는 정확한 날과 때는 알 수 없다.  레위기에 다섯가지의 제사가 나오는데, 레위기 4장 20절에서『그 송아지를 속죄제의 수송아지에게 한 것 같이 할지며 제사장이 그것으로 회중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들이 사함을 받으리라』다섯가지의 제사에 대해서 설명하고 끝에는 반드시『속죄한즉 그들이 사함을 받으리라』속죄의『속』이라는 말은 영어로 redeem(도로 사는 것)인데,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1장 7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에서 『곧』이라는 말은 속량과 죄 사함이 동의어의 개념이 아니라,『이어서』라는 개념이다. 속량이 있어야, 죄사함을 받는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속량은 레위기 4장 20절의『속』을 인용한 것이다. 속량은 대속, 구속이라는 말로도 사용된다. 구입(Purchase)한 후에 해방(delieve)된다는 말이다....

육신의 자녀와 하나님의 자녀

로마서 9장 8절『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육신의 자녀는 육신을 따른다. 로마서 8장 5절에서 말한다.『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을 따른다. 로마서 8장 14절에서『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그런데,『육신의 일』이라는 것은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서『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성령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 영의 일이 무엇인가? 영의 일은 이 세상에 대해서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 일이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서『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라고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경배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2장 9절에서『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요한이 천사에게 엎드려 경배하니, 천사가 요한에게 말했다. 경배는 하나님께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우상에게 경배하고 있으며, 많은 교회사람들도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섬기고 있다.  요한복음 4장 23-24절에서 경배에 대해서 말한다.『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하나님이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예배는 어떤 형식이나 절차가 아니라,『영과 ...

청함을 받아 택하심을 입어야 한다

마태복음 22장 14절『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예수님이 죽기 며칠 전에 어느 임금이 자기 아들을 위해 베푼 혼인잔치 이야기를 하셨다. 임금이 자기 아들을 위해 혼인잔치를 열어 손님을 초청했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마태복음 22장 2-5절에서『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혼인잔치에 초청했지만 오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자기 사업 때문에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기 일 때문에 오지 않은 사람들 외에 다른 사람들은 임금이 보낸 신하를 모욕하거나 잡아죽이기 까지 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살랐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러 간 선교사를 죽인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도 심판을 받는 것이다. 수없이 많은 선교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하나님이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다. 세상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을 미워한다. 세상이 예수를 미워하듯이 세상이 기독교인들을 미워한다. 그 이유는 사탄때문이다. 사탄이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특히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들을 잡아 죽였다. 심지어 예수까지 십자가에서 죽게 했다.  임금이 신하를 보내어 악한 사람이던지 선한 사람이던지 지나가는 사람들을 아무나 혼인잔치에 초청했다. 오늘날, 교회로 인도된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데 혼인잔치에 초청된 사람들 중에 예복을 입지 않은 자를 임금이 쫒아내 버렸다. 예복을 입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우리가 선택한 믿음과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

로마서 4장 2-3절『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우리가 선택한 믿음은 어떤가?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믿는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피를 흘렸으며, 우리가 그 보혈의 능력을 의지할 때, 모든 죄에서 벗어나 구원의 길로 간다고 믿는가? 그런데, 하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다시 태어나라고 말씀하시는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보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여기에서 사람들의 믿음과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과의 차이는 죄를 바라보는 인간과 악을 바라보시는 하나님과의 차이다. 사람은 죄로부터 자유함을 받으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죄의 원인인 악으로부터 벗어나야만 구원받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구원은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씀하시는데, 사람들은 개선해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믿음을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고 믿는 것으로 여기지만, 하나님은 거듭난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믿는 믿음은 악이 가득한 상태에서 믿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지 못한다. 믿음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로 이어지지 못하면 안된다.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선물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 부인의 회개없이는 불가능함을 말씀하신다. 디도서 1장 1-2절에서『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믿음은 택하신 자들의 믿음이라는 것이다.  택하신 자들의 믿음은 교회에서『예수믿으면 구원받는다』고 들어서 믿게되는 그런 믿음이 아닌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

요한복음 1장 12-13절『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국왕이나 대통령이 외국을 순방했다가 귀국하면, 영접나가는 자들이 있다. 권세를 가진 자들이 영접하러 나간다. 이 권세는 국가 최고 권력자가 임명하여 얻는다. 이 땅에서도 영접하는 자들은 권세를 가진 자들인데, 하물며,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아무나 영접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 되는 것인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접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나 예수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조건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세상에서 부모로부터 받은 육의 몸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영의 몸을 가진 자만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영의 몸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과 같은 것이다. 로마서 6장 3-4절에서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세례를 받은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세례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합하여지는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대부분 아버지)의 성씨를 물려받는다. 마찬가지로 영의 몸으로 태어나면 아버지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이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이 땅에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태어나셨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의 아버지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는 여호와(예수)의 이름으로 권세를 나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러야

로마서 3장 23-24절『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화목제물은 구약에서 말하는 법궤의 두껑을 덮고 있는 속죄소를 말한다. 어린양의 피가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화목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양의 피를 통해서 죄인의 죄를 덮어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인이 가지는 믿음은 어린양의 피가 화목의 역할을 하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런 믿음을 가지는 자는 어린양의 죽음과 하나가 되는 믿음으로 이어진다. 어린양의 죽음과 죄인이 서로 다른 존재로 인식한다면 피가 속죄소에 이르지 못한다. 피가 속죄소에 이르지 못하면 하나님과 화목되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님은『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씀이다.『예수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말이 얼마나 허황된 말인가?  『자기의 십자가를 진다』는 의미는 하나님께 대하여 자기가 사형수라는 말이다. 자신이 하나님께 대하여 사형수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면, 예수님은『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성경은 로마서 1장 23-31절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열거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다 해당한다는 말씀이다. 이 말을 전하는 것이 듣는 사람에게는 복음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회개의 기회를 주기때문이다. 그런데,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에게『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당신은 구원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회개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오늘날의 상황은 많은 교회가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기 위하여 복음의 말씀을 약화시키고 있는 현실이다. 교회사람들이 죄인들을 속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하나님께도 죄를 추가하...

출애굽의 의미

누가복음 16장 13절『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재물이 우상임을 말한다. 히브리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광야에 나왔을 때, 그들은 하나님이 시내산에 강림하신 것을 알았다. 그 하나님은 애굽에 열가지 재앙을 내렸으며, 백성들을 그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 그런 하나님이 시내산에 강림한 것이다. 그리고 모세가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산으로 올라가 40일 동안 있으면서, 백성들이 지켜야 할 율법 판을 받았다. 그런데 시내산 아래에 있던 백성들은 황금 송아지를 만들었다. 하나님의 임재를 알면서도 그들은 재물의 신을 만들었다.  히브리인들이 애굽에 있게 된 것도 재물이 원인이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명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도록 하셨고, 이삭을 거쳐 야곱에 족장으로 있을 때, 온 땅이 가뭄으로 인해서 식량으로 구하러 애굽으로 갔다가,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을 만나, 약속의 땅을 등지고,  애굽에 눌러 살게 되었다. 그러나 애굽의 바로는 히브리인들의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그들을 부담스럽게 여기게 되었고, 아예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애굽은 세상의 재물을 상징한다. 그런데 히브리 백성은 애굽에서 노예생활의 고통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오늘날 재물의 노예로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사람들이 과연 있겠는가? 회개의 시작은 출애굽이다. 출애굽은 재물인 우상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부르짖음의 결과였다. 오늘날 교회에 앉아있으면서도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들은 출애굽 하지 않은 여전히 노예상태에 살고 있는 것을 말해준다. 거짓된 구원의 부드러운 소리에 잠들어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회개에 대해서 말하기 위해 네가지 밭의 비유를 하셨다. 세가지 밭(길가, 돌짝, 가시덤불)은 말씀이 자라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말씀이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좋은 밭은 말씀이 생명이 되어, 자라서...

영접하는 자

요한복음 1장 12-13절『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하나님의 자녀가 아버지의 이름을 부를 수 있으며, 아버지를 영접하는 자다. 육의 몸이 아니라 영의 몸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거의 믿지 않는다. 이 같은 말씀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야만 한다. 다시 태어난 자다.  이 이야기는 창세기 12장에서 나오는 아브라함의 이야기와 같은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약속이 있는 자녀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에서 난 자, 곧 이삭으로 통하여 후대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이다. 이 생명이 부활과 거듭남이 된다. 하나님이 약속의 자녀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아브라함은 25년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채, 사라의 몸종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았다. 하나님은 13년간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지 않으셨다. 아브라함의 몸이 죽은 자같이 된 99세가 되어서 나타나신 것이다. 하나님은『내년에 약속의 자녀를 주시겠다』고 말을 했지만, 여전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웃었다. 이브라함은 완전한 믿음이 없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서, 인간적으로 볼 때 자식을 생산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까지는 자기 자신의 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99세와 100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나셔서『내년에 약속의 자녀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후에, 소돔과 고모라로 향하셨다. 하나님은『약속과 관계없는 자』들을 심판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하늘에서 유황불이 쏟아지게 하셔서 모든 도시를 태워버렸다. 그러나 소돔에서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가족이 심판...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로마서 1장 17절『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죽어야 할 죄인들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다. 그런데, 죄인이 회개할 때,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죄인이 하나가 되도록 하여, 의롭다고 인정한다는 것이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죄인의 죽음이 합하여져서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값을 치르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믿는 믿음이 복음이 된다. 죄인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의인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회개하여 거듭나지 않으면,『믿음으로 구원받는 말씀』이 적용되지 않는다. 로마서 6장 6-7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죄에 대해서 죽지 않은 자는 의로운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로마서 6장 11절에서『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하나님은『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있는 자』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셔서, 하나님 백성되도록 해 주시고, 사랑해주신다. 요한1서 4장 9절에서『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20장 31절에서『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었지만, 십자가 앞에서 예수를 버렸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아무리『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어도 하늘의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회...

옛사람은 죽어야 한다

로마서 6장 6-7절『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세례는 죄를 씻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이것이 회개다. 왜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인가? 자기 속에 탐욕이라는 악이 오염되어 있으므로,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태어나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육의 몸이 있는데, 어떻게 죽으라는 것인가? 자살이 아니라, 2000년 전에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연합되는 믿음으로 죽은 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 믿음은『내가 믿습니다』라고 말하므로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왜 예수와 함께 죽어야 할 존재인가를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할 때 비로소 하나님이 이 믿음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믿음으로 죄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된다. 회개하지 않으면 믿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는다.  회개는 어둠으로부터 빛으로 돌이키는 것이다. 자기가 영적 어둠의 상태에서 살았다는 것을 알 때, 돌이킬 수 있다. 그래서 어둠으로 부터 나오는 것이 회개다.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 어둠에서 갇혀있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사탄으로부터 나올 수 없다. 바로왕의 지배를 받았던 히브리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처럼, 우리도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을 깨달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회개의 몸부림인 것이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위하여, 자기의 아들을 죽게 하시고, 그 피값으로 사탄으로부터 회개하는 자를 이끌어내신다. 회개없는 믿음은 거짓이 된다.  우리가 이웃에게 이것을 전하려고 해도, 그들은 쉽게 이를 받아드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탄이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로 인도되었다고 해서 다 회개한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은 세상죄를 고백하고 반성하는 것이 회개의 본질이 아니라, 회개는 사탄...

두종류의 죽음

에베소서 2장 1-3절『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공중의 권세를 잡은 영은 사탄이다. 사탄을 추종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다. 노아 때는 8명을 제외하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지만, 사탄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 풍조를 따르고,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기 때문이다.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다. 사탄은 인간들에게 악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래서 죄를 짓게 만든다. 그 이유는 사탄의 종이 되게 하기 위해서다. 예수님이 사탄에 붙잡힌 바리새인들에게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사탄에게 붙잡힌 자들의 행동은 다음과 같다. 로마서 1장 29-32절에서『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악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당한 그 고통만큼, 하나님은 진노의 대상들을 ...

하나님의 군대

출애굽기 14장 13-15절『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출애굽한 백성들은 진퇴양난이었다. 앞은 홍해바다가 가로막히고, 뒤에는 애굽의 병사가 오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셨다.『너희는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이『직접 싸워 주겠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홍해바다가 갈라지고, 히브리 백성들이 홍해를 건넜을 때, 바로의 군사들은 물에 수장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들이 홍해를 건너 광야로 나갔을 때, 아말렉과 전쟁을 했다. 40년의 광야생활 속에서 단 한번의 전쟁이었다. 이 때, 모세가 산으로 올라가 기도하면서 두 팔을 들고 있으면, 여호수아가 싸움에서 승리를 하고, 모세의 팔이 내려가면 지는 그런 전쟁이었다. 이때의 전쟁은 모세가 두팔을 든 기도로 적을 무찌르는 모양이었다. 기도를 하면 이기고, 기도하지 않으면 이기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히브리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열두 정탐꾼이 가나안에 먼저 들어가서 정탐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가나안에는 아낙자손이 살고 있었다. 히브리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도 의지하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고,『들어가면 죽는다』 라고 생각하고, 통곡하면서 울었다. 아낙자손은 거인들이었으며, 철병거가 있었다. 히브리 백성들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적이었다. 가나안에 들어가려고 할 때 하나님은 백성들에게『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했다. 가나안에는 두 정탐꾼과 아이들, 광야에서 태어난 새사람들이 들어갔다. 출애굽한 백성들은 여...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택하신 자들의 믿음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14절『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이 서신은 바울의 마지막 서신이다. 택하신 자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받게 해 주신다.  빌립보교회에 대해서는『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말한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 말하고 인정하며, 격려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4-5절에서는『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택하신 자에게 성령의 능력이 임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로마서에서부터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쓰는 편지에 등장하는 것이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은 회개에 대해서 여러 번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거듭남을 주시고 택함을 입는 자가 된다. 회개하지 않으면 성령을 구해도 성령을 받을 수 없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을 받을 수 없다. 이 믿음이 거듭난 자의 믿음이다. 사람들이 기도하면서 믿음을 더하게 해 달라고 하지만,『믿음은 겨자씨만한 믿음 만 있으면 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그래서 회개하면 믿음을 주신다는 것이다. 회개는 열매가 있어야만 한다. 베드로후서 1장 1절에서『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편지하는 대상이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라는 것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로마서 1장 17절『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은 좋은 소식이지만 회개하는 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죄인에게는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인에게 반드시 심판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를 깨닫고,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때, 모든 죄악이 그치게 된다. 회개하는 자는 이것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받게 된다. 그래서 믿음은 회개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회개는 내가 하나님께 죽을 죄인임을 고백하고 십자가의 예수님과 함께 못박히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하나님의 의를 먼저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말한다면 가짜 복음이 된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교회도 보조를 맞추는 것이다. 그들은『하나님을 섬기고, 세상도 섬긴다』고 말한다. 예수님은『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지 말라』고 하는데, 이상하게 말하는 것이다. 요한1서 2장 15절에서는『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그들이 섬기는 세상은 무엇인가? 세상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기 위해서 그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대한다는 말씀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말하는 것은 그들에게 독이 될 수 있다. 노아가 120년간『회개하라』고 외친 것처럼, 그렇게 말해야만 하는데,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교회로 오지 않을 것을 염두에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전도는『하나님 심판이 임박하였음을 알리는 선포』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회개하여 돌아오라는 말씀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라고 먼저 말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죄인들은 하나님이 사랑을 준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버릴 것...

가나안에 들어가는 믿음

로마서 1장 17절『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여기서『기록된 바』는 하박국에 나오는 말씀이다. 하박국 1장 에서 하박국은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이 없었다.『하나님 말씀을 따르려고 하는데, 잘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2장에서는 하박국이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기다리고 있는 장면이다. 『어떻게 의인이 어려운 생활을 하게되고, 죄인은 형통하게 잘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그는『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답을 얻게 된다. 3장에서는 전쟁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두려워서『창자가 떨린다』고 말했다. 그런데 하박국은『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고 말했다. (하박국 3장 17-18절) 구원에 들어선 자는 세상의 상황에 따라 애통하고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을 깨닫고 애통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났던 죄로 애통하는 것이다. 죄의 근본은 이 세상에서 짓는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회개해야만 한다.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마치 해바라기와 해와의 관계와 유사하다. 해바라기는 해를 바라보아야 살 수 있지만, 해를 보지 않고 있기에 죽은 자와 같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었다는 것』을 믿는 것은 출애굽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 백성들의 장자를 살리기 위해 어린양들이 대신 죽었다. 히브리 백성들은 어린양이 자신들을 대신해서 죽었다는 것을 믿었다. 출애굽하자 말자, 홍해바다가 가로막혔다. 애굽의 군대는 뒤쫒아왔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홍해바다가 갈라졌다. 그리고 히브리 백성들은 바다를 건넜지만, 바로왕의 군대는 홍해바다에서 수장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사도행전 27장 23-25절『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바울이 유라굴라라고 하는 광풍이 부는 배에서 한 말이다. 바울은 여러 날 동안 풍랑이 계속치고, 먹지도 못하고, 구원의 여망이 없어진 사람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면서,『배의 손상 외에는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바울은 쇠사슬에 묶여, 로마로 호송되고 있었다. 바울이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것을 믿는다는 것이다.『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빛 가운데 나타나신 주님을 만났다. 주님을 안다는 것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남에 있다. 그래서 주님을 신뢰하는 자가 주님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19장 18-19절에서『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하나님이 모세에게 백성들이 산으로 올라오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백성들이 올라오면,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셨다. 이런 와중에 백성들은 시내산 아래에서 황금송아지를 만들었다. 백성들은 애굽에서 열가지 재앙과 홍해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을 경험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백성들의 눈에 하나님은 맹렬한 불같이 느껴졌으며,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을 위한 신을 만들려고 했다.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 하나님이 그들의 주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적을 경험하고, 성령의 능력을 체험해도 누가 주인인가의 문제다. 자기가 주인인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를 위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

예수의 믿음과 이름과 생명을 얻는 것

요한복음 20장 31절『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위의 말씀에서 두 가지를 말하고 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과 그 이름을 힙입어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오늘밤 나를 버리리라』라고 말씀하시자, 자신들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예수님은 그들이 자신을 부인할 것을 다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요한복음 14장 1절에서『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므로, 예수님이 하신 말씀대로 제자들이 주님을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요한복음 16장 30-32절에서처럼 말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16장 30-32절에서『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제자들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고, 이렇게 말했는데,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이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자들의 믿음과 예수님의 말씀은 서로 다른 방향이다. 결국 이 믿음은 자기의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인은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만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과 하나가 된다. 그래서 참된 믿음이 되는 것이다. 요한복음 16장 31절에 대해서, 영어성경의 niv와 kjv는 서로 다르게 번역되었다.『You believe at last! Jesus answered.』(niv)  『Jesus answered them, Do ye now believe?』(kj...

구원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1장 3-4절『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부활하게 하심이 거듭남으로 이어진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셨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하나님은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이 없는 분이시다. 그래서 회개하는자가 2000년 전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일이 가능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예수님 당시보다 훨씬 이전의 사람들은 미래에 오실 약속의 씨(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일도 가능한 것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 13절에서『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한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구원에 대해서 설명하시면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물은 옛사람의 죽음을 나타낸다. 육의 몸을 부인하고, 영의 몸을 입으라는 말씀이다. 거듭나는 것이 부활이다. 부활은 오직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였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모두 이 땅에서 부활을 경험하게 된다. 이게 거듭남이다. 이 거듭남은 예수님 이전의 에녹이나 엘리야도 마찬가지이고, 이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도 마찬가지로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1장 23-26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마르다의 오라버니가 죽었는데, 예수님은 다...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니라

로마서 1장 7절에서 사도바울이『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라고 편지를 했다.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만 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만 주어진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를 말한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라는 말은 아무에게나 아버지가 되지 않으신다.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거듭난 성도 만이 그렇게 부를 수 있다. 그 외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영적 아버지는 사탄이다. 예수님은『내 말 안에 거하지 않으면 아비가 마귀』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을 흙으로 빚으시고, 혼적인 존재로 만드셨다. 영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어야만 한다. 생명나무의 과실이 하나님 말씀이다. 그래서 말씀 안에 거하지 않으면 다 마귀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사람들이 거의 알지 못한다. 하나님이 빛을 비춰주셔서 깨닫지 못하면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은혜로 베푸신다. 사람이 살면서 나타나는 여러가지 어려움 속에서 자신의 죄악됨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회개한다면 큰 은혜가 될 것이다.  로마서 16장 20절『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하나님은 거듭난 자를 위하여 사탄을 상하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로마서와 욥기의 내용은 다 같은 이야기다. 하나님이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사탄의 공격을 허락하지만, 회개하는 자를 위하여, 사탄을 상하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어려움이 올 때, 자신을 돌아보아야만 한다. 자신이 회개하지 않고 있는 자인가 아닌가를 살펴야만 한다.  사탄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대적했다. 그는 하나님처럼 삼위일체를 흉내낸다. 그가 악령을 퍼뜨려, 모든 인간들...

청함을 받았으나 예복이 없는 자들

마태복음 22장 14절『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많은 교회에서 『청함을 입은 자』를 『부르심을 입은 자』라고 말한다. 교회를 헬라어로 에크레시아(ecclesia)라고 말하는데,『에크』는『밖으로』이고,『레시아』는『부르다』는 뜻이다. 그래서 교회는『불러낸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그런데『택함』이라는 말은 영어로 chosen인데, 구원의 기준은 택함을 입은 자다. 비록, 로마서 8장 28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에서『부르심을 입은 자』라는 표현이 있으나, 신약성경의 후반에 가면 택함을 입은 자라는 말이 주를 이룬다.  마태복음 22-25장의 말씀은 예수님이 체포되기 이틀 전에 하신 말씀이다. 22장 5절에서『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아들은 2000년 전에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제물로 오셨지만, 재림 때는 왕으로서 죄인들을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다 같은 죄인들이지만, 예수님이 죽기 전에 죄인들은 구원의 기회가 있었지만, 재림 때는 그 기회가 없는 것이다. 왕이 초대장을 보냈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나름대로 사유가 되겠지만, 왕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왕이 초대장을 보냈는데, 오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오지 않을 사람이 있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다. 왜냐하면, 그들의 육신의 눈에는 하나님 나라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전도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말해주어도 믿지 않으며, 대부분 사람들은 하늘의 혼인잔치에 초대해도 오지 않는다. 하늘의 혼인잔치에 오지 않는 이유는 모두 육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가 주인이다. 하나님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혼인잔치에 초대해도, 인간은 자기만의 왕국이 더 좋게 여겨진다. 자기들을 위한 왕국은 무엇인가? 그게 육의 몸이라는 것이다. 육의 몸은 하나님없는 사탄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