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19의 게시물 표시

남은 조각이 열 두바구니에 찼더라

요한복음6장1-13절에서『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한 말씀이다. 이 말씀은 종말에 대한 말씀과 관련이 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의도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 종말에 대해서 알 수 있다. 마태복음 8장 5-12절에는 로마의 백부장의 하인을 치유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예수님이 이스라엘에 대해서 말씀하는 것이다.『동 서로 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이스라엘은 쫒겨날 것이라는 말이다. 이방인이 먼저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은 나중에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19장 27-30절의 말씀과 일맥상통한 말씀이다.『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로마서 3장 9-21절에서『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은 물질세계로서 반드시 종말이 있다. 즉 영의 세계와는 달리 유한하게 지으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이 달성할 때 까지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계시는 영의 세계보다는 더 좋다고 할 수 없다.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바 천국은 보석으로 되어있다고 표현한다. 이 세상에 비할 수 없는 곳으로 표현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영이 갇혀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8장에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살려주셨다.누가복음 8장 54-55절에서『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죽은 아이의 영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볼 때, 영은 몸 속에 갇혀있는 것이다. 영이 나가면 육체가 죽고, 영이 들어오므로 육체가 살게됨을 알 수 있다. 영과 육체는 반대적인 입장에 있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

성경에는『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언급했다. 다윗이 좋은 사람이었는가? 사무엘하 11장 1절 ~ 12장 14절까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윗이 자기의 신하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기 위하여 하는 행동들을 볼 수 있는데, 정말 악한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게된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자기의 충실한 신하의 아내를 빼앗았는 것이다. 그 내용을 잠깐 살펴보면 『어느날 왕궁에서 밖을 내려다 보는 다윗이 신하 우리야의 아내를 보는 순간 반해버려서 그녀를 궁으로 데려오게 하고, 욕정을 불태웠는데, 문제는 우리야의 아내가 임신해 버린 것이다.  그녀의 남편 우리야는 전쟁터에 나간 장수였다. 그래서 다윗이 임신의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는 우리야를 불러 그의 아내와 잠자리를 하도록 유도했지만 우리야는 전쟁 중이라 그럴 수 없다고 하고는 신하와 함께 잠을 잤던 것이다. 다윗은 하는 수 없이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 결심을 하고, 직접 편지를 쓰서 최 일선의 전쟁터에서 싸우도록 명령을 하는 편지를 우리야에게 주고 상관 요압에게 전달하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야는 전쟁터에서 전사하게 되고,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를 왕궁으로 불러 마음껏 즐기는 이야기이다』  위의 내용을 통해서 볼때, 다윗은 한때 얼마나 악랄하고, 파렴치한 인간의 모습인가를 알 수 있다. 사무엘하11장 27절에서는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라고 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하다는 것』은『죽어 마땅한 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보내신 것이다. 나단이 다윗에게 가서 예를 들어 설명했다.  사무엘하12장1-5절에서『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그가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말라기 3장 6-12절에서 십일조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말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한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과 오늘날 십일조를 바치지 않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신명기 18장 15-22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 형제 중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우겠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 그렇게 말씀하시고,『그의 말을 들으라 듣지 않으면 벌을 내리겠다』고 하셨다.『내가 고하라고 명하지 않은 말을 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그 선지자가 하나님의 지시대로 말씀하는지를 어떻게 아느냐』라고 물으니,『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여호와의 말씀이 아니라 방자히 한 말이니 두려워 말찌니라』라고 하셨다.  선지자가 자기 스스로 방자히 말한다면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에 예레미야와 하냐나(거짓 선지자)의 말이 소개된다. 하냐나는 거짓 말을 하다가 죽었다. 오늘날에도 자기 소견대로 성경을 해석하여 말한다면 방자히 말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십일조에 대해서 많은 교회들이 자기 생각대로 말하는 것을 본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바치라고 하셨다. 십일조를 바치라고 하신 것은 율법에 근거한다. 레위기 27장 30절에『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라고 했는데, 오늘날 십일조의 근거를 이 규정에 근거하여 찾기도 하고 율법 이전에 아브라함이 전쟁 후 멜기세덱에게 바쳤다 라든가 야곱이 서원한 기원을 찾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은 것을 나름대로 생각해서『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내라고 하였다』라고 한다면 바로 방자히 말한 것이다. 구약시대 율법으로 말한 것 외에는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내라고 하신 적이 ...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다윗의 아들,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성전 짓는 일을 허락하셔서 성전을 짓게된다. 성소는 이동식이지만 성전은 일정한 곳에 건축한 건물이다. 하나님께서 성소를 주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지 않는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하고, 동시에 제사를 지내도록 하여 제사장이 대신해서 죄를 용서함을 받는데, 이와 같이 장차 짐승이 죽는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십자가 위에 죽으셔서 모든 인간들의 죄를 사하시고 구속하여 내 백성이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그 이유라고 설명한 바가 있다. 그 약속 대로 예수님이 오셨다.  구약성경에는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이 예언되었다. 이사야 7장 14절에서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제사가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을 예표하지만 많은 선지자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실 것을 예언했으며, 실제 오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는데, 마태복음에 의하면 그 아들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했으며,『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는 뜻이다. 성전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거할 처소를 말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중에 거한다라는 말은 임마누엘과 같은 뜻이다. 임마누엘 하나님이라는 말은 성전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성전이라는 말이다.  성전에 예수님이 올라가 보시니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예수님이 그들을 쫒아내시고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라고 하셨다. 유대인들이 질문한다.『네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표적을 보여주겠느냐』라고 질문을 하니 예수님이『성전을 헐라,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라고 하셨다. 성경은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하신 말씀이라고 하셨다. 제자들도 의미를 몰랐다. 이 의미는 이제 이 성전은 필요없어졌으니 참 성전을 주겠노라 라는 뜻이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거듭나지 못한 자다

누가복음 16장 19-25절에서『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빨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사야서 42장 7절은 메시야가 올 때, 메시야가 세상에서 할 일을 설명하고 있다. 『내(메사야)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소경은 모든 인간을 말하며, 감옥에 갇힌 자, 흑암에 갇힌 자도 마찬가지로 세상에 있는 인간을 말한다. 감옥이나 흑암은 바로 세상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빛이 없는 세상이 흑암이다. 하나님을 떠난 것이 다 감옥에 갇힌 것이요, 흑암에 있는 것을 말한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없는 악한 상태에 있다. 이 세상의 임금이 사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세상의 것을 바라고 원하게 되면, 결국 사탄에게 구하는 것이다. 사탄에게 구하는 자는 하나님과 관계없는 자가 되며, 하나님에 대해서 죄인이 된다. 『하나님의 아들된 자는 세상과 벗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야고보서 4장 4절에서 말씀하고 있다. 『간음하는 여자들(죄인 상징)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세상의 것은 바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며, 하나님에 대해서 악인 것이다. 세상을 벗하는 자는 옛사람이...

사탄이 왜 이 세상의 임금인가?

요한복음 1장 1-3절에서『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예수 그리스도는 창세 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바로 하나님이시요 만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시고,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주이신 것에 대해서 대부분의 교회사람들이 이견을 달지않는다. 그런데 왜 사탄이 이 세상의 임금인가?  예수님이 요한복음 12장 31절에서 사탄이 이 세상의 임금이라고 말하고 있으며『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쫒겨나리라』요한복음 14장 30절에서도 말하고 있다.『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의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요한복음 18장 36절에 보면『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예수님이 창조주이신데, 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다』고 하신걸까? 결국 사탄의 나라다.  요한1서 2장 15-17절에 보면『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육신의 정목,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는 말씀이다. 즉 육신이 좋으면, 하나님이 기쁘신 것이 아니라 육신을 사랑하는 내가 기쁜 것이다. 이 세상이 주는 것은 단 한가지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요한1서 5장 19절에서『또 아는 것은 ...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라

누가복음12장33-34절에서『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이런 제목으로, 어떤 교회에서는 헌금을 많이 하는 것이 좋은 것처럼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씀은『헌금을 많이 하라』는 의미와는 다르다. 구약에서『하나님께 무엇인가 바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멸하여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짐승이 불에 타 죽는 것을 말한다. 로마서 12장 1절에서『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몸을 드리는 것은 몸이 하나님 앞에서 멸하여지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드려지는 것은 구별되는 것이다. 구별은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구약시대는 하나님께 드려진 모든 것 중 태워지지 않은 것은『연보』라는 창고에 보관하여 구별하였다.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태우는 것, 즉 죽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의 그림자인 것이다. 십일조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뜻이 들어있다. 하나님께 드려진 것 중 불에 태워지지 않은 것들은 다시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제사장 등 레위지파 사람들이나, 고아나 과부 등을 위하여 쓰이게 된 것이다.『바친다』라는 말은 구약의 마지막에 끝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것을 이루셨다. 헌금을 하나님께 바치는 개념은 끝난 것이다.  『하나님 앞에 헌금을 드린다』는 말은 사용해서는 안된다. 구약시대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는 성전에 가서 드리고 불에 태웠는데,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이 모든 것을 이루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해결하신 것을 믿는다면,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말이 맞지않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나를 바치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아가는 것이다. 즉 내 속에 있는...

내가 검을 주러 왔노라

마태복음10장34-39절에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예수님이 평화의 왕이라고 말하는데,『화평을 주러온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이사야서 9장 6절에서 보면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평강의 왕이라 했다. 그런데 검을 주러 오셨다는 것이다. 대부분 교회에서는 예를 들어 가정에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섞여 있어서 불화가 생긴다는 말로 해석하고 말한다.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닐지라도 100% 그런 가정이 생기는 것은 아니므로 완전한 해석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믿는다고 하는 교회 내에서도 불화가 생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율법 아래에서 죄인들을 속량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예수님이 검을 주러 왔다』는 말씀은『죄인을 구하러 오신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평강의 왕이라고 하셨는데, 세상에서 평화와 평강이 아니라,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평화를 중재하는 평화의 왕으로 오신 것이다. 즉 하나님과 원수가 된 인간 사이에서 평화를 주러 오신 것이다. 원수된 관계를 무너뜨리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을 위해서 오심으로 평화의 왕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이 세상에는 불화가 된다.  예수님이 검을 주시러 왔다는 말씀을 이스...

급히 사화하라

마태복음 5장 25-26절에서『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원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송사하는 자는 사탄이다. 사탄이 항상 참소한다. 무엇을 가지고 참소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법을 통해서 참소한다. 하나님의 법은 율법을 말한다. 즉 율법(모세의 법)을 근거로 고소한다. 고소하는 것은 반드시 법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 『사화하라』는 말은『고소가 안되게 하라』는 말이다. 누가복음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는 말은『법에서 해방되다』는 말이다. 사도행전 19장 12절에서『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니라』에서『떠나더라』는 말은『해방되었다』는 뜻이다.  히브리서 2장 15절에서도『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 평생 매여 종 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라』여기에서도『놓아준다』는 말은『화해한다』는 말이다. 고소할 수 없는 상태가 되게 하라는 말이다. 즉 율법을 가지고 고소를 당하게 되는데, 고소를 당하지 않으려면 율법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급히 사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갈라디아서 4장 4-5절에서『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즉 율법 아래에 나시고 율법에 의해서 죽으심을 당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율법으로 부터 해방시켜 주신 것이다. 부활하시는 것은 율법과 상관없이 율법 위에 부활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는 것을 믿는 것이다.  로마서6장 3-6절에서『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순종

로마서 6장 6절『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다. 옛사람은 죄의 몸, 죄성(원죄)을 말한다. 이것이 죽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죄성이 죽는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육의 눈으로 볼 때 죄성이 죽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자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이다.『가나안에 들어가면 죽는다』라고 말한 열정탐꾼과 그 말을 믿은 사람들은 육의 눈으로 볼 때 그렇게 믿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열정탐꾼의 말을 믿은 사람들은 다 광야에서 죽었다.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 만『들어가면 땅을 차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민수기 14장 11절에서『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하나님은 분노하셨다. 그 날 하나님이 열정탐꾼을 멸하셨다. 오늘날도 교회 안에서『옛사람(죄성)은 절대 죽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다 이와 같이 될 것이다. 죽지 않는 자들은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처럼,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지 못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의미가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들어가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아무리 홍해바다를 건넌 믿음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는 것처럼, 가나안에 들어가지 않은 히브리 백성들은 다 광야에서 죽었다. 믿음이 순종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이다. 순종은 내가 무엇인가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행하라는 것을 행하는 것이 순종이다. 주님은『옛사람이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로마서 6장 7절에서 처럼, 오직 죽은 자만 들어간다. 열정탐꾼과 그 말을 믿은 사람들는 애굽에...

하나님 나라를 회복해야 하는 사명

사도행전 18장 21절『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사도바울이 수리아(시리아)에서 에베소로 왔을 때의 이야기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더 체류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때 작별하면서 말하는 장면이다.『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라고 말한 문장 앞에 빠진 내용이 있다.『I must by all means keep this feast that cometh in Jerusalem』(kjv) 『나는 예루살렘에서 다가오는 명절을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라는 문장이 niv와 우리 말 성경에는 빠져 있다.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회당에서 이렇게 말을 했는가?  사도바울은 여행을 할 때, 태양력이나 달력의 날짜를 생각해서 움직인 것이 아니라, 절기를 통해서 움직였다. 사도행전 20장의 이야기는 18장의 이야기보다 3년이 지난 이야기다. 사도행전 20장 6절에서『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20장 16절에서는『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배 타고 가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그래서 3년 전에 에베소에서 유대인들에게 말한 『나는 예루살렘에서 다가오는 명절을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는 그 명절은 어떤 날인가? 성경에는 말하고 있지 않으나, 초막절은 큰 명절이라고 말했으므로, 초막절로 추정된다. 그런데 로만 캐톨릭은 왜 이 문장을 삭제시켰는가? 로마제국의 중심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모든 것이 로마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바울의 신앙 중심은 예루살렘이었다. 이 말은 오늘날도 기독교가 두 종류의 기독교가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의 신앙이 어디에 중심을 두고 있는가다. 예수의 십자가에 두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에서 잘되는 기복신앙에 두고 있는가?  다니엘시대에 신상의 예언이 있었는데, 다니엘서 2장 31-35절에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금신상의 ...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로마서 4장 2-3절『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욥기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을 받고 믿었다. 그래서『의롭다』라고 여기신 것이다. 그 약속을 하나님이 이루신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믿음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이 믿음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믿음은 내가 믿기로 한 것이 아니라, 거듭난 자의 믿음을 말한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믿음이 되는 것이다. 회개와 거듭남과 믿음은 연결되어 있다. 회개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된 자만 예수님의 부활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세례가 바로 이것을 의미하는 의식이다. 이 일이 일어났는가 아닌가가 구원의 관건이다.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되는 것이다. 옛사람을 수선하려고 하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 사도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의 사울이라는 모습이 바로 이런 상태다. 그는 율법에는 하자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자기의 의』라고 한다. 은혜는『율법을 지킬 수 없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만 은혜가 역사하는 것이다.  욥은 악에서 떠난 자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이『예배를 드리고 성실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회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욥기를 통해서 말해주신다. 회개하지 않으면 거듭나지 않은 것이다.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의 믿음이 아니라, 『자기의 의』를 쌓는 믿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욥기의 절망없이는, 시편의 은혜가 없다는 것을 성경은 순서를 통해서도 보여준다.『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라고 말하는 야고보서의 시작도 욥처럼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는 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야고보서의 5장에서 욥의 인내를 말한...

구원에 미치지 못하는 믿음

창세기 17장 16-18절『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아브라함이 75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믿음으로 나아갔는데, 99세의 상황은 믿음이 없는 것 같이 보인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시는 것은『자기가 믿는 믿음』이라는 것이 상황을 통해서 변한다는 것을 말해준다.『자기가 믿는 믿음』과『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은 서로 다른 믿음이다.『자기가 믿는 믿음』은 부모로부터 받은 육이 반응하는 믿음이지만『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은 다시 태어난 거듭난 자의 믿음이다. 부모로 받은 육이 반응하는 것은 혈연이 작동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찾아왔다. 그런데 예수님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않는 자는 나와 상관없다』고 말하자,『이 말은 정말 어렵도다』라고 말하면서 대부분 예수님을 떠나갔다. 구원은 육의 혈연관계가 아니라, 예수님과 혈연관계를 가져야만 한다. 예수님과 혈연관계를 가지지 않으면 아무도 구원받지 못한다. 그의 피를 마시는 자가 혈연관계를 갖는다. 그래서 그의 피를 마시는 자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행적을 그대로 따르는 자가 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음, 부활, 승천이다. 이게 피의 새언약이라고 한다. 그런데 부활과 승천은 원하는데,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연합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기는 하지만, 함께 죽지는 않는 것이다. 자기의 주인됨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열두 제자들이 그러했으며, 모든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예수를 떠나갔다. 구원은 오직 하나 이 세상에서 십자가와 연합되는 삶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대해서 죽을 죄인이기 때문이다. ...

나는 누구의 죄를 사해 주었나

요한복음 20장 19-23절에서『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으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찌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 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한 방에 숨어서 있었는데, 제자들이 모인 곳에 예수님이 문도 열리지 않았는데, 갑자기 그 가운데『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라고 말하면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예수님이 숨을 내쉬며『성령을 받으라』라고 하셨다. 또『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여 주면 사하여 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 죄가 그대로 있으리라』라고 하신 것이다. 주기도문에서 나오는『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달라』이 말은 하나님이 나의 죄를 사하여 준 것이 내 것이 된 것 같이, 은혜가 되고 생명이 되어서, 다른 형제들의 죄를 사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3장 34절에서『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랑하라』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자리에 까지 내어주었고,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사랑을 주셨다.『그것과 같은 사랑을 하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18장 17절에서『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라고 하셨다.  아버지께서『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죄를 사하여 주시고 사망가운데 건져주시기 위해서』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시는 것도 같은 이유와 목적을 가...

무엇이던지 원하는 것을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복음 15장 1-4절에서『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게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후에,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구속사역이 전하여져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게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예수 그리스도에게 잘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많이 맺게 된다』는 말이다.『열매를 많이 맺으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보실 것이니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 와중에『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라고 하셨다. 이 말씀을 근거로『하나님께서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라고 생각해서 많은 것을 기도 제목에 넣어서 기도한다.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불의한 재판과 과부의 비유를 들어서 하나님께서 주실 때까지 지속적으로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탄은 이 세상의 임금이다. 그 동안 기도한 것이 사탄에게 구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요한1서 2장 16절에서『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라고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있는 것을 구하는 것은 사탄에게 구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마태복음 6장 25절에서『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니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라고 하셨다. 누가복음 12장 29절에는『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마태복음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회개하는 자가 세상을 이기는 자

로마서 4장 25 - 5장4절『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으면 은혜에 들어가며, 그 은혜로 인하여 즐거워하게 된다. 그 믿음은 거듭난 자의 믿음이다. 욥에 대해서 사탄은 하나님께 송사를 한다. 욥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이 많은 것을 베풀어 주셨으므로 믿는 것이지, 다 거두어 가버리면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실 것이라고 송사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탄에게 목숨을 제외하고, 욥을 치도록 허락하셨다. 사탄은 욥의 성공과 가정의 행복과 건강을 거두어 가버렸다. 친구들과도 관계가 끊어져 버렸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런데 친구들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기의 의가 드러나는 순간,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하나님을 불의하신 분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원망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욥에게 나타나셔서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욥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믿음으로 의를 얻는 것은 회개의 결과다. 그래서 화목의 역사를 일으킨다.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 구원이 된다. 욥은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얻은 것이 아니라 자기 의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시고 그는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얻게된다. 자기의 의는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다. 자기의 의는 자기가 중심이 되므로, 하나님조차 불의한 분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욥이 그러했고, 탕자의 비유에서 큰 아들이 그러했으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스도의 할례

골로새서 2장 8-12절의 말씀에서『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여기에서 철학은 세상학문인 철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율법에 대한 자기들 사상을 말한다.『사도바울이 활동하던 당시 유대인들에게 바리새파, 사두개파, 엣세네파 3개의 파가 있었는데, 그들이 주장하는 것들이다. 사도바울은『철학과 헛된 속임수를 사람의 유전이요 세상의 초등학문이라』고 말했다. 사람의 유전이라 함은 유대인들 안에서 장로들의 유전을 말한다. 세상 초등학문이라 함은『율법에 대해서 초등학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사도바울은『이런 것들에 의해서 노략당할까 주의하라』 라는 말씀이다. 이것들은『그리스도를 좇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성경에는 할례가 3가지가 있다. 구약에서 남자의 생식기 표피를 벗기는 육체적인 할례, 그리고 두번째의 할례는 신명기에서 모세가, 로마서에서 사도바울이 말하는 마음의 할례라는 것이 있다. 세번째 할례가 바로 골로새서의 그리스도의 할례이다. 할례는 다 같은 맥락에서  연결이 되어있다. 그것이 점진적으로 드러나서 마음의 할례가 되고, 그리스도의 할례가 되는 것이다. 골로새서에서 말하는 할례는『손으로 하지 않는 할례,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다』라고 했다. 신명기 10장 16절에서『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마음의 할례를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바울도 로마서 2장 29절에서 마음...

나는 그리스도의 향기인가?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린도후서 2장14-17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세상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사는 자를 말한다. 그냥 말로만 믿는 것이 아니고, 예수와 더불어 십자가에서 옛사람이 죽는 자 만이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다. 하나님께서 이런 자들에게 성령을 주셨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로마서 8장 2절)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에베소서 1장 13절)『인을 친다』라는 말은『도장을 찍는다』는 뜻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성령이 함께 하시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1장 22절에서도『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린도후서 5장 5절에서『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라고 했다.  하나님께서『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성령을 주셨는데, 그 성령이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리스도의 향기는 무엇인가?『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에베소서 5장 8-9절) 그리스...

거기서 슬피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태복음25장14-18절에서『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성경은 비유로 말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비유가 아니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별히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창세로 부터 감추어진 비밀이라 하고, 비유를 베풀어서 알려주신다고 마태복음 13장에서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비유는 성경에서 말하는 표면적인 내용이 아니라 그 말씀 속에서 내면에 숨겨진 내용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사도바울이 유대인에 대해서 말할 때 표면적 유대인이 아니라 이면적 유대인이라고 말한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유대인은 바로 이면적 유대인이라는 말씀이다.  마태복음 25장 30절에서『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라고 말씀하신 그 대상은 누구인가? 이와 관련 성경 구절은 여러군데 있다. 예수님이 백부장 하인의 병을 고쳐주는 내용이 나온다. 예수님이 가지 않더라도 병이 낳았다고 말만하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마태복음 8장 11-12절에서『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결국 마태복음 25장 30절에서 말하는 것도 바로 이스라엘을 두고 말한다.  누가복음 13장 28-30절에서도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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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물로 포도주되게 하셨나

요한복음 2장 1-12절에서『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모자란다는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니다.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 거기 여러 날 계시지 아니하시니라』 많은 교회사람들은 예수님의 첫 표적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신 것으로 생각을 하기도 한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믿음, 그리고 하인들의 순종 등등 이런 이야기를 이야기한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은 예수님의 처음 표적이었다. 성경에는 혼인잔치에 대해서 세군데 나온다. 가나의 혼인잔치, 마태복음 22장에서 나오는 어떤 임금이 자기 아들을 위해 베푼 혼인잔치, 요한계시록에서 나오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이다. 세 혼인잔치는 모두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나의 혼인잔치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를 설명하기 위한 모형이다. 혼인잔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상태가 되어야 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다. 혼인잔치가 끝나기 전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말은 혼인잔치가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혼인잔치는 온전한 혼인잔치가 아니라는 말이다. 완전...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낳을 때가 백세라

창세기 21장 1-2절, 5-6절『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아브라함이 100세때 새생명인 이삭을 낳았다. 사라가 임신하게 된 것은 하나님이 사라를 돌보셨고, 약속의 말씀대로 행하셨기 때문이다. 새생명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행하셔야만 한다. 인간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달려있다. 창세기 17장 17-18절에서는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전쟁을 이기고, 멜기세덱이라는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존재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친척을 떠나지 못하고 롯을 데리고 나온다. 회개하기 전에는 순종하지 않는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좋아할만한 것만 골라서 선택적으로 순종하는 존재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은 구원의 기회가 주어지는 순간이다. 그래서 회개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도 아브라함과 사라가 웃었다. 인간은 에덴동산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 말씀 앞에서 우리의 어떤 모습을 발견하지 않으면 구원의 기회를 잡을 수 없다. 그리고 다행히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고도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구원은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요한복음 1장 12-13절『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자다. 예수님이 주인이 되는 자가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 아무나 예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만 부를 수 있다. 거듭나지도 않으면서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너는 누구냐? 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수와 관계가 있는 사람은 예수를 믿는 자가 아니라 예수와 함께 죽는 자다. 예수와 함께 죽는 자는 십자가에서 당한 예수님의 고통이 회개하는 자가 느끼는 고통과 같이 되는 것이다.  예수와 상관이 있는 자는 혈통과 육이 아니라 영의 몸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예수와 상관이 없다. 그래서 영의 몸을 가진 자는 성령을 따라 산다. 성령이 인도하시는 것이다. 육의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율법에 의해 적용되지만,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성령의 법이 적용된다. 율법의 적용을 받는 사람은 율법이라는 그물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성령의 적용을 받는 사람은 자유함을 입는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에서 율법에 갇혀있는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한다. 그들은 회개했다고 생각하지만, 예수와 함께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거듭났다고 믿는다. 거짓된 복음에서 벗어나야만 구원받는다. 거짓된 복음은 회개하지 않으면서, 예수믿으면 구원받는다고 속이는 것이다. 회개는 하나님께 진노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자가 십자가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간 예수를 생각하면서 돌이키는 것이다. 오늘날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핍박을 받는다. 그 핍박의 불시험 속에서 통과하는 자가 예수의 가족인 것이다. 불시험 속에서 지푸라기들은 다 불에 타버린다. 가짜...

한 아기가 태어났는데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

한 아기가 태어났는데,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 히브리 백성들이 애굽으로 들어갔을 때는 요셉이 총리가 되어 애굽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입었지만, 출애굽할 때는 애굽이 그들을 죽이려 했다. 오늘날 세상에서 태어나서 육은 세상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입었지만, 속사람이 세상으로부터 나오려고 하면, 세상이 그를 죽이려 할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 백성들이 애굽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홍해바다를 건넌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에 대해서 죽은 것이다. 세상에 대해서 미련이 있는 자는 세상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출애굽해서 광야로 들어간 자가 세상을 사랑했던 모든 것에 대해서 회개하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여전히 세상을 사랑한다면 속사람은 여전히 애굽에 머무르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오늘날 회개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십자가의 그리스도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레위기는 광야 생활 첫해에 일어난 일을 기록한 것이다. 유월절을 지나서 오순절에 하나님으로부터 시내산에서 언약의 두 돌판인 율법 판을 받아서 내려왔다. 그리고 레위기 23장 23-25절에서 히브리 백성들은 7월 첫째 날을 새해의 첫날이라고 말한다. 유월절은 종교력으로 첫해이지만, 7월을 새해로 여기는 것을 민력이라고 한다. 나팔절부터 7월 15일의 초막절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야 지킬 수 있었던 절기들이다. 이 절기들은 추수를 마치고 지키는 절기다. 나팔을 부는 것이 추수가 끝났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방인들에게 예루살렘에서 부터 복음이 전파되어서, 교회사 역사가 주님 보시기에는 농사가 된다. 그래서 이방인들 가운데 구원받을 수 있는 수가 차므로, 나팔절에 추수가 끝나는 것이다. 히브리 백성들이 시내산 아래 있을 때, 시내산에 불이 타서 온 하늘이 붉어졌다. 모세는 불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강림하셨다. 지진이 나고 나팔소리가 들렸으며, 그 곳에는 연기가 가득했다고 한다. 백성들은 너무 두려웠다. 그런데 나팔...

그런즉 깨어 있으라

마태복음 25장 13절에서『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성경에『깨어있으라』는 말이 여러 군데 나온다. 열처녀의 비유에서 『깨어있으라』고 하였으며,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러 가셨을 때도 제자들에게『너희가 잠시라도 깨어있어서 나와 함께 할 수 없었느냐』 라고 책망하셨다. 문자적으로 이해하면『잠을 자지 말고 깨어있으라』는 말이다. 그러나 『깨어있으라』는 말은 이면적인 의미가 중요한 것이다.  시편 78편 2절에서『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며 예로 부터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내려 하니』라고 했다. 마태복음 13장에서도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씨뿌리는 비유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는『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제자들에게는 허락되었다』는 말이다.『창세로 부터 감추인 비밀이 씨뿌리는 비유에 감추어져 있다』 슬기로운 다섯처녀나 미련한 다섯처녀 모두 자고 있었지만, 슬기로운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고 있었다. 미련한 다섯처녀는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깨닫지 못한 것을 말하고 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성령님이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다. 성령이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미련한 다섯처녀는 성령이 없으므로 깨닫지 못한다. 즉 율법에 대해서 잘 알지못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언제 오시는지 알고있다 해도, 그것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는가?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나를 잘 아는 상황으로 되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인정하는 상태로 되어 있는 것이 깨어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성경 지식을 많이 알고있더라도, 예수님이 나를 모른다면 깨어있지 못한 상황인 것이다. 예수님이 나를 잘 알고 있는 상황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믿음이 필요하다. 로마서 7장 4절에서『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