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23의 게시물 표시

믿음에 대해서

믿음에 대해서 로마서 14장 1절『믿음(테 피스테이)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프로스람바네스데)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메 에이스 디아크리세이스 디알로기스몬)』테 피스테아는 그 믿음이다. 그 믿음은 종교화된 율법주의적인 기독교인들을 의미한다. 당시 로마교회는 율법주의적 유대인 기독교인과 헬라인 기독교인이 서로 대립되고 있었다. 유대인 기독교인들은 믿음이 강하게 보이지만 사실상 믿음이 연약한 자라는 것이다.  프로스람바네스데(기본형은 프로스람바노)는 프로스(~을 향해)와 람바노(받아드리다)의 합성어이다. 프로스람바노는 중간태로 사용되었는데, 너희들 자신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받아드리라는 것이다. 그들이 받아드려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하는 것이다. 디아크리세이스는 디아(~을 통하여)와 크리시스(판단)의 합성어로, 무엇인가를 통하여 추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디아크리세이스 디아로기스몬은 무엇인가를 통한 추정들의 무언가를 통한 판단들이다. 메 에이스는 을 향해 가지 말하는 부정형이다. 즉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교리나 생각을 통해서 그들을 판단하지 말고 우리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그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14장 2절『어떤 사람(호스)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파게인 판타) 믿음(피스튜에이)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호 아스데논)는 채소만 먹느니라(에스다에이)』 헬라어 성경을 보면, 호스 멘 피스튜에이 파게인 판타 호 데 이스데논 라카나 에스다에이 이다. 이를 번역하면,『그런데, 그 사람은 참으로 모든 것을 먹기 위해 믿는다. 그런데, 연약한 자는 채소들을 먹는다』라는 것이다. 호스는 그리스도의 그 믿음을 가진 자이다. 파게인은 먹기 위해 라는 말로 아오리스트 시제를 사용했다. 율법적으로 막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생각없이 먹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먹으라고 하면 생각하지 않고 먹는 믿음이 있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는 것이...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로마서 13장 9-10절『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호 로고스) 가운데(엔 호)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아가페로 이웃을 사랑한다면 모세 율법에 나오는 모든 계명을 다 지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율법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죽음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죽음이 곧 아가페이며,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되는 자가 아가페의 빚을 지는 자가 된다. 호 로고스는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번역하면 너는 그 호 로고스 안에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할 것이다. 죽었던 영을 살려야 한다는 호 로고스의 사랑을 갖게 되면 이와 같은 마음이 실제화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을 다 이룬 자가 되는 것이다.  13장 11절『또한 너희가 이 시기(토 카이론)를 알거니와(에이도테스)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헤 소테리아)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헤 소테리아는 그 구원이다. 죽어사 가는 천국이 아니라 이 땅에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호 로고스의 아가페 사랑을 가지고 죽었던 영들을 살릴 때 이미 성도의 심령에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토 카이론은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을 의미한다. 에이도테스는 현재완료 시제이다. 성도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그 시기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령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13장 12절『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타 호플라 투 포토스)을 입자』그리스도인들은 이미 빛이 된 자들이다. 타 호플라 투 포토스는 빛의 갑옷이라고 번역했는데, 사실상 말씀이신 그리스도(호 로고스)를 의미한다. 성도가 말쓰마신 그리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로마서 13장 1절『각 사람(파산 푸쉬케)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휘포 데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테타그메니아) 바라』 푸쉬케는 혼이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자신들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가 된다. 휘포 데우는 하나님에 의해서 라는 의미다. 테타그메니아는 기본형이 타쏘로서 질서있게 정해진 것을 의미한다.  13장 2절『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바울은 하나님이 정하신 지도자의 권세에 대해서 하나님의 명령에 거역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13장 3절『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토 아가토 에르곤)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토 카코)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토 아가토 에르곤은 남을 이롭게 하는 일이다. 토 카코는 가치없는 일을 하는 것이다. 세상 모든 통치자들은 자신의 권세를 가지고 무엇인가 가치있는 일을 행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선하고 가치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하여 선하고 가치있는 일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이 될 것이다.  13장 4절『그는 하나님(데우)의 사역자(디아코노스)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데우 디아코노스(디아코니아:섬기다)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사람들을 섬기는 자를 의미한다. 데우에 관사가 없으면 하나님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신의 개념이다. 세상 통치자들도 신을 대신해서 사람들을 선한 일을 하도록 섬기는 자들임을 말한다. 그러므로 만일 악한 일을 한다면 두려움의 대상이 될 것이다. 신을 대신해서 사람들을 섬기므로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진...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로마서 12장 11절『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토 프뉴마티 제온테스) 주(토 퀴리오)를 섬기라(듈류온테스)』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끌어 주는 일을 게을리 말고 부지런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토 프뉴마티 제온테스는 성령에게 열심을 내어야 하고 라는 의미다. 제온테스, 듈류온테스는 분사 현재시제, 능동태이다. 성령에게 열심을 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노릇하는 것을 꾸준히 해야 한다는 말이다.  12장 12절『소망 중에 즐거워하며(데 엘티니 카이론테스) 환난 중에 참으며(테 들맆세이 휘모메논테스) 기도에 항상 힘쓰며(테 프로슈케 프로스카르테룬테스)』데 엘티니 카이론테스는 그 소망에 즐거워하라는 의미다. 그 소망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소망이다. 성령에게 열심을 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노릇하는 것을 꾸준히 하면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며 그것으로 즐거워하게 된다. 테 들맆세이 휘모메논테스는 심령 중의 하나님 보좌에 나아가 인내하며 머무는 것이다. 프로스카르테룬테스는 프로스(~을 행하여)와 카르테레오(강하게 되다)의 합성어로 프로슈케의 기도로 하나님을 강하게 붙들라는 것이다. 이 세가지가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세가지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 심령 속의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고, 프로슈케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붙잡는 것이다.  12장 13-16절『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타 휩셀라) 마음을 두지 말고(메 프로눈테스) 도리어 낮은 데(토이스 타페노이스)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메 기네스데 프로니모이 파르 헤아우토이스)』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이 서로 형제들을 보살피고 사랑하라는 것이다. 타 휩셀라는 그 높은 것들을 아라는 의미다. 메 프로눈테스는 생각하지 ...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로마서 12장 1절『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디아 톤 오이크티르몬)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파라스테사이)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톤 로기켄 라트레이아 휘몬)』성도가 몸을 산 제물로 드려야 할 이유는 지혜와 지식이 깊으신 예수 그리스도께 몸을 드려서 호 로고스의 책사가 되기 위함이다. 디아 톤 오이크티르몬은 그 자비들을 통하여 라는 의미다. 그 자비들을 통한다는 말은 11장 36절에서 말하는 에크 아우투(그로부터), 디 아우투(그를 통하여), 에이스 아우투(그 분 속으로)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그리스부터, 예수 그리스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속으로 이다. 이 세가지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긴 예수 그리스도의 책사가 되는 은혜가 주어지는 것이다.  성도가 몸을 산 제물로 드리기 위해서는 제사장이 된다.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베드로는 표현했다. 파라스테사이는 파라(~옆에)와 스테사이(서 있다)의 합성어다. 즉 옆에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즉 파라스테사이는 옆에 세우기 위하여 라는 부정사가 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산 제물이 되는 것은 동행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톤 로기켄 라트레이아 휘몬은 너희의 그 말씀의 섬김이 된다는 의미다. 즉 지혜와 지식이 깊고 풍성하신 우리 안에 말씀으로 존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제사장직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12장 2절『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쉬스데마케제스데)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아나키노세이) 변화를 받아(메타모르푸스데)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도키마조) 하라』 쉬스데마케제스데는 쉰(함께)와 스케아(모습)의 합성어이다. 같은 모습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과 같은 모습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아나키노세이는 아나(위에서)와 키노세이(새롭게 됨)의 합성어로 위(하늘)에서 새롭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로마서 11장 33절『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소피아스 카이 그노시아스 데우)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불순종하는 인간을 순종하는 자녀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인간으로는 도저히 따라 갈 수 없는 것이다. 소피아스 카이 그노시아스 데우에서 데우 앞에 관사가 없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관사가 있으면 성부 하나님이시다. 성령받고 예수를 주로 영접한 사람들 안에 있는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지혜와 지식이 깊고 풍성하신 하나님이시다.  11장 34절『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에그노) 누가 그의 모사(쉼블로스)가 되었느냐(에게네토)』 에그노(기본형;기노스코)는 아오리스트 시제이다. 알다라는 히브리어 야다와 같은 의미다. 쉽블로스는 쉰(함께)과 블레(결단)의 합성어이다. 모사는 마치 책사(조언자)와 같은 그런 의미를 갖는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자는 그의 지혜와 지식이 나타나서 책사와 같은 그런 자가 되는 것이다. 에게네토는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성령세례를 받는 순간 하나님의 책사가 되는 것이다. 누가 성령을 받고 전지전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붙들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받는 책사와 같은 자가 되겠는가 라는 말이다.  11장 35절『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프로에도켄) 갚으심을 받겠느냐』책사와 같은 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삶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다. 프로에도켄은 프로(먼저)에도켄(드리다)의 합성어이다. 먼저 성도가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할 때, 하나님이 그를 책사로 쓰신다는 말이다.  11장 36절『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헬라어 성경을 보면『호티(왜냐하면) 에크(~로 부터) 아우투(그로) 카이(그리고)  디(~을 통하여) 아우투(그를) 카이(그리고) 에이스(속으로) 아우톤(그분) 타(그) 판타(모든 것들이) 아우토(그에게)...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로마서 11장 19-21절『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테 아피스티아)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테 피스테이)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율법주의 유대인들의 꺽인 자리에 헬라인 기독교인들이 접붙임을 통해서 세운 것은 그들이 소유한 믿음 때문이다. 그들이 테 아피스티아(그 믿지 않음)와 테 피스테이(그 믿음)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그 믿음은 유대인들에게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미하고, 헬라인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인 것이다. 엄밀히 아브라함의 믿음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은 동일하다.  11장 22절『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크레스토테나)과 준엄하심(아포토미안)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크레스토테나는 기본형이 크리스토테로서 기뻐한다는 의미다. 아포토미안(기본형은 아포토미아)은 끝이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자들은 기뻐하지만 믿음이 없는 자들은 날카롭게 대하신다.  11장 23-24절『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뒤나미스)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카타푸신)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만일 헬라인들이 본성을 따라 살던 돌감람나무에서 잘라냄을 당하고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는다면, 원래 좋은 감람나무의 가지였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본성을 따라 자신이 속했던 감람나무에 접붙임 받는 것이 얼마나 쉽겠는가 하는 것이다. 카타푸신은 성장을 의미한다. 돌감람나무는 성장과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좋지 않은 열매를 맺는다. 이것은 믿음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로마서 11장 11절『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메 엪타이산 히나 페소신) 그럴 수 없느니라(메게노이토) 그들이 넘어짐으로(파랖토마티) 구원(헤 소테리아)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메 엪타이산 히나 페소신은 그들이 넘어지기 위하여 장애물에 걸린 것이 아니다 라는 의미다. 엪타이산은 장애물에 걸리다 라는 의미로, 아오리스트 시제를 사용했다. 이스라엘이 율법으로 구원에 이르려다 뜻하지 않게 장애물에 걸린 것은 맞지만 그것으로 인해 넘어진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메게노이토는 소원법이다. 이스라엘이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강한 소원이 담겨져 있다. 바울의 소망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이 넘어진 장애물이 오히려 이방인에게는 구원을 가져왔다. 그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구원이 이스라엘을 시기나게 만들어서 그들로 하여금 잃어버린 구원을 다시 찾을 기회를 될 것이라고 말한다.  파랖토마티는 옆으로 미끌어지다 라는 의미다. 이스라엘이 실수로 미끌어졌다는 의미다. 헤 소테리아는 그 구원인데, 이방인들이 은혜로 구원받는 것을 의미한다. 은혜로 구원받는 이방인이 이스라엘을 시기나게 만들고 그 결과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다는 말이다.  11장 12절『그들의 넘어짐(토 파랍토마)이 세상의 풍성함(플루토스)이 되며 그들이 실패(토 헵테타이)가 이방인의 풍성함(플루토스)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바울은 이스라엘이 율법을 따르는 것을 토 파랍토마(그 미끌어짐)와 토 헵테타이(그 변질)로 보았다. 그런데 이러한 이스라엘의 실수에서 나온 신앙의 변질이 이방인에게는 부요함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방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받지 않았다. 바울이 자신이 전도한 교회에 유대주의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주의를 가지고 들어오려고 하는 것을 철저히 막으려고 했다. 율법과 율법주의는 다른 의미다. 율법에는 복음이 숨겨져 있으나, 율법주의는 복음을 망치게 한다.  11장 13-14절『내...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로마서 11장 1절『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에크 스페르마토스 아브라암)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스페르마토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지만, 그러나 버림을 받지 않은 유대인들도 있다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 중 남은 자를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11장 2절『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남은 자란 엘리야 같은 믿음을 간진 자라는 것이다. 엘리야는 아합 왕 때 백성들이 우상을 섬길 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킨 선지자였다.  11장 3-5절『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하나님은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사람 칠천명을 남겨두었다고 말씀하셨다. 많지 않은 숫자다. 바울이 말하는 남은 자는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씨를 가진 자로서 죽은 영을 살릴 수 있는 자라는 것이다. 바울과 엘리야의 공통점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라는 것이다.  11장 5절『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토 뉜 카이로)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토 뉜 카이로는 하나님의 시간을 의미한다. 지금 그 하나님의 시간에도 라는 의미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우리를 남은 자로 만들려는 하나님의 때를 의미하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이라는 것이다.  11장 6절『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에르곤)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에르곤은 일(사역)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일이 아니라, 은혜인 것이다. 많은 일을 하는 자가 하나님의 일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가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것이다.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 10장 12절『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의 음성을 듣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예수를 주로 영접하는 것은 우리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 성령세례를 받은 자가 그렇게 된다.  10장 13절『누구든지(파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에파칼레세타이) 구원을 받으리라(소데세타이)』파스는 영어로 everybody이다. 에파칼레세타이는 간절히 부르다 라는 의미다. 아오리스트 시제, 중간태이다. 중간태라는 것은 부르는 대상이 부르는 사람 안에 있는 것이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의 이름을 간절히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 왜 그렇게 하는가? 이것은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는데, 순간 순간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소데세타이는 미래시제 수동태이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구원은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단지 성도는 구원을 믿음으로 나가는 것이다.  10장 14절『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이 말은 헬라어 성경으로 보면, 『그런즉 어떻게 그들이 믿지 않는 그 분 속으로 들어가려고 간절히 부르겠는가, 그들이 듣지 않는 그 분과 어떻게 관계를 맺겠는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그가 전파하는 것 없이 듣겠는가』라는 말이다. 여기에서의 핵심은 믿음으로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 분을 믿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분을 부를 수 있으며,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라는 것이다. 믿음은 성도의 심령 속에 주님이 임재하시는 것을 믿고, 그 분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는 유대인들

로마서 10장 1절『형제들아(아델포이)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헤 멘 유도키아 테스 에메스 카르디아스) 하나님께 구하는 바(헤 데에시스 프로스 톤 데온)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휘페르 아우톤)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에이스 소테리안)』 헤 멘 유도키아 테스 에메스 카르디아스는 나의 마음의 만족감이다. 헤 데에시스 프로스 톤 데온은 하나님을 행한 그 간구함이, 휘페르 아우톤은 그들을 위하는 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다시 번역해 보면 『형제들아 실로 구원 속으로 들어가도록 그들을 위하는 내 마음의 만족감과 하나님을 향한 그 간구함이 있다』 10장 2-3절『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에피그노신)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에피그노신은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니라 체험적 관계를 통해서 아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문제는 하나님과의 체험적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즉 바울이 진단하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결여되었다는 것이다. 복음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가 실현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선민사상에 붙잡혀 이러한 근본적인 목적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10장 4절『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에이스 디카이쉬넨)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의 마침이 되는 것은 율법으로는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에이스 디카이쉬넨은 의 속으로 들어가면서 이다. 즉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 속으로 들어가도록 율법의 마침이 되는 것이다.  10장 5절『모세가 기록하되(그라페이)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헬라어 성경을 보면, 『모세스 가르(왜냐하면) 그라페이(기록한다) 텐(그) 디카이오쉬넨(의를) 텐(그) 에크(부터) 투(그) 노무(율법) 호티(것을) 호(그) 포이에사스(행하는) 아우타(그런 것들을) 안드로포스...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ㅣ로마서 9장 25-26절『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바울은 호세아의 글을 인용하면서 예정론과 다른 이야기를 한다. 구원받기로 예정되지 않은 자들이 구원을 받으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닌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예정 사상에서 나온 선민 사상이 잘못된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신 것이다.  9장 27절『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토 휘틀레암마)만 구원을 받으리니』토 휘틀레암마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의를 행하는 자를 의미한다. 단수로 쓰였고, 정관사가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배반하지 않고, 특별하게 남은 사람을 의미한다.  9장 28절『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로곤 가르 쉰테론 카이 쉰템논 포이에셀)』로곤 가르 쉰테론 카이 쉰템논 포이에셀은 다시 번역하며,『주께서 그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리라 하셨느니라』이다. 쉰테론 카이 쉰템논은 함께 완성하면서 그리고 함께 조각조각 자르면서 이다. 이 일이 하나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말이다. 함께 하는 자가 바로 남은 자이다.  9장 29절『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스페르마:단수)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엥카텔리펜)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에게네데멘)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토 휘틀레암마(남은 자)가 누구인지 밝히는데, 바로 씨이다. 씨를 남겨두지 않았다면 소돔과 고모라가 되었을 것이다. 그 씨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엥카텔리펜과 에게네데멘은 아오리스트 시제이고, 이것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씨로 남겨둔 것과 우리가 소돔과 같이 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로마서 9장 15절『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바울은 하나님이 야곱보다 에서를 사랑하셨다는 말을 한 뒤 이 말을 하신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야곱을 편애한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하나님은 에서보다 야곱을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시는 것이다. 출애굽기 33장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인용해서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 출애굽기 32장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지 사십여일이 지나도 내려오지 않자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이라고 숭배한 사건이 있었다. 하나님은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모세로 하여금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라고 말씀하셨는데, 모세는 백성들을 용서해 달라고 간구한다. 그런데, 모세의 간구로 하나님이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 모세는 자신을 포함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동행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간청했다. 그 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바울이 인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은혜와 긍휼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만 긍휼히 여기고 은혜를 베푸신 것이다. 야곱과 모세는 하나님이 동행하여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없음을 알았기에 자신이 가는 길에 하나님이 동행하여 주실 것을 간절히 구한 것이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매달린 것도 이 때문이었다.  9장 16절『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모세와 야곱이 했던 것처럼, 하나님이 동행하지 않으면 절대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지 않음을 알고 간절히 매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9장 17절『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에이스 아우토 투토)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엔데익소마이)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모세가 바로의 이야기를 한다. 하나님이 모세를 하나...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로마서 8장 31절『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바울은 성도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말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의 신앙이 되면 그때부터 성부 하나님은 전적으로 아들인 우리와 함께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8장 32절『자기 아들을 아끼지(에페이사토)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파레도켄)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카리세타이) 아니하시겠느뇨』에페이사토는 꺼리다의 의미이고, 파레도켄은 내어주었다 라는 의미다. 카리세타이는 은혜로 줄거다 라는 것이다. 에페이사토와 파레도켄은 아오리스트 시제로, 카리세타이는 미래시제를 사용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은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면 성도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입은 자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임을 보여주신다.  8장 33절『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된 자들은 아무도 고소할 수 없다. 그리고 아무도 정죄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시기 때문이다.  8장 34절『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엔텡카네이) 자시니라』 엔튕카네이의 기본형은 엔튕카노인데, 엔(안에)와 튕카노(결과를 가져오다)의 합성어다. 둘 사이의 중재를 통해 해결하는 의미다. 그래서 간구하다라는 의미보다 중재하다 라는 의미다. 세상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로마서 9장 1-2절『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뤼페 모이 에스틴 메길레)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오뒤네 테 카르디아 무)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모이 테스 쉬네이데오스 무 엔 프뉴마티) 증언하노니(쉼메르튀르세르) (내용없음)』뤼페 모이 에스틴 메길레는 크다란 슬픔이 나에게 있다는 의미다. 오뒤네 테 카르디아 무는 그 마음에 아픔이다. 바울은 자기에게 엄청난 근심과 끊임없는 아픔이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생겨난 것이다. 성령의 탄식과도 같다. 즉 성령의 탄식이 바울을 통해서 나타난 것이다. 구원받지 못하는 자들은 바로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들인 것이다.  모이 테스 쉬네이데오스 무 엔 프뉴마티는 『나의 그 함께 아는 것이 거룩한 성령 안에서』쉼메르튀르세르(증언하면서) 라는 말이다. 쉬네이데오스는 쉰(함께)과 오이다(깨달아 알다)의 합성어다. 그런데 정관사 테스가 있으므로 함께 아는 그것이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를 말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이 함께 하심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9장 3절『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에위코멘) 바로라』에위코멘은 내가 원했었다 라는 것이다. 바울은 한때 기독교인들을 핍박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바울은 메시야로부터 분리되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육신의 종교심을 따르는 자신의 형제들과 친척들을 위해 자신이 총대를 멘 것이다.  9장 4절『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바울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정체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 양자됨, 그 영광, 그 언약들, 그 율법 제정, 그 제사장직 섬김, 그 선포들이다. 이것들은 모두 하나님과 관계된 것이다. 바울은 동사를 현재시제로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과거나 지...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로마서 8장 18절『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쉼파스코멘)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아포칼뤼프데니)과 비교할 수 없도다』 쉼파스코멘은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자가 겪는 고난이다. 즉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다가 겪는 고난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영광(아포칼뤼프데니)과 비교하고 있다.  8장 19절『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죄악된 세상에서 힘들게 사는 피조물들이 간절히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8장 20-21절『피조물(헤 크타시스)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디아 톤 휘포탁산타)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 헤 크타시스에서 크타시스는 단수이고, 헤는 정관사로서 특별한 인간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특별한 피조물인 인간이 헛된 것에 굴복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디아 톤 휘포탁산타는 굴복케하는 것으로 말미암아이다. 한글 개역개정은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이라고 되어있으므로 마치 하나님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굴복하게 하는 것은 사탄이다.  8장 22절『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쉬스테나제이:현재시제)) 함께 고통을 겪고(쉬노디네이:현재시제)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오이다멘)』 오이다멘(현재완료 시제)은 지식으로 깨달아 아는 것을 의미한다. 지식으로 우리는 이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이 함께 탄식하고 해산의 고통을 당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삶의 허무함과 세상의 부패함으로 고통을 당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인간 스스로 여기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8장 23절『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로마서 8장 12절『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빚진 자는 빚을 다 갚을 때까지 자유함이 없다.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육신이 지은 죄의 빚을 다 갚았으므로 더 이상 육신에 끌려가는 삶을 살 필요가 없는 것이다.  8장 13절『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아포드네스케인)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아포드네스케인은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을 의미한다. 죄를 짓고 반드시 이렇게 죽는 것이 아니라, 육신대로 산 자는 예수와 함께 죽지만, 회개하여 그리스도의 믿음을 소유하게 되면 성령으로 성도의 죽은 몸도 영의 몸으로 살리게 된다는 것이다.  8장 14절『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호소이 프뉴마티 데우 아곤타이)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누구든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으면 이라는 의미다. 하나님의 영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령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그 분의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때이다.  8장 15절『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프뉴마 둘레아이스)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휘오데시아스)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프뉴마 둘레아이스는 종의 영으로서 우리를 죄의 종이 되게 하는 영을 의미한다. 바울은 죄의 영과 양자의 영을 대조시킨다. 이 차이의 핵심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아닌가의 차이가 된다. 휘오데시아스는 양자이지만 아들이 되는 것이다.  8장 16절『성령(보혜사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내주하는 성령)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테크나)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하나님의 아들(휘오스)과 자녀(테크나)의 차이점은 아들은 다른 이의 죽었던 영을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리는 일에 동참하는 자이고, 자녀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났지만 하나님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기에 역부족인 자를 의미한다. 그래서 거듭난 자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ㅣ로마서 8장 1-2절『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정죄를 받지 않는다. 죄를 규정할 율법이 없기 때문이고,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성령의        법으로 인도받기 때문이다. 죄와 사망의 법이란 종교심으로 위장하여 신도들을 다스리는 율법주의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적 율법은 기독교 내에 자리잡고 있다. 구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예수의 믿음과 연합이 필요하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하는 그 믿음이다.  8장 3절『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에스데네이 디아 테스 사르코스)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사르코스 하마르티아)의 모양(호모이오마티)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성도 안에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음을 말했다. 바울은 육신이 연약해진 이유(에스데네이 디아 테스 사르코스)는 육신이 율법의 통로가 되므로 약해졌다는 것이다. 육신의 연약함은 죄의 육신(사르코스 하마르티아) 때문이다. 죄의 육신이란 죄가 소유한 육신을 의미한다. 인간의 육신이 죄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의로운 율법을 만들어도 죄가 율법을 이용하여 육신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죄의 소유가 된 육신의 모양으로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호모이오마티 사르코스는 예수님이 죄로 인해 연약해진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그런 모습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죄가 없었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를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죄명은 신성모독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로마서 7장 17절『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오이쿠사) 죄니라』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도 자신 안에 죄가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 죄는 율법 준수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적인 행위로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이쿠사는 현재시제로서 현재적으로 죄가 거한다는 것이다.  7장 18절『내 속 곧 내 육신(엔 테 사르키)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오이다)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오이다는 깨달았다는 것이다. 엔 테 사르키는 육신 안에라는 말이다. 바울은 육신적인 힘으로는 절대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선을 행하는 마음은 있지만 그것을 힘써 수고해서 이룰 능력은 없다는 것이다.  7장 19절『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바울이 예수믿고 사도가 된 현재상태(현재시제)를 말한다. 오늘날 교회 사람들이 예수믿으면 예수의 피로 모든 죄가 다 없어진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신앙인가 알아야 한다. 로마서 6장 7절에서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고 말을 한다.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야 하는 것이다.  7장 20절『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그리스도인들도 항상 자기 안에 죄가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죄에 대해서 죽은 자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다. 죄의 종이 되는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가의 해답은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예수믿으면 죄와 상관없는 자가 된다고 믿는 사람은 항상 죄에 노출되는 것이다.  7장 21절『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파라케이티이) 것이로다』 파라케이티이는 바로 그 옆에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선을 행하기 원하는 자기 안에 악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날마다 발견했다. 예수믿고 성령을 받은 후에도 이런 사실이 ...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로마서 7장 9절『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바울은 율법을 몰랐을 때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고 말한다. 계명을 지키려고 했을 때 자신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므로 죽었다고 표현했다. 바울은 이런 진실을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깨닫게 된 것이다. 생명 속으로 들어갈 계명이 오히려 바울을 죽음으로 들어가게 만든 것이다.  7장 10절『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율법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감추어져 있다. 그런데, 계명에 얽매인 율법주의는 오히려 그 생명을 죽이는 것이 된다. 율법주의 자들은 스스로 종교적인 열정을 가지고 저신이 속한 공동체의 율법을 철저히 지킴을 통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일 뿐이다.  7장 11절『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아펙테이넨)』아펙테이넨은 무참히 살해하다 라는 의미다.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로마교회 안에 몰래 들어온 율법주의 신앙에 대해서 그 위험성을 알리는 것이다. 대부분의 종교는 율법주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율법주의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는 종교인 것이다. 만일 무엇인가 지켜야 한다고 말을 한다면 그것은 이미 기독교가 아닌 것이다.  7장 12절『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율법과 계명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것이다. 바울이 이 율법과 계명을 거룩하다 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 속에 그리스도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율법과 계명 속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의 의미를 깨달아야 하는데, 율법주의자들은 그 의미는 놓치고 오직 그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놓여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알지 못한 것이다.  7장 13절『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메케...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로마서 7장 1-8절)『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7장 1절『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로마서 6장 13절 『또한 너희 지체(타 멜레)를 불의(아디키아스)의 무기(호플라)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메세 파리스타네테)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파라스타사테)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타 멜레는 지체로서 몸을 의미한다. 메세 파리스타네테는 너희는 옆에 세워두지 말라는 것이다. 몸을 죄 옆에 세워두지 말고, 하나님 옆에 세워두라(파라스테사테)는 것이다. 파리스테미는 옆에 세워두다라는 의미이고, 파리스타네테는 명령법 현재시제, 파라스타사테는 명령법 아오리스트 시제이다. 죄 옆에 세워두지 말라는 것은 현재시제로, 하나님 옆에 세워두는 것은 순간 순간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아오리스트 시제). 로마교회의 교인들이 항상 (몸이)죄에 노출되어 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누구나 기독교인들은 현재적으로 죄에 노출되어 있다. 그때마다 하나님 옆에 자신을 세워두라는 것이다.  6장 14절『죄가 너희(하마르티아 휘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이렇게 순간 순간 하나님 옆에 세워두면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마르티아 휘몬은 너희의 죄라는 말이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너희의 죄가 주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죄를 용서받는다. 그러나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죄가 있음에도 덮허두시는 것이다. 죄가 주장하지 못하는 것을 율법이 아니라 은혜 가운데 있기 때문이라고 바울은 말한다.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가면 죄가 주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이런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회개는 옛사람의 죽음이다.  6장 15절『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하마르테소멘) 그럴 수 없느니라(메 게노이토)』 하마르테소멘은 가정법 아오리스트 시제이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죄의 ...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

로마서 6장 6절『우리가 알거니와(투토 기노스콘테스)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호티 호 팔라이오스 헤몬 안드로포스 쉬네스타로우데)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히나 카타르게데 토 소마 테스 하마르티아)』그노스는 관계를 통해서 알게되는 것을 의미한다. 죄의 종이 아니라는 것이다. 죄의 근원은 사탄이다. 죄의 종은 사탄의 종이라는 말이다. 하나님 처럼 될 수 있다고 미혹한 자는 사탄이고 그 미혹에 빠진 자들이 하와(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은 천사들)이다.  (호티 호 팔라이오스 헤몬 안드로포스 쉬네스타로우데)는 『우리의 그 옛사람이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것을』이다. 옛사람과 새사람을 대조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히나 카타르게데 토 소마 테스 하마르티아)그 결과 죄의 그 몸이 완전히 쓸모 없어졌다는 것이다. 카타르게데는 카타(강조 접두사)와 아르게오(쓸모없어지다)의 합성어다.  6장 7절『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데티카이오타이)을 얻었음이라』데티카이오타이는 현재완료 수동태이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의롭게 되는 것이다. 의롭게 되려면 죄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어야 한다. 엣사람이 죽어야 하며, 그 탐욕의 우상이 죽어야하고, 곧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된다.  6장 8절『만일(에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아페다노멘)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쉬제소멘)을 믿노니(피스튜오멘)』 에이는 가정법 접속사이다. 어떤 사실이 일어난 것으로 간주하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라는 것이다. 아페다노멘은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순간적으로 죽었다는 말이다. 성령을 받을 때 순간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쉬제소멘은 우리가 함께 살것이다 라는 미래시제다. 쉬(함께)와 자오(살다)의 합성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공유한 존재가 된다.  6장 9절『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네크론)...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로마서 6장 1-5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6장 1절『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카리스 플레오나세) 하려고 죄(테 하마르티아)에 거하겠느냐(에페메노멘)』 카리스 플레오나세는 은혜가 풍성하도록, 테 하마르티아는 ㄱ 죄이다. 에페메노멘은 우리가 계속 머물겠는가 라는 것이다. 로마서 5장 20절에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쳐난다는 말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을수록 복음의 은혜가 넘쳐난다는 의미가 된다. 하나님은 은혜는 죄를 깨닫고 회개할 때 은혜가 주어지는 것이다.  6장 2절『그럴 수 없느니라(메 게노이토) 죄에 대하여 죽은(아페다노멘 테 하마르티아)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제소멘 엔 아우테)』 그런 것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그 죄와 관련하여 죽게했는데, 어떻게 우리가 그것 안에서 살것인가? 라는 말이다. 케노이토는 희구법(소원) 아오리스트 시제이다. 바울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죄안에서 거하는 일이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소망을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성도는 죄와 관련하여 죽었기 때문이다. 테 하마르티아는 율법을 범한 죄가 아니라 육신의 약함으로 인해 짓는 죄를 의미한다. 죽었다 라는 아포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로마서 5장 15절『그러나 이 은사(토 카리스마)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알 우크 호스 토 파랍토마토)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에이 가르 토 헤노스 파랍토미티 호이 플로이 아페다논)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이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선물이다. 알 우크 호스 토 파랍토마토는 그러나 그 실족과는 같지 않다는 것이다. 파랍토마는 개역개정에서는 죄로 번역되었지만 옆으로 미끌어지다 라는 개념이다. 은사와 실족을 대비시킨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오직 그리스도 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첫사람 아담(그리스도)과 마지막 아담(그리스도)을 등장시킨다. 첫사람 아담과 함께 세상에 온 자들이 마지막 아담과 함께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을 말해준다.  (에이 가르 토 헤노스 파랍토미티 호이 플로이 아페다논) 이 말은 만일 왜냐하면 그 한 사람의 범죄와 관련해서 그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면 라고 번역되는데, 그 한 사람의 범죄와 그 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연결시킨다. 아페다논의 기본형은 아포드네스코이다. (자신을) 죽음에 내 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 많은 사람들의 죽음이 한 사람의 원인으로 해서 발생된 것으로 대부분 사람들이 인식하지만, 한 사람(첫사람 아담)의 범죄는 육체적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의 죽음도 첫사람 아담의 죽음과 연결되는 것이다. 첫사람 아담이라는 육체 자체가 모든 사람의 육체의 죽음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인간은 곧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를 죽게했지만, 은혜로 부활시킨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역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활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는 말이다.  5장 16절『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디)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폴론 파라토마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로마서 5장 12-14절)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5장 12절『그러므로(디아 투토)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하마르티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디아 투토는 이것 때문에 라는 의미다. 디아는 바울이 로마에서 말했던 하나님의 의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의 때문에 첫사람 아담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