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21의 게시물 표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

(로마서 15장 14-21절)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는 총1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11장이 복음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고, 12장에서 마지막 장까지는 복음으로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이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이 직접 세우지 않은 로마교회 성도들을 향해 애정 어린 심정으로 내 형제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바울이 다정다감하게 부르고 있는 로마교회 성도들이 어떠한지 증거한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여기서『스스로 선함이 가득하다』는 말은『성령 안에서 선한 마음이』충만하고, 『모든 지식이 찼다』는 말은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세상적으로도 지식이 풍부하다는 것이다.『서로 권하는 자』라는 의미는 약한 자와 강한 자, 즉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들이 서로 권면할 수 있는 관계로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다....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로마서 15장 1-13절)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본문을 읽어보면, 강한 믿음의 소유자가 약한 믿음의 소유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한다는 권면으로 읽기 쉽다. 그러면 강한 믿음의 소유자는 어떤 약점도 없고, 약한 믿음의 소유자는 대단히 문제가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리고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표가 강한 믿음으로 여기게 될 수 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그 믿음을 바라보는 성도들의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강하게 또는 약하게 반응할 뿐, 믿음 자체는 변하지 ...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로마서 14장 13-23절)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기독교인들만큼 사랑과 은혜라는 단어를 많이 말하는 사람들은 없다. 기독교의 핵심이기 때문에 그렇다. 세상에 수많은 종교들 중에 단연 기독교만큼 사랑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종교가 없고, 예수님만큼 사랑을 분명하게 가르쳐준 분이 없다. 우리는 그 사랑으로 거듭났고, 그 사랑으로 의롭다함을 얻었으며, 그 사랑을 목적으로 삼고 그 사랑을 힘입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도록 부름 받았다. 그런데 정작 현실에서는 도리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분열이 일어날 때가 많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 분열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성경말씀이라는 잣대로 타인의 의견을 판단하고 비교하...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로마서 14장 1-12절)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믿음은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믿음은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에 대한 각자 신도들에게 나타나는 반응을 의미한다. 사람마다 믿음의 반응 정도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서로 차이가 있어 믿음에 대한 논의와 권고는 할 수 있을지라도, 진리의 말씀이 변궤되지 않는다면 그 차이에 대해서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다.  성도들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다양한 갈등을 겪는다. 그 갈등의 원인들은 대부분 사람들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배워서 아는...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로마서 13장 8-14절)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인생은 누구도 예외 없이 본질적으로, 전적으로, 철저하게 부패한 존재가 맞다. 포장이 그럴듯하고, 속임에 능한 것뿐이지, 인간 마음의 어두움과 더러움, 그 추악함을 말로는 아무리 잘 표현한다 하여도 잘 나타낼 수도 없을 지경이다. 인생이 얼마나 영적으로 눈이 멀었고, 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인지 자신을 선하게 할 능력도, 스스로 하나님께 돌아올 능력도 전혀 없다. 무력과 무능 그 자체이며 인생 스스로에게는 결코 소망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는 인생들은 고통스러운 갈등으로 아우성 칠 뿐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것이 로마서의 선언이다. 시편 51편 5절에서도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이 다윗의 고백이 로마서의 고백인 것이다.  로마서 2장 10-16절에서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하나님 ...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로마서 13장 1-7절)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11장까지는 복음의 내용, 즉 성도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는 교리적인 문제를 말씀하고, 12장부터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 것인가, 즉 그리스도인의 윤리적인 삶의 문제를 다루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문제를 다루면서 대원칙이 있는데,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영역 중 네 가지 기본적인 관계, 즉 하나님과의 관계, 우리 자신과의 관계, 서로와의 관계, 원수와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데, 어떻게 그들을 사랑할 수 있는가?  육의 마음으로는 불가능하다. 다만 육의 마음을 부인하고 영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13장에서 바울은 더하여 세 가지 관계 즉 국가와의 관계, 율법과의 관계, 주의 재림의 날과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국가와의 관계에 대해서 바울은 먼저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명령을 말한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장 9-21절)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사랑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다. 즉 옛사람은 죽고,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육적 몸이 죽기 전에는 그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못한다. 바울은 기독교 공동체에서의 관계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들로 구성된 로마교회 교인들에게 서로 사랑하되 형제자매처럼 그리고 가족처럼 사랑(서로 우애하고)할 것을 권면했다. 유대인과 이방인들로 구성된 로마교회 교인들에게 사랑하되 가족처럼 친형제 자매처럼 사랑하라고 한다. 영적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육으로는 할 수 없지만, 영으로서는 할 수 있...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로마서 12장 3-8절)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로마서 1-11장이 복음의 내용을 설명했다면 12장에서 15장은 복음으로 의롭게 된 자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즉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실천적 부분을 다루고 있다.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와야만 한다. 믿음이 오기 전에는 율법 안에 갇혀있는 자다. 그런데, 믿음이 온 자에게도 이 믿음을 전하는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한다.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일, 위로하는 일, 구제하는 일, 긍휼을 베푸는 일 등이다. 이 모든 것이 믿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서 사용되는 것이 되는 것이다. 하늘로 부터 오는 믿음을 전하지 않고 이런 일들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자기의 의를 세우는 것 밖에 될 수 없는 것이다.  믿음을 전하는 일은 마치 몸의 조직과 기관처럼, 맡은 바 역할이 있듯이 이런 조직과 기관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해서 몸을 이루듯이 그렇게 됨을 바울은 설명한다.『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말했다. 『마땅히 생각해야 할 부분』은 바로 믿음을 전하는 일이라고 말을 할 수 있다.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 외에 그 이상을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사용된 여러 수단들(섬기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로마서 12장 1-2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문귀는 교회에서 암송하는 문귀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전에『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는 문귀가 있다. 변화를 받지 않고 주의 뜻을 분별할 수는 없다. 아무리 문귀를 외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변화를 받기 전에『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먼저 말한다.  오순절 날 불의 혀가 갈라짐같이 성령이 임하셨다. 그들이 하나가 되고, 두려움이 사라지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했다. 초신자들은 성령을 받고 싶어하고 방언을 받고 싶어한다. 성경에서 성령이 강하게 임하시는 이유는 복음의 전파 때문이다. 그런데 누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사도의 발 앞에 자기들의 재산을 전부 내놓았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임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행하게 된 것이다.  성도들이 서로 필요한 것들이 서로 채워지기를 원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렇게 되면 거의 이단처럼 여겨지고, 대부분 자본주의 사고에 매여있게 됨을 발견한다. 성경을 읽고 주목하는 것은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이지 내가 관심이 없는 영역에는 주목이 되지 않는 현실이다.  다윗은 매일 주의 말씀을 묵상한다고 했다. 우리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말하면서 매일 기도하고 매일 성경을 읽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되는가? 그리고 주의 뜻을 깨닫는 자가 얼마나 되는가? 주님은 사람을 찾으신다. 주의 뜻을 깨닫는 자를 찾으신다. 주님이 그 사람을 찾으시면 주의 뜻을 그 사람을 통해서 이루신다.  사사시대가 끝날 무렵, 가정에서 고통받는 『한나』라는 여인이 있었다. 매일 고통스러운 날을 보내며 성전에...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로마서 11장 25-36절)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떠나 허랑방탕하게 재산을 탕진한 둘째아들이 죽은 자같이 되어 돌아오자, 아버지는 아들을 품에 안으며 잔치를 열었다. 아버지 곁에서 한결같이 살아왔던 큰 아들 입장에서 보자면, 아버지의 이러한 처사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큰 아들은 『노하여 잔치에 들어가지 않고』(눅15:28) 아버지에게 『내가 여러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눅15:29,30). 큰 아들의 견지에서 아버지의 처사는 불공평 그 자체였다. 아버...

돌감람나무와 참감람나무

(로마서 11장 13-24절)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접붙일 때 뿌리가 있어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나무를 대목이라 한다. 대목이 튼튼해야 접붙이는 가지에서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바울이 말하는 접붙임 비유는 조금 이상하다.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원래대로라면 돌감람나무에 참감람나무의 가지를 접붙이는 것이 맞다. 참감람나무에 돌감람나무를 접붙인들 그 열매는 돌감람나무의 것이니 무슨 소용이 있...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로마서 11장 1-12절)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바울이 이런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바로 앞 단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과 하나님의 진노가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끊임없는 불순종과 그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가장 커다란 맥락이기도 하다. 바울이 던진 이 질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불순종했고, 하나님은 진노하셨는데, 하나님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셨다는 말인가?” 질문에 대한 답은『그럴 수 없느니라』이다. 즉 하나님은 결단코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 10장 12-13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구원이 쉽게 느껴진다. 바울이 세례받을 때 들은 이야기다. 사도행전 22장 16절에서 바울의 간증이 나온다.『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다메섹에서『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다』라는 음성을 들었다. 그래서 예수를 믿게 된 것이다. 이 믿음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라는 것을 믿는 것으로 이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 때 빛으로 눈이 멀었다. 회개하지 않은 자는 주님의 빛이 비춰져도 영적 눈이 멀게된다. 회개하는 자가 그 빛으로 눈이 뜨여진다.  삼일동안 바울은『내가 주를 대적했구나』라고 회개를 한 것이다. 사십년 광야생활이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기록되었는데, 광야에서의 죄들은 성막을 만들자마자 아론의 아들들이 다른 불을 드리다가 즉사하고 만다. 광야에서 간음하다가 몇천명이 죽었다는 것이 간단하게 나오고, 상세하게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죽었다는 내용이다. 신명기에서는 하나님보다 높게 되려고 하는 죄들을 기록한 것이다.  바울이 삼일 동안 영이 깨어난 것이다. 삼일만에 아나니아가 바울에게 왔다. 삼일의 기간은 바울이 회개하는 기간이었다. 치유한 다음에 말한 내용이다.『네가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라고 했다. 베드로는『네가 회개하여 각각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라고 말했는데,『회개하라』는 말 대신에 『주의 이름을 불러』라고 했다. 이 말은 요엘서를 인용한 말이다. 회개는 예수가 주가 되는 것이다. 바울이 다메섹에서『주여 뉘시니이까』라고 말했다. 그 때 사도바울의 주는 만군의 여호와다. 삼일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 자신인 것도 깨달았다.  마태복음 7장 21-23절에서『나더러 주여 주여 ...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로마서 10장 9-11절)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첫째,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둘째,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 된다.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것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룩하신 Lord(여호와)이신 것과 주인이라는 뜻이다. 주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자는 거듭난 자다.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 된다는 뜻이다.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으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거듭남)에 참여함을 믿는 것이다.  마음으로 믿는 것에 대해서 로마서 4장 19-22절에서 설명하고 있다.『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아브라함이 이 믿음을 얻은 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란을 떠난 후 25년이라는 기간이 지나서 얻은 것을 말한다. 아브라함이 거듭난 자의 믿음을 얻은 것이 25년 걸렸다는 말씀이다. 반드시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거듭난 자의 믿음은 순종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받아 드려져야만 하는 믿음이라는 것을 말해주신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나온지 얼마 안되는 사람에게 거듭남의 의미도 모르면서, 예수를 영접하면 다 거듭난 믿음을 가졌다고 선포해버린다는 것이다. 교회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다 거듭났다고 먼저 선포하고, 그 다음에 거듭난 자가 행해야 할 일을 말하게 된다.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죄에서 떠...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로마서 10장 1-8절)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구원이 쉬워보인다.『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오늘날 교회에서는 거듭난 자와 거듭나지 않은 자가 혼재되어 있다. 말씀을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오해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위의 말씀을 전할 때 듣는 자의 경우, 거듭난 자는 이 말씀이 적용되지만 거듭나지 않으면 적용되지 않는다. 거듭난 자는 하늘로부터 태어났으므로 적용되지만, 거듭나지 않으면 율법 아래 있어, 이 말씀이 적용되지 않는다.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와야만 한다.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그래서 영접기도는 교회로 인도되어 부르심을 받아 회개의 기회를 찾은 것이지, 택함을 입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접기도를 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말한다면 거짓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요한1서 1장 9절에서『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듣는 자의 입장에서는 죄를 고백하면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시는 ...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로마서 9장 27-33절)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바울은 자신의 동족이 실패하고 있는 것에 대한 애끓는 고통을 토로하지만 이러한 바울의 동족에 대한 사랑의 표현은 계속해서 이어지지 않는다. 동족을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오히려 로마서의 전반부에서 논증했던 혈통적 유대주의의 해체에 대한 논의를 다시 이어갔다. 앞의 6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혈육인 이스라엘의 실패가 이스라엘에게 복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졌기 때문에 발생된 것이 아니며, 나아가서 이스라엘에게서 난 이들이 모두 이스라엘이 아님을 이내 말한다. 즉 동일한 아브라함의 혈통이지만 그 속에는 육신의 자녀와 약속의 자녀가 있으며, 하나님의 약속은 바로 후자에게 주어진 것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약속의 자녀는 혈통적 계보를 따라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또 인간의 원함이나 달음질,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대해 사람들은 반문할 수 있다. 하나님께 불의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하시는 것이라면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을 허물하실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그...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로마서 9장 19-26절)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인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개하는 죄인들을 구속해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해 주셨다. 고린도후서 5장 18-20절에서『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사도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자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계시고, 성도 또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성도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죄인이 만나는 곳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고 하신 말씀이 적용되는 것이다. 죄인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로마서 9장 15-33절)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 모세를 세웠지만 바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세우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욥을 치도록 허락하신 것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 세상에 갇혀있는 모든 인간들에게 돌아가야만 할 곳이 하나님 나라임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돌아가야만 하는 곳이 애굽이 아니라 가나안임을 보여주듯이 세상 사람들 또한 이 세상이 고향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본향임을 말씀해주신다. 이 구원을 위해서 바로를 세웠듯이, 사탄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를 강팍하게 하듯이 사탄을 강팍하게 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들에게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모세는 애굽에서 자랐지만 스스로 히브리인이라는 것을 알게되었고, 자신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들었다. 처음에는『자신이 애굽의 왕이 되어 큰 힘을 가지게 되므로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수 있으리라』생각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약속하신 메시야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고,『메시야가 우리의 왕이 되리라』라고 생각해 왔다. 당시에도 예수님이 큰 기적과 권능을 행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이 분이 바로 메시야』라고 생각하고, 로마에서 해방할 수 있는 왕으로 모시려고 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므로 다 뿔뿔히 흩어졌다. 에수님이 부활하신 후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다른 곳으로 가지말고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제자들은『이 때...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로마서 9장 13-14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을 택하는 방법이다. 『기록된 바』는 말라기 1장 2-3절의 글이다. 말라기는 구약성경에서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선지자다. 그런데 말라기 4장 5-6절에서『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이 말은 세례요한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들은 말하기를『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인데, 왜 이런 말을 하시는가?』라고 묻는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런 질문을 말을 할 수 있겠으나, 각 시대마다 볼 때,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지는 않으셨다. 이게 하나님의 의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 회개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런데 죄인인 인간이 어떻게 회개를 할 수 있는가 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회개할 수 없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세례요한이『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말했다. 예수님도 세례요한이 죽자 같은 말씀을 하셨다. 사도바울도 로마에서 죽기 전에 아그립바 왕에게『하나님이 회개하라』고 명령하신 것을 말한다.  회개는 하나님의 명령이지만 인간은 회개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회개할 수 없는 존재인 것처럼 된 것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죄가 해결되지 않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은 회개에 대한 정확한 말씀없이, 너무 쉽게 구원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서 10장 9절에서『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그런데 이 말은 회개하여 ...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로마서 9장 7-12절)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바울은 이삭과 리브가를 통해서 태어난 쌍둥이 에서와 야곱에 대해서 말한다.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라고 말씀했다.  이스마엘과 이삭은 그 어머니가 달랐다. 그러나 에서와 야곱은 동일한 어머니에게서 그것도 쌍둥이로 태어난 자들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에서 대신 야곱을 택하셨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택하신 것에 대해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라고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택하신 것은 야곱의 그 어떤 행위에도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택하심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시며,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긍휼 가운데 이루어진다.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라 말하고 있다. 예수님은『부르심을 입은 자는 많되 택하심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에서 왕이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준비하고 초청장을 보냈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다. 왕이 ...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로마서 9장 1-6절)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바울은 지금 자신을 핍박하는 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을 위해서라며 자기가 저주를 받고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도 괜찮다고 할 정도로까지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왜 자신을 핍박하는 유대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토록 가슴 절절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그것은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바울 자신도 이전에는 자기를 핍박하고 있는 유대인들과 똑같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무자격자이자 무가치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처럼 무자격자, 무가치한 사람에게 먼저 찾아와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자로서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기에, 지금 자신을 핍박하는 동족 유대인들을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눈으로 바라보며 사랑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로마서 8장 33-39절)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 교회와 바울 모두 확신 위에서만 살 수 있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교회까지 세워졌지만 제국의 중심지에서 과연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있는지 고민했던 로마 교회에게 확신의 문제는 중요했다. 바울은 과거에 바른 길을 가던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다는 죄책감을 지금 맡겨진 사역의 동력인 채무감으로 바꾸기 위해 은혜의 확신이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과 기도를 여러 번 되새김질해야 했을 것이다.  바울은 확신에 대해서 설명한다. 본문에서 『누가』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그 교회는 누군가 대적했고, 고발했으며, 정죄했고,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려 했다. 이것은 외부적 환경의 이야기일수도, 내면에서 날마다 우리를 절망케 하는 속삭임일수도 있다. 바울은 이러한 현실이 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에 멈춰있지 않고 현실 너머의 부르심을 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바울은 현실의 문제에 대한 답변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할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삶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삶을 이정표와 종착지로 여기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로마서 8장 23-32절)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그 다음에 말씀하실 것을 생각해 보면『내가 내 아들을 너희에게 주었는데, 너희는 나에게 무엇을 주겠느냐』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율법적이다. 그렇게 말하는 자들도 가끔 있다. 주님의 뜻을 전혀 모르는 자들이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은『너희들이 사단(마귀)의 종이 되었는데, 사단(마귀)에게 피값을 지불한 것이 내 아들이었다 내가 너희를 산다』라고 하는 말씀이다.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 마귀의 종이 된다. 그러나 회개하고 아들 속으로 들어오면 하나님은『아들 속으로 들어온 자』를 사서 아들로 바라본다.  죄가 있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마귀가 있다. 그래서 마귀가 죄에 대하여 하나님 아들의 피를 요구한 것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로마서 8장 14-22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성령의 능력으로 죽었던 영의 몸을 살리시는 것이다. 영이 살기 위해서는 영의 몸을 입어야만 한다. 그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을 말한다. 육의 몸과 영의 몸은 서로 함께 할 수 없다. 육의 몸은 옛사람(탐욕)으로 표현되며, 영의 몸은 그리스도의 옷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거듭난 자는 육의 몸이 예수와 함께 죽은 자가 된다.  육의 몸으로부터 육의 마음이 나타난다. 그래서 거듭난 자라 할지라도 육체가 존재하므로 사탄이 육의 마음을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 육의 마음에 넘어져서는 안되는 것이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해야만 한다. 영의 몸으로 거듭난 자는 성령께서 인도하신다. 성령으로 인도하시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난 것이다. 성령의 인도를 맏기 위해서는 예수와 함께 육의 몸(옛사람)이 죽어야만 한다. 그래서 하나님 아라...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로마서 8장 10-13절)『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율법이 완성되었다. 그런데, 율법에 따라 의를 이루어보겠다고 하는 자는 율법의 완성이 아니라 율법에 갇혀있는 자가 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율법의 적용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율법은 폐하여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에게는 살아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마음에 새겨져 있으므로, 돌에 새겨진 법은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성령의 법에 적용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의 뜻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예레미야 31장 31-34절에서『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내산에서 언약의 말씀을 주셨다. 언약은 바로 율법이다. 즉 옛언약이다.『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로마서 8장 7-9절)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은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 두 종류다. 교회로 인도받은 사람들은 믿음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온 경우가 많다. 복음을 듣고 와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므로 교회에서 복음을 말해준다.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신앙관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회개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배웠다면 영의 생각에 대해서 잘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분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오래 교회를 다녔더라도 성경 지식은 많이 있지만 육의 생각에 머물게 된다. 육의 생각에 머무는 자는 환란이 오면 불에 타버린다.  그리스도 위에 세우는데, 풀이나 나무나 지푸라기로 살면 불에 타버리고 만다.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세운 것은 불에 더 빛날 것이다. 아무리 인간의 노력으로 세운다고 해도 그것은 풀이나 나무와 같은 것이다.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으로서만 세워질 때 되는 것이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고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했다. 주님은 가나안 땅을 약속했다. 광야는 약속의 땅이 아니다. 모든 약속은 가나안 땅에서만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지고 적용되며, 열매맺는다. 광야에는 물도 없고 파종할 곳이 없다.  어린양을 의지한다는 사람들도 두 종류다. 평생을 광야에서 살다가 죽느냐, 아니면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태어나느냐이다. 회개에 이르러서, 가정과 일터에서『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느니라』라고 믿고 순종하는 사람 만이 구원에 이른다. 사람들이『구원을 얻는 이가 적으니이까』라고 예수께 물었다. 예수께서『부르심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하심을 입은...